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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 대한 공평으로서의 정의

I. 서론

1) 타자에 대한 공평으로서의 정의

윤리의 차원에서 스포츠를 생각할 때,인간의 모든 스포츠 활동은 선을 목적 으로 해야 한다.선(agathon)은 모든 인간 활동의 목적이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 이라는 목적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인간 활동의 목적으로서의 선이란 덕에 일치하는 정신의 활동이다.원래 덕(arete)이란 성품의 일종으로서 그러한 덕

을 갖춘 존재를 선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러한 존재가 자신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도록 이끈다.이러한 의미에서 덕은 탁월성(excellence)이다.인간의 덕은 인 간을 선하게 하며 인간 자신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성품이다 (한상수,2001:271).즉 인간의 덕이란 이성적․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신 의 이성적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올바르게 실현하는 것이다.스포 츠에서 덕의 위치는 인간이 어떤 수행을 하든지 간에 그 수행을 신뢰할 수 있게 해주며,또한 그 비중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스포츠에서의 덕의 실천을 가 능케 하려면,스포츠는 미덕의 최고의 형태를 유지해야 하며,참여자들로부터 그 들의 공정성과 용기,선함 그리고 결연한 의지들을 이끌어 내야 한다(임석원 외 2인,2009:224).

스포츠의 수행과정을 유지시켜주고 촉진해주는 페어플레이 즉 공정성의 개념은 스포 츠활동의 원초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임석원,2005:128).

인간이 스포츠 활동에서 스포츠맨십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근거한 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스포츠 장면에서 선수들의 속이는 행위는 다양하게 발 생된다.야구 경기에서의 투수가 던지는 변화구 그리고 축구 경기에서의 골키퍼 를 속이는 동작인 페널티킥의 경우가 그러하다.김정효(2013:98)는 ‘대부분의 대 인(對人)스포츠가 비윤리적 행위를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스포츠는 페어플레이와 스포츠맨십을 위해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라 승 리라는 목적을 위한 경쟁적 활동이다’(김정효,2013:102)라고 언급하고 있다.하 지만 ‘모든 스포츠의 룰은 공정한가,그리고 그 공정성의 근거는 무엇인가’(김정 효,2013:99)라는 질문은 오히려 난제에 봉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3)본 연구

3) 룰은 이미 공정성을 담보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지침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 다면 룰에 담겨져 있는 공정성의 근거를 찾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우리는 룰이 지니는 공정성의 근거를 스포츠하는 인간의 ‘약속’에서, 즉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한 내용에 대한 책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스포츠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에토스(ethos)의 원리를 공정성(fairness)과 정의(justice)에서 찾고자 하는 롤랜드(S.

Loland)의 언급(Loland, 2002)은 새롭게 구성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공정성과 정의 는 구분되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공정성 그 자체가 곧 정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는 오히려 ‘룰’의 문제가 아니라,그 ‘룰’을 적용시키는 인간의 문제4)에 천착해 야 할 것으로 본다.이를 통해 우리는 스포츠 현장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위5)에 대한 판단의 근거’(김정효,2013:100)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보편적으로 우리는 앞서 기술한,스포츠 장면에서의 그러한 속이는 행위들을 비윤리적이라고 지탄하 지 않는다.그것은 모름지기 실용주의적 공리주의 영향 아래에 놓인 우리의 직관 에 의거한 것으로 보인다.6)

재미가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라면 스포츠는 ‘다수의 행복’이 라는 공리주의적 윤리 문제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김정효,2013:99).

다양한 도덕 이론들이 형이상학적인 실체에 의존하는 것과 다르게,공리주의 자들은 인간의 삶 속에서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관심을 갖는다.그리고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어떤 행위나 정책이 우리가 식 별할 수 있는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지,없는지 확인할 것을 요구한다(박 정기,2010:276).구체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것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결과 주의로서 공리주의는 복잡한 도덕의 문제들을 해소하는 데 간단한 방법들을 제 시하고,인간의 복지에 대한 변화를 몸소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이러한 이유로 공리주의는 도덕성의 이름 아래 권위를 주장해 온 사람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기준 및 절차를 제공해 주었다.구체적인 삶 속에서 가치에 대한 관심과 눈 으로 확인 가능한 결과주의라는 공리주의의 두 가지 입장은 인간의 복지에 관심 을 갖는 인간의 직관과 합치되고,도덕 판단들을 이러한 직관에 비추어서 인간의 복지에 미치는 결과에 따라 평가할 수 있게 한다.

4) 레비나스에 따르면 정의는 이데아에 대한 인식이나 이데아에 적합한 행위를 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정의는 진리의 조건인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레비나스는 진리에 대한 정의의 우위를 주장한다(김도형, 2011: 245).

