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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연구실에서 터진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160-166)

하버드 연구실에서 터진

‘Great Idea’

ReSEAT 전문연구위원 윤성철

는 1980년대 초반 수화겔1) 막을 통한 혈장분자들의 이동 에 관한 내용으로 박사 학위 연구를 마칠 즈음 새로운 길 을 찾기 위해 포스트닥(박사후 연구 연수)을 가기로 했다. 당시 나의 대학원 지도 교수님은 자신의 연구 네트워크에 있는 미국의 어느 대학 연구실로 가서 교수님 본인이 연구하고 있는 일을 이어 가길 바라셨지만, 나만의 영역을 개척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그늘 에서 미래를 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독립을 결심하고

1) 수화겔이란 합성고분자 또는 천연고분자(예, 한천) 중에서 물을 잘 흡수하는 폴리머를 가교 시켜 구조를 단단하게 만든 물을 많이 포함하는 겔(gel) 소재로서 막(membrane)으로 제조 해 콘택트렌즈, 혈액투석용 막 등의 의학적 용도로 사용한다.

내가 관심이 있는 ‘생체막을 가로지르는 물질 이동통로의 이해’가 의약품 개발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관련 연구 분야의 연구실마다 편지를 보낸 결과, 하버드 의과대학 A.K. Solomon 교 수의 생물물리 연구실(Biophysical Lab)에서 응답이 왔다.

Solomon 교수께서 나를 포스트닥으로 채용한 이유는 두 가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나의 연구논문 내용 중 용질이 수화겔 막을 통과할 때 용질이 막의 통과 경로에 있는 물 분자들의 구조를 교란하는 인자가 중요한 성질이라는 발표에 관심이 있으셨던 것 같다. 그 당시 교수님은 적혈구 막의 음이온 및 물 수송에 “pore theory”2)를 고집 하셔 물도 통과하는 채널이 있다고 주장하고 계셨었다. 교수님은 프린스턴 대학에서의 물질이동을 다루는 이론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하버드 대학에 오셔서 적혈구 막에서의 수 밀리 초 이내의 매우 빠른 물질 이동현상을 ‘정지흐름’ 방법에 의해 연구하는 세계적 권위의 연구를 하고 계셨었다. 그 당시는 매우 어려운 기술로 평가되는 정지흐름 기술이 초기 단계라 상업적 장치가 아닌 직접 만든 장치를 이용하고 있었다. 아마도 교수님이 자신의 적혈구 막 물 수송 이론에 나의 물 구조 교란 이론을 접목할 목적이 있으신 것 같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시점에 교수님이 정년으로 명예교수로 연구는 계속하시지만, 연구비 사정이 녹녹치 않아 과학재단 연구비 지원을 받는 나에게 관심이 있으셨던 것 같았다.

2) 작은 용질분자가 적혈구 막을 통과하기 위한 정적인 상태의 통과 채널의 존재에 대한 가설.

보스턴 시내의 하버드 의대 연구실에 도착했을 때, 연구실에는 포스트닥

이온이 이동하는 자리이니 당연히 물도 함께 이동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만약 한국

과학자의 길 역시 마찬가지다. 과학자는 스스로 진화해야 발전한다고 믿는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가능성을 위해 과감히 결정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대학원 지도교수님의 제안을 거절하고 나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낯선 보스턴으로 떠났을 당시 내 옆에는 아내와 어린 딸아이가 함께 있었다. 가장으로서 일말의 걱정이 없었겠는가. 나 자신을 믿고자 노력했고, 치열하게 매달렸다. 그 결과, 보스턴에서 보낸 1년은 나만의 새로운 연구 영역을 넓히는 계기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자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BBA에 실린 연구 논문을 보며 그때의 추억을 생생하게 떠올리곤 한다. 나만의 아이디어를 결과로 성공시키기 위해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웠던 열정, 지쳐있던 내게 위층 연구실의 젊은 교수님이 보내준 따뜻한 응원, 컴퓨터로 일을 하다가 학과 전체 컴퓨터 시스템을 초기화시킨 웃지 못 할 해프닝 등등 과감히 보스턴으로 떠나지 않았 다면 겪지 못했을 삶이었을 것이다. 내가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진로 고민을 했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고민할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포스트닥 등을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연구 영역을 개척하고 싶다면, 연구실의 명성보다 그곳의 시스템이 진부한 것은 아닌지 앞으로의 가능성이 어떤지를 먼저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면, 뒤돌아보지 말고 과감히 앞으로 나아가라. 스스로 진화하는 과학자에겐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다.

호기심과 열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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