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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공장에서 꼭 필요한 연구 과제를 찾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88-94)

ReSEAT 전문연구위원 황용길

년대 초기에는 국민들 생활수준이 초근목피로 허 기를 연명하던 시절이었다. 필자와 같은 세대의 젊 은이들은 직장도 없었고 노동하고 싶어도 일터가 없던 참담한 시 기였다. 필자는 다행히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대한중석광업주 식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실습기간 중 현장 파악에 나섰 는데, 잊지 못할 광경을 목격했다. 몰리브덴정광을 질산처리 할 때 독가스발생에 의해 고통 받는 작업자를 보았으며, 고가의 귀중한 금속자원이 부산물로 일부만 회수되고 상당량이 폐기 되는 것을 보고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 후 몰리브덴, 비스마스 혼합광을 동시에 처리하겠다는 일념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1961년도, 우리나라 수출품은 대한중석이 유일했다. 우리나라 연간 총 수출액은 약 8천만 달러 정도이고, 대부분 중석수출 금액이다. 국민 소득 1인당 100불미만의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폐기되고 있는 고가의 비스마스금속을 회수하여 회사와 나라에 공헌하겠다는 사명감만으로 연구를 결심했다. 그러나 현실은 연구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를 성취하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상당한 도전 정신이 필요하였다.

어떠한 물건이나 개발하려면 기초지식과 경험이 필요한데 1961년대 우리나라 공업기술 환경은 너무나 빈약하여 전문서적이나 학술잡지도 구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이러한 환경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기초를 상세히 조사하는 일이었다.

이론적인 조사가 된 후 연구조건을 갖추기 위한 연구기기, 분석기술 지원 등 여러 요건을 구비해야 하는데, 분석 기술 지원 이외의 다른 것은 전혀 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 끝에 공장 내의 생산시설을 살피던 중, 무연탄 보일러 열을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무연탄 보일러 감시창을 이용해서 금속 제련실험을 하였다. 해결될 기미가 없던 일이 해결되자, 마치 캄캄한 밤길을 헤매다가 등불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 등불이 환하게 공장내부를 밝히자 주위 기술자 들이 서로 기뻐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기술개발에 도전하기 시작하면서 항상 회사 내의 기술적 문제가 무엇인지 살피게 되었다. 또 공장 내의 몰리브덴정광의 질산처리공정에서

아질산가스가 아주 독하게 발생하는데, 이 속에서 정제공은 마스크만

물이다. 이렇게 일관 제련법을 개발할 때까지의 고통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기도 하지만, 만족스러운 실험 결과를 얻으면 모든 피로가 일시에 사라지고 분명히 도전한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는 이를 기점으로 Bi제련공장을 설립하여 Bi 99.99%의 순금속을 생산하여 수출하게 되었다. 현재 Bi 99.99%

단가는 약 410,000원/kg으로 상당한 고가의 금속이고, 포항제철 등 철강회사에서 쾌삭강 첨가제로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편 MoS2생산공정은 선광장에서 부선하여 회수한 몰리브덴혼합 정광을 질산 처리로 정선하고, MoS2 90%이상의 정광으로 제조하여 출하한다. 그런데 정광처리 과정에서 아질산 가스가 독하게 발생하는 가혹한 작업환경도 일관 처리법에 의해 안전하게 개선할 수 있었다.

과거에 혹독한 작업환경에서도 나라와 가정을 위하여 공해보상도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일했던 회사원들의 노고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MoS2의 불순물로 제거되어 모두 폐기되는 Bi, Cu, Fe 등의 질산염 중에서 Bi금속 1톤 금액은 당시 약 2만 달러로 실로 엄청난 고가의 금속이 폐기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문제를 일관 처리법 으로 다 회수할 수 있게 된 것은 지속적인 생각과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된다.

이 공정이 개발되기까지 금속제련 연구개발 시초는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중석과 한국석탄공사, 한국광업공사, 장항제련소

3개 회사를 중심으로 상공부가 금속연료종합 연구소를 설치하여 명동의 대한중석광업주식회사 4층에 연구실을 설치하였고, 각 회사에서 연구원을 차출하여 국내 대학의 몇 교수님들과 같이 연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도 이 연구 조직에 합세하여 연구하게 되고 대한중석 상동 Bi제련소를 영등포구 문래동에 이전하는 계획을 세워준 뒤 1964년 퇴사 하였다. 퇴사한 후에도 대한중석은 MoS2 정광을 여전히 질산 처리하고 있어서, 꼭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본과제인 Bi, Mo, Cu혼합 황화광의 제련법에 대하여 특허를 출원해 획득하였다.

대한중석광업 주식회사가 필자의 특허를 이용해 Mo회수율을 53%

에서 76%로 향상시켰고, 금액으로는 1,658,290$에서 2,376,880$ 까지 증산하여 718,590$의 연소득을 올렸다. Bi, Au, Ag의 회수율도 증가하였다는 보고를 받았다. 1980년 봄, 학교 연구실에서 이 실적 보고를 받는 순간, 세상에 첫발을 딛은 입사 초기에 다짐했던 것을 이룩했으니 작은 성공을 거뒀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연구할 때 아질산 독가스에 시달리고 비스마스 유동배소연구 시에 아비산 가스 공해로 인해 처음 관절통으로 고생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1970년대 중반만 떠올려도 각 대학의 연구시설이 미비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많은 고충을 감내하면서 금속계의 많은 기술자 양성과 공업발전을 이끌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각 대학 대학원생들의 연구발표 수준과 사용한 연구기기들을 보면 한없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아! 지금 젊은 연구 기술자들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앉아서 세계 학술지를 조사하여 과제를 창출할 수 있으며, 최신연구기기는 대부분의 대학에 보유되어 있기 때문에 본인과 나라를 위하여 시도할 의지와 용기만 있다면 자기분야의 무엇이든 개척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가?

이 좋은 환경에서 젊은 에너지를 국가에 기술개발로 기여해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끝으로 일상생활에서 세밀한 관찰력을 가지고 생활하다 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나타날 수 있고, 결정한 일을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 꼭 성공할 것이라는 나의 깨달음을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생각을 뒤집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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