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이론적 자원에 대한 검토
2) 역플라자 합의
플라자 합의 이후, 특히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과 세계 경제에는 이전과 다른 양상들이 나타난다. 1970년대를 특징 지웠던 스태그플레이 션 상황에서는 제조업의 이윤율 저하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1990년 대에 들어오면서 제조업의 이윤율 저하가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브 레너(Brenner)는 1995년의 ‘역플라자 합의(Reverse Plaza Accord)’야 말로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와 회복의 과정에 있어 중요한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자본주의 발전의 후발 주자가 발전의 선도 주자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마침내 따라잡는데 성공하는 과정을 ‘불균등 발전(uneven development)’이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설명했다. 불균등 경제 발전은 전 후 장기 호황과 1960년대, 1970년대 초의 수익성 위기 둘 다를 가져왔으 며, 따라 잡기가 진행되는 동안은 전 세계적으로 고이윤, 고투자, 생산성
증가의 선순환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일단 후발 주자-일본과 서독-이 선 두 주자-미국-을 따라잡자, 그 결과는 전 세계적인 생산능력 과잉과 그로 인한 이윤율의 하락 압력이 나타났다. 이러한 수익성 위기에서 미국은 달 러화의 대폭적인 평가 절하-플라자 합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위기의 부담을 독일과 일본 제조업자로 전가했다. 브레너는 통화의 평가 절하와 평가 절상 조치를 자본가 간 경쟁 투쟁에서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중요 한 정책 도구로 보았다. 그런데 1985년의 플라자 합의와 1987년의 루브 르 합의 이후에도 미국 경제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보다 훨씬 느리게 팽창했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 및 유럽 역시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 미 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임금과 물가 상승 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며, 따라서 수요 둔화가 가장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었다. 그리고 금리 생활자 의 이익을 증대시키면서 갈수록 성장하고 있었던 금융 부문도 대출 자산 의 가치를 유지하고 주가 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얻기 위해 인플레 억제 정책을 요구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엔화 강세의 결과 일본이 겪고 있던 가중되는 압력을 활용했다. 예를 들면 일본이 미국 자동차 부품에 대한 시장 개방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일본 자동차 시장을 폐쇄할 것이 라고 위협했다. 그런데 1995년 엔화 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4월, 1 달러 당 79 엔이라는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하자 일본 생산자들은 ‘가변 비용(variable cost)’조차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1994년에 있었던 멕시 코의 페소화 위기로 인해 미국은 충격을 입었는데, 일본판 위기는 분명히 훨씬 더 위험했을 것이었다. 만일 일본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규모의 미국 자산, 특히 재무부 채권이 대규모로 청산된다면 이는 금리 인상을 촉발하고, 자금 시장을 놀라게 하여 달러 환류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미국 경제의 불황을 유도할 수 있었다. 결국 1995년 봄과 여름 사이에 일본 자동차 부품 시장 개방 압력을 모두 중단하고, 일본과 독일 정부와 함께 엔화(와 마르크화) 가치의 하락과 달러 가치의 상승을 위한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방향 전환은 미국 금리 대비 일본 금리의 인하와 재무부 채권과 같은 달러화 표시 유가 증권에 대한 일본의 매입 확대, 독일과 미국 정부의 달러 매입 확대를 통해 이루어졌다. 미국
은 이 역플라자 합의를 통해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 약세로 인한 제조업 부문의 경기 회복이라는 결정적 경쟁 우위를 포기했다. 그러나 미국은 해 외 투자 자금이 대거 유입되고 저가품이 대거 수입되는 반대급부를 얻었 다. 해외 투자 자금의 대규모 국내 유입은 미국 경제의 경상수지 적자의 증가를 벌충하고 금리를 인하하여 주가를 상승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 로 전망되었다. 또한 저가품의 대규모 수입은 국내 물가를 하락시켜 연준 의 인플레 억제 정책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특히 브레너는 이 역플라자 합의와 1990년대 중반 이후 연준의 방만한 신용 체제로 풀린 자본의 유입은 주식시장 거품의 필수 조건이었으며, 결국 2000년 나스닥 시장 거품의 붕괴로 귀결되었다고 했다.11) 아리기(Arrighi)는 이러한 브 레너의 분석이 오로지 제조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전 세계 제조업이 생산한 부가가치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으며, 1960년의 28%에서 점차 줄어들어, 1980년에는 24.5%, 1998년에는 20.5%까지 감소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위축은 브레 너가 분석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평균보다 더 컸다. 제조업은 생산 활동에서 벌어들인 수입과 이윤보다 금융에서 나오는 수입과 이윤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즉 국제적 경쟁의 격화에 직면했던 미국의 제조업들 은 자신의 현금 수입 흐름에서 더 많은 비율을 고정 자본과 상품 투자에 서 금융적 경로를 통한 유동성과 축적으로 돌림으로써 수익 하락에 대응 했다.12) 즉 아리기는 제조업이 이러한 비금융 경제의 금융화로의 추세를 억누른 것이 아니라 주도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브레너를 비판했다.
