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소설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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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가들은 각자의 시선 속에서 죽음을 바라본다. 문학 속의 죽음은 필연적으로 작가의 철학적 인식과 관련을 갖는다. 죽음의 양상은 인생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나 의식에 연관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가 관찰하고 사색해 온 우주, 선과 악, 존재에 대한 인식양상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 이건 간에 작품 속에 투사”229)되기 때문이다. 노년소설의 죽음은 한국문학에서의 죽음 과는 그 특징이 달랐다. 기존 한국문학에서 나타난 죽음은 ‘작가가 왜 작중인물을 죽음 으로 처리하느냐?’하는 것과 연관된다. 죽음의 문제는 빈번한 주제와 소재인데도 불구 하고 대개의 경우 죽음 자체에 직접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죽음이 주는 상징 또는 의미 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 비록 직접적으로 표현되었다 하더라도 주제를 형상화하는 데 뒷받침되었다고 할 수 있을 뿐, 존재로서의 의미 찾기나 실존을 드러낸 경우는 드물다.

229) 심영덕,「현대소설에 나타난 죽음의 고찰」,『영남어문학』제21집, 1992, 330면.

반면 노년소설에서는 노화와 함께 현존으로서의 죽음 인식을 핍진하게 드러낸다. 인간 은 결국 노화의 결과로서 죽음을 맞는다. 노화한다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과 서서히 이 별하게 된다는 것을 함의한다. 따라서 생물학적인 죽음을 의식한 노년작가들은 그들의 말년의식을 드러냈는데, 그것을 통해서 승화된 죽음 인식을 고찰할 수 있다. 그들에게 는 인간의 삶을 마감하는 일대 사건으로서의 죽음인 것이다.

2. 1. 소재로서의 죽음

기존의 소설에서 죽음의 소재를 취급하는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죽음을 역사적 관점에서 검토한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한국사를 바탕으로 시대별 죽 음의 다양한 양상이 검토된다. 근대 이후 한국의 역사에는 다양한 죽음의 양상이 등장 하게 되는데, 근대소설은 이들 죽음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둘째, 사회적 죽음을 통해서 현실과 인물의 갈등을 부각하는 경우이다. 셋째, 죽음을 종교적 관점에 서 다루는 경우이다. 넷째, 죽음의 교육적 차원을 강조하는 경우이다.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에서 죽음은 생의 의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이를 구체 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적 죽음의 문제이다. 근대사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죽음의 유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230) ① 한국전쟁과 죽음이라는 상황이 있다. 소설에 나

230) 허인영,「1980년대 소설에 나타난 죽음의 양식」,『도솔어문』제13권, 1997.

전쟁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정신적 피해를 그린 작품은 1980년 봄에 발표된 이호철의「새해 즐 거운 이야기」다. 전쟁이 남기고 한 가난이라는 상황 속에서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은 김수남의「달바라기」다. 서영은의「시인과 촌장」에서도 전쟁 이후 가난을 견디다 못 해 죽고 싶어 한다. 박완서의「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에서는 자신들의 생을 편하게 만 들기 위해서 아버지의 죽음은 편리한대로 일그러지게 복원한다. 김만옥의「만각」에서는 간첩 김연수의 사형으로 소설을 형상화했으며, 이창동의「친기」에서 증오의 감정을 지니는 이유에 이데올로기가 있다. 김하기의「살아있는 무덤」의 주인공들은 이데올로기를 지켜나가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인다. 홍희담의「깃발」은 현실을 극명하게 반영하여 광주민주화 항쟁의 주검들 을 한층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송기숙은「우투리」에서 나약한 한 노동자가 한 할머니 의 죽음으로 인해 어떻게 광주민주화 항쟁 안으로 파고드는가를 말해준다. 송기숙의「월문리에 서」는 도시산업화로 인한 빈민의 생성과 산업화에 적응하지 못한 노인의 죽음을 보여준다. 이 은식의「불씨」는 지주에게 대항하는 농민의 투쟁을 그린다.「성난 휠체어」는 열악한 근무조 건에서 근로를 당하는 산업재래 근로자 이야기다.「난민일기」에서 나타나는 죽음은 홍수로 인 한 강물의 범람에 대비하지 못한 도시 빈민 노동자 계층이다.「새벽출정」은 노동자의 죽음이 기촉제가 되어 투쟁을 굳건히 하는 힘이 된다.「달」은 이데올로기에 의한 죽음의 왜곡 내지 은폐는 국가권력이라는 막대한 권력에 의해 저질러지기도 한다.「새해 즐거운 이야기」에서 아

타난 전쟁의 양상은 전쟁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정신적 피해를 다룬 이야기와 전쟁이 남기고 간 가난이란 상황 속에서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나눌 수 있 다. ② 이데올로기와 죽음이 있다. 소설 속의 이데올로기는 전쟁이란 상황으로 제시된 다. 한국전쟁은 이데올로기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제시라고 볼 수 있다. 남과 북은 이데올로기 문제로 대립관계를 이어오고 있고, 이런 문제들은 진실을 왜곡하게 만든다. ③ 광주민주화 항쟁과 죽음이 있다. 광주민주화 항쟁은 현대사에 비극적인 사 건이었다. 항쟁으로 인해서 문학은 일부 지식인들이 민중의 삶을 체험함으로써 창작하 는 문학이 아니라, 민중들에 의해서 살아 움직이는 문학으로 창작된다는 사실을 보여 줬다. ④ 가난과 죽음이 있다. 한국전쟁은 해방 이후 한반도에 남아 있었던 거의 모든 산업시설을 조직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산업기반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런 배경에서 문학작품 내에 나타나는 가난은 죽음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⑤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나타나는 죽음이 있다. 도시빈민 계층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지위 때문에 특정한 지 역에 모여 살게 된다. 이런 주거 환경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공장근로자들이 대부 분이다. 고된 근무는 산업재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도시 비대화에 따른 농촌의 해 체는 필연적이다. 산업화로 인한 농촌해체 때문에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⑥ 부조리한 현실에 패배하거나 승리하는 죽음이 있다. 부조리한 현실에 패배한 죽음이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 부적응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부조리한 현실 에 승리하는 죽음이란, 그 죽음으로 인해 소설을 이루는 구성원 모두가 큰 자극을 받 아 변화되거나, 독자로 하여금 변화하게 만드는 죽음을 말한다.

