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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1) 공리론에 관한 비판적 고찰

공리주의(utilitarianism)1)는 다양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배적 윤리 이론으로서 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공리주의는 이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그 사상 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거부하기 힘들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이러한 사태는 우 리로 하여금 공리주의가 도덕 철학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이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더 나은 방도가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Foot,1983:273-283).

공리주의는 형이상학적 대상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의 삶에 필요한 덕목들에 관심을 가지며,어떤 행위나 정책들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 할 것을 요청한다.공리주의자들은 우리가 복지나 효용을 추구할 때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박정기,2010:

276).또한 공리주의는 최대 행복의 산출 결과에 따라 옳은 행위를 평가하기 때

1) ‘공리주의’라는 용어와 관련하여 두 가지 혼란이 존재한다. 하나는 ‘공리주의’라는 용어 를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결과주의(consequentialism)’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인가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utilitarianism’을 ‘功利主義’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公 理主義’로 이해할 것인가와 관련된 것이다. 본 논문과 관련하여 후자의 문제를 짚어보 면 ‘utilitarianism’이 양자의 의미를 모두 갖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공리주의의 창 시자 벤담(J. Bentham) 자신이, 마치 관련된 사람의 수를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 다는 점, 그리고 ‘최대 행복의 원리(the greatest happiness principle)’(Bentham, 1970: 11)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utilitarianism’은 ‘공리주의(公理主義)’로 이 해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사료된다.

문에 도덕의 기준이 오직 행위의 결과에만 집중되어 있다.구체적 확인이 가능한 것에 관심을 두는 결과주의로서 공리주의는 혼잡한 도덕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단순한 방법을 제시하고,인간 복지에 대한 변화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춘다.그런데 공리주의에 가해지는 흔한 비판들 중의 하나는,인간 의 행위에 영향을 받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서 그 결과를 판단하기 난해하다는 것이다.또한 행위의 결과에 초점을 맞출 경우,실질적으로 그것을 산출(算出)할 만한 시각의 여유가 없다.그리고 누군가의 행복을 고려하고 어느 시점까지 상정 해야 할지 알 수 없다.설령 결과를 가정해서 수행해도 그것이 최대의 행복을 담 보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최대 다수 최대 행복’으로 표현되는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은 매우 넓은 범위 에 걸쳐 있다.다섯 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무고한 한 명의 목숨을 해치는 것 을 묵인하는 직관주의적 반론을 비롯하여,공리주의의 자멸을 주장하는 쾌락주의 의 역설이나 공공성 개념에 근거한 비판,공리주의가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메타윤리학적 비판,인간은 쾌락(혹은 고통)이 발생하는 소재에 불과하게 된다는 인간론적 비판,효용의 계산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라는 인식론적 비판, 이 모두가 공리주의에 쏟아지는 철학적 비판들이다.여타의 윤리이론들에 비해서 공리주의에 이처럼 다양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는,공리주의가 실제로 다 양한 이론적,실천적 약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현실적으로 가장 합당한 윤리이론 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2)

공리주의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리사상에 이러저러한 문제가 존재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때로는 그것이 치명적인 것이어서 공리주의의 이론적, 2) 공리주의가 법, 정치, 경제 및 도덕에 미친 영향은 괄목할만하다. 이러한 공리주의의

가장 주된 속성이 바로 결과주의이다. 그것은 공리주의가 행동의 결과에 대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에 따라서 행동의 올바름과 그름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즉 공리주의는 좋은 것을 행위하는 것이 옳다라는 논지로 압축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공리주의가 아무리 수정되었다 할지라도 그 본원적인 결과주의적 속성은 그대로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최동민, 2010: 385-389). 일반적으로 공리주의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위나 정책 이란, 사회구성원들에게 최대의 행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 즉 인간의 선을 최 대화하는 것이라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이라는 슬로건(slogan)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하여, Sinnott-Armstrong, W(2003). Consequentialism.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plato.stanford.edu/entries/consequentialism/. 참조.

실천적 타당성을 의심하게 만든다는 것도 인정한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가 공리주의를 포기하려 들지는 않는다.이는 공리주의가 우리 사회와 특정한 규 범적 전제들을 공유하고 있고,따라서 공리주의를 포기하는 것은 공리주의와 함 께 우리가 현대인으로서 지니고 있는 규범적 가치관들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 지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상정해 볼 수 있다.즉 공리주의가 현실적 힘을 획득한 것은 이론적 약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우리 사회와 규범적 축을 함께 하는 이론적,실천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3)

벤담(J.Bentham)에 의해 창안되고 밀(J.Mill)에 의해 완성된 공리주의는 어떠 한 행위도 그 자체로는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 것이 없다는 이론이다.4)철학적 기 초는 결과주의로서,제시되는 기준은 올바른 행동을 그 행동의 결과와 관련된 모 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결과를 초래하는 어떤 것으로 제한하는 것이다(이종왕, 2006:11).즉 하나의 행위는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에 따라 선과 악이 판단되며, 결과는 사람의 행복과 관련된 결과라는 것이다.

