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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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한국인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은 신체가 고통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죽음 인식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 포를 넘어설 근본적인 대안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에 인간은 역으로 인간적이고도 인 격적인 차원의 죽음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오늘날 현대인의 죽음이 생물학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다면, 이를 넘어선 고유하고도 존엄한 차원을 문학에서도 지향할 필요가 있 다. 말년에 어떤 생사관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 차이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노년작가들의 죽음 인식은 기존 한국문학에서 다루었던 소재주의적 죽 음 인식과는 변별력이 있다. 그것은 말년의식을 매개로 죽음을 고유화하고 개별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 하에 본 연구는 노년작가에게서 나타난 말년의식과 죽음 인식을 분석했 다. 연구방법으로는 몇 가지 전통적인 생사관을 유형화하여 이를 세 작가의 작품에 적 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첫 번째, 범신론적 세계관에 기초한 생사관으로, 죽음은 ‘자연’

혹은 ‘삼라만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두 번째, 기독교 혹은 불교적, 유교적 세계관 에 기초한 생사관으로, 죽음은 ‘영생’이거나 ‘열반’ 혹은 ‘윤회’하는 또 다른 삶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 ‘무’나 ‘끝’이라는 과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생사관으로, 물리적 죽음이 며 ‘끝’으로써의 죽음이다. 본고는 이러한 대표적인 생사관을 방법론으로 차용하면서, 그 연구대상으로는 김원일(42년생), 최일남(32년생), 박완서(31년생) 작가를 선정했다.

그들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경험했으며, 특히 한국 현대소설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동년배이고, 노년을 함께 공유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또 한 그들의 노년소설에서는 말년으로서의 노년 실존이 드러난다.

2장에서는 노년작가의 말년의식과 생사관에 대해 살폈다. 말년은 자기 삶의 서사를 총합되게 만드는 시기로, 노년작가들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에 깃든 말년의식까지를 적극적으로 포용하고자 했다. 본고에서 말하고자 하는 말년의식은 생사관을 지닌 말년 을 말한다. 생사관은 노년의 ‘삶의 질’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이다. 생사관을 의식하 는 순간부터 죽음까지의 여정은,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로 변환된다. 그것은 존재가 스 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간 개념인 것이다. 김원일의 종교적인 세계관에 기초한 생사관, 최일남의 ‘무’나 ‘끝’이라는 과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생사관, 박완서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세계관에 기초한 생사관이 그것이다.

3장에서는 김원일의 노년소설을 논했다. 김원일은 ‘죄의식과 정체성’이라는 점에서 종교적 세계관에 기초한 죽음 인식을 드러낸다.『슬픈 시간의 기억』은 죽음을 앞둔 노인들의 회상과 고백에 의해 서술되고 있다. 그들은 감추고자 했던 일제 강점기와 전 쟁 전후의 행적들을 회상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노인의 과거는 재 해석되어야 할 대상으로, 그들에게는 ‘슬픈 시간의 기억들’이 그것이다. 작가는 의도적 으로 망각을 강요받은 기억을 복원하여 자아성찰에 이르도록 하고 있다. 결국 네 명의 노인은 죽음을 마주한 순간, ‘기억과 고백’이라는 신성한 통과의례를 거치며 존재론적 인 확인 절차에 들어간다. 생의 마지막 장면은 인생 전체 서사를 돌아보며 정체성을 인지하는 시간으로 주어진다. 노인들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안다’, ‘나는 두려워 요’,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와 같은 고백으로 과거와 현재의 서사를 총합되게 만드는

‘신’을 향한 죽음 의식을 치른다.

