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기억과 죄의식의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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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려워요」는 독실한 신앙인 윤여은 선생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윤 선생 은 여자로서의 삶과는 거리를 둔 채 기독교인으로서 존경의 대상으로 살아왔다. 입원 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경남 일대에 흩어져 살던 옛 제자들이 병문안 차 진주로 모여 들었고, ‘윤여은 선생을 기리는 모임(윤기모)’이 발기된다. 그녀는 평생을 교사로 봉사 했고, 은퇴 후에도 사회복지시설인 애린원에서 봉사하다 기로원에 입소한다. 신앙인으 로서 예수의 삶을 닮고자 했던 그녀는 기독교인답게 성격읽기와 기도로서 죽음에 대해 초월의식을 보여주고자 한다.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의 이행 같은 것”

이라고 믿는 그녀는 백 살까지 살고 싶지 않다. 적당한 나이에 눈감는 게 순리라고 여

140) 박찬효, 같은 논문, 308면.

긴다. 백 살까지 사는 것은 그녀로서는 버티며 사는 삶이다. 나이만 자꾸 먹으며 오래 산다는 건 외롭고 슬프기 때문이다. 만약 치매에 걸려 예수님마저 잊어버리면 그 고통 이 오죽할까 싶다.

저는 백 살까지 살고 싶지 않아요.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제 몫만큼 열심히 산 연후 에 하나님이, 당신은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이제 다했으니 뒷전으로 조용히 물 러나도 좋다. 하신다면 여지껏 살아온 세월이나 정리하다 적당한 나이에 눈감는 게 순 리 아니겠어요? 우리나라의 여성 평균 수명이 일흔여섯이라는데 그 나이를 넘겼거늘, 뭐가 부족해서 백 살까지 버텨내며 살아요? 그 나이까지 살라면 전 하나도 즐겁지 않 고 한 해, 한 달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걱정으로 머리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나이만 자꾸 먹으며 오래 산다는 건 외롭고 슬프지 않아요? 한 해 다르게 몸은 차츰 말을 안 듣고 생각마저 흐려지면 그런 외로움이나 슬픔도 잊게 되겠지만. 치매에 걸려 예수님 마저 잊어버리면 그 고통이 오죽이겠어요.141)

윤 선생은 죽음의 때가 가까워진 탓인지 예수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장면을 자주 본 다. 실재하지 않는 그 세계가 마치 목격자로서 경험한 듯 생생하게 재현된다. 그녀는 잠들기 전에 “이제 저를 안식의 그 처소로 불러 주옵소서. 주님이 계신 곳에 제가 들 수 있을는지요?”라고 기원을 한다. 죽음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간은 두 려움 속에서 죽어갈 수도 있고, 인생을 정리하면서 죽을 수도 있다. “두려운 현상으로 확정되어 있지 않은 죽음을 어떤 사람이 불안과 공포 속에서 맞이했다면, 그렇게 죽어 가도록 선택한 것은 누구이겠는가. 또 어떤 사람이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죽음을 맞이 할 때, 자기 자신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 누가 죽음의 방식을 선택”142)할 것인가. 윤 선생은 통증이 심해서 말할 기력이 없다. 무서운 통증으로, 육신의 질곡에서 헤매다

“제발 이쯤에서 제 숨이 스스로 끊어지게 그냥 놔두어 달라.”는 애원을 한다. 너무 고 통스러워서 숨쉬기가 괴롭다. 그녀는 이제 할 일을 다 마쳤으니 이 땅에 더 살아 있어 야 할 가치가 없다고도 호소한다. 고통의 질곡 속에서 자신을 거두어달라는 애원인 것 이다. 몸은 송장인 듯 움직일 수 없이 기진맥진 상태이다.

윤선생은 통증이 심해서 말할 기력이 없다. 눈을 감았는데 눈꺼풀이 덜리고 시트에 얹힌 손이 경련을 일으킨다. 이 무서운 통증이여, 육신의 질고에서 이렇게 헤매다니.

141) 김원일, 같은 책, 93~94면.

142) 오진탁,『죽음, 삶이 존재하는 방식』, 청림출판, 2004, 226~227면.

