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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소설의 말년의식

문서에서 저작자표시 (페이지 129-138)

앞서 중요한 세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한 결과, 노년작가들에게서는 몇 가지의 공통 적인 말년의식이 발견된다. 그것은 ⓵ ‘외면성과 내면성의 불일치’가 눈에 띈다. 노인은 타인이 보는 나와, 스스로가 인지하는 나 사이의 불일치로 어떤 역할을 연기해야 한다 는 느낌을 받는다. 외모와 자아에 대한 외면성과 내면성의 불일치는 노인들에게 정체 성의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⓶ ‘변화’라는 두려움 때문에 습관으로 존재성을 보장받고 싶어 한다. 노인은 습관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그들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 을 느낀다. 습관에서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은 결국 존재 자체에서 분리되는 것이라고 여긴다. ⓷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 재정립’이 그 다음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에 대한 불안은 노인에게 있어서 심리적 기저로 작용한다. 그것은 노인들에게는 공포이며, 괴로 움이 된다. 인간은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도 소멸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는다.

1. 1. 외면성과 내면성의 불일치

“모든 인간의 상황은 보는 관점에 따라 외면성과 내면성, 두 가지 관점에서 고찰된 다. 타인에게 보이는 나의 존재와 그것을 통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갖는 자의식 사이 의 변증법적인 관계가 노년의 진실”221)이다. 특히 노년은 기억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서사가 총합되게 만드는 일에 분투하는 시기이다. 신앙인이든 그렇지 않든 과거가 자 꾸 떠오르는 상황에서 노인은 일관된 맥락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때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 나 스스로 갖는 자의식 사이 불일치를 겪게 된다. 이것은 외모뿐만 아니라 인생 서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생 서사를 총합되게 만들고 싶은 노 인에게 정체성의 혼돈은 죽어가는 과정에서 허구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한다.

김원일의 작품에서 노인들은 죽음 직전 타인에게 보이는 나, 나 자신에게 갖는 나 사이의 불일치를 겪는다. 한 여사는 품위 없는 늙은이들과는 거의 교류하지 않는다. 팔 순에 이른 나이에도 매일 화장하거나 시를 읽고 고상한 음악을 듣는다. 그녀는 자신이 교양 있는 ‘귀족 신분’이라고 생각한다. 화장 전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고 부정 해버린다. 노년에 나타나는 여러 증상들은 특히 자신에게 ‘낯설게’ 포착되고 이데 따라 내면성과 외면성에 대한 불일치로 나타난다. 그녀에게는 늙은 모습을 받아들인다는 것 은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특히 게이코와 한안나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던 불행의 시간들은 상흔으로 남아 한 여사에게 귀부인으로 가장한 이야기만 하게 만들었다. 몇 번이나 바뀌었던 그녀의 이름은 그것 자체가 현대사의 참 혹한 순간들을 상징한다. 그러던 그녀가 치매 상태가 되면서 참혹했던 시간들의 그 진 실과 대면하게 된다. 진실이 무의식 속에서 순간순간 튀어나온다. 실제와 가장한 기억 사이를 고통스럽게 헤매던 한 여사는 죽음 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내 면성과 외면성의 불일치로 혼돈스러웠던 그녀는 임종의 순간, 존재론적인 통찰에 다가 선다.

초정댁은 건강하게 살고자 ‘쪼콜레또와 아스필링’을 꾸준하게 복용한다. ‘쪼콜레또 아스필링’은 100살까지 살고자 하는 그녀의 욕망을 유지하게 해주는 방법이었다. 입담 이 세서 쉼 없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초정댁 역시, 외부의 시선 속에 비춰진 이미지 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셈이다. 친정과 시댁의 경제적 부유함, 죽을 때까지 사이좋았다

221)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책, 393면.

는 남편,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대학교수인 아들 박정필에 대한 자랑이 그것이다.

