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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문서에서 R&D 성공실패사례 에세이 (페이지 131-139)

종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ReSEAT 전문연구위원 김영철

연료원소(우라늄, 플루토늄 등)의 원자핵이 자유 중성자 와 충돌하여 핵분열이 발생하면 원자핵이 두 개로 쪼개지 면서 원자핵을 구성하고 있던 중성자들 중 약 2.5개가 떨어져 나 오는데, 이때 나오는 중성자의 평균속도는 약 2만 km/s 정도로 엄청나게 빠르고 그 평균에너지는 2MeV 정도로 매우 높다.

핵분열 직후에 튀어나오는 이와 같이 너무나 빠르고 매우 높은 에너지의 중성자를 고속 중성자라고 하는데, 이는 원자로 외부로 달아 나버릴 가능성이 높고 또한 그렇게 되면 외부의 다른 물체나 생물체와 부딪혀 여러 가지 재질적이고 방사선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원자로란 핵연료원소와 중성자가 계속해서 충돌할 수 있도록

낮은 열전달 능력과 그에 따른 낮은 경제성 문제, 수소가 중성자를 흡수하여 방사능 물질로 변하는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감속재로 적합하지 않다. 지금까지 찾아낸 감속재 중에서 가장 유리한 물질은 풍부한 자원의 물(수소원자 2개와 산소원자 하나)이며, 오늘날 가장 많이 보급되어 있는 원전이 물을 감속재로 사용하는 경수로 원전이다.

그런데 감속재를 사용하여 고속중성자의 에너지를 빼앗아버리면 핵연료 증식이나 원자로 내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태워버리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 때문에 1946년에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원자로(클레멘타인-1)는 경수로가 아니라 플루토늄 금속을 핵연료로 사용하고 질량이 매우 큰 수은을 냉각재로 하여 고속중성자의 에너지를 빼앗지 않는 고속로였다.

당시로서는 감속재를 사용하면 물리적으로 한 단계를 더 거치기 때문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없었고, 또한 핵무기 개발에 열중하고 있던 미국에서 그 원료인 우라늄-235가 부족한 것도 고속로를 개발하는 배경이 되었다. 고속로는 플루토늄 핵연료를 사용하고, 우라늄-238을 플루토늄-239로 전환시켜 핵연료를 증식할 수 있는 등 유리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정이 크게 바뀌었다. 군사적 목적의 핵연료 사용이 크게 감소하자 미국은 남아돌게 된 값비싼 우라늄-235 핵연료를 유용하게 소비할 목적으로 상용 원전기술을 개발 하게 되었는데, 흔한 소재의 물을 감속재로 사용하면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 때문에 미국은 그동안 개발해왔던 고속로에 우선하여 경수로 원전 기술을 개발하여 보급하게 되었고, 고속로의 경우는 미래 기술로 남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세계적으로 원전 보급이 증가하고 핵연료 공급이 부족 해지자 핵연료 증식이 가능한 플루토늄 핵연료의 고속로 기술 개발도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1992년부터 정부의 원자력 연구 개발 중장기 사업에 고속로 기술 개발이 포함되었다. 2011년까지 한국형 고속로를 개발한다는 장기적인 목표도 세웠고, 비록 잠정적 이기는 하지만 고속로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건설 등 단계 적인 개발 일정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01년까지 개념설계 완료를 중간 목표로 설정했다. 그런데 우리의 고속로 기술 개발은 처음 의도했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당시 시점에서 2001년까지 고속로 개념 설계를 완료하려면 신속하게 주요 설계 방향을 정립하여 세부적인 설계업무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자면 핵연료, 노심, 핵연료 재처리방식 등 노심 설계 방향을 가장 먼저 설정해야 했다.

1990년대 초 당시 고속로 노심 설계의 세계적인 정형은 플루토늄 핵연료와 산화물핵연료, 핵연료 증식이 가능한 노심, 사용 후 핵연료의 완전한 재처리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태워버리는 폐쇄 핵연료 주기 등이었다. 이러한 세계적인 정형을 기본으로 노심 설계방향을 채택할 수 있으면 우리도 어렵지 않게 노심 설계를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자력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특수한 사정이 많은 우리나라는

쉽게 상용화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안전성 확보를 위한 여러 가지 안전대책들 때문에 비용이 높아져 경제성이 낮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경제성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핵연료 온도를 높여 원자로의 열역학적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그래서 고속로의 핵연료는 2,70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견딜 수 있는 산화물핵연료(화학식 UO2)를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산화물핵연료의 재처리는 기술적 으로 크게 어렵지 않은 PUREX 재처리공정1)이 이미 개발되어 있었고 미국 등 여러 선진국들은 이 기술로서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공정에서는 순수 플루토늄이 추출되어 나오는 것이 문제 였다. 순수 플루토늄은 핵무기의 원료가 될 수 있어 국제사회가 일부 선진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관련 기술 개발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연구팀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문제였다.

고속로 기술 개발을 계속하려면 우리 정부와 다른 국가들을 설득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필히 마련해야만 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하나의 방안을 찾아서 내놓을 수 있었다.

미국은 고속로 개발 초창기에 금속핵연료를 연구하고 있었다. 금속 핵연료는 용융점이 낮아 높은 운전온도를 필요로 하는 고속로에서 사용 하기가 어려웠고, 이후의 고속로 기술 개발추세에서는 제외되어 있었다.

1)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화학적 용매 추출공법이며, Plutonium-URanium EXtraction의 약어이다.

반면에 금속핵연료는 원소밀도가 훨씬 높은 장점이 있고, 또한 전해

1990년대 초에 이렇게 결정된 우리의 고속로 노심 설계방향은 국내 외적인 상황 변화에도 크게 변하지 않고 지속되었는데, 결과적으로 15만 kWe 출력의 고속로 개념설계, 60만 kWe 출력의 개념설계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60만 kWe 출력의 고속로 설계개념은 국제 사회가 2030년 이후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는 제4세대 고속로의 참조 노형으로 선정되는 쾌거도 이루었다. 이는 우리의 기술수준이 고속로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서게 되었고, 세계적인 추세와 다른 우리의 기술 개발방향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에 세계적인 기술 개발 추세를 따를 수 없도록 만들었던 제약들이 우리의 기술 개발 방향 설정을 어렵게 만들고 개발 일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도록 한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제약들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기술 개발추세에서 벗어나 광범위한 주변 기술들을 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래기술에 대하여 훨씬 더 종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만들 었다. 현재 시점에서는 기술적 대세가 아니지만 주변 기술이 발전하면 큰 장점으로 변할 수 있는 기술들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또한 더 광범 위한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중소기업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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