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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판매점에서 운명의 아이디어를 만나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147-154)

타일판매점에서 운명의 아이디어를 만나다

ReSEAT 전문연구위원 서종철

내 최초의 독자설계 유도탄은 ‘항공기 요격용 유도탄’이다. 당 시의 국내 기술로는 개발이 꽤 벅찬 난이도에 속했다. 그 러나 그 유도탄을 세계 최첨단 수준으로 개발해내는 임무가 우리에 게 주어졌고, 나는 탄두개발을 맡았다. 대공유도탄이 세계 최고 수준 이 되려면 탄두가 최소 중량으로 최고의 성능을 지니는 게 필수 였다. 그래서 가벼운 중량과 높은 위력을 갖는 신개념의 탄두 개 발을 시작했다.

우리가 개발하는 탄두는 국내 최초라는 여러 개의 타이틀이 붙게 되었다. 화약도 국내에서는 최초로 시도하는 새로운 화약이었는데, 탄두에 충전하기 전에 프레스로 성형한 후에 자동선반으로 탄두에

맞게 가공·조립하는 방식이었다.

최첨단 탄두를 성공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몇 개의 산을 넘어야 했다.

몇 가지 기술적인 난제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은 파편의 비산방향 정밀도였다. 이것이 우리가 개발하는 탄두의 최고 핵심기술이었으며, 탄두성능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였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연구원들은 모두들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연구에 집중했다. 연구실과 시험장을 분주하게 오갔다. 현재는 시험장 가는 길에도 고속도로가 개통 되는 교통 환경이 나아졌지만, 당시에는 이동 시간만 4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었다.

유도탄의 구성품 중에서 탄두와 신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도탄의 비행에 직·간접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탄두와 신관은 손님처럼 타고 있다가 마지막에 유도탄의 최종 위력을 발휘하는 구성품이다. 특히 항공기를 요격하는 대공유도탄은 기동력이 중요시 되는 무기이므로 탄두의 중량은 가볍게, 위력은 크게 개발해야 하는 어려운 연구 분야에 속했다.

대공유도탄의 탄두는 파편을 적절한 크기로 미리 만들어두고, 수공예품을 만들 듯 접착제를 이용해 한 개씩 탄두의 외면에 부착하는 공정으로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장인 정신을 발휘해야 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탄두를 성형파편탄두라고 한다. 다른 방식의 탄두에 비하여 불필요한 작은 파편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탄 두이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공유도탄은 성형파편탄두 형태이며, 이는 항공기 요격에서 가장 효율적이다.

우리가 개발하는 탄두는 성형파편탄두에 속했다. 하지만 파편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TV에서는 유도경기 결승전을 시작하고

맞춰가며 작업하지 않아도 한꺼번에 많은 양의 타일을 줄지어 붙일 수 있어 간편해보였다.

나는 이 기발한 발상을 파편조립 공정에 이용해보기로 했다. 여러 파편을 일정 간격으로 평면에 부착한 뒤, 탄두에 조립하면 파편의 조립 정밀도가 높아질 거란 판단이 들었다.

이튿날 연구팀을 모아서 타일 부착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탄두의 조립 공정에 응용할 수 있을지 회의가 진행됐다. 순간, 김 연구원이 탁자를 탁 치고 아이디어 하나를 내놓았다. 얇은 고무판에 타일처럼 파편을 정확하게 부착하고 고무판을 일정한 폭으로 잘라서 탄두외경에 맞는 밴드 형태로 만들어 끼우자는 것이다. 신축성 있는 얇은 고무판을 사용하면 고무의 균일한 탄성으로 파편의 중심에서 탄두곡면의 좌우 각도가 균일하게 나올 것 같았다. 이 방법에 성공하면 탄두조립 공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이나 시간을 절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지나고, 사계절을 한 바퀴 돌아 또 다시 겨울이 왔다. 그 동안 많은 기초시험과 공정개발을 통하여 드디어 파편밴드가 완성 되었다.

안전상의 문제와 업무의 효율을 고려해 가급적 겨울에는 야외 시험을 계획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일정만 잡히면 무조건 시험을 추진 하기로 했다.

잔뜩 흐린 날씨에 습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면도날에

스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이런 날씨에 야외시험을 할 때는 안전이 특히 중요하기 때문에 전달 사항을 한 번 더 강조하고, 모두 정해진 위치로 향했다. 시험이 시작 되었다. 온 몸이 울리는 진동과 굉음이 모두 지나고, 우린 모두 벙커 에서 뛰어 나왔다. 표적 패널을 보는 순간, 어떤 전율 같은 것이 느껴 졌다. 모두 박수를 치고 서로 끌어안았다. 드디어 성공이었다. 파편 자국이 완벽한 모양을 보이고 있었다. 탄두의 전방향의 파편이 똑같은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뒤, 유도탄 개발 사업이 끝났다. 우리가 개발한 탄두는 그 당시 세계 최소 중량으로 선진국 탄두와 대등한 성능의 탄두로 평가되었다. 탄두개발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다양한 시도가 되었으나 개발 최고의 전환점은 파편밴드였다.

연구원은 24시간 고용된 인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쉽사리 머릿속에서 연구 과제가 떠나질 않는다. 연구를 장기간 하면서 생긴 습관인 것 같다.

연구실을 떠나 있는 순간에도 연구원은 연구원이다. 그 덕에 예상치 못하게 건축자재 상점 앞에서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재래시장에 들리곤 한다. 그 상점은 과일가게로 바뀌었다. 그러나 누가 아는가. 그 과일가게가 누군가에겐 새로운 아이디어 은행이 되어줄지!

푸른곰팡이의 발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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