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1) 덕 이론에 관한 비판적 고찰
덕 윤리는 현대31)윤리학에서 오랫동안 도외시했었던 플라톤(Plato)과 아리스
29)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론으로, 칸트의 윤리학에 내재되어 있는 덕론에 관한 논의들을 펼치고 있는 연구와 관련하여, Denis, L(2006). Kant’s Conception of Virtue. in (ed.) Guyer, P(2006). The Cambridge Companion to Kant and Modern Philodophy. Cambridge University Press, 505-537.; 김덕수(2013). 칸트 윤리학에 서 덕과 도야. 미간행 박사학위논문. 경북대학교 대학원, 136-149.; 이은주(2013). 칸 트의 덕 이론에 관한 연구. 미간행 박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대학원, 88-133. 참조.
30) 칸트의 기본적인 생각은 ‘도덕적인 견지에 따라 공헌하는 인간만이 참으로 행복하다’로 이해된다. 이러한 생각 속에는 도덕 법칙의 수행 또는 최고선(最高善) 개념이 문제시되 며, 여기서 바로 칸트 윤리학은 단지 형식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 보인다. 도덕 법칙의 수행 문제와 최고선의 개념이 형식적 윤리학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도덕성의 질료까지 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최고선(最高善)이 ‘도덕 형이상학’과는 완전히 다른
‘실천적-독단적 형이상학’에 속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박필배, 2002: 114-118).
31) 본 연구자는 통상적으로 칸트철학 이후를 그 기준으로 하고 있는 윤리학계의 정론(定 論)에 입각해서 ‘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토텔레스,그리고 아퀴나스(T.Aquinas)의 윤리 기반인 덕과 부덕의 탐구에 기초 한 윤리학이다.덕 윤리가 지니는 중요한 의미는 다른 현대 윤리이론들이 윤리영 역에서 배제시켜 온,인간 삶에 있어서의 가치 있는 것들을 윤리 영역 안으로 끌 어들일 수 있었다는 데 있다.그러나 덕 윤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말해 주지 않는다’라는,즉 행위지침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장동익,2001).
전통적인 칸트주의 윤리학과 공리주의식 결과론에 불만을 토로하는 윤리학자 들은 의무나 원리에 따라 행위만을 평가하는 칸트식 의무론32)과 공리주의식 결 과론의 체계로는 우리의 윤리적 삶을 제대로 조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앞서 설명한 칸트주의가 갖는 문제점과 함께,칸트주의 비판에 대한 역비판적 논의들 도 다수(多數)의 제시가 이루어지고 있다.맥킨타이어의 지적대로 칸트의 정언명 법이 요구하는 준칙이 특정한 행위의 의도를 보편적일 수 있게 하라는 것이라면, 칸트 윤리학은 상황과 상관없이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도덕적 엄숙주의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칸트의 윤리학을 법칙 숭배적이라고 하는 비판에는
32) ‘형식주의 윤리학’, ‘의무론적 윤리학’, ‘법칙주의 윤리학’, ‘엄숙주의 윤리학’, ‘동기주의 윤리학’ 등등의 용어들이 칸트 윤리학을 특징짓기 위해 열거되곤 한다. 이러한 규정의 중심에 ‘정언명법’의 개념이 있다. 스포츠철학에서도 칸트의 정언명법과 관련하여 스포 츠 내 도덕적 기준의 확립을 주장하는 연구물들이 제시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서경호 (2006). 스포츠 윤리에 대한 칸트의 도덕철학적 해석에 관한 연구. 미간행 석사학위논 문. 연세대학교 대학원, 10-13, 39-44, 46-52.; 윤여탁 외 2인(2006). 칸트윤리학에 기 초한 스포츠의 도덕적 기준에 관한 연구. 움직임의 철학 : 한국체육철학회지, 14(2). 한 국체육철학회, 89-100. 참조. 스포츠윤리학의 메타윤리적 흐름에 대한 우려에 반(反)하 여 규범윤리로의 회귀를 위해 노력하는 연구자들에게 ‘집단 트라우마(group trauma)’
처럼 작용되는 것이 칸트의 사상일 수 있다. 그러한 사태는 다음의 글귀에 드러나 있 다. ‘현대 스포츠에서 규칙이나 규정은 … 당위성을 갖는다. … 규칙(법)은 일련의 스포 츠행위들을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만들고 규칙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불합리한 행위들 은 도덕내지 윤리의 양태를 통해서 규제되기 때문이다.’(윤여탁 외 2인, 2006: 90) 이 것은 스포츠윤리학에 있어 훈화(moral discourse)와 같은 상징어의 의미를 지니고 있 다. 우리가 만든 규칙에 의해 지배당하는, 즉 하이데거적 의미에서 ‘소외’당하는 인간에 관한 언급이야 다른 차원의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규칙이나 규정이 당위성을 갖는다’
