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2) 주체의 출현과 존재 가짐: ‘여기’ 그리고 ‘지금’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깨어 있을 수 있는가?어떻게 주체는 스스로 자기 상 실을 체험하면서 동시에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없는가?(서동욱,2011:362이하)
으로 ‘밖에 섬(탈존 또는 외존)’으로 정의한 것에 비추어 보면 더욱 더 잘 이해될 수 있다.하이데거에 따르면 현존재는 자기 ‘밖에 서는 존재’이다.다시 말해 현 존재는 자기 자신을 떠나 밖으로 세계로 향해 초월하는 존재이다.하이데거의
‘밖에 서기’는 ‘존재 사건 자체’이다.레비나스는 주체가 ‘밖에 서기’로 존재한다 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그러나 그의 물음은 ‘밖에 서기’가 과연 주체의 근 원적인 존재 방식인가 하는 것이다.레비나스는 하이데거와 달리 주체의 근원적 인 일차적인 존재 방식을 ‘홀로 서기’로 본다.주체는 우선 밖에서 안으로의 운 동이다.안으로의 운동,내재성(內在性)의 성립이 선행된 다음,안에서 밖으로의 초월이 가능하다.다시 말해 주체는 그 자체로 존재할 때,존재의 혼돈 속에서 명사적인(또는 실체적인)존재로 스스로 홀로 설 때,그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 실현을 위해 밖으로의 초월을 시도할 수 있다.‘안으로 향한 운동’그것으로 인 해 안과 밖 그리고 내재성과 외재성(外在性)이 갈라지는 과정을 레비나스는 어떻 게 그렸는가?
( 1)‘ 여기’ :주체 구성 요소로서의 장소성
레비나스에 따르면 의식 주체를 통한 ‘존재’극복은 존재 속에서의 주체의
‘자기 정립’과 ‘자리 잡기’를 통해 가능하다.레비나스는 그 실마리를 데카르트(R.
Descartes)에서 찾는다(EE,117).인간의 사유를 비공간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는 관 념론과 달리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는 세계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레비나 스의 해석에 의하면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세계와 신체를 배제한 것 같으나 배제 된 신체는 단지 ‘대상으로서 신체’일 뿐 주체로서의 신체는 여전히 사유 주체로 서 사유 활동을 수행한다.코기토는 비인칭적 사유(‘생각이 존재한다’)나 3인칭적 사유(‘그가 생각한다’)가 아니라 (‘내가 지금 생각한다’라는)1인칭적 현재 사건을 지칭한다.레비나스는 테카르트가 코기토의 주체를 ‘나는 사유하는 실체’로 본 것에 주목한다.주체는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잡는 주체 즉 자신을 스스로 정립 하는 주체이며 사유는 하나의 출발점 곧 시작하는 자리를 갖는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는 것이다.
주체는 의식이 하나의 장소 속에 자리함을 통해 주체로서 서게 된다.주체는 여기,이곳에 존재하고,이곳을 출발점으로 삼아 세계로 향해 나아간다.‘여기’에 서부터 모든 의식 행위와 사유가 가능하다. ‘여기’는 의식의 추가물이 아니라 의식의 가능 조건이다.
사유란 여기(ici)이다.데카르트의 회의를 통해 배제된 신체는 대상으로서의 신체이 다.데카르트의 코기토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은 바로 실체로서의,즉 자리 를 확보한 어떤 것(quelque chose quise pose)으로서의 사유를 발견했다는 데 있 다.사유는 출발점을 가진다(EE,114).
주체를 ‘여기’에 위치시키는 것은 의식에 출발점을 제공할 뿐 아니라,주체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그렇다면 주체는 무엇을 통해
‘여기’와 관계하는가?레비나스는 주체가 구체적인 장소와 관계하는 통로를 잠이 라고 말한다.잠은 인간이 몸과 마음의 활동을 중단하는 행위이다.잠자리에 몸 을 눕힐 때 존재는 하나의 장소,하나의 위치에 제한된다.장소는 여기서 의식 주체의 바탕이자 조건이다.그러므로 잠자리에 다시 든다는 것은 휴식을 취하는 것 즉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잠이라는 것은 주체 성립을 위한 존재론적 조건이다.‘주체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고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뜻한다.자리 잡기는 마치 의식이 결정한 행위처럼 의식에 첨가되는 것이 아니다.자리 잡기에서부터 부동성으로부터 의식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의식은 바탕을 ‘소유하고’장소를 ‘소유한다’.‘의식이 여기 에 존재한다’는 것은 또다시 하나의 의식의 사실,하나의 사유,하나의 감정 또는 하나의 의욕이 아니라 의식의 자리 잡기이다.
