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식과 노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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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은 “생애의 마지막 무렵, 곧 말년(末年)을 뜻한다. 말년은 육체의 기능적 약화나 정신심리적 변화와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말년의식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의식, 죽음이 다가온다는 의식과 다르지 않다.”76) 따라서 말년이 지니는 의미는 누구나 인생의 과제로 남는다. 더구나 공동체에서 나이 든 사람들은 서서히 암묵적으로 분리 된다. 임종하는 순간 이별이 일어나지만 사회에서의 이별은 그보다 훨씬 일찍 일어난 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죽어간다. 선진사회에서 빈번하게 죽음의 때 이른 격리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이 점은 많은 노화, 죽 음의 문제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77)는 사실과 관련 있다. 나이가 들면 늙게 되고 죽기 마련이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시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죽음은 삶 의 과정이 종착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고령화로 접어든 사회에서 “말년에 이른다는 것은 ‘노인이 된다는 것’을 의 미한다. 그런 이유로 말년의 삶에 있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한 위협은 자신의 몸의 한 계에 대한 실존적 체험뿐만 아니라, 인간상호관계로부터 고립되는 상황에 대한 체험이 기도 할 것이다. 말년은 운명처럼 다가오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의 자기 실존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78) 그렇기에 노년에는 자신의 죽음 가능성을 실존적 과제로 받 아들여야 한다. 죽음을 준비해가는 성숙한 노년으로 진입해야 하는 것이다. 노년을 통 해 전 생애의 의미 또는 무의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노년을 생애 한 부분으로 인정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며 의미 찾기가 될 것이다.

노년의 성격에 대해서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규정을 참고할 수 있다. 그는 노년의 성격을 ‘말년성’과 ‘시의성’으로 구분하였다. 우선 ‘말년성’을 ‘망명의 형식’으로 부른 후, 76) 황국명, 같은 논문, 2008, 60~61면.

77)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죽어가는 자의 고독』, 김수정 역, 문학동네, 2012, 8면.

78) 공병혜(2008), 같은 논문, 5~36면.

말년에 있어서 자기능력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할 때 겪는 자기 존재가치에 대한 상 실감은 결국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형성해 온 자기 삶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한다. 말 년에 경험하게 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가족들, 친구와 사회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로서 살아왔는지에 대한 물음에서 비롯된다. 자기 삶의 이야기 속에 다른 사람들의 이 야기가 들어오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나의 이야기가 서로 엮어진다. 이것이 바로 말년에 성찰해 볼 수 있는 자기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망명의 의미를 “불화하는 말년, 모순의 말년, 곤란에 처한 말년으로 상정한다.”79) 자신의 말년에 이르러 마지막 단계인 말년의 양식에 주목했던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예술가라면 말년에 새로운 양식을 창안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다. 이처럼 에드워드 사이 드는 순응, 안락, 평안, 풍요에 안주하지 않고 세상과 불화하고 또 대결하는 예술가의 말년이라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예술가의 말년을 불화, 난관, 풀리지 않는 모순의 시기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이런 에드워드 사이드의 ‘망명의 형식으로서의 말년성’ 개념이 아닌 ‘시의성에 따른 말년의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말년성에 비해서 시의성(時宜性, Timeliness)이란 시간의 명령에 순응하고 시간이라는 이름의 운명에 복종해야 함을 의 미한다. 즉 “시간에 맞게 늙어가는 것으로, 육체의 늙음과 더불어 삶의 태도와 사유 역 시 그에 따르는 것이 시의성이다. 시의성에 충실한 말년은 연륜과 지혜, 성숙한 기운, 화해와 평온함의 기운으로 충일”80)하다. 특히 말년은 일생의 마지막 무렵으로, 생물학 적으로 보자면 소년, 청년, 중년, 장년을 지나 노년에 해당하는 인생을 마감하는 시기 이다. 무통(無痛)81)을 지향하는 사회에 일조하는 시의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나이 듦’에 대한 통찰이 빛나는 시기가 바로 말년이다.

