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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미국의 금융화와 역플라자 합의

1) 신경제의 등장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합의를 거치면서 미국의 제조업은 경쟁력을 회복 하고 수출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독일 산업과 일본 산업은 장기적인 위기에 빠졌다. 그리고 대부분 자국 통화를 달러화에 연동(peg)시켰던 동 아시아 경제는 달러화의 평가 절하가 지속되는 동안 일본 경쟁자들에 대 한 경쟁 우위를 얻게 되어 수출 기반 제조업이 폭발적 성장을 구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력 추이의 전환과 그에 수반되는 제조업 이윤율의 상 승은 국민 경제 사이에서 생산성 증가율 차이나 미국 제조업 생산성 증가 율이 상승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것이 임금 상승률의 차이와 환율 효과였다. 1986년에서 1993년 사이에 미국 제조업 생산 증 가율은 연평균 2.5%였다. 같은 기간 제조업 부문의 시간당 실질 임금 연 평균 상승률은 일본의 2.9%와 독일의 2.85%에 크게 못 미치는 0.15%로 G-7 전체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플라자 합의 이후 제조업은 장기적인 이윤율 회복 추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후반기 제 조업 이윤율 회복의 초기 국면에서 미국 제조업의 역동성에 있어 어떤 의 미 있는 개선도 동반되지 않았다. 제조업 부문은 여전히 금융 자원을 금

융 조작을 위해 사용하는 성향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특히 신규 설비와 장비에 대한 투자보다는 차입에 기반한 인수 합병 및 자사주 매입을 위한 자금 차입에 주력했다. 1984년에서 1989년 사이에 인수 합병에 대한 비 금융 법인의 지출은 연평균 1,840억$에 달했던 반면, 비 주택 고정자산에 대한 투자 지출은 연평균 840억$에 불과했다. 그러나 제조업의 이윤율 상승은 1990년~1991년 불황에 직면하여 중단되었다. 짧은 불황 기간 동 안 기업 파산율은 1980년대 전반기에 기록된 전후 최고 수준을 넘는 것 이었다.163)

그렇지만 1980년대에 들어와 미국의 비 금융 기업은 공장과 설비에 대 한 투자에 비해서 금융 자산에 대한 투자를 급격하게 늘렸으며, 이에 따 라 생산 활동에서 벌어들인 수입과 이윤에 비해서 금융에서 나오는 수입 과 이윤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제조업은 미국 경제의 금융화 과정 에 순응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도한 것이었다.164)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국제적 경쟁 상황에서 고비용의 기존 기업들은 자신의 현금 수입 흐 름에서 더 많은 비율을 고정 자본과 상품 투자에서 금융적 경로를 통한 유동성과 축적으로 돌림으로써 수익 하락에 대응했다. 수입 자금 운용을 상업과 생산에 재투자하는 데 따르는 위험과 불확실성은 높다. 그리고 기 업이 예전에 전문적으로 했던 특정 산업이나 경제 활동 분야 안에서도 그 리고 그 바깥에서도, 확대되는 경쟁 투쟁에서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인 무 기로서, 유동 자산을 늘리는 데 자금을 쓰는 것이 사업 상식에도 부합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유동성은 기업체가 조만간 자본의 과잉 축적과 옛 사 업 종목과 새로운 사업 종목 내부의 경쟁 격화에서 발생할 ‘자본 가치의 도살’을 피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자신의 수입 자금 운용을 고정 자 산과 상품에 계속해서 투입하는 덜 신중하고, ‘분별없이 열의에 넘치는’

기업체의 자산, 고객 및 공급자를 싼 값으로 접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 이다.165)

163) Brenner, 2002, op.cit., p. 99-105.

164) Greta R. Krippner, “The Financialization of the American Economy,”

Socio-Economic Review, 2005, vol. 3.

165) Arrighi, op.cit., pp.200-202.

이러한 금융화에 대한 제조업의 적응 과정에서 ‘신경제(new economy)’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경제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경제구조의 변화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보다 구체적으 로는 ‘정보 기술(Information Technology)’의 발달로 인한 생산성 파급 효과가 전 산업 분야로 확대되며 생산원가는 낮아지고 경쟁력은 높아지지 만 물가는 오르지 않는 현상을 의미한다. 특히 신경제라는 개념은 소위 IT 혁명 이전의 경제를 구경제로 규정하고 이와 구별 짓기 위하여 사용된 개념이었다. 구경제에 대한 설명은 경기호황과 저물가는 공존할 수 없다 는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에 입각한 개념으로, 경기호황 → 저실업 → 임 금 인상(물가 상승) → 생산성 하락 → 경기하락과 같은 주기(cycle)가 반 복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경제는 새로운 기술 분야가 등장하여 경제 성장을 주도하여 저실업과 저물가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신사 업의 출현 → 경기호황 → 저실업, 저물가 → 생산성 상승 → 경기 향상 을 나타낸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경제는 일반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 고 새로운 수요 확장을 제공하는 기술 혁신과 세계화로 인하여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1990년대 미국 경제는 신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었 다. 다음의 <그림 4-1>이 1985년에서 1995년까지 미국의 인플레이션율 변화 추이이며, <그림 4-2>가 1985년에서 1995년까지 미국의 실업률 변 화 추이이다.