의사 선생님, 제발 이쯤에서 제 숨이 스스로 끊어지게 그냥 놔두세요. 너무 고통스러워 서 숨쉬기가 괴롭습니다. 저는 이제 제 할 일을 다 마치지 않았습니까. 이 땅에 더 살 아 있어야 할 가치가 없는 늙은이입니다. 주님, 저를 거두어주십시오.(240~241면)

침상에 누운 윤선생은 통증이 너무 심해 연방 구역질하듯 숨을 몰아쉰다. 진통제를 쓰지 말라고 한사코 거절하시더니…… 당신 스스로 이런 고통을 당하시겠다는 뜻이겠 지요. 고경률이 윤선생을 내려다보며 안타까운 듯 속엣말을 한다. 양극 전류가 마주쳐 장기 곳곳을 쑤시며 불꽃을 튀기는데 몸은 송장인 듯 움직일 수 없어 그네는 기진맥진 상태이다. (중략) 만약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심판하신다면 저는 너무 두려워 주님 앞 에 나설 수가 없습니다. 윤선생이 예수의 발밑에 무릎 꿇어 당신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애원한다.(251면)

윤 선생은 만약 주님께서 죄를 심판하신다면 “너무 두려워 주님 앞에 나설 수가 없 다.”고, 예수의 발밑에 무릎을 꿇는다. 가장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데도 불구하고, 주님 만나길 두려워한다. 윤 선생 역시 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은 ‘양심’의 소리를 듣게 만든다. 그녀가 두려웠던 것은 죽음 보다는, 주님 앞에서의 지난 삶이었다. 까마득히 잊어버렸던 악몽이 어느 순간 느닷없 이 떠올라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심장이 뛴다. 작가는 “죄의식을 매개로 과거가 재구성 되는 지점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를 재구성하는 이유는 ‘죄의식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 로 나타난다. 작가는 ‘공적 역사’와 ‘타자를 배제하지 않는 기억’의 긴장 관계를 통해 새로운 역사의 재현 방식”143)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윤 선생에게는 자기만이 아 는 비밀이 있다. 과거 진주사범학교에 다니던 시절 남학생을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죄 책감이 그것이다. 그것을 종교라는 가면으로 덮고 살았다. 그녀가 희생적인 삶을 선택 한 것도 주변 사람이 불행해졌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함도 있었다.

저는 사범학교에 다닐 대 엉겁결에 한 남학생을 사지로 몰아넣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늘 아래 영원히 숨겨지는 죄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저야말로 한 남자를 젊디젊은 나이에 죽게 한 죄를 평생 숨기고 살았습니다.(253면)

어쨌든 불결하게만 느껴지는 남학생의 손부터 떨쳐내고 봐야 했다. 순간적인 판단이 지만 손을 잡힌 것만으로도 순결의 한 부분이 훼손되는 듯 느껴졌다. 그녀는 들고 있

143) 박찬효, 같은 논문, 305~306면.

던 책 보퉁이로 그의 팔을 내리쳤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그가 다시 자기 팔을 잡았 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그의 손이 떨어졌다 싶자 그녀는 부리나케 건너편 객차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다음 순간, 귀를 찢는 굉음 속에 남학생의 외마디 비명이 잠시 귓가 에 스쳤다. 기차가 굴을 빠져나오고 뛰던 숨길이 진정되자,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그 남 학생이 어떻게 되었을지 걱정되었다.(208면)

그 순간 그는 문이 열린 승강구 밖으로 떨어졌음이 분명했다. 구르는 쇠바퀴에 깔려 죽었다? 활동사진처럼 빠르게 스쳐가는 한 장면이 떠오르자 정신이 아득했다. 쇠뭉치 로 머리를 내리치는 듯한 죄책감이 일거에 혼을 뽑았다.(208~209면)

윤 선생은 진주사범학교에 다닐 당시 자신을 흠모하던 남학생을 죽음에 이르게 했 다. 그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죄책감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날 비에 흠 씬 젖은 채 어떻게 선교사 사택으로 돌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예배 당에서 밤을 새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 앞에서 눈물로 통회를 했다. 제발 죽지 않 고 살아 있길 빌 뿐이었다. 일주일이 지나는 사이, 신변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 지만 그 사건은 처음 당해보는 죄에 대한 공포심과 참회로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통사정하게 만들었다. 열흘쯤 지난 어느 날, 등굣길 기찻간에서 옆자리의 중절모 쓴 중 년과 노인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쯔쯔, 기어코 숨을 거두었다더구먼. 마산까지 가서 일본인 양의에게도 보였다지. 용하 다고 소문이 나서 진주 사람들까지 몰려드는 황의원도 결국 자기 자식은 못 살려냈어.