는 표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해본다. 규칙이나 규정이 당위성을 갖는다는 것은 곧 스포츠 행위자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련의 수행이 규칙이나 규정에 위 반되었을 시, 그 효력이 발생된다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스포츠 행위자의 의도에 의해 서만 규칙이나 규정이 존립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우연성이나 임 의성을 지녔다고 해야 그 의미가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맥킨타이어의 덕론을 위시한 연구에서도 다음의 표현에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사회적 실천인 스포츠에서의 탁월함은 … 규칙(rule)을 통해서 드러난다. 실천은 그 고유의 행위 방식이 있으며, 그 방식을 통해서 그 사회적 실천에서의 탁월함이 드러난다.’(김홍식, 2007: 104)
준칙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이 있다.하지만 칸트에게 있어 준칙은 행위자의 의 도가 아니다.어떤 행위의 경우에는 우리 자신 스스로도 준칙을 알지 못하는 경 우가 있다.자신의 준칙에 대한 반성 없이 이루어지는 행위들이나 특정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경우에 준칙을 행위의 의도로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칸트의 정언명 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보편화 가능한 ‘준칙’에 따라 행위 하라는 것이지, 특정한 행위를 구체적 상황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특정한 행위는 행위자의 준칙 자체가 도덕적으로 가치 있을 때에만 도덕적 가치를 갖는 다.따라서 도덕적 가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행위자의 장기적인 행위지침으로 해석되어야 한다.칸트가 행위에 주목하는 이유는 준칙이 행위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칸트에게 있어서 준칙은 ‘특정한 행위의 의도’가 아닌,행위자의 장기적인 행위지침으로 해석되어야 한다.여기에서 준칙은 행위 자의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인 의도의 밑바탕에 깔려서 그 다양한 구체적 의도들 을 통합하고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33)
덕 윤리학자들은 ‘의무나 원리’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인간 삶의 의미를 제 시하고,삶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유덕한 성품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려고 시도한다(장동익,2006:408).그리고 덕 윤리학자들은 이러한 유덕한 성품 개념에 의거하여 윤리학 체계를 수립하고자 한다.34)덕 윤리는 모든 상황을
33) 예를 들어, 이승엽 선수가 방문했을 때, 나는 커피를 대접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다양하게 의도적인 행동을 할 것이다. 나는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타고, 설탕을 제 공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의도적 행동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손님을 환대하 라’는 밑바탕에 깔린 원칙이다. 이런 밑바탕에 깔린 원칙은 다른 상황에서 다른 행위를 하게 할 수 있다. 즉 나의 다양한 행위들이 이승엽 선수를 환대하기 위한 어떤 행위로 선택될 것이다. 따라서 준칙은 특정한 행위를 지시하는 원칙이 아니라, 다만 특정한 행 위의 의도를 통해 ‘표현되어야 하는 근본 원칙’이다. 이러한 점은 레비나스의 타자윤리 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설명을 위해, 이원봉(2007). 맥킨타이어와 칸트의 덕: 인간선의 실천으로서의 덕. 사회와 철학, 14. 사회와 철학 연구회, 171-200 중 181-183. 참조
34) 스포츠철학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기류를 조성하려는 연구자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 것은 기존의 스포츠윤리학이 스포츠 현장의 윤리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어떠한 난점 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고 그 대안으로 행위자 개인의 덕성을 강조하는 덕 윤리를 제 시한다는 측면에서 일맥상통할 것이다. 오현택(2006: 19-33)은 전통의 한계로 의무 중 심의 윤리학, 개인 중심의 윤리학, 메타윤리학적 경향을 거론하며, 비판의 작업으로 맥 킨타이어의 덕 윤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오현택(2006). 덕론의 스포츠윤 리학적 함의. 움직임의 철학 : 한국체육철학회지, 14(1). 한국체육철학회, 19-33.; 오현 택(2012). 맥킨타이어와 스포츠. 체육사상연구회 편. 스포츠인문학-새로운 도전과 길