이런 의미에서 말년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는, 저자로서의 자기 삶의 이야기 가 통일”82)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말년에 행해지는 자기 정체성의 물음이란 결 국 관계 속에서, 전체 삶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가에 대한 물음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말년의 주체에게 죽음은 개인의 유한한 시간 뿐 아니라, 타인과의 근원적 관계

79) 김승환,「김윤식 유종호 김우창의 말년」,『오늘의 문예비평』, 2008, 98면.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은 예사롭지 않은 불화의 말년이었다. 평안, 조화, 관용, 여유, 관조 등을 넘어서는 격정의 말년이었다. 2000년 7월, 사이드는 이스라엘 병사를 향해서 돌을 던지면서 팔레 스타인의 독립과 유대인들의 평화를 외쳤다. 절묘한 예술적 기교가 아닐 수 없다. 사이드는 시의 성에 저항하는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을 드러내는 예술적 말년성을 강조한다. 기존의 질서와의 교감을 과감히 포기하고, 모순적인 관계를 맺는 순간이다. 작가가 지금까지 해오던 양 식을 포기하고 전혀 새로운 스타일을 창작하는 것이다. 이런 말년의 양식은 ‘망명의 형식’으로 부를 수 있다. 말년양식은 지배적인 현실에 대한 저항이며 관습적인 질서와의 불화인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장호연 역, 마티, 2008, 35~42면).

80) 에드워드 사이드,『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장호연 역, 마티, 2008, 28~31면 참조.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말년성은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것에서 벗어나는 자발적 망명이다. 말년 의 양식에는 노화를 두고 보지 않고 계속 거리두기와 망명과 시대착오의 감각-말년의 양식은 이 런 것들을 표현한다. 그에게 말년성은 ‘망명의 형식’이다.

81) 박대현, 같은 논문, 185면.

노년학의 목표가 확률 통계적으로 죽음에 가까워진 ‘인구’를 국가의 재정 균형을 깨지 않는 선 에서 경제 문화 복지를 통해 ‘무통’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82) 공병혜(2008), 같은 논문, 37~39면.

를 발견하게 하는 사건이 될 수 있다. 노년에 이르러 의미 없는 삶을 살았다고 느낀다 면 죽을 때도 의미 없는 존재로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내는 자는 떠 나는 자가 죽는 순간의 기억을 실존적 자각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노년작가들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에 깃든 말년의식까지도 적극 포용하고자 한다.

그런 작가들 중에는 특히 “한국현대소설의 발전을 주도한 작가들로는 1930년대나 1940 년대 생(生)들이 많다. 박완서(31년생), 최일남(32년생), 이청준(39년생), 한승원(39년생), 홍상화(40년생) 김원일(42년생), 황석영(43년생), 박범신(46년생) 등”83)이 그러하다. 한 국의 대표적 작가들은 그들이 노인이 되면서 노년을 소설로 형상화했다. 노년을 다룬 젊은 세대의 문학에서 대부분 노인은 타자의 위치를 벗어날 수 없지만 노년작가들이 다루는 작품에서만큼은 노인은 말년으로서의 실존을 드러낸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서 술되더라도 함의하고 있는 주제는 모두 노화,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노경에 접어든 그 들에게 노년의 자아는 모방의 주체이자 객체가 되었고, 서사와 묘사 또한 노년화된 자 아와 자연스러운 반영을 이루었다. 한국의 노년작가들에게는 노년 삶을 아우르는 말년 의식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젊은 작가들이 그리는 노년과 노년작가들이 형상화하는 노년은 그 모습에 있어서 다를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는 “청장년 세대가 주로 지배 문화의 사회적 담론 을 형성한다. 이것은 노인과 노화에 대한 당사자적 시각과 자아인식을 간과하는 자의 성과 허구성을 내포하는 측면이 있다. 젊은 작가들이 그린 노인 혹은 노년기의 삶의 모습은 육체적인 조락의 측면만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거나, 집착이나 당혹감 속에서 타자(젊은이)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약자로 그려져 있다. 혹은 자녀에게 헌 신적인 부모로서 노인의 역할만 심하게 부각”84)되어 있다. 이런 면에서 노년작가들의 노년소설에 형상화된 노년 삶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젊은 작가들이 형상화하는 노년은 고령화 사회로의 진행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노인을 대상화하는 경향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말년에 도달한 노년작가 는 노년을 실존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노년의 내적 핍진성을 충실하게 드러 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들의 노년문학은 청년부터 노년까지 작가의 내적 사유의 변 화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작가의 말년성이 실존의 깊이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 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노년에 이른 작가의 실존적 허무와 초월의 고백은 앞으로 늙고 병들고 죽어갈 모든 존재에게 뻗어있는 운명의 소리”85)라고 할 수