하지만 실제 남편은 중증복합장애인이었고, 관계했던 사람은 이씨와 우씨였다. 그녀는

‘좋은 종자’를 얻기 위해 우씨와 사통해서 아들 박정필을 낳았고 이씨를 살인한 과거를 안고 살아왔다. 그러다 노쇠로 혀가 굳어버린 어느 날 새벽, 끝까지 입을 다문 채 죽음 을 맞이한다. 정욕과 물욕으로 채워진 삶을 산 인물인 초정댁은 자신이 만든 자랑해야 만 하는 이미지 속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다. 외면성과 내면성이 일치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그녀는 아들이 박씨 가문을 일으키리라 자부하며 숨을 거둔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나는 나를 안다’는 말과 함께 임종을 맞이하게 되는 그녀는, 무의식 속에서나마 자신이 포장한 과거가 거짓임을 잘 알고 있었다.

최일남의「힘」에 등장하는 이 소장 역시 내면성과 외면성의 불일치를 보이며 죽음 에 이른다. 이 소장은 여전히 자신이 청년이라고 주장하는 노인이다. 일흔셋의 나이에 도 불구하고 건장한 체력을 과시하며 동민체육대회 턱걸이 시합에 나갔다, 갑작스럽게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그는 칠십 노인이라고 얕보았다간 큰 코 다칠 정도로 선망할 만한 육체를 지녔다. 내적으로 느끼는 자신과 외모로 나타나는 노년 사이의 괴리감은 이 소장에게 ‘젊음’이라는 역할을 연기하게 만들었다. 그런 이 소장의 단짝은 김 선생 이었다. 김 선생의 얼굴은 이 소장과는 달리 완연한 노색을 띠었다.

노인의 상황에서 가장 절망적인 것은, “자신이 능동적으로 그 상황을 수정할 수 없 다는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적으로 느끼는 자기와 외모로 나타나는 자기 사이의 괴리는 노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연기해야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기도 한다. 노인에 게 있어 즉자와 대자의 불일치는 내면과 외모의 불일치이기도 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혹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확인해야 하는 자아의 분열처럼 더욱 견디기 어려운”222) 것 이다. 김 선생은 이 소장의 육체가 때때로 탐나고 때때로 싫다. 그런데 이 소장이 아이 러니하게도 턱걸이 시합에서 우승하는 순간 쓰러진다. 김 선생의 노년에 대한 인식과 이 소장에게 일어난 사건의 대비는 노인에게 죽음은 더 이상 추상적인 운명이 아니라 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은 그들에게 임박한 것, 개인적인 일생의 사건이 된다. 이 소장 이 갑작스럽게 죽음에 직면하게 된 것은 세월을 거스르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기도 하 다. 그가 육체적인 탐욕에 몰두하는 사이, 죽음에 관한 인식은 아예 없었다. 노년은 죽 어가는 과정과의 투쟁을 의미하고, 그것이 노년의 냉혹한 면이다.

박완서의 작품 꽃잎 속의 가시」에서 화자 언니의 죽음 인식은 다른 세대에 속한

222)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책, 770면.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사건이다. 여기서도 노인들에게 있어 불행은 내 면의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나’ 사이 불일치에서 온다. 집, 고향, 고국에서 임종을 맞 이하고 싶은 것이 노년의 특징이라고 볼 때, 언니에게 고국은 회귀 공간이었다. 그런 언니의 30여 년만의 귀향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녀는 고급스러운 새 가방에 대 해 유독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만들다, 결국 가족들 성화에 못 이겨 가방 안 물건을 꺼내게 되는데 그 안에는 놀랍게도 누런 베옷들, 수의가 들어 있다. 가족들은 수의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수의가 주는 이미지, 경사와는 너무 안 어울리는 낯섦 때 문이었다. 가족들은 경사스러운 일에 세상으로 나온 수의와 죽음의 이미지를 도저히 용납하지 못한다.

그것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가족 모두는 당황 하고 분노하기만 할 뿐 노인의 행위 배경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하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노인의 행동 이면에 대해 더 소통하려 들지 않는 이상, 세대 간 죽음 인식은 첨예하게 대립될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사람, 현실 위주로 흐를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죽음 인식이 대체로 이러하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미래지향적으로 말하는 노인이란 드물다. 당연히 주체로서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죽음 이야 기는 낯설다. 이에 카운트다운을 앞둔 노인과 그 주변인의 죽음 인식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간극이 발생한다. 이른바 소통되지 않은 ‘죽음관’이다.

