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완결로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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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통해 노인문제에 남달리 민감했고, 곧 그것은 소설의 모티프가 되었다. ‘진저리치기’와 ‘연민’이라는 상호 모순된 심리상태는 노인에 대한 작가적 시각의 이중성으로 드러난다. 여성 자아가 보다 관계적이고 순환적인 형 태로 나타나는데, ‘어머니와 딸’이라는 관계 모티프는 끊임없는 공생적 융합의 과정으 로 드러나고, 이것은 흔히 자전적 소설의 형태”207)를 취하고 있다. 이는 노년소설에서

‘어머니와 딸’이라는 구체적인 관계를 형상화하는 데서 알 수 있다.「길고 재미없는 영 화가 끝났을 때」는 말기 암에 걸린 화자 어머니의 시한부 여정을 담고 있다. 화자는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 대가로 그 치욕을 다소나마 가려주는 일을 맡 고 나선다. 하필 화자의 어머니는 수술 후 항문의 괄약근이 고무줄 빠진 것처럼 열린 채 오므라드는 작용을 못 했던 것이다. 아무리 깔끔한 어머니라고 해도 속수무책이었 다. 질병에 노출되어 있는 노인들의 삶은 투쟁 그 자체다. 행여 늙은이 냄새가 날세라,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추레해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 철저히 대비했던 어머니는 죽음에 임박하여 딸네 집에 악취를 풍기며 누워 있었다.

하필 항문의 고무줄이 빠질 건 뭐였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어머니가. 어머니에 게 그런 얼마나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을까. 나는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 대가로라도 그 치욕을 다소나마 가려주는 일을 맡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208)

깔끔하다 못해 결연하기까지 한 어머니의 표정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걸 알 수 있었 다. 늙어갈수록 생리현상을 참는 기능이 헐거워지는 건 사실이나 어머니가 못 참아낼 까 봐 두려워하는 건 단지 그뿐이 아닐 것이다. 사람의 체면 유지를 위태롭게 하는 온 갖 것들이 포함된 것처럼 느껴지는 건 어머니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믿는 딸의 감상 이상의 것, 연민이었다.(134면)

어머니 옷갈피에는 어디서 난 건지 흔히 향(香)비누라고 일컫는 냄새 좋은 세숫비누 가 구메구메 들어 있었다. (중략) 행여 늙은이 냄새가 날세라 그렇게 철저히 대비를 했 던 것이다.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추레해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던 어머니다운 자기관

207) 정영자,「소설 속에 나타난 여성의 삶과 나이 먹기」,『여성연구논집』제16권, 2005, 30면.

208) 박완서,「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그 여자네 집』, 문학동네, 2013, 130면.

리였다. 그런 어머니가 지금 딸네 집에 악취를 풍기며 누워 있는 것이다.(141면)

시간의 불가역성에 대한 도전은 주로 노년 질병으로 나타난다. 그 힘겨운 싸움은 노인 삶의 유지를 위한 투쟁뿐 아니라 주변인들의 투쟁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박완서 는 노년의 질병과 죽음의 문제들을 많은 작품 속에 자세히 다루고 묘사해왔다. “병든 육신의 종착역으로서의 죽음은 주로 육체적 상태를 때론 상세하게 때론 간단하게 서술 되는 방식과 연관된다. 특히 질병의 다채로운 증세와 고통의 경우, 그 질병 자체만의 서술을 통해서 죽음이 암시되기도 하고 혹은 장황하고 세세한 서술을 통해서 죽음을 직접적”209)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화자의 어머니는 “아내가 된 게 아니라, 그 집안의 며느리가 됐을 뿐”이라는 걸 깨달은 것은 첫날밤부터였다. 그것은 길고 재미없는 영화 가 시작된 시점이다. 그 세월동안 어머니는 맏며느리다운 체통을 지키며 살아왔다. 반 면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부모한테 순종하고 부모님 노후를 책임질 장남이란 걸” 철저 하게 교육받아온 터였다. 어머니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품위 같은 게 있어서 어릴 적엔 자랑스럽기도 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존심이 관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 니가 얼마나 당당하게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냈는지는 친척 간에도, 동네에서도 유명했 다.

어머니가 얼마나 완벽하고 당당하고 한결같이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냈는지는 친척 간 에도 동네에서도 유명했다. 그로 말미암아 어머니에게 늘 따라다니는 품위에다가 위엄 같은 게 어릴 적엔 자랑스럽기도 했다. (중략)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일직선으로 자존심 이 관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머니가 자존심은커녕 배알도 빼놓은 여자처럼 보이 기 시작했다.(134면)

내가 기억하는 한 아버지는 철저하게 어머니를 무시했다. 구박하거나 아웅다웅 다투 는 것하고는 달랐다. 옛말에도 있는 닭 보듯 한다는 표현이 아마 가장 적절한 것이 다.(134~135면)

어머니가 아버지의 아내가 된 게 아니라 그 집안의 며느리가 됐을 뿐이라는 걸 깨닫 은 것은 첫날밤부터였다고 한다. 당신이 할 일은 시부모를 극진히 받들고 시동생 시누 이들하고 우애 있게 지내는 거라는 걸 엄숙하게 선언했을 때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 을까.(135~136면)

209) 최문규, 같은 책, 51면.