의식은 기반을 ‘소유’하며,장소를 ‘소유’한다.여기서의 소유란 장소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오로지 조건을 말한다.즉 의식은 여기(estici)이다.의식이 여기라는 것은 의식의 활동 즉 사유,느낌,의지가 아니라 의식의 자리 잡기를 말한다(EE,117)
의식이 ‘여기에 자리 잡기’위한 구체적인 가능 조건은 신체이다.레비나스에
따르면 신체는 의식의 도래 자체이다(EE,122).의식은 자신을 신체로 정립하고 그것을 통해 ‘존재자 없는 존재’사건의 익명성을 벗어난다.이때 주체의 신체로 서의 자기 정립은 이미 주어진 공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자리를 정하는 것이 아 니라 익명적인 ‘존재’에서 벗어남으로써 정돈된 공간 자체가 성립되는 사건이다.
여기서 신체는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메를로-퐁티(M.Merleau-Ponty)가 일컫듯
‘주체로서의 신체’이다(Ponty,1962:81이하).이 신체는 의식 이전의 사건이다.
신체는 의식 이전의 의미 부여의 기초 또는 바탕이 된다(EE,123-124).
이제 우리는 주체라는 것이 두 가지 방식으로 규정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주 체는 한편으로 익명적인 존재 사건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개 체적인 독립체로 ‘여기’에 자신을 정립하는 자로 규정된다.레비나스의 접근은 관념론적인 주체성의 철학은 말할 것도 없고 하이데거의 현존재 이해와도 다르 다.잠잘 수 있는 자리이며 자신 속의 도피처인 ‘여기’는 현존재의 ‘현(現)’또는
‘거기’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하이데거의 ‘거기’는 이미 세계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함축한다.레비나스의 ‘여기’,자리 잡기의 ‘여기’는 세계 이해와 지평 존재에 앞서 있다.‘여기’는,주체가 자신에서 출발하고 자신에 바탕을 둔 존재자라는 사실을 지칭한다.레비나스는 이것을 ‘자리 잡기’가 지닌 비초월성의 성격으로 압축해서 표현한다.‘여기에 자리 잡기’는 밖으로의 초월 이전에 자기 로 돌아옴이고 자기로 돌아옴을 통해 주체가 생성된다.주체의 의식 작용,세계 와의 관련성,의미 부여는 잠을 통해 독특하게 실현되는 자리 잡기를 통해 비로 소 가능해진다.물질적 기초 위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 때 주체는 스스로 설 수 있고 스스로 제 발로 설 때 ‘존재’의 주인이 될 수 있다(EE,124).‘여기’에 자리 잡음은 ‘순간’그리고 ‘현재’와 관계한다.주체는 ‘지금’순간의 홀로 서기로 가능 하다.의식이 자리를 잡음으로써 순간이 현재로 구성된다.그러하다면 ‘현재로서 의 순간’은 무엇을 뜻하는가?
( 2)‘ 지금’ :주체 구성 요소로소의 순간
우선 레비나스가 ‘순간’이라는 용어로 뜻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존재자 없는 존재’에 관한 레비나스의 언급을 재검토 해보자.레비나스가 그리 고 있는 ‘존재자 없는 존재’,‘익명적 존재’사건은 영원의 성격을 띤다.모든 사 물의 부재로서 현존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그것은 캄캄한 밤처럼 침투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순간을 절단해낼 수 없다.시작과 끝,순간과 순간의 연 속,시간적 교차는 ‘그저 있음’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레비나스는 ‘무한한 ‘존재’
속에서 ‘순간’이 어떻게 출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여기서 문제되는
‘순간’은 시간 지속상의 한 계기(과거,현재,미래)가 아니라 시간 지속 이전의 절 대 시작으로서의 ‘순간’이다.순간은 과거와 미래와 관계하기 이전,현재로서 익 명적인 ‘존재’사건 가운데서 오직 자기와 관계하는 순간이다.레비나스가 드러 내는 ‘순간’은 ‘존재’에서 떨어져 나온 순간이다.
