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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2) 덕 이론적 스포츠윤리 비판

스포츠에서의 움직임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움직임의 주체 가 먼저 있고 타자가 이후에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항상 낯선 타자와의 조우를 통해 형성된다(오길영,2008).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스포츠윤리가 기존의 윤리 담론과 그 궤를 달리하여,주체의 윤리학에서 타자의 윤리학에로 변모를 하게 되 는 근거를 해명할 수 있다.

스포츠맨십과 관련한,아놀드(P.J.Arnold)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살펴보자.

스포츠맨십은 정당한 행동에 관한 규칙을 지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스포츠맨십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스포츠 자체를 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 는 그런 종류의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는 것과 같다.사람들은 스포츠맨십이 빠진 스포츠를 속빈 강정과 같다고 말한다.따라야 하는 규칙조항은 남겠지만,중요한 정 신은 빠져버리기 때문이다.이것과 달리,스포츠맨십은 친밀함,관대함 그리고 동정 심과 같은 덕목들을 실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Arnold,1997:78).

아놀드(1997)는 스포츠맨십을 바람직한 가치를 실천하는 특질을 지닌 행위라

고 언급한다.이에 최의창(2010)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스포츠는 실천전통의 하나로서 이해되어야 한다.실천전통은 인간이 역사적으로도 오랫동안 실천해오면서 그 안에 다양한 내적 가치들을 축적시킴으로써 하나의 가치 결정체로서 성장시켜 놓은 인간의 활동영역을 말한다.스포츠맨십은 실천전통으로서 스포츠에 내재된 다양한 가치들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발휘하게 되는 행동 이자 드러나는 태도이다(최의창,2010:8).

최의창(2010)에 의하면,스포츠맨십이란 스포츠에 들어있는 도덕적 차원을 제 대로 내면화해서 발휘하는 능력과 태도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태도는 스포츠 행위 주체가 자신의 삶을 실천 속에서 적극적으로 성취해나가는 과정으로,아리 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학과도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손영창, 2012:8).

기존의 규범윤리학이 행위의 동기와 결과를 도덕 판단의 근거로 삼고 있는 반면에,덕 윤리는 덕을 도덕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칸트주의나 목적론이 행위 에 초점을 맞추어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가’를 문제시하고 있다면,덕 윤리는 덕 에 초점을 맞추어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문제 삼고 있다.44)우리는 다

44) 윤리학에서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은 특정한 상황에서 그 상황에 맞는 특정한 행위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그 상황에 적합한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성품은 상황에 적합한 행위를 유도하는 사람의 내적 성질이다. 그리고 사람으로서 올바른 방식으로 반 응하는 성품이 바로 덕이다. 그렇다면 덕이란 사람이 사람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면, 즉 삶의 목적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소유해야만 하는 성품이다. 덕론에 관한 자 세한 설명은, 강성민(2013). 실천으로서 스포츠의 내재적 선에 관한 탐구. 미간행 박사 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38-66. 참조. 강성민(2013: 38-66)은 아리스토텔레스 전 통에서부터 맥킨타이어에 이르는 덕론의 성격에 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덕론은 종래 윤리학을 지배하고 있던 의무론의 엄숙주의와 목적론의 결 과주의가 도덕 판단의 근거로 상정한 행위로부터 벗어나 도덕적 판단의 기준으로 덕을 상정하고 최고의 선(善)인 행복에 이르고자 하는 윤리학적 시도이다.’(강성민, 2013:

52). 본 연구자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을 가져본다. 그 의문점은 ‘도덕적 판단의 기 준으로 덕을 상정하고 최고의 선(善)인 행복에 이르고자’라는 표현에서 출발된다. 우리 가 윤리와 도덕을 구분할 때, 윤리는 선 혹은 좋음과 관련시키고 도덕은 의무와 관련 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의무 판단의 기준으로 덕을 상정한다는 것이 성립이 되는데, 덕이란 것이 과연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의무인가, 아닌가를 따져 물을 때, 대답하기 매 우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즉 윤리는 완전한 삶의 목표에 연결되고, 도덕은 보편성과 강제효과를 동시에 가지는 규범에 연결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윤리를 우리 삶 의 목표와 관련된 보다 넓은 의미의 영역을 다루는 것으로, 그리고 도덕을 우리의 의

음에 나오는 박성주(2011:28)의 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도덕철학자 AlasdairMacIntyre는 스포츠를 ‘실천전통(practi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 했다.즉 스포츠는 우리 인간이 오랫동안 실천해오면서 다양한 내재적 가치들을 축 적시켜 놓은 하나의 관습이고 전통이라는 것이다.스포츠 선수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그들이 바로 스포츠에 내재된 다양한 가치 를 구현하는 실천전통의 ‘전수자’이기 때문이다(박성주,2011:28).

덕 윤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로부터 시작되며 맥킨타이어에 이르러 현대 윤리학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종래의 칸트주의와 목적론적 윤리관이 도덕적 행위의 규범에 대해 설명하였다면,덕 윤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 하고 있다.45)

무적인 규범과 관련된 보다 좁은 의미의 영역을 다루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만일 목적론과 의무론이 상호보완적인 측면을 가진다면, 우리는 그것들 각각 그 자체로의 고 유한 의미 영역을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은 동등한 지위를 가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윤리는 근원적이고 도덕은 인간 사회의 파생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은 윤리에 필수적인 것이긴 하지만 종속적이며 보완적인 것일 뿐이다. 본 연구자의 질문과 관련하여, 김종식(2007). 칸트의 의무주의 윤리이론에 관한 리쾨르의 해석 연구. 대동 철학, 39. 대동철학회, 45-73 중 47-49. 참조.

