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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계에 대한 친환경적 가치관 형성

I. 서론

2) 스포츠 세계에 대한 친환경적 가치관 형성

레비나스에게서 타자의 일차적 의미는 자아중심으로 형성되는 내면성에 대해 외재적인 것으로,존재는 자아 밖에 있는 외재성(l’exteriorite)을 의미한다.나의 밖 에 무엇이 있는가?나의 삶의 토대가 되는 환경세계,사물의 세계,다른 사람 그 리고 신이 있다.레비나스는 이들을 총칭하여 타자(autre)라고 부른다.자아가 이 들 각각의 타자들과 맺는 관계방식은 다르다.환경적 물질세계로서의 타자는 자 아의 이기주의적 성향이나 경제적 대상으로 자아에 의해 소유되어진다.즉 자아 에 의한 동화나 통합이 가능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이후의 인간들처럼 자 연과 나를 완전히 분리시켜 자연을 착취의 대상을 삼았던 방식은 더 이상 가능 하지 않다.즉 인간은 자연에 대해 더 이상 우월적 지위를 가지거나 정복자의 폭 력적 특권을 지닐 수는 없다.레비나스가 환경세계와 자아의 관계를 ‘물과 물고 기’,‘바다와 항해사’의 관계로 설명하는 것처럼,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불가분리 (不可分離)의 관계이다.인간은 공기를 호흡하고,물을 마시고,음식을 섭취하는 몸적 존재이고,몸의 영양은 자연으로부터 얻게 된다.자연은 인간 몸의 근본적 인 구성요소인 것으로,자연의 황폐화는 인간의 황폐화로 이어진다.이미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냉정함에서 유래된 전쟁,인종 학살,그리고 자연파괴라는 현상이 파생되었다.타자의 상실이 주체의 상실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은 타자들을 수용하고 환대하는 타자 중심의 패러다임으로서의 전환이라는 넓은 틀 안에서 스포츠환경윤리가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환경은 스포츠 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다.‘나를 둘러싼’이라는 뜻은 스포 츠 주체를 둘러싼 모든 것이며,스포츠 주체 이외의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곧 스포츠 주체가 환경과 다르다는 것을 가정한다.환경은 자연 요소와 인공 요소 그리고 스포츠 주체 이외의 모든 타인을 포함한다.레비나스에게 주체-타자는 주 체-세계,주체-사물,주체-타인이다.레비나스의 주체-타자관계는 환경윤리에서 나 -환경 관계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레비나스는 주체를 둘러싼 모든 것을 ‘세계’로,자연 요소를 ‘사물’로 언급하면서 인간과 자연 요소의 관계를 익 명성,향유성,인간 존재 의미성 등으로 표현한다.레비나스는 주체-타자의 근본 적인 관계를 타자의 모습,타자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법,그리고 인간이 세계 에 속한 모습에서 찾아낸다.

레비나스에게 요소적인 모습으로 존재하는 사물은 익명적인 것으로,어느 누 구의 소유도 아니고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는 대지,바다,빛,도시 등이다.이 러한 사물은 주체가 존재하기 이전에 있었고,있고,있어야 하는 타자로,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자연 요소들이다.이러한 환경은 지금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존속 되어야 할 지속성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요트 선수는 바다와 바람을 지배하지 만,이러한 요소는 사물로 변형시킬 수 없으며,형태를 포함하지 않는다.바다 표 면,들판,바람결은 어떤 요소들을 포함할 수 없다.이들은 요소의 넓이와 길이로 의 변형 불가능한 깊이를 가지고 있다.요소의 깊이는 ‘끝이 없고,시작도 없다.’ 이러한 자연 요소는 인간이 지배를 해도 형언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지속의 가능성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레비나스에게 환경 요소와의 관계는 도구적 세계를 유용성의 개념으로 본 하 이데거과 근본적으로 달리,향유 존재의 궁극적 관계로 설명된다.하이데거에게 인간 현존재는 이미 세계 속에 들어와 존재하는 세계의 일부로서,세계에 대처하 고,왕래하는 ‘세계-내-존재’였다.하이데거는 사물의 존재 의미를 인간의 생존을 위한 도구의 사용 관점에서 보았다.33)레비나스도 하이데거처럼 인간이 세계 속 33) 노동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지배와 소유의 차원을 열어준다. 환경 세계가 지닌 무규정 성과 익명성은 노동을 통해 해제되고 사물은 이제 분명한 의미와 기능을 갖게 된다. 사 물은 노동을 통해 인간의 생존 수단으로, 도구로서 취급되며 사회적 관계에서 교환 가 능한 것으로 전환된다(강영안, 2012: 34).