순간은 그것에 앞서 간 순간들과 뒤따라오는 순간들과 관계하기 이전에 그 자체로서 존재 성격을 갖는 하나의 ‘행위’이다.각 순간은 시작하는 행위이자 하 나의 새로운 탄생이다.14)새로운 탄생으로서의 순간은 존재의 시작이고 존재의 정복이다.순간은 그 자체로 과거나 미래,혹은 역사 등 자기가 아닌 다른 어떤 것과 관계하기 이전에 오직 자기와 관계하는 행위이다.이것이 지닌 역설적인 성 격은 ‘시작한다’는 말 속에 담겨 있다.무엇을 시작한다고 할 때 시작된 것은 시 작되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사태가 아니다.있지 않았던 것은 시작을 통해서 그 자신으로 태어나야 하고,그 자신으로 돌아와야 한다.레비나스는 이것을 일컬어 순간을 구성하는 ‘시작의 역설’이라고 부른다(EE,131).
‘순간으로서의 현재’는 어떻게 가능한가?레비나스는 순수 ‘존재’로부터 독립 적인 존재자의 출현 곧 순수 ‘존재’의 어둠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주장하는 주체 의 출현을 통해서 ‘순간으로서의 현재’가 가능하다고 상정한다.‘순간’은 여기서
‘자리 잡음’과 관련된다.15)자기가 서있는 땅,바탕에서 출발하는 주체는 바로 자
14) 스포츠 장면에서 발생되는 매 상황들을 생각해보라.
기 자신에게서 ‘시작’하는 주체이다.주체는 문자 그대로 hypostase즉 순간 ‘아래 서서’순간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는’존재이다.주체는 ‘존재’의 중립적인 비 시간성에 대항하여 스스로 시작함으로써 ‘순간’을 만들고 순간에 이름을 부여한 다.현재 곧 순간으로서의 현재는 과거와 미래와 관계하기 전에 주체가 자기 자 신에 현존하는 순간이다.순간으로서의 현재는 ‘주체의 실현’이다.자기 자신에의 현존과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출발과 복귀로 인해 ‘지 금’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주체는 어떤 다른 것을 통해서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 ‘자기’로서 정립하는 것 이 아니라 오직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한다.주체는 단순한 존재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소유하는 존재이다.주체의 자기 동일성은 내재성 즉 자기 자신과의 친숙성이다(EE,38).자기 동일성은 실체 속에 고정된 것이 아 니라 순간마다 자기를 확인할 때 성립되는 역동적 과정이다.익명적인 순수 존재 에 맞서 ‘순간마다’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행위를 통해 주체는 자기 자신으로 설 수 있다(TO,31-32).
주체가 자기 자신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자신을 다시 새로운 시작의 기점 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레비나스에게서는 인간의 근원적인 자유를 설명하는 실마리가 된다.
현재,‘자아’-홀로서기는 자유이다.존재자는 존재의 주인이다.존재는 그의 존재에 주체의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그는 어떤 힘을 소유하고 있다.근원적인 자유.이것 은 아직 자유의지의 자유가 아니라 시작의 자유이다.개개의 주체 속에 주체가 존재 한다는,존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속에 담긴 자유.존재자가 존재에 개입하는 자유 (TO,34).
근원적인 자유는 칸트의 이해처럼 외적 제한과 제약으로부터의 독립성으로서
15) 주로 축구, 농구 경기에서 사용되는 ‘공간 패스’라는 용어를 생각해보자. 여기서 사용되는
‘공간’은 물리 용어로서 글자 그대로 아무도 자리하지 않는 빈 곳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러한 빈 곳에 볼을 공급한다고 해서 과연 어떤 팀의 선수가 그 볼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는 이 ‘공간’이라는 개념을 철학적으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 에서의 ‘공간’이라는 개념은 ‘나’의 자리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