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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 주체로서의 대속적 주체 획득

I. 서론

1) 행위 주체로서의 대속적 주체 획득

주체와 타자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태도이자 타자를 지향하는 윤리개념으 로서 ‘책임’은 작금의 시대에서 정치,경제,사회,(스포츠라는 대상이 포함된)문 화,과학 기술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강조되고 있다.본 연구자가 스포츠에 있 어 책임의 윤리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 역시 이러한 사태와 맞닿아 있다.어떤 것 혹은 누구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것,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우 리에게 이러한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책임의 현실적 중요성을 확 인하기 위해서 굳이 철학과 윤리까지 동원될 필요가 있는가?실제 생활에서 경 험 가능한 무책임의 폐해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는가?하지만 책임의 현실적 중요 성과 필요성으로부터 그것의 당위가 저절로 도출될 수는 없다.월드컵 축구대회 에 참가한 한국대표팀을 보고 방관하는 대신 목이 터져라 응원해주어야 할 ‘책 임’이 우리에게 있음은 누구나 쉽게 인정할 수 있지만,그러한 필요성을 인정하 는 것과,이러한 책임이 어디서 어떻게 그리고 왜 비롯되며,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말하자면 책임의 본질과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것은 전혀 상이한 것이다.책임의 철학 즉 책임의 본질과 근거 및 의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필요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성립된다.책임이라는 현상에 대한 철학적 성 찰의 필요성은 단순한 이론적 관심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불확실성과 익명성 을 특징으로 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모두에게 부과되어 있는 시대적 요 청이다(이유택,2008:64).

레비나스의 사유에 의하면 책임은 인간의 의식 혹은 인식이 아니라,감성에 근거한다.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레비나스에 의하면 인간은

정신적,이성적이기 이전의 감성적 존재이다.인간이 이처럼 감성적이라는 것은 몸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그리고 몸으로 존재한다는 것은,누구나 자기 아닌 타자에게 항상 노출되어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그리고 언제나 타자의 부름 속 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래서 레비나스의 책임은 우선 타자에 대한 책 임이다.이 책임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가장 수동적인 수동성이다(변 순용,2005:10).

타자에 대한 책임은 모든 수동성 보다 수동적인 수동성이다(OB,18).

이 책임은 타자의 표정을 받아들임으로써 발생하는 것이지 자발적인 어떤 의 지와 행위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이런 의미에서 레비나스의 책임론은 일 반적인 책임론과 구분된다.책임은 이전의 어떤 관련이 없어도 발생되는 것이다 (OB,195).

책임이 문제되는 곳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즉 인간은 타자의 부름에 응답 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그 누구도 이러한 책임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이 레비 나스의 주장이다.말하자면 인간은 타자에게서 나오는 이러한 부름을 무시하고 거부할 수는 있지만,이러한 무시와 거부는 오히려 책임의 실재성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육체적,감성적 존재 안에 근거하고 있는 책임을 인간은 추후에 떠맡는 것이 아니다.왜냐하면 인간은 감성적 수용성의 바탕 위에서 언제나 이미 책임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적어도 레비나스에게 인간존재는 궁극적으로 책임 존재를 의미한다.이렇게 해서 책임은 직접적으로 타자를 지향하는 윤리 즉

‘타자윤리’의 토대를 이룬다.이 때 타자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호소하는 자로서, 누구든 그의 호소에 응답함으로써 윤리적 지평에 발을 들여 놓도록 하는 자로 파악된다.타자의 타자성이야말로 주체의 넘어섬,즉 초월의 존재론적 가능 조건 인 것이다.

본 연구자는 타자를 위해 책임질 수 있는 주체가 출현할 때 비로소 진정한 휴머니즘이 성립한다는 레비나스의 주장에 공감하게 된다.또한 이러한 공감은 본 연구자로 하여금 레비나스가 왜 자유를 바탕으로 도덕적 책임을 정당화하려

고 시도한 칸트와 달리 ‘자유에 앞선’즉 나의 자유에 앞서 미리 나에게 부과되 어 있는 책임을 강조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레비나스의 책임은 주체의 자유에 근거한 책임이 아니라,오히려 볼모 혹은 대속의 책임이다.하지만 여기 서 레비나스가 말하는 ‘대속’의 책임은 타자를 대신해서 스스로 짐을 짊어지는 능동적 측면이 아니라,타자의 자리에 놓이는 수동성을 가리킨다.27)

우리가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 당시,대 이탈리아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 한 안정환 선수의 경기 후 인터뷰를 기억해 보자.당시 안정환 선수는 경기 내내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어떻게든 골을 넣어야한다는 심적 괴로움을 지녔 다고,경기 후에 토로한 바 있다.그리고 한국대표팀 동료들은 안정환 선수로 하 여금 득점을 할 수 있게 수차례의 슈팅 기회를 마련해주었다고 한다.본 연구자 가 굳이 레비나스의 책임윤리를 접목시켜 앞선 상황을 해석해 볼 때,안정환 선 수가 골을 넣어야 할 책임을 지니고 경기에 임했다면,측면 중간라인을 담당했던 이영표 선수는 최전방 공격수에게 득점 기회를 주어야 할 책임을 지니고 경기에 몰두했다.결국 이영표 선수의 프리킥을 안정환 선수가 헤딩슛으로 연결시켜 극 적인 역전승을 이루었다.당시 안정환 선수와 이영표 선수는 자신들의 책임을 완 수한,곧 스포츠맨십을 발휘한 최선의 경기를 벌였다고 사료된다.28)