에 들어와 거주하는 존재 양식으로 분석한다.그런데 하이데거와 다르게 레비나 스는 환경에서 마주치는 사물들을 향유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인간 존재는 세계와의 인식론적 주체-객체 관계를 맺기 이전에,근본적으로 향유을 누리면서 세계 속에 이미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34)또,레비나스는 인 간을 안으로는 자기 중심적 내면성을 유지하는 존재인 동시에,밖으로는 타자를 향한 존재로 설명한다.스포츠 세계에서 주체는 타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 이 아니라,타자의 존재를 인정하며 타자에게로 향한다(김연숙,1999:55-58).향 유로서 모든 타자를 통해 스포츠 주체는 기쁨과 고통을 체험하고,이 때 타자는 삶의 수단만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한다.어떠한 경우에서도,타자 의 타자성은 이들을 서로 비교 및 상대화 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의 의미를 갖 는다.레비나스에게서 타자로서의 의미를 갖는 환경은 스포츠 주체의 이용 대상 이 아닌 향유적 존재로 궁극성,고유성,본질성을 갖는 절대적 외재성의 의미를 지닌다.이러한 의미에서 레비나스의 타자성은 친환경적 가치관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곧 타자 지향의 환경관이라고 할 수 있다.

레비나스에 의하면,그 동안의 환경 문제는 공공재적 환경을 스포츠 주체의 목적으로,나에게 환원시키는 주체 중심 철학에 의해 발생되었다.주체 지향의 환경관은 주체가 환경과 관계 맺는 것이 아니라,환경을 주체에게 있어서 경쟁의 대상이거나 주체의 이용 대상이 되게 한다.35)하지만 타자 지향의 환경철학은 타 자에 대한 고유성과 존엄성을 일차적 목적으로 삼는다.왜냐하면 타자 지향의 환 경철학은 나의 의지보다 나와 타자의 관계를 통해 타자성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타자 지향의 환경관에서 타자는 절대적 외재성을 지니므로,타자에 포함되는 자 연 요소는 스포츠 주체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변화시키며 다룰 수 있는 존재 가 될 수 없다.타자는 스포츠 주체가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될 존재론적 의미를 지닌다.스포츠 주체는 타자의 절대적 외재성을 승인하며,타자의 부름에 응답하 고 타자를 책임지기까지 한다.타자에게 응답하는 스포츠 주체는 주체 중심주의 에서 벗어나 타자성을 경험한다.이렇게 주체 중심주의에서 타자성을 경험한 스

34) 인간은 인식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는 환경과 향유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35) 이것은 ‘등산’과 ‘입산’의 다름에 대해 고찰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으로 사료된다.

포츠 주체는,환경 안으로 포섭되면서 환경을 위한 스포츠 주체로 거듭날 수 있 다.타자 지향의 환경관을 지닌 스포츠 주체는 더 이상 타자와 분리되지 않고, 타자성으로 통일된 철학을 지향한다.여기서 스포츠 주체 중심주의의 관점으로 환경을 보는 것과,타자 지향의 환경철학으로 관점이 변화되어 환경을 주시하는 것은 분명한 다름을 내포한다.이는 타자성을 경험한 스포츠 주체는 타자와 함께 타자 지향의 철학을 강조하게 되기 때문이다.

레비나스는 ‘얼굴은 나에게 말을 건넨다’(TI,159)라고 했다,여기에서 얼굴의 현현으로 타자가 말을 건네는 것은 나의 응답을 요구하는 대화의 요청이다.타자 의 얼굴은 스포츠 주체인 나를 바라보고,스스로를 표현하며,나에게 소통을 호 소한다.타자의 시선과 목소리에 바라봐 주고 귀를 기울여 주는 반응은 스포츠 주체-자연 요소,스포츠 주체-타인의 관계에서 환경철학이 추구해야 할 가장 근 원적인 방식이다.레비나스는 ‘레토릭적(rherotic)대화 상황’을 개념화한다(TI, 70-72).이 대화 방식은 타자를 얼굴로 대면하지 않은 채 다가서고 비스듬히 사 물로서 대한다.의도를 가지고 타자에게 다가가 타자의 자유와 상관하지 않고

‘네(yes)’를 간청하면서 자신의 입장만을 관철하는 스포츠 주체 지향의 상황이다.

스포츠 주체가 일방적으로 자신의 입장만을 관철하면서 동․식물을 대하는 것이 바로 레토릭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36)이러한 대화는 환경을 스포츠 주체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이기적인 대화이며,진정한 환경의 목소리에는 전 혀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오히려 배제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진정한 대화는 얼굴이 현현하는 관계에서 형성되는 대화 로 타자를 얼굴로 마주하면서 그와 본래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본다.이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 대하고,타자의 시선을 바라보며,타자의 호소에 귀를 기울 이는 것을 의미한다.환경 문제를 둘러싼 갈등 상황 속에서 정부 부처 간의 갈 등,환경 단체 내에서의 갈등 등은 레토릭적 대화의 상황에서 벗어나 서로의 얼 굴을 마주 보며 귀를 기울여야 함을 말해준다.이러한 갈등은 환경의 복잡성과 불확실성과 이로 인한 다양한 이해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발생되는데,이것은 지

36) 자연 환경 파괴의 주범인 골프장 건설업자들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