둘째, 사회적 죽음의 문제이다. 특히 1960~70년대의 개발독재기를 배경으로 한국에 서는 사회적 죽음이 부각되었는데, 그 의미를 묻는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우선 1960 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회적 죽음은 현실의 모순에 대한 저항의 측면에서 세 가지 유 형으로 나눌 수 있다.231) 첫째 충동적 죽음의 유형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에는

버지의 죽음은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죽음이 필요없이 과잉된다는 사실이다.「사슬」에서는 자 각하지 못한 노동자가 어떻게 죽어 가는지를 보여줌으로 인해 독자들에게 패배하는 인간형을 제시한다.「벌레」에서 교도관 형의 죽음은 사회가 자각하지 못한 죽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자각이 없음을 한탄하는 죽음이다.

231) 주지영, 1960년대 소설에 나타난 죽음의 유형 ,『돈암어문학』제28권, 2015.

① 한무숙의「대열 속에서」는 4.19라는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명서와 창수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최상규의「열외」는 현실을 동물원으로 규정하고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모순을 비 판하고 있는데, 결국에서 자살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청준의「공범」은 군대에서의 살 인을 다룸으로써 군사독재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② 이청준의 마기의 죽음 , 공동체의 유대 감 결여와 인간소외를 비판하는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 물질만능주의로 인한 비인간화 의 측면을 비판하는 이제하의 유자약전 , 전쟁의 비극을 형상화하고 있는 서기원의 이 성숙

죽음의 계기로서 작동하는 상징계의 모순이 단편적인 한두 가지 사건이나 삽화로 제시 되어 있다. 이는 현실의 모순에 대한 인식이 단편적이고 개별적인 현상에 한정되어 있 음에 기인한다. 그 결과 현실의 모순에 대한 단편적 인식과 파괴에의 욕망에 의한 충 동적 죽음만 제시된다. 둘째, 역설적 죽음의 유형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현 실의 모순에 대한 인식이 단편적 측면을 넘어서 구조적 측면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 결과 죽음의 계기로 작동하는 현실의 모순은 여러 가지 사건단위들을 통해 다각적 으로 제시되고, 더불어 각각의 사건들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하나의 전체사건으로 통 합된다. 이를 통해 사건이 전개될수록 상징계의 모순은 점점 강화되고, 죽음은 현실의 모순과 내적 필연성을 확보하게 된다. 따라서 이 유형의 죽음은 겉으로는 상징계의 모 순에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패배를 통해 모순극복 방식을 제시함으로써 역설적 죽음의 의미를 띤다. 셋째, 초월적 죽음의 유형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현실 의 모순에 대한 구조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올바른 역사의 방향성을 문제 삼고 있 다. 이 유형의 작품은 죽음의 계기로 작동하는 상징계의 모순을 여러 가지 사건단위들 을 통해 총체적으로 제시하고, 그러한 모순이 극복된 세계를 지향한다. 이러한 지향성 으로 인해, 이 유형의 죽음은 상징계의 모순을 가장 강력하게 전복시킬 수 있는 기능 을 한다. 따라서 이 죽음은 상징계에서 상상계로의 초월적 죽음에 해당된다.

사회적 죽음의 양상은 1970년대를 거치면서 더욱 확대되는 경향을 보인다.232) 산업 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사회로부터 소외된 인간들이 겪는 갈등과 그 죽음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작품에서 이들 작품에서 구현되는 죽음은 당대 현실을 부정한다 는데 의미가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물의 자살을 통해 현실의 삶에 내재한 부정적 측면의 상흔을 암묵적으로 표현하려는 의지를 표출한다. 특히 자본의 논리가 주는 비인간적인 것에 굴복하지 않는, 당대 사회적 현실에 대한 저항의 한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작품의 인물들은 삶의 현실을 도저히 용인할 수 없으므로, 죽음을 수단으 로 삼아 삶의 의지를 역설적으로 부각시킨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삶=죽음, 죽음=(진정

한 밤의 포옹 이 그것이다. ③ 광장 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남한과 북한 사회에 환멸을 느 끼고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명준을 통해 이를 제시한다. 나무들 비탈 에 서다 에서는 전후의 현실과 모순 극복방식을 제시한다.

232) 이인복,「현대소설에 나타난 죽음의식」,『韓國學硏究』제7권, 1997.

1950년대의 작가들 중에서 전쟁체험과 그로 인해 파괴된 인간형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손창섭, 오상원, 이범선의 작품이다. 1960년대 죽음 양상이 두드러지는 것은 서기원, 장용학, 짐 승옥의 작품을 들 수 있다. 1970년대는 이제하, 조해일, 이청준, 오정희는 죽음의 문제를 사회, 구조적으로 그려냈다. 1980년대는 최수철, 임철우, 최윤이고, 90년대에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친 작가들 중 죽음의식을 다룬 작가로는 윤대녕, 신경숙, 김형경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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