5) 본 연구자는 ‘하지 말아야 할 행위’라는 어구(語句)보다는 ‘있어서는(혹은 존재해서는) 안 될 행위, 나아가 ‘부도덕한 행위’라는 표현이 낫다고 본다. 왜냐하면 ‘행위’라는 것 이 인간이 의지를 갖고 하는 짓으로 상정될 때, 오히려 ‘하지 말아야 할 의지를 갖고 하는 짓’이라는 표현은 ‘도덕적’이면서 ‘비도덕적’이라는 모순을 병치(倂置)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6) 어쩌면 인간은 잠재적으로 공리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

공리주의는 전체 인간의 복지 증진이라는 명목 아래 소수자의 희생을 묵인한 다.앞선 경우처럼,사람들이 암스트롱의 신기록에 박수를 보내면서 그의 도핑 행위에 관해 관대함을 보인 이유 역시 공리주의적 사고와 다를 바 없다.롤즈는 이러한 공리주의를 극복하고 그것에 알맞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이전까지 공리주의에 대해서 다양한 비판적 작업들이 시도되어 왔지만 비판의 범위를 넓 게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미흡했다고 롤즈는 진단한다 (Scheffler,2003:427).따라서 롤즈의 목표는 공리주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었다.이러한 롤즈의 계획은 「공평으 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1958)라는 논고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주저인

『정의론(A theoryofJustice)』(1971)으로 구체화된다.7)

7) 롤즈의 역작 『정의론(A theory of Justice)』(1971)의 성격을 요약하자면, 방법론적으로 추상적이고 내용면에서는 사회계약론적이자 자유주의적이며 평등주의적이다. 롤즈가 밝 히고 있듯이, 『정의론(A theory of Justice)』(1971)의 목적은 기존의 사회계약론을 고 도로 추상화함으로써 일반화된 정의 개념을 제시하는 것(Rawls, 1971: 11)이다. 롤즈가 언급하는 사회계약의 핵심, 즉 ‘공평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는 권리의 임 무의 분배를 정하고 사회적 및 경제적 이익의 분배를 규정하는 정의원칙은 자유롭고 합리적이면서 자신의 내적 상태 및 외적 상황의 특수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평등한 최 초상황 혹은 원초적 상황(original position)에서 도출하는 가상적 합의를 통해 채택된 다는 것이다(Rawls, 1971: 17-22). 그리고 정의의 제1원칙(Rawls, 1971: 60)에서 개인 은 ‘평등한 자유’를 가지며 이는 불가침의 것이라는 논의는 롤즈가 기본적으로 자유주 의적 입장에 기초해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고, 정의의 제2원칙(Rawls, 1971:

60) 중, ‘차등원칙(difference principle)‘에서 불평등이 전체의 이익에 기여할 때만 허 용되어야 한다는 논의는 그의 정의론이 가지는 평등주의적 함의를 드러낸다. 롤즈의 정 의원칙이 이상으로서의 평등과 실제적 불평등의 간극을 해소하는 방식은 개인이 가지 는 불가침의 평등한 자유와 차등원칙의 결합이며, 이는 현대적 시민권 개념에서 출발한 평등주의적 논의의 정교화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롤즈는 공리주의에 드러난 문제점 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첫째, 소수자의 이익이나 욕구가 다수의 더 큰 이익이나 보 다 나은 자들의 욕구에 의해 희생된다. 둘째, 공리주의에서는 최대한의 유용성을 확보 하기 위해 정의와 자유, 권리를 도구로 전락시킨다. 셋째, 개인의 선택 원칙인 쾌락이 사회 선택 원칙으로 확대 적용된다. 넷째, 욕구 만족의 원천에 대해서나 그 성질에 대 해서는 묻지 않고 욕구의 만족인 행복의 총량에만 관심을 가진다. 다섯째, 합당한 윤리 적 결정 방식을 위한 직관조차도 유용성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필요 없다고 상정한 다. 여섯째, 전체효용의 총량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의 기대치 에 대한 적절한 의미를 결여한 채 순수한 형식적인 표현에 그치고 만다. 일곱째, 합리 적이고 공평한 관망자(impartial spectator)는 평균 효용의 원칙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 해서 그 사회체제에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하고, 그들이 이기심을 갖게 하 는 것을 방지하게 해주기 때문에 정의의 기준으로 채택된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의 욕 구체계를 하나로 통합시킴으로써 몰개인성(impersonality)으로 오인받게 된다. 롤즈의 정의론과 그에 대한 비평들을 소개한 논고로, 김봉석(2008). 철학적 정의론의 다차원성.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6. 한국사회학회, 277-284.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