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1) 나의 책임과 존재 모험 극복
레비나스는 삶을 나의 삶이라 부를 수 있는 1인칭의 존재를 스피노자(B.
Spinoza)의 용어를 사용하여 ‘존재하고자 하는 노력(constusessendi)'이라 부른다 (OB,163).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1인칭 존재는 자신의 행복과 구원에 집착하고 자기에게 만족하는 존재이다.‘나’의 존재(esse)는 라틴어로 ‘인테르에세(interesse)’, 곧 존재(esse)사이(inter)에 있는 존재,자신의 이익에 집착하는 존재이다(OB,4). 그러므로 나의 존재는 ‘자기중심주의’가 일차적 특징이다.이것을 레비나스는 인 간의 도착성(倒錯性)이나 타락과 연관 짓지 않는다.자기중심주의는 인간에게 매 우 자연적이고 그 자체로 비난의 대상일 수 없다.그러므로 자기 사랑은 존재에 기초를 제공하고 최초의 존재로서 경험을 가능케 하는 자기중심주의이다.이런 의미에서 ‘나’는 문자 그대로 ‘자신을 위한’존재이다.그래서 온갖 수단을 다해
30) 그래서 레비나스의 윤리학은 ‘타자의 윤리학’이다.
죽음에 맞서 싸우며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노력한다.레비나스는 죽음에 맞 서 존재 속에 자신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 노력으로부터 서양의 정신사를 특징짓 는 ‘희극과 비극,그리고 종말적 위로’가 나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OB,222).
자기 중심적인 경향은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이 아니다.자기 존재를 유지하고 자 하는 노력은 홉스(T.Hobbes)와 스피노자가 주장한 것처럼 모든 존재자의 존 재에 공통된 성향이다.미세한 입자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어떤 존재자에게도 자신의 존재 속에서 자신을 지속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고,31)이로 인해 무자비한 생존 투쟁에 개입한다.여기에는 윤리가 없다.강자의 법이 적용될 뿐 타인에 대 한 존경과 책임이 없다.하지만 인간은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 가운 데서 자신을 인식하고 파악하며 자신을 확인한다.여기서 ‘자기성(ipsesitas)’이 성 립된다.자기성은 전(前)반성적이고 의식되지 않으며 단지 자기 자신 속에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운동이나 자기에 대한 지식으로 서서히 발전한다.(TI,28).
레비나스가 말하는 ‘자기성’과 ‘자기 동일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그것은 역사적 과정이고 끊임없이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이다.32)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제로 주어진다(TI,140-141).여기서 자유는 끊임 없는 노력과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할 과제이다.나는 나와 나 사이의 거리,나 에 대한 나의 결핍을 통해 내 자신으로 향한 욕망을 지닌다.나의 확인과 나 자 신의 확보 그리고 나의 자유는 하나의 모험이고 드라마(drama)이다.그러므로 레 비나스에게 있어 A가 A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은 그저 단순한 동어반 복이 아니다.그것은 오히려 A의 A에 대한 불안이다.주체의 주체성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심 속에서 자신을 자신으로서 확인하는 일이다(강영안,2004:56).
나에게는 나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존재 유지에 필요한 수단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의지가 있다.하지만 나의 선택의 자유는 근본적으로 유한하다.
나는 마침내 유한성의 끝인 죽음에 직면한다.그러므로 나는 죽음에 직면하여 나 자신의 존재 유지를 최대한 실현하고자 노력한다.여기서 타인의 존재는 나의 관 심 밖에 있다(OB,222).여기서 나의 존재를 위협하는 상황과 나의 책임을 레비
31) 이와 관련하여, 베르그송의 ‘지속(duration)’ 개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32) 이와 관련하여, 하이데거의 ‘시간(time)’ 개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나스의 초기 저작을 통해 조금 더 살펴보자.앞에서 자세히 본 것처럼 레비나스 는 인간의 존재 유지를 위협하는 현실을 ‘그저 있다’라고 부른다.‘그저 있다’는 모든 것을 무로 환원하고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는 현실이다.그 것은 공포로서 체험되고 나의 주체성을 끊임없이 위협한다(EE,93-95).
그러므로 내가 나로서 서자면 익명적인 이 존재 사건을 극복해야 한다(TO, 140).나는 익명적 존재 사건을 극복함으로써 내 자신 속에 홀로 선 실체 또는 나 자신의 아르케(arche)가 된다.레비나스는 이것을 선택의 자유 이전의 자유 혹 은 근원적인 자유로 이해한다(EE,135-136).근원적인 자유의 긍정은 나의 행복뿐 만 아니라 책임의 ‘과제’를 함축한다.내가 이때 짊어지는 책임은 타인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나 자신에 의한 책임이다.나는 나의 존재를 나의 것으로 책임진다(TO,43).33)나는 이 존재의 책임,존재의 무거움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한다(EE,30-52).이것은 결국 타자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런데 자기성 속에 홀로 있는 나는 그 자체로는 형식적이고 따라서 내용이 비어 있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존재 실현을 위해 나에게는 객관적인 매개체가 있 어야 한다.그런데 나에게는,나의 존재 실현에 필요한 내용과 질료가 내 자신에 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자인 세계로부터 온다(TI,7-8).그러므로 나는 세계 안에 주어진 삶을 지탱해주는 것들을 필요로 하고 그것들을 욕구한다.따라서 나 는 세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나는 신체적 욕구를 통해 세계를 나 자신의 존재 실현의 바탕으로 수용한다.나는 나 자신의 욕구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발견한 다.역설적이게도 세계에 대한 의존성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나의 독립성과 나의 자유를 확보한다.분명한 것은 나는 오직 내 안에서 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 이다.나는 ‘나 중심적으로’세계를 기획하고 관리하고 나의 것으로 삼아 지배함 으로써 나 자신의 존재를 실현한다.세계는 나에게 있어 삶의 거주지가 된다.34)
33) It is to move toward an ontological event wherein the existent contracts existence. The event by which the existent contracts its existing I call hypostasis(이것은 존재자가 존재를 자신의 것으로 떠맡는 존재론적 사건으로 가는 것 이다. 존재자가 존재함을 자신의 것으로 떠맡는 사건을 나는 홀로서기라고 부른다).
(TO, 43)
34) 그러므로 레비나스는 나의 존재 노력을 ‘거주의 관리’ 또는 ‘경제’로 정의한다(TI, 88).
세계 안에서 나의 존재 실현 노력은 한마디로 ‘자율성’이란 말로 요약될 수 있다.나는 타자를 나에게로 환원하고 나뿐만 아니라 타자에게 법으로 군림한다.
여기서 나의 자유가 성립된다.나는 세계와 타인으로부터 나 자신을 분리하여 홀 로 세계 안에 섬으로써 나 자신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이 독립성으로부터 타자의 지배를 시도한다(TI,87-88).전통적인 자유 개념과 책임 개념을 나의 자기실현과 존재 유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