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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적자의 확대와 시장 개방 압력의 강화

IV. 미국의 금융화와 역플라자 합의

2) 무역적자의 확대와 시장 개방 압력의 강화

터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 따라 역사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하면서, 당시 미국의 경제에 “의심할 여지없이 기술 혁 신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1990년대 초 기업 구조조정에 따라 전통적인 산업에서의 해고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신규 기업이나 기관의 신규 고용률이 이보다 높았기 때문에 실업률이 떨어질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런데 “최근 미국 시장의 작동과 첨단 기술의 발전 속도에 근본적인 개선”

이 “인상적인 1990년대 주식 시장의 뚜렷한 상승”을 가져왔다고 하면서, 투자에 대한 금융적 수익 향상은 “물리적 자본이 소비자들이 가치 있다고 보는 제품과 서비스의 생산에 할당되고 있는 것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신경제가 있느냐 하는 질문의 핵심은 미래의 안 정에 대한 현재 기대가 경제에서의 실질적인 변화에 의해 정당화 되는가”

이며, 그러한 기대가 있다면 자본 비용은 낮은 상태를 유지할 것이고, 더 높은 투자와 더 빠른 경제 성장이 도래할 것”이라고 했다.166)

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달러화의 추가적인 평가 절하는 회피되어야 했다. 따라서 경상수지 적자 문제 해결에 있어 달러화의 환율 을 평가 절하는 것보다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무역 상대국의 통화 환율의 평가 절상 요구가 효과적인 방법으로 등장했다. 아 울러 경상수지 적자를 상쇄하기 위해서도 국제 자본의 자유로운 유출입과 매력적인 투자처로서의 금융 환경 조성이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1987년 연준 의장으로 취임했던 그린스펀은 취임 당시부터 환율 문제 를 무역 적자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1987년 연준 의장으로 지명된 그린스펀에 대한 상원 ‘은행위원회 (Committee on Banking, Housing and Urban Affairs)’의 ‘임명 동의 청문회(Nomination of Alan Greenspan Hearing)’에서 프록스마이어 (Proxmire) 위원장은 달러 환율 조정 문제에 대한 연준의 역할이 어떨 것인지를 묻는 서면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그린스펀은 플라자 합의와 같은 시장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로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외 환 시장에의 개입이 다른 정책에 유용한 부속물일 수 있는 때가 있다. 그 러나 근본적인 정책 변화 없는 개입은 그 자체로는 환율에 막대하고 지속 적인 영향을 줄 수도 없고, 주어서도 안 된다. 게다가 적정한 환율 수준 이 어떤 수준인지 인지하는 것이 어렵다. 환율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동한 다. 중기적 수준에서 안정적인 환율을 합리적으로 유지하는 최선이자 유 일한 방법은 근본적으로 미국이 그리고 해외의 다른 국가들이 통화 정책 과 재정 정책을 올바르게 설정하는 것이다.”167) 그리고 “일본의 자본 조 달 비용이 (현재 상황에서) 약 2.5%인데 반해 미국의 자본 조달 비용은 그에 약 세 배에 달하기 때문에 철강, 자동차, 가전 및 화학 산업과 같은 자본 집약적 산업에서 일본 기업이 미국 기업에 비해 현저한 비교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연준의 대책을 묻는 리글(Riegle) 상원의 원의 질문에 그린스펀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연준은 경제적, 금융적 시장 조건을 우호적으로 만듦으로써 미국 기업들의 (국제 무역에서의) 경

167) Committee on Banking, Housing and Urban Affairs, Nomination of Alan Greenspan Hearing before the Committee on Banking, Housing and Urban Affairs (Washington D.C.: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87), pp.61-63.

쟁 포지션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이 말은 자본 조달 비용을 증가시키는 높고 변동이 심한 인플레이션율, 과도한 환율 변동성 및 리스크 프리미엄 에 연관된 불확실성을 회피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대답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와 민간의 저축과 소비에 있어 총체적 균형을 맞 춰나가는 데에 영향을 끼치는 의회의 역할”이라고 답변했다.168) 그린스펀 은 정책 결정이 국내적 요인에 의해서 엄격하게 이루어지며, 환율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 셈이었다. 그러나 환율은 금리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 시기에 그린스펀은 행정부가 달러화 하락에 큰 관심이 없는 것이 금 융시장 안정과 물가조절능력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1988년 1월 4일, 달러화 가치가 연준의 마지막 회의일 기준으로 5%나 평가 절하되자 그린스펀은 자신의 임명 동의 청문회에서 했던 발언과는 반대로 외국 관계자들과 함께 달러의 평가 절하 추세를 저지하기로 했다.

