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레이거노믹스와 쌍둥이 적자

III. 볼커 전환에서 플라자 합의, 루브르 합의까지

1) 레이거노믹스와 쌍둥이 적자

볼커 전환으로 낮은 인플레이션율과 낮은 실업률을 달성하여 미국 경제 의 내적 균형이 달성되었지만, 미국 경제에는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재정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동시에 나타나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 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먼저 재정 적자 문제는 레이건이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부터 주장했던

69) Ramma Vasudevan, “Dollar Hegemony, Financialization, and the Credit Crisis,”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Volume 41, No.3, Summer 2009, p.296.

‘공급 중심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에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공급 중심 경제학이란 경제에 있어 낙수효과를 성장의 중심 동력으로 삼 는 경제 정책이론이다.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라 지칭된 이 정책 이론에는 네 가지 핵심 요인이 있었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통화 공 급 제한, 감세, 국내 소비 지출 통제에 의한 예산 균형, 정부 규제의 축소 등이 그것이었다.70) 따라서 레이건 행정부는 이를 위해 부유층의 세금 감 면을 주된 정책으로 삼았다. 그런데 대외 정책에 있어서는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지칭하면서 소련과의 대결을 위하여 군비 지출을 대폭 강화했다. 그 결과 감세 등으로 인하여 재정 수입은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군비 지출이 확대되면서 재정지출이 늘어나게 되었고, 재정적자 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동시에 1970년대부터 악화되기 시작했 던 경상수지는 볼커 전환 이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적자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렇게 재정 적자와 경상 수지 적자가 동시에 나타나게 된 것을 ‘쌍둥이 적자(twin deficit)’라 한다.

레이거노믹스에 입각한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 실적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감세 정책을 바탕으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8년 간 평균 3.2%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는 레이건 행정부 이전의 8년 간 성장률이었 던 2.8%보다는 조금 높은 것이며, 레이건 행정부 이후 행정부에서 8년 간 기록한 2.1% 보다도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 그러나 케네디 행정부 시 절인 1964년 30% 감세 조치를 바탕으로 이룩한 5% 성장률보다는 낮은 수치였다. 그런데 문제는 공공 분야를 포함해 국가 전체의 저축률은 1970년대 7.7%에서 1990년 3%까지 떨어졌다는 점이었다. 기업 투자 비 율 역시 1970년대 GDP의 18.6%에서 1980년대 17.4%로 하락했다. 전후 25년 간 노동자 1인당 생산성은 연간 평균 2.8% 상승했으나, 1980년대 에 들어와 1% 미만으로 떨어졌다. 공급 중심 경제학에서 공급 부분이 완 전히 실패했지만 수요 부분은 성공적이었다. 적어도 레이건 정부는 제국 의 비용을 어떻게 조달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빌려라

70) William Bonner and Addison Wiggin, The New Empire of Debt: the Rise and Fall of an Epic Financial Bubble 2nd edition. (Hoboken: John Wiley & Sons, Inc., 2009), pp.189-190.

(Borrow)”라는 것이었다. GDP 대비 연방정부의 총수입 비율은 1981년 20.2%에서 1992년 18.6%로 하락했으나, 연방정부 지출은 1981년 22.9%

에서 1992년 23.5%로 늘어났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부채가 증가했다. 레 이건 집권 당시 1조 달러가 채 되지 않았던 연방정부 부채는 1992년 말 4조 달러를 넘었다.71)

이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경상수지 적자는 볼커 전환 이 후 달러 가치가 급격하게 상승한 영향이 컸다. 즉 고금리와 달러 가치의 상승은 민간과 공적 부문에서 달러에 대한 수요를 자극하였으며, 그 결과 달러 가치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달러화의 평가 절상은 이미 1960년대부터 일본, 독일 등의 기업들에 대해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던 미국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에 더욱 악영향을 미쳤지만, 반면에 수입 물가 는 상대적으로 하락하였다. 따라서 수입은 더욱 확대되었으며, 무역 적자 폭 역시 더욱 확대되었다. 미국은 1982년 420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 한 데 이어, 1983년 700억 달러, 그리고 1984년 1,230억 달러의 무역적 자를 기록했다. 레이건이 집권한 지 불과 5년 사이에 누적된 무역적자의 규모가 무려 4,230억 달러에 달한 것이었다. 경상수지 역시 당연히 같은 추세를 보이게 되는 바, 같은 기간 적자규모는 2,520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었다.72) 달러에 대한 엔화와 마르크화의 가치는 1984년 말에 1973년 이전 수준 혹은 그 이하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일본과 독일의 차, 기계 류 및 전기 제품은 미국 시장으로 물밀 듯이 몰려왔으며, 이에 대한 대응 으로 강력한 보호주의적 압력이 의회에서 나타났다.73) 다음의 <그림 3-8>은 1980년대를 전후로 한 쌍둥이 적자의 GDP 대비 비율 변화 추이 이다.

71) Ibid., pp.191-192.

72) 김기수, op.cit., pp.611-612.

73) Volcker, Gyohten, op.cit., p.229.

<그림 3-8> 미국 쌍둥이 적자의 GDP 대비 비율 변화 추이

(출처 : 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이렇게 볼 때, 위에서 지적한 레이건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었던 레이거 노믹스의 핵심적인 네 가지 요소에 있어 첫 번째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통화 공급 제한은 볼커 전환으로 훌륭하게 달성되었다. 두 번째 감세 역 시 레이건 행정부가 1981년 전격적으로 25% 감세안을 집행하면서 달성 되었다. 그러나 세 번째 예산 균형은 레이건 행정부 내내 쌍둥이 적자의 확대로 실패했으며, 네 번째 정부 규제 축소 역시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볼커 전환으로 날로 치솟던 금리는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1981년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점차 하향 안정세를 보여 1983년 9%, 1986년 6.9%를 기록했으며, 1987년 최저치를 기록했다. 연준은 인플레이 션이 진정되면서, 이자율을 낮춤으로써 조정에 따른 경제 주체 모두의 고 통을 완화하고, 경기에 대한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그러나 금리 인하 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전반기에 달러화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평가절상 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볼커 전환 직후 급격하게 상승했던 이자율이 비교

적 안정적인 상태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달러화의 평가 절상은 왜 지 속되었을까? 이 이유는 다음의 설명에서 잘 드러난다. “만약 미국이 외부 세계와 단절된 경제라면 재정적자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증세를 하거나 이 자율을 대폭 올려야만 한다. 그런 경우 당연히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지 만, 외국자본의 유입으로 적자가 상쇄된다면 이자율을 과거보다 낮게 유 지하면서도 경제는 꾸려질 수 있다.”74) 외국 자본의 미국에로의 유입은 결국 달러화에 대한 수요를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이자율이 안정되었음에 도 불구하고 달러화의 평가절상은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다음 <그림 3-9>가 ‘80년대 미국 이자율의 변화 추이이다.

<그림 3-9> 1980년대 미국의 이자율 변화 추이

(출처 : Federal Reserve Bank of St. Louis)

74) 김기수, op.cit., p.613-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