김원일의 노인들은 대개 ‘신’과 소통하고자 하는 생사관을 드러낸다. 노인들은 믿든 안 믿든 천국과 지옥에 대해 의식하는 발화를 했으며, 죽음 직전 죄의식을 덜어내고자 모두 ‘고백’이라는 화법을 차용하여 과거사를 정리한다. 이들에게 죽음은 초월적 영역 에 속한 것으로 인간적 영역인 삶과 구분된다. 죽음은 ‘영생’이거나 또 다른 삶인 것이 다. 이를 통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천국과 같은 전혀 다른 공간을 생성함으로써 극 복된다. 죄의식에 대한 고백은 무신론자로서는 차용하기 어려운 화법이라고 볼 수 있 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라는 죽어가는 5 단계 과정에서, 3단계인 ‘타협’의 과정에 있다. 마지막 단계인 ‘수용’ 이전, 절대자와 죽 음에 관해 협상하는 단계인 것이다. 그것은 죽음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삶이 시작된다는 영혼불멸을 믿는 내세지향적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죽음을, 하느님 곁으로 가서 다음 세계에 사는 영생의 한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4장에서는 최일남의 노년소설에 대해 논했다. 최일남은 ‘죽음의 시의성과 희화화’라 는 점에서 과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무’나 ‘끝’으로서의 죽음 인식을 드러낸다. 사멸의 극점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에 들어간 노인들은 “죽음 끼고 살기”의 연대를 보여 준다. 작가는 노년이라는 시의성을 인식하기에 적극적인 자세로 죽음에 대처하고자 한 다. 정신적 부채청산이나 신변정리 같은 죽음 연습까지를 그 대응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신, 영원성 등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사멸이라는 불안한 경로는 공포로 다가 온다. 노년이라는 주체로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한들 죽음은 ‘끝’이기에 여전히 두렵기 만 하다. 작가는 그것을 반어와 같은 희화화로 맞받아치고 있다. 이에 천연덕스럽게 죽 음과 현대의 장례 풍속에 대한 소회를 풀어낸다. 죽음을 친숙한 일상으로 여기며 한없

이 가벼운 존재로 끌어내리고자 힘쓰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인식의 희극성과 비극성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

“당장은 직행 질주의 속도감이 제일 즐겁고 시원하지만 곧 퇴행 해찰의 유혹이 그 뒤를 따른다.”는 작가의 말처럼, 전투적 삶을 살아온 세대는, 노화에 대한 인식도 서툴 뿐더러 형이상학적 차원의 죽음 인식을 가질 만한 여유도 없었다. 최일남의 중년소설 속 중년들 대부분 경제적 욕망에 집중했고, 노년소설 속 노인들 역시 현존으로서 ‘무’

나 ‘끝’으로서의 생사관을 드러낸다. 작가는 죽음에 대한 무조건적인 유예보다 ‘자신의 나이’라는 시의성으로부터 죽음의 의미화를 추구하고 있다. 죽음으로 삶이 ‘끝’난다는 생사관은 육체의 분해와 함께 사라지고 만다는, 유물론자 또는 무신론자들의 관점으로 서 죽음을 생명이 사라져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들에게 죽음은 ‘자연’ 혹은

‘신’에 속한 영역이 아니라, ‘축소’며 ‘한계’다. 불과 1, 2세대 전만 해도 ‘자연’의 영성이 나 초월적인 ‘신’이 개입된 죽음이 우세했지만, 오늘날의 죽음은 물리적 죽음이며 소멸 로서의 죽음이 대부분이다.

5장에서는 박완서의 노년소설을 분석했다. 박완서는 ‘죽음 수용과 삶의 완결성’이라 는 점에서 범신론적 세계관에 기초한 죽음 인식을 드러낸다. 실제로 작가에게 ‘죽음’은