여기서 본 연구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당시의 안정환 선수와 이영표 선수 혹은 그 밖의 모든 선수들에게 부여된 권한과 책임의 관계 문제이다.안정환 선 수가 고민을 했던 중요한 원인은 자신이 가져야만 했던 골게터(goalgetter)로서의 권한을 둘러싼 갈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권리와 의무,권 한과 책임을 함수 관계로 상정한다.권리에는 의무가 따르고,권한에는 책임이

27) 한 국가를 대표해서 경기에 임하는 모든 선수들이 그렇지 않은가? 그들은 누군가를 대 신해서 그 자리에 참가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대표선수라는) 운명을 지닌 사람들이다.

28) 그래서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스포츠는 인간의 삶과 밀접히 관련되어 사회 통합, 기쁨 의 충족, 윤리성의 고양, 그리고 미적 정서의 함양 등의 기능을 수행해 온 인류의 문화 유산이다(박종률, 2003: 295). 여기서 우리는 이 논문과 관련하여 두 선수의 행위가 아 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의 아레테와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는 안정환 선수가 자신의 말처럼 그러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 을 것이라는 단정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논문과 관련하여, 우리가 안정환 선 수의 당시의 심리 상태를 상정하는, 그러한 사태 역시 전체성 혹은 동일성의 철학이라 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른다(문성원,2001:35).안정환 선수에게는 권리 보다 권한에 관한 심적 중압 감29)이 따를 수밖에 없다.

권리와 권한이 막중하게 주어지면 그에 수반하여 의무와 책임도 막중해지기 마련이다.그렇다면 만약 한국팀이 이탈리아팀에게 패배했다고 상정하게 되면, 안정환 선수를 비롯한 모든 위치(position)의 팀원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고수하거 나 확장하려 했을 뿐,자신들의 권한에 따르는 책임을 방기(放棄)했다는 일견 배 리적인 사태가 성립된다.넓은 의미에서 볼 때,축구 경기를 통해 골을 넣어 상 대팀을 이기는 것이 자국(自國)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팀원들의 가장 기본적 인 책임 사항일 것이기 때문이다.30)

책임과 권한을 연관짓는 것은 일반적일 뿐만 아니라 상당히 근거 있는 일이 다.책임이란 자신이 관장할 수 있는 사안의 범위 내에서만 문제될 수 있다고 보 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여 겨지는 사람들에게는 그 행위에 대해 귀속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또 가까운 주변이 사람이 저지른 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일 때문에 책임을 추궁 당하는 것은 부당하거나 혹은 가혹하다고 생각한다.무릇

29) 안정환 선수는 당시 월드컵을 통해 한국 축구의 골가뭄을 해결시켜줄, 황선홍 선수에게 보내는 시선 못지않은 국민적 기대감에 강요되거나 강제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깊었 다. 그러한 점을 반영하듯, 대 미국전에서의 동점골이 결국 16강전이었던, 이탈리아 (Italy)와의 경기에서 극적인 결승골로 이루어졌다.

30) 이런 방식의 문제 설정이 과연 적합한 것인지는 본 연구자도 의문이다. 책임과 권한을 이러한 방식으로 연계하여 놓을 경우, 다른 한편에서는 권한에 대한 포기가 책임에 대 한 포기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일시적이고 잠정적 이라고 하더라도 권한을 내려놓음으로써 책임으로부터 역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 축구의 4강 진출이라는 업적이 분명 역사적으로 길이(for a long tiome) 남을 것이 분명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승을 하지 못한 책임의 비판에도 분명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비록 거친 표현이긴 하지만, 이와 관련하여, 남 중웅 외 2인(2001: 155-167)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스포츠현상에서 참여자는 수준 높은 기량과 극적 장면의 연출로 관전자에게 스트레스 해소와 여가 시간에 즐거 움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장을 제공하는 것이다’(남중웅 외 2인, 2001: 158) 레비나스 는 타자 앞에서의 책임에서 드디어 주체성이 이루어진다고 밝힌다. 즉 책임성 안에서만 주체성이 부여되며 주체의 실마리가 풀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타자 앞에서의 책임성은 주체의 바탕을 이루는 제1구조인 것이다. 책임은 레비나스에게서 주체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이며 우선적인 구조이다. ‘책임’이란, 말할 것도 없이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이 다. 내 앞에 있는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를 보지 않은 타자에 대해서도 책임 이 있는 것이다. 주체란 그렇다면 타자에 대한 책임을 떠맡으면서 형성되기 때문에, 이 주체는 타자를 대리(代理)하기 까지 한다(윤병렬, 2000: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