간단한 원칙 하나로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용이함에 빠져서 문제 해결의 요지를 놓치고 있는,실패한 윤리이론으로서의 공리주의를 단죄하며 그 대안으로 등장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기존의 규범윤리학은 행위의 결과와 동기를 도덕 판단을 근거로 삼는 반면에 덕 이론은 덕을 도덕 판단의 근거로 삼고 있다.35)특히 공리 주의를 비롯하여 의무론 등 근대의 규범 윤리를 행위 중심(agency-centred)의 윤리 학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에 대비되는 대안으로 등장한 ‘행위자 중심(agent-centred)’ 의 덕 윤리학은,슬롯(M.Slote)의 구분에 따를 경우에 다시 ‘행위자에 집중하는 견해(sgent-focused view)’와 ‘행위자에 기초하는 견해(agent-based view)’36)로 분류 될 수 있다.37)
서양의 윤리학자들은 근대 윤리학의 관심사였던 행위의 옳고 그름에 관한 문 제에 관심을 가질 뿐이었고,더구나 덕 윤리에 대한 무관심은 매우 자연스러운
찾기. 서울: 레인보우북스, 135-147. 참조. 본 연구자는 스포츠철학 연구자들이 맥킨타 이어의 덕론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덕 윤리학이 행위중심의 법칙주의 윤리학을 비판하 고, 도덕적 가치를 행위자자의 성품에 부여하는 행위자 중심의 윤리를 옹호한다는 점에 둔다. 그리고 맥킨타이어 역시 근대 도덕철학이 법칙 중심적이라고 비판하며, 아리스토 텔레스적인 성품의 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원봉 (2007). 맥킨타이어와 칸트의 덕: 인간선의 실천으로서의 덕. 사회와 철학, 14. 사회와 철학 연구회, 171-200. 김미숙(2004: 25-38)의 연구는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진행되었 다. 김미숙(2004: 32)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우리 스포츠 학계에서도 ‘덕의 습관 화’를 통한 건전한 스포츠인, 건강한 스포츠인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스포츠 윤리학계를 중심으로 그러한 덕목을 설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35) 의무론이나 목적론이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지’를 문제 삼고 있 다면, 덕 이론은 덕에 초점을 맞추고 ‘어떠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문제 삼고 있다 (강성민, 2013: 38). 이렇듯 덕 이론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난제는 바로 ‘어떻게 행위 해야’라는 자문(自問)에 있다. 이것은 메타윤리적 측면에서 ‘어떻게’에 해당되는 기술 방식(method of description)의 열거라는 매우 난해한 작업을 필요로 한다. 이에 본 연구자는 이 논문을 전개하는데 있어 두 가지의 상위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스포츠맨십의 규범윤리적 성격’을 밝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덕 이론의 한계’를 드러내 는 작업이다. 그리고 목적론 역시 덕 이론과 일맥상통하다는 점에서 볼 때, 목적론과 덕 이론을 명확하게 선별하는 작업 또한 매우 신중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 연구자는 판단한다.
36) ‘행위자 중심’ 또는 ‘행위 중심’의 윤리라는 용어와 관련하여, Crisp, R & Slote, M(ed.)(1997). Virtue Ethics. Oxford University Press, 239-240. 참조.
37) 동시대 영미윤리학계의 흥미로운 주제 중의 하나는 도덕성과 도덕현상의 고찰에서 행 위(action)와 행위자(agent)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 둘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칸트주의자인 코스가드(C. M. Korsgaard)의 저작 을 중심으로 논의가 펼쳐진, 노영란(2013). 행위와 행위자 : Christine M. Korsgaard 의 자아구성으로서의 행위설명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중심으로. 철학, 117. 한 국철학회, 205-22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