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볼커 전환에서 플라자 합의, 루브르 합의까지
1) 행동주의적 환율 정책으로의 전환
레이건 행정부는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산업계와 의회의 보호주의적 압력에 직면하면서 미국의 수출과 국내 일자리 창출에 있어 강한 달러가 갖는 부정적 영향을 인정하고, 환율을 전적으로 시장에 맡겨 두는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으며, 환율 결정에 대한 개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86) 사실 미국의 입장에서 경상수지, 특히 무역 적자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방식의 하나가 바로 달 러화의 환율 조정이 될 수 있었다. 때문에 그 이전까지 환율 문제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레이건 행정부는 본격적으로 환율 조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달러화의 급격한 평가 절상을 야기했던 연준의 통화 긴축 정책은 1982년 7월 1일 통화공급량과 금리를 보다 탄 력적으로 운용하는 정책으로 이미 보다 유연한 정책적 선회를 한 상태였
85) Robert Solomon, “Effects of the Strong Dollar,” The U.S. Dollar-Recent Developments, Outlooks, and Policy Options, A Symposium Sponsored by the Federal Reserve Bank of Kanas City, Jackson Hole, Wyoming August 21-23, 1985, p.68. 솔로몬은 미국 수입 증가의 1/3 가량이 달러화의 고평가에 기인한 것이라 고 계산하였다.
86) Andrew Walter, World Power and World Money: The Role of Hegemony and International Monetary Order (N.Y.: St. Martin’s Press, 1991), pp.219-220.
다. 이는 환율 조정 문제에 대한 행정부의 선택지를 넓혀 줄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1983년 가을, 일본에 대한 정책 조정에 나서 게 된다.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본과 미국 사이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무역 갈등이 나타났다. 일본의 대미 자동차 수출을 제한하기 위하여 미국 은 일본 자동차에 대한 쿼터를 반복적으로 부과했고, 일본에게 자발적 수 출 제한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공작기계, 반도체 및 농업 분야 등 다 양한 분야에서 무역 갈등이 나타났다. 일본과의 무역 갈등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국으로 유입되고 있었던 국제 자본의 이동 방향성이 일본을 향하 게 되면 일본 엔화 가치가 평가 절상되고, 이 결과 미국의 대일 무역 적 자가 감축될 수 있다는 당시 재무부 장관 리건의 논리를 따라 ‘엔-달러 협정(Yen/Dollar Agreement)’를 추진했다.87) 레이건 행정부는 엔-달러 환율 수준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일본 정부에게 그들의 은행법과 금융법에 기술적 변화를 채택하라고 구체적인 목록을 전달해야 한다는 앞 에서 인용했던 트랙터사 모건 회장의 주장을 채택했으며, 일본과의 엔-달 러 환율 이슈에 대한 협상에 이러한 요구가 포함되었다.88)
머치슨-솔로몬 보고서에서는 협력적 환율 정책 대신에 무역 정책을 통 해 양국 간의 불균형을 해결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무역 갈등의 골만 더 깊게 했으며, 엔-달러 환율의 올바른 조정이 없이는 향후 무역 갈등은 더 욱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보고서에서는 이제까지 환율에 대한 무 대응(benign neglect) 전략은 잘못된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하면 서, 대미 무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통해 획득된 일본의 잉여 달러가 달러 표시 자산으로 회귀하면서 달러화의 강세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 다. 지난 10년 간 환율 결정은 무역 활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의 흐름 에 의한 것으로 메커니즘이 변화했다는 것이었다. 이때 일본의 금융 시스
87) 이에 대해 Frankel은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경제 논리라고 평가하고 있다. Jeffrey A.
Frankel, “And Now Won/Dollar Negotiations? Lessons From the Yen/Dollar Agreement of 1984,” Working Paper 90-131 (Berkely: UCB Department of Economics, 1990 January), pp.6-7.
88) Brian W. Semkow, “The 1984 American/Japanese Financial Agreement::
Implications and Results,” George Washingto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and Economics, Vol. 19, Issue 3 (1985), p.745.
템이 정부의 통제 하에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자본의 흐름 역시 정상적이 지 않다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89) 이 보고서는 환율 정책에 미국이 적 극적으로 개입하여야 한다는 것과 일본의 금융 자유화를 통해 엔화의 수 요를 확대하여 엔-달러 환율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90)
그런데 이러한 미국의 요구에 앞서 일본에서도 이미 1970년대부터 스 스로 금융 시스템의 구조를 재구조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49년 제정된 ‘외환통제법’을 수정한 ‘외환과해외무역통제법’이 1979년 에 의회를 통과했고, 1950년에 ‘외환통제법’을 보완하여 제정되었던 ‘해 외투자법’은 1980년에 폐지되었다. 이는 국제거래에 대한 일본의 원칙이
‘금지’에서 ‘자유화’로 최초로 변화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국제 은행의 중심지가 되기에 유리한 국가는 넓고 깊고 자 유로운 금융 시장을 갖고 있으며, 투자자들에게 가격 안정을 포함하여 안 정성을 제공하고, 경쟁력 있는 금융 산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충분한 인적 자본을 제공할 수 있는 경제적 · 정치적 · 사회적 시스템을 갖고 있는 국 가라고 한다. 이러한 국가는 자국의 통화로 표시된 유동성 예금을 세계의 여타 국가들로부터 수취하여, 대부와 투자를 제공하는 포지션에 위치할 수 있다. 이것이 외국인들로부터 유동적인 부채를 끌어 와서 다른 국가들 에게 대부와 투자를 제공하는 과정이며, 이것이 한 국가가 유동성을 다른 국가들에게 제공하는 국제 유동성 변형 과정이이다. 이는 한 국가가 세계 의 은행가로 기능할 수 있는 개념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외국 인들이 해당 국가에 대한 단기 청구금을 보유하려는 의지가 국제 통화 체 제의 유동성을 강화시켜준다는 것이다. 한 국가의 유동 부채는 국경을 넘 는 통화로 수용된다. 일반적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인플레이션 수준과 인 플레이션 변동성이 국제 통화 수요에 기여할 수 있으며, 잘 발전된 금융 시장이 이러한 통화의 수요뿐만 아니라 공급을 용이하게 한다. 따라서
89) David C. Murchison and Ezra Solomon, “The Misalignment of United States Dollar and Japanese Yen: The Problem and Its Solution,” California Management Review Vol.XXVII, No. l 1984, Fall, p.44-52.
