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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발전의 가능성이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37-43)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발전의 가능성이다

ReSEAT 전문연구위원 백태현

가 학생이던 60년대 후반은 데모와 계엄령 등으로 국내 정 세가 불안정해 휴학, 휴강 등으로 강의를 듣는 날보다 학 교 밖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집에 있는 날이 더 많았던 시절이다. 당 시 국내 대학의 교수님들 중에는 공학박사 학위를 가진 분을 찾아 보기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잦은 휴강 등으로 수업일수도 얼마 되지 않아 대학과정의 공학 교과목 학습내용을 독학으로 이해하 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학구열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70년대 초에 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소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 했다. 나의 주된 업무는 기술 관리였다. 하지만 역설계로 생산한 제품을 규격서에 따라 시험 평가하고, 제품의 제조 진행과정을 관리하는 일정한 틀 안에서 업무가 이루어졌다.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기술개발과 응용에도 관심이 많았으나 기초지식이 부족하고, 기술 개발 업무가 아닌 일반적인 관리 업무를 맡고 있어서 지적인 욕구를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당시 연구소에는 해외 명문대학의 학위를 받은 유학파 박사들이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또한 해외에서 공부 중인 선후배들도 더러 있었기에 나도 유학길에 오르는 순간을 갈망하였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유학에 대한 희망을 갖고 노력한 결과, 주변 분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10여 년의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에 있는 대학으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은 건, 1981년 5월의 일이다.

하지만 의욕만 있었지 기초지식은 극히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유학 생활 초반에는 강의를 듣고 학점을 받는 일이 어려움과 고통의 연속 이었다.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에 적신호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간절했던 만큼 부단히 노력했고, 그 결과 필요한 학점을 겨우 취득할 수 있었다.

학위논문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지정된 교과목의 학점을 취득하고, 주요 수강 교과목에 대한 전공시험, 그리고 논문 주제에 관한 예비

발표시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어렵게 이러한 과정들을 거쳤으나 지도 교수의 주 전공과 관련된 광학에 대한 지식은 전무에 가까웠다. 당시 지도교수는 ‘반 프린지 광탄성’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실험법을 창안하 였고, 연구실 멤버들은 그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광학 실험에서 프린지는 한 주기 이상을 가지면 프린지를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지만, 반 프린지 이하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아 관찰이 어렵다.

반 프린지 이하는 물리적 현상으로 발생된다. 하지만 80년대 중반에 개발된 영상처리 장비의 해상도가 낮고, 잡음 제거에 대한 이론과 소프트웨어도 많이 개발되지 않았던 터라 ‘반 프린지 광탄성’에 관한 이론을 실험으로 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은 그런 문제점들 때문에 연구 대상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학위논문 작성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지도교수님의 전근이 결정되었다. 논문 주제를 결정하는 것부터 작성까지 모두 혼자 힘으로 해내야 했다. 당시 지도교수는 광탄성 분야가 주 전공이었지만, 옵티컬 코스틱과 레이저 초음파 등 레이저를 이용한 실험법에도 많은 관심을 가진 분이었다.

당시의 나는 광학적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지도교수의 연구 분야 중 하나인 광탄성 실험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이유는 광탄성 프린지가 무지개처럼 여러 색으로 나타나 아름답게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광학적인 분야보다 응력을 육안으로 관찰 할 수 있어 논문

주제를 발견해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도교수의 주 관심분야인 ‘반 프린지 광탄성’에 관해서는 광학적 지식이 부족하여 실험 결과를 이론적 해석으로 규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관습적인 광탄성법으로 힘을 받는 부재 균열주위의 광탄성 프린지를 측정하고, ‘응력함수’를 이용하여 프린지를 재구현해 논문을 작성하기로 했다. 물론 몇몇 연구자들은 이미 이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지도교수님은 이미 발표된 연구논문을 그대로 따라 연구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기존의 연구 결과를 보완하거나 독창적 연구가 될 수 있는 사항에 대한 연구해볼 것을 제안했다.

파괴역학에서 파괴인성을 측정하기 위해 ‘응력강도계수’라는 파라미터를 사용한다. 이 파라미터에 관한 식은 균열 팁의 근접영역에 유효성이 입증되어 널리 사용된다. 이 파라미터는 재료의 탄성적 특성에 기초한다.

‘탄성론’ 강의에서 응력함수를 배웠는데 이 함수도 역시 물리적⋅수학적 으로 잘 정립되어 있었다. 응력함수의 유효성을 실험하기 위해 일단은 광탄성 실험을 통해 균열 주위의 응력 프린지를 관찰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광탄성 시편을 만들어 프린지를 측정한 후, 응력함수를 이용한 프린지를 재현하였다. 형상은 비슷한데도 서로 일치하지는 않았다. 응력함수로 재현한 프린지는 균열부의 근접영역에서는 어느 정도 일치했지만, 원거리 영역에서는 오차가 많이 발생했다.

당시 균열에 관한 ‘급수형 응력함수’가 균열의 근접 영역뿐만 아니라

원거리 영역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실험 논문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이를 근거로 급수형 응력함수에서 항의 수를 늘려가며 실험을 진행 했으나 재현된 프린지는 측정된 프린지와 역시 차이가 있었다. 이 과정을 수차례 반복한 끝에 마침내 균열의 근접 영역뿐만 아니라 원거리 영역 에서도 서로 일치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 실패한 원인을 살펴보니 균열 팁 원점 좌표가 서로 어긋나 있었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측정된 여러 데이터로부터 최소 자승법(least square method)을 이용했다. 그 결과 균열 팁 원점 좌표를 찾을 수 있던 것이다. 균열 팁 원점 좌표가 일치하니 응력 함수가 살아나면서 측정한 프린지와 재현된 프린지가 놀라울 정도로 잘 일치하였다.

학위논문은 시편(광탄성)에 나타난 물리적 현상을 관찰하고 탄성적 응력함수를 이용하여 시뮬레이션 하는 내용을 작성해 발표하였다.

새로운 실험법도 아니고, 광학이론을 고안한 논문도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심사위원들로부터 ‘응력함수’와 광탄성 프린지의 관계, 그리고 ‘최소자승법’으로 균열 팁 원점을 계산했다는 창의성을 인정 받아 학위논문이 통과되었다.

요즈음 많은 대학들이 SCI등 국제의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몇 편 이상 게재해야 박사 학위논문 발표 자격을 주고 있다. 이런 이유로 박사과정 학생들이 졸업논문 발표 이전에 전문 학술지에 게재해야 하는 의무감 때문에 박사논문 자체의 학문적인 의미보다 형식과 조건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이다. 하지만 나의 논문이 통과됐던 당시, 나는 전문 학술지에 논문발표 실적이 하나도 없었으나 극히 보편적인 이론을 적용한 논문에서 창의성을 인정받아 학위 논문이 무사히 통과된 것이다.

물리적인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면, 기존의 연구 방식과 다른 독창적 이고 창의적인 연구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러면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아가며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다녔던 미국의 대학은 아주 작은 창의성이라도 인정해주며 세계의 학문 발전을 선도했다고 생각한다. 논문이 학술지에 노출된 횟수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논문에 담겨있는 연구에 대한 학생의 진심 어린 노력과 열정, 그리고 스스로 고안해낸 나름의 창의성을 먼저 발견해주는 일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 균열 주위에 나타난 광탄성 프린지

▶▶ 영상 처리된 프린지와 측정 데이터

▶▶ 응력함수에 의해 재구현한 프린지

하나의 알고리즘만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3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