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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파 열처리가 물속에서도 가능하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62-67)

고주파 열처리가 물속에서도 가능하다?

ReSEAT 전문연구위원 김한군

다수의 열처리 전문가나 열처리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 상 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고주파 열처리가 피 가열 물체 를 전류가 흐르는 코일 속에서 분리하고, 반드시 공기 속에서 가 열한 다음에 물 등의 냉각 매질을 통해 경화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도 수중 고주파 열처리를 개발하기 전까지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알려진 상식이다.

금속을 전기가 흐르는 코일과 분리한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전기를 일으켜 가열 하지 않으면 피 가열 물체와 전류가 흐르는 코일이 접촉

하면서 방전 스파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전자레인지가 음식에 열을 직접 가하지 않고도 전기로 가열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고주파 열처리에 대한 고정 관념에서 탈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술 교육 차 자주 방문하던 D 열처리 회사에서 경험한 일화 때문이었다.

당시 D 회사는 선진 열처리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의 히로시마의 나카노 열처리 회사에 C전무를 연수 보냈다. 일본에서는 수중고주 열처리라는 기술이 실용화 되고 있었다. 수증고주파열처리는 물속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직접 가열한 다음, 침지시킨 상태에서 담금질을 시킨다. 이 과정은 공기 중에서 가열할 때보다 가열 후 냉각 등의 공정이 단축되고, 두께가 아주 얇은 표피 부분만 경화가 일어나서 열처리 후 변형과 치수 변화가 최소화 된다는 장점이 있다.

C전무는 한국에 돌아와 이 기술을 개발하고자 했다. 저주파 중주파 고주파는 주파수의 차이로 구분하는데, 이중 열처리에 사용되는 것은 고주파다. 열처리에서도 깊은 부분까지 가열시키기 위해서는 저주파나 중조파를 사용하고 아주 얇은 표면만 가열할 때는 가능한 고주파를 사용해야 한다.

저주파는 수십hz단위이고, 중주파는 0.5∼10Khz, 고주파는 100Khz 이상, 수 Mhz단위로 구분된다. 저주파는 고주파로, 고주파는 저주파로 상호 주파수를 변화시킬 수 있는데, 이것을 상품화시킨 대표적인 제품이 라디오다. 저주파를 고주파로 변조시키는 장치로 옛날에는 진공관을

주로 이용했지만, 트랜지스터와 SCR 등이 발명되면서 소형화되었다.

저주파를 고주파로 변화시킨 뒤 도선에 전류를 흘리면 자장이 발생하게 되는데, 유도 전류가 도선에 흐르는 주파수의 제곱근에 반비례하여 표면에만 부분적으로 발생된다. 이렇게 가열된 표면층은 주파수에 반비례해 얇아지기 때문에, 가능한 주파수를 높게 해야 하지만 주파수만 높게 해서 표면을 얇게 가열하는 방법은 한계가 있다.

한편, 비슷한 원리의 전자레인지는 순간적인 전기 에너지로 부분적인 가열을 시킨다는 점에서 고주파열처리와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르다. 전자레인지는 외부 전기장을 물 분자의 고유 진동수에 맞춰 바꾸면 공명 현상이 일어나면서 물 분자가 진동하게 된다. 진동하는 물 분자는 주위 분자들의 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음식물을 가열하게 된다. 이렇게 전자레인지에서 발생되는 마이크로파의 주파수 2.45 GHz는 물 분자 회전의 고유 진동수와 같다. 이처럼 고주열처리와 전자레인지의 원리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나는 99년도 쯤 히로시마에 있는 나카노 열처리주식회사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수중고주파를 이용한 공업기반 기술개발 사업을 위한 방문이 었는데, 일본의 열처리 현장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게 느낀 것은 회사의 기술자가 자신이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애정과 정성, 자부심이 대단 하다는 것이었다. 우리와 기술적인 부분도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기어 같은 하나의 제품에 쏟아 붓는 기술자들의 노력이 상당해보였다.

한국에서는 간혹 작업 과정에서 제품끼리 서로 부딪혀서 발생하는 흠

정도는 가볍게 넘기는 등, 성의 없이 제품을 다루는 태도가 문제였는데 일본은 나무 상자에 제품을 담고 사이에 칸막이를 두어 충격으로 인한 결함을 방지하고자 하는 세심한 배려를 보였다. 대충 대충 적당히 하자는 적당주의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고주파 열처리는 반드시 코일(Inductor)과 피 가열물이 절연된 공기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고정 관념을 탈피해서 개발된 방법이 수중 고주파 열처리법이다. 이 개념을 도입해 98년도 공업기반 개술개발 사업에 도전하게 됐고, 대형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하게 됐다. 이때 실험용과 산업용의 수중 고주파 열처리 장치를 설계 제작해서 기본 데이터를 작성하고 시작품의 평가용으로 사용했다. 여기에 깊이 0.3mm의 최소 유효 경화 층에 동일한 주파수를 갖는 장치를 사용했는데, 이는 공기 중 열처리한 0.5mm보다 표피 경화 효과가 상승했다. 또한 코-너부에 발생하는 부분적인 과열 때문에 균열이 발생하는 것을 억제시키는 성과도 거두었다.

이렇게 개발된 기술은 열처리 후 치수 변형률을 50% 이상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공업 기반 기술 사업의 성공 사례로 평가 받게 되었다.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의 기술에 집착했다면 수중 고주파 열처리 기술 개발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의 수중 고주파 열처리 기술을 배우며 얻은 깨달음은 ‘어제까지 사용하던 방법은 이미 과거고, 과거는 현재에 얼마든지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의 모든 것은 반드시 변하고,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한다. 내가 창업 보육 센터의 단장을 맡았을 때, 중국의 한 중소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벽에 붙어 있던 문구가 아직도 기억난다. “以變應變 以變制變”

변화에는 변화로 대응하고 변화에는 변화로 제압하라 라는 뜻이다. 변화는 발전의 원동력이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내가 변하지 않으면 퇴보 당하기 마련이다. 기술과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도 내일도, 같은 것을 계속 고집하는 개인과 기업과 국가에겐 미래가 없다.

1976

뜻밖의 기회로 위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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