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기술 개발의 미래는 ‘슈퍼컴퓨터’다
ReSEAT 전문연구위원 김석진
재 세계 최고 수준을 가진 슈퍼컴퓨터는 7억 명의 사람이 6개 월에 걸쳐 계산해야 풀 수 있는 공식을 단 1초 만에 해낼 수 있는 고도의 연산 능력을 갖고 있다. 국방, 우주 항공, 기상, 에 너지 분야 등에 활용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슈퍼컴퓨터는 최근 중 소기업의 기술개발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새로 개발한 자동차 부품의 성능을 직접 테스트 하는 대신 슈퍼컴퓨팅 시뮬레 이션으로 대체하거나 교량의 안전을 위한 교좌장치를 일일이 금형 을 떠서 설계하는 대신, 슈퍼컴퓨팅 M&S로 대체한다면 기술 및 제품 개발의 효율성과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정적 한계가 있는 중소기업이 독자적으로 슈퍼컴퓨팅 인력을 확보하거나 고가의 슈퍼컴퓨팅 프로그램을 구하는 것은 현실적 으로 어려운 일이다. 해서,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KISTI)은 국내 최초로 중소기업이 슈퍼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았다.
지금으로부터 수년 전인 어느 날, 생산 전문 기업인 K사는 최근 신 제품을 개발해달라는 고객의 요구를 받았다. K사는 40년 전통의 냉각 탑 전문 기업으로 국내 냉각탑 시장의 2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냉각 기술 하나로 40여 개가 넘는 특허를 확보하고 있을 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고객에게 요청받은 신제품은 백연저감 냉각탑이었다. 백연이란 발전소 에서 나오는 고온다습 공기가 외부의 찬 공기와 만나 응축되면서 하얀 연기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냉각탑의 백연은 대기의 온도가 낮고 습도가 높을수록 발생량이 많고 재 증발이 늦게 되어 길이도 길어지게 된다.
직접적인 피해로는 바람과 저기압에 의해서 백연이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지상으로 내려와 도로에서 시야를 가리고 바닥을 적시거나 결빙을 만들어 교통 혼잡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심각하다.
또, 단순한 응축 현상에 불과하지만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는 오염 물질처럼 보이기 때문에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 백연을 절감 시켜주는 냉각탑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동안은 뜨거운 공기가
냉각탑 안으로 들어오면 양쪽에서 찬바람을 불어 넣어 백연을 없앤 뒤 밖으로 내보내는 양방향 백연저감 냉각탑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찬바람을 한쪽으로 불어 넣는 일방향 백연저감 냉각탑도 생산하고 있다.
K사는 이미 숱한 연구를 통해 일방형 백연 저감 냉각탑을 여러 개 설계했었지만, 발전소용 백연절감 냉각탑은 어느 제품의 효율이 가장 뛰어난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나에게 자문을 요청해왔다. 나는 슈퍼 컴퓨팅 담당 연구원과 협의한 후 우리 연구원의 슈퍼컴퓨터를 활용 하기로 했다.
곧이어 K사의 담당 기술자와 본 냉각탑의 M&S에 착수했고 몇 번의 수정을 거쳐 두 달 만에 발전소용 백연 절감 냉각탑에 적합한 신제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M&S에 활용한 소프트웨어는 KISTI에서 보유하고 있는 ANSYS FLUENT 소프트웨어로 열, 유체 및 물질전달, 화학반응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한 범용 S/W이다. 광범위한 속도영역의 유동장 해석이 가능하고, 또한 난류유동, 비정상상태 해석, 다양한 열전달 해석, 화학반응 유동, 다상유동 등 다양한 물리적 현상 해석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CAD software와 호환이 가능해서 쉽고 빠르게 형상 구현이 가능하다. 특히, 병렬 계산이 가능하며 처리 속도가 매우 빠른 것이 특징이다. 슈퍼컴퓨터가 없었다면 시제품을 만들어 일일이 테스트하느라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거나, 독일이나 벨기에 등에서 선진 기술을 사와야 했을 테지만 우리 슈퍼컴퓨터 M&S를 통해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감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M&S를 통해 국내 전력회사 에서 발주한 발전소용 냉각탑 입찰에 성공했고, 국내 최초의 백연저감 용 발전소 냉각탑을 납품하게 되었다.
이후 국내 유수의 전력 회사인 대형 바이어에 지속적 납품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K사의 매출 신장에 크게 기여하는 또 하나의 효자 상품이 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K사의 경영진 및 담당 기술자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본 프로젝트에 일조를 한 나 역시 큰 자부심을 갖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슈퍼컴퓨터를 통한 중소기업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실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슈퍼컴퓨팅 M&S는 특히 중소기업의 연구 개발에 유용하다.
중소기업은 대기업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기 어려운 조건이 많기 때문에, 자체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힘들다. 이 때문에 대기업의 하청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대기업의 상황 변화에 따라 기업의 존폐가 결정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게 많다. 그러나 슈퍼컴퓨팅 M&S를 통해 제품 개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면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기 쉬워지며 대기업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 생존의 강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또한 이들이 슈퍼컴을 활용해 뛰어난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대기업이 채용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 대기업은 고성능 부품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고, 중소기업은 제품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되어 결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이상적 프로젝트가 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국내 중소기업들도 이러한 슈퍼컴퓨팅 M&S를 폭넓게 활용, 글로벌 강소 기업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