“인간은 노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쇠란 불가항력의 것이며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다. 노화는 어김없이 죽음에 이른다.”223) 노인의 관점에서 죽음은, ‘귀의’라는 인생 서 사에서 완결점에 해당한다. 하지만 언니를 이해하지 못한 가족들은 미국행을 종용하게 되었고, 언니는 미국으로 돌아간 지 2개월 후 정신을 놓은 상태로 양로원에서 숨을 거 둔다. 평생 동안 이국생활을 하면서도 임종 공간으로 모국을 택한 언니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오늘날 노인을 제외한 다른 세대는 작품 속 가족들처럼 동양적인 죽음관보다 서양적인 죽음관에 경도되어 있다. ‘회귀, 순환’과는 거리가 먼 ‘끝’으로서의 죽음 인식이 그것이다. 죽어가는 자와 그것을 지켜보는 자 간의 세대 차는 동양과 서 양의 죽음 인식 차이만큼이나 극명하다.

223)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책, 45~51면.

1. 2.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서 습관

“습관은 내일이 오늘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킴으로써 그들을 산만한 근심에서 보호한다. 습관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노인은 그에게 죽음이 다가온 다는 것”224)을 느끼게 된다. 노인에게 있어 습관의 역할은 “기계적인 동작과 틀에 박 힌 일이라는 이중적인 형태로, 심리적인 생활이 저하되면 될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다 른 것들보다도 습관은 기억력 결핍에 대한 임시방편이 될 수 있다. 노인은 변화를 두 려워한다. 왜냐하면 변화에 자신을 적응시키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노인은 변화에서 어떤 출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의 단절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노인은 예전 자기 삶의 틀과 삶의 리듬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한다.”225) 노인은 습관에서 자신을 분 리시키는 일이 자기 존재 자체에서 분리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김원일의 작품에서 노인들은 한맥기로원에서 매일 같은 일상을 되풀이한다. 습관은 오늘과 같은 내일이 이어질 것이라는 위로로 노인에게는 갈망이자 희망이다. 한맥기로 원은 ‘가’동과 ‘나’동으로 분류되어 있다. ‘가’동의 노인들은 치매상태가 되거나 운신할 수 없게 노쇠하면 ‘나’동으로 가게 된다.

윤 선생은 아침 식전에 단전호흡과 맨손체조를 한다. 오전에는 독서를 하거나, ‘나’

동으로 가서 병중인 환자들에게 예수를 믿으면 죽은 후 주님 계신 천당에 갈 수 있다 며 열심히 전도한다. 오후에는 홀로 산책을 하는 것 외에 여럿이 어울리는 놀이나 운 동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기로원 자체는 규칙적인 활동을 강제하는, 이미 일정 정도의 제약을 받는 곳이다. ‘가’동의 생활에서 상태가 더 심해지면 ‘나’동으로 옮겨진다. ‘나’동 에서 자원봉사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다 끝내는 자기가 누구인지, 죽음이 언 제 닥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세상을 하직한다. ‘나’동은 곧 죽음에 이를 임종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한여사, 초정댁, 윤선생, 김중호 역시 한맥기로원에서 매일의 습관 에 갇혀 지내다 어느 날 임종을 맞이하게 된다.

최일남의 경우도 이와 유사하다.「아주 느린 시간」에서 초점화자는 당산이라는 신 도시를 배경으로 도시 노인들의 일상에 대해 관찰자적인 엿보기를 한다. 그렇게 다섯 노인을 관찰하면서 죽음에 대한 파편화된 경험들을 서사화하고 있다. 그들은 아침나절 지하철역 창구 앞에서 어제와 오늘을 더듬는다.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

224) 시몬 드 보부아르, 같은 책, 656면.

225) , 같은 책, 652~65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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