<그림 4-1> 미국 인플레이션 변화 추이, 1985년~1995년

(출처 :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기간을 1985년~1995년으 로 설정)

<그림 4-2> 미국 실업률 변화 추이, 1985년~1995년

(출처 :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기간을 1985년~1995년으 로 설정)

미국의 신경제는 1980년대 볼커 전환 이후 미국 경제가 겪었던 구조조 정 이후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의 IT 집중 투자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 기 시작했다. IT의 발전에 있어 가장 중심이 되었던 컴퓨터에 대한 연구 개발 및 초보적인 상용화는 1980년대 중반부터 이루어졌다. 그리고 실리 콘 밸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반도체와 같은 미래를 위한 연구 개발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신경제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은 연구 개발에 대한 투자였으며, 따라서 새로운 기술 개발에 투자를 단행하는 벤처캐피탈과 같은 금융 산업의 존 재가 핵심적이었다. 물론 새로운 기술의 채택이 생산성 향상으로 실현되 기까지는 일정한 시간 지체(time lag)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1990년대 전반기의 경제 성장은 역사적 관점에 보자면 매우 느린 생산성 과 고용 증대라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에 대한 투자, 곧 정보 기술에 대한 투자는 이미 1980년대 중반이후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 으며, 1990년대 후반에 급증했다. 예를 들어 1997년 정보기술에 대한 투 자는 미국의 경우 GDP의 4.5% 수준까지 확대되었다.

바로 이러한 투자 과정에서 기관 투자자들의 비중이 확대되었으며, 아 울러 CEO에 대한 스톡옵션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1993년 100만$를 넘 는 급여에 대해 세금공제를 금지하는 법안이 클린턴 대통령의 권유로 의 회에서 통과되었는데, 소득공제 한도는 스톡옵션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었 다. 오히려 이후에 스톡옵션이 확산되었으며, 이는 동시에 CEO들이 단기 주가 상승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게 했다. 다음 <그림 4-3>이 총 고 정투자 대비 정보처리설비 투자 비율이다.

<그림 4-3> 총 고정투자 대비 정보처리설비 투자 비율 (분기별 자 료)

(출처 : Department of Commerce, Bureau of Economic Analysis)

1980년대 중반 이후 비교적 빠르게 증가했으며, 1990년대 후반 급격하 게 확대된 정보 기술 투자 비율은 금융과 기술의 연계였다. 따라서 미국 의 소위 신경제의 씨앗은 1980년대 중반, 1990년대 초반에 뿌려진 것이 었으며, 이는 미국의 금융 자유화를 통해 급격하게 성장한 금융의 뒷받침 을 받았던 것이었다. 기술 혁신의 초기 단계에서 새로운 기술들이 생산과 정에 통합되고 적용되는 과도기에 생산성 증가가 느리게 나타나지만, 이 후에 생산성은 급격하게 증가한다. 실제로 1998년 후반기와 1999년 전반 기에 나타난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0년대에 들어 와서도 지속되었다.

그린스펀은 1998년 4월 버클리 대학교에서 한 연설에서 1990년대의 호황과 신경제에 대해 “신경제란 이 시기의 특별한 현상이라기보다 슘페

터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 따라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면서, 당시 미국의 경제에 “의심할 여지없이 기술 혁 신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1990년대 초 기업 구조조정에 따라 전통적인 산업에서의 해고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신규 기업이나 기관의 신규 고용률이 이보다 높았기 때문에 실업률이 떨어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런데 “최근 미국 시장의 작동과 첨단 기술의 발전 속도에 근본적인 개선”

이 “인상적인 1990년대 주식 시장의 뚜렷한 상승”을 가져왔다고 하면서, 투자에 대한 금융적 수익 향상은 “물리적 자본이 소비자들이 가치 있다고 보는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에 할당되고 있는 것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신경제가 있느냐 하는 질문의 핵심은 미래의 안 정에 대한 현재 기대가 경제에서의 실질적인 변화에 의해 정당화 되는가”

이며, 그러한 기대가 있다면 자본 비용은 낮은 상태를 유지할 것이고, 더 높은 투자와 더 빠른 경제 성장이 도래할 것”이라고 했다.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