브레너는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와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적 변화를 분석하고 있지만, 구조의 변화는 주요한 초점이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의 경제 구조는 1980년대부터 금융화를 통해 변화가 시작되 었으며, 1990년대에 들어와 구조 변화가 제도화 된 것으로 보인다. 브레 너의 관점에 따르면 볼커 전환 이후 조정에 들어갔던 미국의 제조업은 플
11) Robert Brenner, The Boom and Bubble, 정성진 역, 『붐 앤 버블: 호황 그 이후, 세계 경제의 그늘과 미래』 (서울: 아침이슬, 2002), pp.169-175.
12) Giovanni Arrighi, Adam Smith in Beijing: Lineages of 21 Century, 강진아 역,
『베이징의 아담 스미스: 21세기의 계보』 (서울: 도서출판 길, 2009), pp.197-200.
라자 합의 이후 조정 부담 비용을 전가하면서 이윤율을 회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1990년대 초 일본 경제의 거품 붕괴 이후 역플라자 합의를 통 해 일본 경제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것으로 보아 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볼커 전환의 조정을 거쳤음에도 불구 하고 제조업의 생산을 통한 이윤율의 회복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으며, 이 럼에도 불구하고 역플라자 합의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융 채널을 통 한 이윤율 회복이 있었던 것이다.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비금융 기업들조차도 금융 채널을 통한 이윤 비중이 급격하게 상승했으며, 심지어 미국 기업 총이윤에서 금융, 보험, 부동산(FIRE, Finance, Insurance, Real Estate)의 비중이 1980년대에 는 제조업 비중을 거의 따라 잡았고, 1990년대에는 이를 뛰어 넘었다. 즉 제조업조차도 주요한 이윤 채널이 변화하게 된, 성장 레짐의 변화라는 구 조적인 변화를 주요한 변수로 설정하지 않는다면 플라자 합의와 역플라자 합의라는 상반된 미국의 행위를 동일한 분석틀로 설명할 수 없다.
역플라자 합의에 대해 국제적 관점에서 분석한 다른 연구가 빔스 (Beams)의 연구이다. 빔스는 역플라자 합의를 국제정치경제 시스템의 안 정성 확보라는 체계 차원의 시각에서 분석했다. 엔-달러 환율이 1 달러 당 80 엔 마저 무너지는 상황, 즉 지나친 엔화의 고평가로 인한 국제정치 경제 시스템 차원의 충격에 대한 우려로 역플라자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1995년 4월, 일본 엔화의 대 달러 환율이 역사적인 고평가를 기 록하게 되자, 일본 기업들은 거의 유지 자체가 힘들 정도의 상황에 몰리 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당시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던 미국 자산, 특히 미국 재무부 채권을 매각하여 유동성을 확보하는 문제를 고심 하게 되었다. 이는 미국의 경기 침체를 야기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에 루빈 미 재무부 장관은 엔화의 가치를 낮추고 달러화의 가치를 상승시키 는 공동 행동에 동의하게 되었으며, 이 역플라자 합의가 클린턴 행정부에 서 ‘강한 달러(strong dollar)’ 정책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역플라 자 합의의 결과로 국제 자본은 미국으로 유입되었고, 주식 시장의 상승과 이자율 상승 압력을 상쇄하는 금융 시장의 붐을 일으켰으며, 투자 붐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미국 국내 수요의 확대를 가져왔다. 이는 연쇄적으로 재차 국제 자본의 유입을 불러 일으켜 달러화의 가치를 더욱 강하게 했 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나타난 금융 거품은 경상수지 적자를 더욱 확 대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고 했다.13)
빔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의 자본 유출 문제가 역플라자 합의를 이끌어 낸 원인 중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서의 막대한 자본 유출이 일어난다면 미국은 경상수 지 적자 문제의 관리에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으며, 따 라서 엔화의 평가 절하를 통해 미국에서의 자본 유출을 미연에 방지했어 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 계정의 흑자로 경상 수지 적자를 상쇄해 야 했던 미국의 입장은 자본 유출만이 아니라 자본 유입의 문제에도 민감 할 수밖에 없어야 했다.
1980년대 초, 볼커 전환의 여파로 제3세계 부채 위기가 발생하면서 중 남미에서 탈출한 국제 자본이 미국에로 유입된 것이 달러화의 평가 절상 을 더욱 가속시켰다. 즉 국제 자본의 이동 방향은 환율 변동성에 영향을 끼치는 또 다른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 자본의 이동 방향은 국제적인 금융 위기와 미국의 주요 경제 상대국의 경제 상황에 영 향을 받았다. 국제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국제 자본들이 안전 자산으 로 인식하고 있는 달러 표시 자산의 매입이 확대되었으며, 일본의 엔화 표시 자산 역시 안전 자산의 하나로 인식되어 매입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경제의 거품이 붕괴한 상황에서 달러 표시 자산을 매입했던 일본 자본은 달러 표시 자산을 매각하고 일본으로 회귀하게 되 고, 이는 엔-달러 환율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의 통화 정 치가 환율의 변동성에 따라 나타나게 된다면, 미국이 통화 정치를 실행함 에 있어 주요하게 고려하게 되는 측면이 국제 자본의 이동 방향성이라는 것이다.
이제까지 플라자 합의와 역플라자 합의, 그리고 그것이 국내외적으로
13) Nick Beams, “Currency upheaval could have major consequences,” 29. May.
2003 (https://www.wsws.org/en/articles/2003/05/doll-m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