90) Ibid., pp.53-54.
뉴욕과 런던의 크고 자유로운 금융 시장은 달러화와 파운드화가 국제 통 화로 사용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금융 시 장은 엄격하게 규제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엔화가 국제 통화로서 기 능함에 있어 저해 요인이 되었다.91)
따라서 엔화의 국제화를 지지하던 세력들이 일본 금융 시스템의 자유화 를 요구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79년 ‘외환과해외무역통제 법’의 수정 이후 일본 금융 시스템 자유화의 다음 단계는 1981년, ‘신은 행법’의 제정이었다. ‘신은행법’은 국내 은행 산업을 변화시켰으며, 일본 정부가 예산 적자에 대해 융자하는 절차를 재설계했다. 신은행법에 따라 일본 국채 시장은 다른 금융 기관들뿐만 아니라 은행도 보유 기간 없이 정부 증권의 공개 매각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유화는 정부 예산 적자에 대한 융자에 있어 커져가는 위기를 회피하기 위하여 국채 거래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한 신은행법은 일본에서 영업 하고 있는 해외 은행들이 일본의 은행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 도록 법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일본에서 영업 하고 있는 해외 은행들의 지사 혹은 대리인들에게 대장성으로부터 면허를 취득할 것을 요구했다.92)
이 시기 일본 통화 당국의 목표는 엔화의 평가절하 폭을 감축하려는 것 이었다. 일본과 미국 모두, 미국에서의 보호주의 압력이 높아지는 상황에 서 엔-달러 환율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며, 일본 정부가 자본 유입을 야기 할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 1984년, 몇몇 일본 정 부 소속 기관이 뉴욕에서 해외 채권 발행을 계획했다. 그렇지만 미국과 일본 양국 정부는 자본 유출에 대한 통제 회복과 같은 보다 직접적인 조 치가 효율적일 수 있다 하더라도, 일본을 세계 금융 시장에로 통합시켜가 는 장기적인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장기적으로 볼
91) George S. Tavlas and Yuzuru Ozeki, “The Internationalization of Currencies:
An Appraisal of Japanese Yen,” Occasional Paper (Washington D.C.: IMF, 1992 January), pp.3-4.
92) Brian W. Semkow, “The 1984 American/Japanese Financial Agreement:
Implications and Results,” George Washingto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and Economics, Vol. 19, Issue 3 (1985), pp.747-748.
때, 세계금융 시장에서 강화된 엔화의 역할이 세계 경제에서 일본의 중요 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고,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의 평가절상 에 기여할 것이라고 간주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일본 국내 자본 시장 탈 규제의 지속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유화의 주요한 수혜자 는 과거에 자신들의 저축에 대해 (낮은 이자율로 인하여) 제대로 된 보상 을 받지 못했던 일본의 가계 부문이 될 수 있었다. 아울러 만일 이자율이 상승한다면, 일본으로부터의 자본 유출이 줄어들고, 따라서 엔화의 평가 절상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었다.93)
당시 일본 정부의 통제 하에서 이윤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일본의 은행들은 (양도성 예금 증서 등과 같은) 새로운 상품을 추구하게 되었으 며, (채권 재구매 시장과 같은) 새로운 사업 영역에 뛰어들게 되었다. 특 히 일본 금융 시장이 자유화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첫 번째 중요한 조치 가 국채의 재판매를 허용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정부 채권에 대한 2차 시장이 등장하게 되었고, 급격하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와 유사하게 대 규모 양도성 예금증서(CD, Certificate of Deposit)에 대한 이자율 결정 이 자유로워지면서, 환매조건부 채권시장이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특히 앞서 언급한 ‘외환과해외무역통제법’은 특별한 제약을 둔 부분을 제외하 고는 국제자본의 흐름이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1983 년 ‘엔화의 국제화와 금융, 자본 시장 자유화’가 대장성 장관에 의해 공식 적인 정책 목표로 확인되었으며, ‘포괄적 경제 조치들(Comprehensive Economic Measures)’에 포함되었다.
미국 내에서는 달러화의 평가 절하를 요구하는 정치적 압력이 높아지고 있으며, 일본 내에서는 금융 자유화와 엔화의 국제화에 대한 지지가 나타 나고 있던 상황에서, 결국 미국의 재무부는 환율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 는 캠페인에 나서게 된다. 먼저 일본과 미국 정부 대표단들은 일본에서 영업하고 있는 해외 금융 기관에 대한 상호성과 일본 내 대우 등에 관련 된 이슈들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주로 상무부(Department of Commerce) 관리들로 구성된 미국 정부 팀의 일련의 토론과 조사 이후,
93) 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 1984, op.cit., pp.68-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