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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기술은 성공을 부르는 행운의 열쇠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25-30)

ReSEAT 전문연구위원 권영배

년대 초, 내가 A회사에서 근무했을 때의 이야기다.

A회사는 정밀 주조법의 일종인 로스트 왁스 인베스트먼트 주조법 기술을 업계에서 비교적 일찍 도입했던 곳이다. 타 경쟁업체 보다 앞선 기술을 보유했지만 관련 기술 경험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 었다.

로스트왁스 공장 가동을 시작한 몇 달 후 어느 날, 2차 바인더 슬러리가 순식간에 굳는 사건이 일어났다. 2차 바인더를 만드는 과정 중 슬러리가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응고된 것인데 이로 인해 탱크와

교반기가 꽉 달라붙어 꿈적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내화물이 콘크리트

모두들 굳은 바인더슬러리를 강제로 떼어내면 교반기 날개가 손상된 다는 둥 주조품에 붙은 코팅 바인더 처리가 더 어렵다는 둥 별별 이유를 대면서 책임 회피와 남 탓만 할 뿐이었다.

바인더 코팅 공정은 내가 맡은 분야였고, 해서 제품 품질에 큰 영향이 미치기 전에 신속한 해결을 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기로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아무도 찾지 못한 원인을 단 번에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바인더 배합 비, 내화물 종류와 양, 첨가제 등 처음 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검토해봤다. 하지만 결과는 말짱 헛수고였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래도 어떤 일이든 원인은 있을 것 이라 생각해, 재조사를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고주파 유도로에 스템핑 하고 남은 마그네시아 미분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발견했다. 서둘러 작업자에게 확인 했더니 남은 것은 재료 창고에 보관했는데 포대가 찢어져서 다른 빈 포대에 옮겨 놓았다는 것이다.

어렴풋이 사고 원인의 윤곽이 잡히는 듯 했다.

나는 재료 창고에서 남은 마그네시아를 찾아봤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작업자의 말대로라면 분명 재료 창고에 있을 텐데, 어디로 간 걸까? 추적해보니, 누군가 실리카 분말 포대에 옮긴 마그네시아를 실리카 분말로 착각하고 슬러리 배합에 혼합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고 원인이었다. 2차 바인더 슬러리는 에틸실리 케이트를 가수분해 한 산성 용액인데, 여기에 알카리성인 마그네시아

분말을 배합해버렸으니 바인더 슬러리가 굳어버릴 수밖에. 어쨌거나 원인을 찾았으니 해결 방안도 수월히 찾을 수 있었다.

웃지 못 할 실수로 벌어진 이 사건은, 회사에 다소 손실을 가져오긴 했지만 신속히 대응한 덕분에 더 큰 손실로 커질 뻔한 일을 막을 수 있었다. 공장 가동 후 처음으로 모두를 혼란에 빠뜨린 사고였지만,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반나절 만에 슬러리 탱크에서 고형물을 떼어내고 2차 바인더 코팅 슬러리를 다시 만들었다. 아찔한 사고였지만 개인적 으로는 귀한 경험이 되었다. 훗날 이 사고가 전화위복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장의 보수 공사를 하던 중 지하수가 터지는 바람에 공사 진행이 어려워진 일이 있었다. 해결 방법을 고심하던 중, 문득 바인더 슬러리 응고 사고가 떠올랐다. 그때 폐기할 슬러리를 이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내 예상이 맞았고 공사를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실패한 기술의 원인이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내화물 쉘을 건조하는데 2차 코팅부터 마지막 코팅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회의가 열렸다. 이번 에도 실패했던 기술의 원인을 다시 분석해서 상황에 맞는 해답을 찾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떠올린 아이디어는 건조 분위기 조성에 암모니아가스를 응용해 단축하는 것이었다. 회의에서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더니, 사람들의 반응은 ‘이제야 공정 안정이 됐는데 네가 뭘 아냐’는 핀잔뿐이었다.

암모니아 가스를 응용하는 기술은 당시 회사에서 시도한 적이 없던 기술인데,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섣부르게 공정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반대하는 이유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동료들의 태도에 실망하고 말았다. 새로운 공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주도권 다툼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니 서운 하지만 접기로 했다. 언젠가 내 아이디어를 알아줄 날이 있을 것이라고 위안했다.

나는 얼마 후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회사에서 일본 전문가를 초청해 건조 시간 단축 방안을 의뢰했는데, 그 전문가 역시 내가 제안 했던 암모니아 가스를 활용하는 기술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회사는 결국 그 기술을 도입했다고 한다. 내가 처음 제안했던 4~5년 전에 기술을 도입했더라면 경제적인 면이나 생산성 면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소식이었다.

어쨌거나 A회사에서 겪은 경험을 한 마디로 축약하면, 실패는 연구 자의 재산이다. 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실패든, 실패에서 끝나지 않는다. 실패한 기술도 다른 기술에 잘 적용 하면 큰 성공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니 어떤 기술을 개발하는데 문제가 생기거나, 완전히 실패를 했더라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 왜 실패했는지, 실패를 극복 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었는지 복습하면 다음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의외의 발상이 문제 해결의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2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