‘삶’ 이상의 의미로 던져진 해원의 사슬과 같은 것이다. 네 살 때 이미 친아버지의 사 망과 6․25를 겪으며 친오빠의 사망을 경험했고, 35년간 결혼생활로 애틋하던 남편의 임종을 지켜봐야 했으며, 같은 해 스물여덟 청년인 아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이후 치매로 고생하던 시·친어머니의 사망까지 작가에게 죽음은 업보처럼 겪어내야 할 고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죽음이라는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죽음을 자연의 질서 한가운데 놓고 보는 생사관이었다. 이는 삶을 계속 지탱할 뿌리가 되어준 다. 작가에게 죽음은 ‘자연’ 또는 ‘삼라만상’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죽음으로써 육체는 흙으로 돌아간다. 자연을 인간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절대적 존재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때때로 인간 현상이나 자연 현상이 불화, 모순, 비합리, 불규칙적 현상들로 보 일지 몰라도, 우주의 섭리는 조화롭고 이성적인 질서를 나타낸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인간 생활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박완서의 노년소설에서 나타나는 죽음은 생로병사의 이치, 자연의 순환원리에 동화 하는 것일 뿐이다. 죽음은 단지 개체의 생명이 종결되어 대자연으로 귀향하는 것이다.

단절이 아니라 자연을 따르는 숭고한 행위라고 보면 죽음이 주는 슬픔을 극복해나갈 수 있다. 인간의 죽음에는 육체적인 종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 정신과 같은 것들 이 지속성이 문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단절의 사건이지만 그 사건을 통해 만

나는 하늘, 바다, 바람, 땅과 같은 자연은 다른 세계가 아니라 이승의 확대된 공간이다.

인간뿐 아니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성과 소멸은 변화하는 자연현상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이 작가에게 유한한 인간이 무한적 존재인 자연과 교통한다는 것은 가장 완전 한 활동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노년작가들이 쓴 노년소설에 나타나는 말년의식과 죽음 인식 에 대해 살펴보았다. 노년작가들은 생사관을 의식한 말년의식을 지녔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그 특징을 두 가지 차원에서 고찰했다. 첫째, 노년소설에 공통적인 말년의식이 발 견된다는 점이다. ⓵ ‘외면성과 내면성의 불일치’라는 점으로, 노년의 불행은 마음속으 로 느끼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불일치에서 온다. ⓶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서 습관’이라는 점으로, 노인은 습관에서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은 존재 자체에서 분리되는 것이라고 여긴다. ⓷ ‘죽을 자로서의 자의식’이라는 점으로, 죽음은 나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을 나의 시선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노인은 타인의 죽음을 통하여 자신도 소멸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는다.

둘째, 말년에 어떤 생사관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 차이가 크다는 점이다. 노년작가들은 중년과는 다른 말년의식을 통해 ‘실존으로서의 죽음 인 식’을 드러냈다. ⓵ 김원일은 ‘죄의식을 동반한 죽음의 과정과 의미 이해’라는 말년의식 을 통한 인지적 차원의 죽음 인식을 보여준다. 작가는 ‘신’에게 고백하는 과정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종교적인 고백은 하나님이라는 관념 아래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보다 더 의심스러운 내적 검열을 불러일으킨다. ⓶ 최 일남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애도의 문제’라는 말년의식을 통한 윤리적 차원의 죽 음 인식을 보여준다. 애도하는 자와 죽은 자의 관계, 즉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을 구 성한다. 타인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과 연결되는 미래의 시간을 만나게 한다. 이것이 늘 마주하는 죽음을 유한성의 차원 너머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다. 타자의 죽음을 목격 하면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가치 차원을 지니는 것이다. ⓷ 박완서는 ‘죽음에 임박한 자 로서의 태도와 자세’라는 말년의식을 통한 행동적 차원의 죽음 인식을 보여준다. 삶의 완결성으로서의 죽음은 행동적 차원과 연결된다. 죽음과 대면하여 그것을 수용하고자 한다면 남은 시간, 진정한 삶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 그야말로 관념적인 죽음을 넘어 선, 죽음에 임박한 자로서의 개별적이고도 충만한 죽음 인식으로 작용한다. 짧은 시간 이지만 단지 죽음에 순응뿐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도 의미부여가 가능하다.

이상의 논의들을 통해 노년작가들의 노년소설로부터 기존 한국인의 죽음관과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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