생노병사의 이치로, 많은 노인은 병상에 누워 있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것이 노년의 냉혹한 현실이다. 어머니의 투병과정은 빈털터리가 된 아버지가 아무것도 안 남은 채, 집으로 들어온 후 일이다. 어머니는 숨을 거두는 날까지 의식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명료하였기에, 뒤를 가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죽음과 맞먹는 치욕이었다. 그런 어머니는 암이라는 걸 알고 나서 가장 먼저 아버지한테 알리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했다. 곧 죽 을 마누라한테 여전히 데면데면하게 굴 꼴을 피하려는 어머니의 마지막 자존심일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철저하게 어머니를 무시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자는 아버지 에게 ‘어머니가 말기 암환자고 남은 생명이 다섯 달도 안 될 것’이라고 말하고 만다.

그것이 작가가 인식하는 ‘삶의 완결성으로서의’ 죽음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전화를 걸어와 누군지 알아들을 수 없는 목쉰 소리로 어머니를 바꾸라고 한 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흐느끼는 음성 같은 잡음은 복받치는 울음을 참는 소리였다.

그것은 어머니가 말기 암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평생 ‘소 닭 보듯’했던 아버지가 전화통을 붙들고 ‘사랑해’를 연발했던 일이다. 작가는 두 노인의 화해를 통해 노년의 실존과 함께 삶의 완결성으로서 죽음 인식을 담아내고자 한다.

어머니는 지금 말기 암환자고 남은 몇이 다섯 달도 안 될 거라고 말해버리고 나서 아 버지의 반응 같은 건 살피지도 않고 친정집을 뒤로 했다. (중략) 그날 밤이었다. 아버 지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엔 누군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목쉰 소리로 어머니를 바 꾸라고 했다.(142면)

여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요. 그 흐느끼는 음성을 통해 여지껏 들리던 그 이상한 잡음도 복받치는 울음을 참는 소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데도 아는 웃음이 폭발할 것 같아 얼른 전화통을 손바닥으로 틀어막고 방바닥에 뒹굴고 말았다. 나중에 보니까 통화가 끝난 어머니도 아픈 배를 움켜쥐고 그렇게 웃음을 걷잡지 못했다. 어머니는 의 사가 예언한 생존기간도 미처 못 채우고 돌아가셨지만 칠십에 처음 들은 사랑의 고백 때문에 그 동안을 즐겁게 보내셨다. 똥구덩이에 빠져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버지 도 말로만 아니라 거의 매일같이 어머니를 문병했고 똥도 치우고 싶어 했지만 어머니 가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죽을 때까지 사랑받고 싶어서 그 꼴만은 안 보이고 싶었나 보다. 어머니 묏자리를 잡는 데도 정성을 다하셨고 장례 때도 수시로 그 딸꾹 질을 참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눈물을 뚝뚝 흘려서 우리를 민망하게 했다.(143면)

어머니는 의사가 예언한 생존기간도 미처 못 채우고 돌아가셨지만 칠십에 처음 들 은 사랑 고백 때문에 죽음 전 몇 개월을 즐겁게 보냈다. 아버지는 거의 매일 어머니를 문병했다. 똥까지 치우고 싶어 했지만 어머니가 그것만큼은 허락하지 않았다. 여자로서 죽을 때까지 사랑받고 싶어서인지, 남편에게만큼은 그 꼴만은 안 보이고 싶어 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존심이 관통하고 있는 것처럼 살았던 어머니는 마지막까지도 당당하게 죽음을 맞고 싶었던 것이다. 나이 든 여성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성적 존재 가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이 노년에 진입하는 시기는 남성보다 훨씬 심리적으로 빠르다. 이 시점은 성차별과 노년차별의 이중으로 겹치는 굴욕적 장”210)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내면서 묏자리 잡는 데도 정성을 다하였으며 장례 때도 눈물 뚝뚝 흘려 자녀들을 민망하게 했다. 화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육 체를 배반하는 정신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에 가족들한테 “못 할 노릇만 시키면서 너 절하게 산 아버지는 혹시 우아하게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요행을 바래보는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난봉기 있는 아버지가 풍류 있는 노인으로 보여 화자는 어쩐지 “어머니와 달리 난해한 이 인 생의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살아온 생과는 대비되었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소회이기도 하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는 또 보고 싶지 않지만 난해한 영 화라면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보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 만 상주인 오빠의 얼굴은 “영락없이 길고 지루한 영화가 끝났을 때의 관객 얼굴을 연 상”시켰다. 임종 소식만 기다리기 얼마나 지루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사람 팔자는 관 뚜껑 덮을 때까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난해한 숙제로구나.(149면)

일생을 자기의 한숨 소리 한 번 제대로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잔뜩 오므리고만 사 신 어머니가 자기 항문도 못 오므리게 된 치욕적인 마지막을 보냈으니까. 식구들한테 못 할 노릇만 시키면서 너절하게 산 아버지는 혹시 우아하게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요행수를 바란 건 아닐까?(149면)

210) 연점숙,「페미니즘과 노년차별: 페미니즘 안팎의 타자, 노년여성」,『영미문학페미니즘』제17권 제1호, 2009, 111~1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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