45) 맥킨타이어의 덕론을 수용한 스포츠철학 연구물들로는, 양종구(2005). 사회적 실천 개 념에 근거한 체육의 정향. 미간행 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오현택(2006a).

맥킨타이어의 덕론이 스포츠에 주는 함의. 미간행 박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오현택(2006b). 덕론의 스포츠윤리학적 함의. 움직임의 철학 : 한국체육철학회지, 14(1). 한국체육철학회, 19-33.; 김홍식 외 1인(2007). 체육의 도덕교육적 정당성: 맥킨 타이어 덕론(德論)의 시사. 움직임의 철학 : 한국체육철학회지, 15(2). 한국체육철학회, 93-109.; McNamee, M(1995). Sporting Practice, Institutions and Virtues: A Critique and Restatement. Journal of the Philosophy of Sport, 22(1), 61-82.;

Arnold, P. J(1997). Sport and Ethics and Education. London: Casell.; McFee, G(2004a). Normativity, Justification, and (MacIntyrean) Practices: Some Thoughts on Methodology for the Philosophy of Sport. Journal of Philosophy of Sport, 31(1), 15-33.; McFee(2004b). Sport, Rules and Values: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into the Nature of Sport. London: Routledge.; McNamee, M(2008). Sports, Virtues and Vices-Morality Plays-. London: Routledge. 참조.

그리고 매킨타이어의 ‘공동체’ 개념과 관련된 스포츠철학 논고로는, Miah, A(2004).

Why not dope? It’s still about the health. in (ed.) McNamee, M(2010). The Ethics of Sports–A Reader-. London: Routledge, 169-185. 참조. 그런데 기존의 스포츠철학 연구들에 제시된 덕론의 내용에서 우리는 연구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사상인 ‘인간(스포츠하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달리, 그저

‘덕론에 관한 소개’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사태와 관련 된 모든 덕론 중심 스포츠철학 논문들의 제목이 <○○○ 덕론을 스포츠철학에 적용하 는 이유>라고 명시했어야 옳았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이러한 사태는 덕(이 갖고 있는 성격)의 규명과 깊은 관련이 있지만, 덕이라는 것이 우리 행위의 결과에 입

맥킨타이어는 자신의 덕 개념을 설명하는 배경의 첫 단계로 실천 개념을 소 개한다.그의 ‘실천’은 모든 정합적이고 복합적 형식의 사회적으로 실현된 협동 적 인간 활동을 의미한다(김홍식,2006:97).46)이런 활동을 통해 그 활동에 적합 한 훌륭함의 기준을 성취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그런 활동에 내재하는 선들 이 실현된다(AV,187).실천은 단순한 인간의 개별적 활동이 아니라 특정한 내재 적 목적을 실현하는 활동을 말한다.축구공 던지기나 벽돌쌓기는 실천이 아니고, 축구경기나 건축이 실천의 예가 된다.축구경기의 내재적 목적은 승리 혹은 축구 경기를 잘하는 것이고,건축의 목적은 좋은 집이다.내재적 선이 외재적 선과 구 별되는 것은 그것이 다른 행위에 의해 얻어지느냐의 여부이다.가령 축구경기가 상금을 목적으로 치러질 수 있지만 상금은 축구경기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상금은 축구경기의 내재적 목적이 아니다.건축의 목적도 부나 명예가 될 수 있으나 이는 외부적 선일뿐이다.

내재적 선 개념은 실상 덕 개념의 본뜻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덕으로 번역되 는 그리스어 ‘아레테(arete)’는 ‘(그 기능에 있어서)뛰어남’의 의미이며 이는 모든 활동이 목표로 하는 바다.즉 뛰어나다는 것은 내재적 목적을 잘 이루느냐에 달 려 있다.‘모든 기술과 탐구,행동과 추구는 어떤 선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로 시 작되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첫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도 이와 같은 목적으 로서의 선들이 갖는 내재적 성격을 지적하는 것이다.예를 들어 의술의 목적은 건강이고,조선(造船)의 목적은 배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할 때 목적이란 곧 내재적 선을 가리키는 것이다.의사의 덕이 의술이고 배 제작자의 덕은 배를 만 드는 기술이듯이 맥킨타이어에게 덕은 그것을 가지고 실행함으로써 우리가 그 실천에 내재하고 있는 선들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간의 성질이다(AV, 191).47)

각하여 파악된다는 성질을 갖고 있다는 데 그 난점이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덕론과 관련한 스포츠철학 논고는 (스포츠)심리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덕론을 적용시킨 스포츠철학 연구들에 항상 동반되는 문제의식은 바로 덕론 형성의 근본 원리인 ‘어떠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논리의 순환이 될 것이 다. 결국 우리의 문제는 ‘어떻게’의 성격을 밝히는 작업에서 해결이 될 것이다.

46) 단체 경기만을 스포츠에 국한 시키려는 아놀드(1997)의 주장이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