머리 좋은 아까운 자식을 그렇게 잃고 말다니. 노인장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다 리뼈는 그렇다 치고 갈비뼈가 몇 개나 나갔다던데 무슨 재주로 살려내요. 민우가 그나 마 여지껏 목숨이라도 부지한 게 황의원이 특별 처방을 쓴 덕분이겠지요. 그런데 민우 가, 혼자 승강구 손잡이를 잡고 바람을 쐬다 열차가 굴로 들어서자 갑자기 숨이 막혀 한 손으로 입을 막다 실수로 떨어졌다고 우긴다는데, 그게 미심쩍다 이 말입니 다.(210~211면)

그 사건과 함께 전쟁 직후, 강 선생을 만나 가슴에 온기를 키운 적이 있다. 그는 그 녀에게 아무런 언급도 없이 떠나버렸다. 그가 떠난 이후 어렴풋하나마 그것이 사랑이 었음을 깨닫고는 처음으로 사람에 대해 배반의 감정을 느꼈다. 강 선생과는 학교 임시 음악교사로 일하게 된 어느 날, 방과 후 교무실에 둘만 남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는 스물일곱 살 미혼이었고 고향 신의주에는 부모와 형제 셋이 있었다. 대화가 깊어질 수록 마음 한 귀퉁이에는 차츰 그가 온기를 품고 터를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강 선생이 일본으로 밀항했다는 것을 백 선생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도무지 믿 을 수가 없었다. 마음 한 귀퉁이에 온기로 자리했던 그곳에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 충 격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자 어렴풋이나마 강 선생에 대한 감정이, 이성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러자 윤 선생은 사람이 무서워졌다. 예수를 영적으로 모셔 평생 그분의 신부가 되기로 서약하기가 그즈음부터였다.

윤 선생은 주님 만나길 두려워하며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회의에 빠져 고통스러워한다. 한 남자를 젊은 나이에 죽게 한 죄를 평생 숨기고 살았기에 주님께서 죽음의 고통, 환란을 준다고 생각했다. 하늘나라로 간다면 그의 영혼을 만나기가 심히 두렵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신앙인으로서 삶을 살았던 그녀마저도 육신의 고 통에서 비롯된 죽음만큼은 두려웠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요? 초정댁은 자 는 잠에 편안히 세상을 떠났는데, 저에게는 왜 이렇게 격심한 고통을 주시나요?”라고 되묻는다. 죽음은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구체적이고 유일한 존재로서의 죽음이 다. 독자적인 역사를 갖기에, 죽음은 개별적이고도 고유하다. 그녀는 “평생 순결을 지 킨다 함이 얼마나 힘들다는 걸 주님 역시 결혼해보지 않았다고 모른다 말씀하시지 아 니할 테지.”라고 고백을 한다.

주님, 저를 가련하게, 여기신다면, 이 고통을, 거둬주세요! 고통 없이, 어서, 데려가줘 요! 윤선생은 아픔을 더 참을 수 없어 힘껏 외친다.(252면)

어둠 속의 침묵이 두려워 그네는 눈을 뜬다. 눈앞에 사람의 모습이 얼비쳐 보인다. 그 리스도가 계신, 하늘나라로, 그 문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면…… 저도 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불에 달군 쇠로 오장육부를 지지는 듯한 진통에 윤선생이 얼굴을 찡그 리고 헉헉대며 묻는다.(253면)

그런데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요? 초정댁은 자는 잠에 편안히 세상을 떠났는데, 저에 게는 왜 이렇게 격심한 고통을 주시나요?(253~254면)

주님 말씀만을 지키며 올곧게 살아오기가 너무너무 힘들고 두려웠어요. 이제는 그 말 씀의 시간대에서 해방되려 했더니 이런 모진 고난을 주시는군요. 주님만은 알고 계시 죠. 주님만은 알고 계시죠. 저는 사범학교에 다닐 대 엉겁결에 한 남학생을 사지로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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