83) 최명숙,『21세기에 만난 한국 노년소설 연구』, 푸른사상사, 2014, 부록.

84) 김미영b, 같은 논문, 240~241면.

있다.

인간은 누구나 때가 되면 인생 전체를 돌아보는 시점이 오게 된다. 우리는 시간적 연속선상에서만 현재의 자아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년의 정체성 구축에는 과 거의 사건과 의미들을 현재 상황에서 재조명하고 새롭게 의미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노년이 되어도 끝끝내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관계들도 있다. 즉, 존재와의 불화는 죽 음과의 불화가 되기도 한다. 노화의 종착은 죽음상황이라고 볼 때, 말년의식은 삶의 화 해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이에 노년작가들은 그들 작품에서 노년에 대한 소회를 자주 드러낸다.

김원일86)은 “살아감이 하도 괴로워 어서어서 세월이 흘러 세상 어느 한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늙은이가 되었으면 하던 소년 적 바람을 얼추 이른 나이에 당도 했다는 것이 고맙다.”라고 밝힌 바 있다. 칠순의 나이가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지난 시간이 돌아 보이는 나날이라는 것이다.

내 나이도 칠순에 이르렀고, 말이 씨가 되듯 그때 ‘작가의 말’처럼, 소설 속의 늙은이 로 이 지상에서 천천히 사라지고 있으며, 살아 있어도 있듯 없듯 존재한다.(349면)

김원일의 소설은 “노인소설의 확대와 심화’로 부를 수 있다. 죽음을 마주한 노인들 혹은 죽어가는 노인들이라는 점에서 그 울림이 강렬하다. 이 노인들은 인생을 완성하 는 노인,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는 노인들이 아니다. 죽어갈수록 분열되는 존재이며 일 상의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로 그려진다. 소설은 노인에게 고착된 허위적 관념을 탈각 시켜 노인을 ‘인간’으로 환원시킨다. 그 결과 통합과 완성의 개념으로 설명되는 인격체 가 아니라 분열과 미달의 개념으로 설명되는 인간으로서의 노인들”87)을 이 소설에서 만나게 된다. 또한 “회갑을 넘어 터득한 작가의 균형 잡힌 오감은 인간의 심층에서 미 세하게 흘러나오는 자기고백의 진정성에 응답한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다양한 목소리 로 고해성사하듯 자기 삶에 대해 참회와 화해와 용서를 구한다. 산다는 것은 곧 죽음 에 이르는 과정인 것을 육체를 통해 매시간 확인하는”88) 노인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85) 박대현, 같은 논문, 196~197면.

86) 김원일, 같은 책, 후기.

87) 양진오(2002), 같은 논문, 234~235면.

박완서의『너무도 쓸쓸한 당신』, 최일남의『아주 느린 시간』등이 그 예에 해당한다. 이광수 가『무정』에서 20대의 젊은이들에게서 문학의 근대성을 발견하려고 한 이래, 문학은 ‘늙음’보다 는 ‘젊음’을, ‘노년’보다 ‘청년’의 존재를 주목해왔다. 지난 90년대의 문학만을 보더라도 20, 30대 젊은이들의 풍속을 관찰하고 그 관찰의 결과를 드러내고자 한 문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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