공리주의에 따르면,어떤 행위가 옳은지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다른 어떤 대안 의 행위에 있어 고통보다 쾌락의 더 많은 양의 산출이다.하지만 만약 우리 행위 의 동기화가 이러한 차이의 생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면,특정한 개인들에 대한 배려,사랑 혹은 존중은 불가능하게 될 수 있다(Crisp외 1인,1997:7).우리의 실 생활에서는 타인과 관련된 감정적 측면이 행위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데 적용 되기도 한다.공리주의는 행위의 동기를 부차적인 것으로 처리하고 신중하게 다

3) 이에 대하여 정원규(2004: 271-290)는 사회계약론적 수렴을 통해 공리주의가 지니고 있는 장점 또는 의의를 살리고자 제안한다. 스포츠철학 내에서 공리주의와 관련해 다양 한 담론들이 생산되는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지니 고 있는 성격이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스포츠 철학에서의 이러한 경우 역시 당연한 사태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김영구 외 1인 (2008). 스포츠이벤트 개최에 대한 공리주의적 접근과 한계. 움직임의 철학 : 한국체육 철학회지, 16(3). 한국체육철학회, 69-81.; 장재용 외 1인(2013). 복지와 웰빙 사회를 위한 스포츠의 공리주의적 접근. 움직임의 철학 : 한국체육철학회지, 21(1). 한국체육철 학회, 1-14. 참조.

4) ‘공리주의’ 개념에 관한 벤담과 밀의 언급과 관련하여, Bentham, J(1789). (ed.) Burns, J. H. & Hart, H. L. A(1970). An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 University of London : The Athlone Press, 11-33.;

Mill, J. S(1863). (ed.) Crisp, R(1998). Utilitarianism. Oxford University Press, 55-72. 참조.

루지 않는다.

도덕적으로 선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동기를 품은 야구 구단주를 생각해보 자.우리가 야구장을 짓는데 돈을 기부하는 사람을 그 야구장에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보려는 욕심에 의해서 혹은 국가 야구위원장에 출마하기 위해 정치적 경력을 쌓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리고 야구인들에게서 자신의 명성을 얻 어내기 위한 욕심에 의해 동기화된 사람이라고 상정해보자.우리의 상식에 의하 면 이러한 동기를 지닌 사람은 도덕적으로 선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하 지만 공리주의에 의하면 이러한 동기 혹은 이러한 상황에서의 동기는 도덕적으 로 선한 것에 해당될 수 있다.왜냐하면 결과적으로 볼 때,그 구단주의 기부로 인해 야구장이 건설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야구장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기 때 문이다.

윌리엄스(B.Willams)는 법칙에 근거한 공리주의 윤리학이 공평성과 함께 비 개인적 도덕성을 추구한다고 비판한다(Williams,1978).사람은 누구나 인격을 갖 고 있다.그러므로 이는 도덕이 결코 공평하거나 비개인적일 수 없다는 것을 의 미한다.하지만 공리주의는 행위를 위한 숙고에서 우리 자신의 욕구로부터 분리 된 비개인적 관심을 설정함으로써 가장 진실된 우리 자신의 것을 보정하도록 요 구할 뿐만 아니라 타인들에 대한 우리의 가장 깊은 애착 관계들에 있어서 갈등 과 대립을 야기한다.공리주의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인간은 항상 공평하고 비개 인적일 수는 없다.우리가 도덕적 행위를 설명할 때는 행위자의 욕구나 성향,관 심을 중요한 요소로 간주함과 동시에 그러한 욕구는 동기의 궁극적 원천이 된다 (김은미,2012:29-30).

공리주의에서는 일반적으로 도덕적 행위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이 요구된다.

그런 까닭으로,행위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가 만들어지도록 요구되어지면 대부분의 개별 행위에서 행위자는 자신의 이익을 희생해야 할 것이고 도덕성의 요구에 일치시키기 위해 자신의 관심사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롤즈의 비판처럼 공리주의에 있어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소수자의 이익이나 약자의 욕구가 다수 의 더 높은 이익이나 보다 나은 자들의 욕구에 의해 희생된다는 데 있다.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