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2) 향유적 자아의 주체성 확립
로 쓰인다.사람은 말하자면 목욕물 속에 잠기듯이 요소 속에 완전히 잠겨 있다.
우리는 요소 속에서 살 뿐만 아니라 요소를 먹고 마시며 살고 있다.마시는 물, 들이켜는 공기,우리를 에워싼 따뜻함과 차가움 등으로 우리는 삶을 지탱한다.
물,공기,따뜻함,이와 같은 것들은 사물로 환원될 수 없다.요소는 우리의 삶의 환경이며 이 속에서 우리는 마치 고향에 있듯이 즐기고 향유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으로 나는 충분하다.나를 떠받쳐주는 땅은,무엇으로 나 를 떠받쳐주는가를 알려고 하지 않아도 나를 떠받쳐주고 있다.내가 살고 있는 세계 의 한 모퉁이,일상적 처신의 세계,이 도시,이 지역 또는 이 거리,내가 살고 있는 이 지평,이들이 보여주는 외모에 나는 만족한다.나는 이 사물들의 세계를 순수한 요소처럼,떠받쳐주는 이 없는,실체 없는 성질처럼 즐기고 향유한다(TI,110-111).
삶의 세계가 우리에게 ‘요소’라고 한다면 향유의 차원에서 만나는 사물들의 존재를 질서 정연한 목적성의 체계에 따라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요 소로서의 세계는 소유로서의 세계에 선행한다.소유는 일정한 목적과 기능을 전 제로 사물을 나의 것으로 삼는 행위이다.그러므로 소유는 사물에게 일정한 목적 과 기능,다른 것과 구별되는 개별성을 부여한다.소유 이전의 요소로서의 사물 즉 공기와 바람,도시와 바다 등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없다.
공기에 의존해야 하고,갈증을 씻기 위해 물에 의존해야 한다.따라서 향유는 늘 자기가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해 있다.반면 즐기고 누리는 행위 자체는 무엇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행위이다.음식을 먹고 숨을 쉴 때 나는 아무에게도 의존 하지 않는다.나는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는 주권을 행사한다.향유의 순간,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고 홀로 무엇을 누린다는 사실에 주체의 주체성의 기원이 있다고 레비나스는 생각한다.인격의 인격성,나의 나됨(자기성)은 ‘향유의 개별 성’을 통해 성립된다(TI,88).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주체성의 기원인 이 향유는 순수 의존성도 순수 독립성도 아니다.향유는 ‘의존성을 통한 독립성’이다(TI,87).따라서 주체 의 주체성은 향유의 행위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떠맡음으로서 성립된다.자신 의 것으로 떠맡을 수 있는 가능성은 자신이 아닌 것,다른 것에 의해 주어진다.
바로 이 의존성에 의해 주체성의 독립성이 가능하다.세계에 대한 의존성,물과 공기와 음식에 대한 의존성에 의해 주체는 주체로서 홀로 설 수 있다.주체는 의 존성을 독립성으로 바꾸고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간다.
향유의 주체는 의존성 가운데서 독립해 있다.주체는 다른 것과 분리되어 있 다.주체는 향유를 통해 다른 것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완전히 홀로 ‘자신에 게 머문다.’이것이 좀 더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시각은 자아를 통한 ‘전체화’이 다.향유 가운데 자아는 자신을 에워싼 세계를 자신의 세계로 변형시키기 시작한 다.향유의 주체는 향유의 중심에 서 있다.향유를 통해 세계는 원래의 낯선 얼 굴을 벗고 향유의 대상으로 바뀐다(EI,102).향유는 나 자신이 나 자신으로 실현 되는 과정이고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하나의 개별적 인격으로 등장한다.향유 는 개체에게 자유를 주고 각자의 삶을 각자의 것으로 떠맡게 해준다.자유로운 떠맡음,자기에게로의 복귀는 주체에게 주어진 자유의 근원이다.23)
둘째,주체의 내면성과 유일성은 향유를 통해 구성된다.향유는 자아의 응축 이고 자신에게로의 복귀이다.향유를 통해 자아는 삶과 활동의 중심이 된다.향 유를 통해 내면성이 형성되고 내면성을 통해 ‘자신’과 ‘자신 아닌 것’사이의 분
23) 그러므로 향유는 자아가 자유로운 자아로 스스로 실현하는 과정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어떤 다른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TI, 116-121).
리가 출현한다.24)향유는 ‘자신에 대한’향유이다.자신에 대한 향유는 자신의 존 재를 위한 것도 아니며 자기반성 또는 자기의식으로서 자신에 대한 (대자적)관계 도 아니다.‘자신에 대한 향유’는 마치 축구 시합에서 득점을 하고 싶은 선수가 자신의 득점만을 생각하듯 그런 의미에서 ‘각자 자신을 위해’누리는 행보이다.
향유는 ‘자신 안으로 물러남’이고 자신으로의 귀환이다.향유는 자아의 자기성을 형성한다(TI,91).
이제 어떠한 것과도 교환될 수 없는 자아의 유일성은 향유를 통한 자아의 자 기성을 토대로 성립된다.자아의 유일성은 어떤 유(類)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어떤 개념으로도 담을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보편과 개별의 구별을 뛰 어넘어 향유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 자아의 유일성이 존재한다(TI,90).개체 와 개체를 구별해 주는 개별성의 원리는 질료가 다르거나 다른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누리는 향유와 행복에 있다.25)
셋째,향유와 행복이 ‘개별화의 원리’이며 향유를 통해 각 주체의 주체성이 성 립된다는 사실은,각 인격에는 어떤 무엇으로도 환원할 수 없고 소외시킬 수 없 는 고유성과 존엄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내가 존재의 주체가 되는 것은 단 지 내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고 존재의 짐을 스스로 짊어진다는 사실에 있는 것도 아니라 내면성의 확보를 통해,즉 향 유를 통해 단순한 존재를 초월한다는 사실에 있다.‘인간’은 이와 같은 존재 초 월이 가능한 존재이다(TI,91-92).내면성의 확보는 향유를 통한 것이고,향유는 다른 누구에게도 환원할 수 없는 개체의 고유한 행위이다.아무도 개인의 비밀을 알아낼 수 없으며 개인의 내면 역시 투명하게 볼 수 없다.개인은 저마다 향유의 주체로서 신비를 지니고 있다.개인은 종족으로 혈통으로 또는 사회 집단으로 또 는 누구와의 관계로 환원할 수 없다.이것은 나의 나됨(즉 자기성)과 타인의 타 자성은 결코 상대화할 수 없는 절대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뜻한다.이러한 의미 에서 인격은 철저하게 다원적이다(TO,20;TI,91-92).인격은 어떤 명목으로도 전 체화될 수 없다.26)
24) 따라서 향유를 통해 자아가 비로소 출현한다고 레비나스는 보고 있다(EI, 30; BB, 93).
25) 그래서 레비나스에게 있어 향유는 진정한 ‘개별화의 원리’이다(TI,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