달러화에 대한 연준의 우려에 대하여 G-7 금융 관계자도 공감하면서 새 로운 조치를 요구했다. 결국 연준은 외국의 중앙은행과 공동으로 대규모 의 외환 개입을 결정했다.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중앙은행과 협 력하여 연준은 외화를 매각하고 달러화를 매입했다.169)

루브르 합의 체결 이후 달러화의 추가적 평가 절하를 저지하기 위하여 미국은 독자적으로 시장 개입을 하거나 국제적 협력을 통한 시장 개입을 했다. 경상수지 적자 축소를 위하여 미국은 1988년 제정된 ‘포괄적통상경 쟁력법’의 통화 조작 조항을 통해 대미 흑자국들과 양자 간의 협상으로 상대국 통화의 평가 절상을 압박하는 한편,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라는 명 분으로 상대국의 상품 및 자본 시장의 개방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는 플라자 합의 이전 일본과의 ‘엔-달러 합의’와 유사한 면을 보이기도 하지 만, 통상법은 이보다 훨씬 강력한 압박 무기였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미국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흑자를 무역 불균형의 또 다른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플라자 합의, 루브르 합의 이후 미국의 대 일본 무역 적자는 감소 추세를 보였으며, 엔-달러

168) Ibid., pp.66-67.

169) Beckner, op.cit., pp.102-103.

환율 역시 달러화의 평가 절하가 이루어졌고, 일본의 상품 및 자본 시장 개방도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일본을 제외하고 대미 무역 흑자국으로 급 격하게 부상하고 있던 국가들이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이었다. 1989년 5 월 12일, 상원 ‘금융위원회 산하 국제무역소위원회(Subcommittee on International Trade of Committee on Finance)’는 ‘통화 조작 청문회 (Currency Manipulation Hearing)’를 개최했다. 이 청문회는 1986년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과 환율 문제에 대한 협상을 시작한 후, ‘포괄적통 상경쟁력법(통상법, Omnibus Trade and Competitiveness Act)’의 ‘통 화 조작 조항(Provision of currency manipulation)’에 따라 그해 10 월, 재무부가 한국과 대만을 통화 조작국으로 지정한 후 두 국가와의 협 상이 강화된 후에 개최되었다.

청문회에서 당시 재무부 차관 후보자였던 멀포드(Mulford)는 두 국가 가 환율 조작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이유로 “첫째, 시장에서의 (해당 통 화의) 힘이 환율에 반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자본 통제와 행정 메커 니즘이 존재한다는 것과, 둘째,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대규모로 개입하 고 있다는 것, 셋째, GNP대비 대규모 국제 수지 흑자를 보였던 시기에도 환율의 평가 절상이 없었던 것”을 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두 국가와 “통 화 조작 및 성장의 원천으로서 국내 수요 확대와 금융 시장 자유화를 강 조하는 협상”이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 “한국과 대만의 통화 가치가 평가 절상되었고, 시장을 개방하며 금융 시스템을 국제화하는 다양한 조치”를 취하여 “1988년에 들어와 원화는 약 16% 평가 절상되었지만 여전히 미 국은 한국에 대해 95억$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 의 대미 무역 흑자 감축 추세가 지속되고 강화되기 위하여 추가적인 원화 의 평가 절상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대만과 한국에 대해 지속적으 로 모니터할 것”이라고 했다.170)

그런데 이 청문회에서 멀포드는 환율 조작의 해결을 위한 협상과 무역 적자 감축을 위한 통상법 슈퍼301조의 발동과 같은 협상을 결합하여 진

170) Subcommittee on International Trade of Committee on Finance, Currency Manipulation Hearing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89), pp.5-6.

행하자는 제안에 대해 “환율의 문제는 두 국가들의 구조 변화와 연관된 문제”라면서 완곡하게 거부의사를 보였다. 결국 환율 조정 문제를 둘러싼 협상에 대해 재무부는 한편으로는 무역 적자 감축을 위한 협상이라는 측 면에서 접근하기도 하지만, 상품 시장과 자본 시장 개방이라는 측면을 보 다 근본적인 목표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또한 루브르 합의 이후 엔-달러 환율 조정과 일본 자본의 미국 투자 등으로 무역 적자 조 정의 주요 대상이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로 변화하였는데, 이들 국가들과 는 양자 간 협상을 통한 통화의 평가 절상 압박뿐만이 아니라 경제의 구 조적 개혁-상품 시장과 자본 시장의 개방-이 협상에서 재무부가 갖고 있 는 보다 근본적인 목적이었다.

무역 적자 문제 해결을 위한 외환 시장 개입에 있어 플라자 합의와 루 브르 합의 이후 미국에서의 입장 변화는 함께 협력적 개입을 했던 G-7에 서도 나타났다. 1987년 2월의 루브르 합의에 뒤 이어 1987년 11월의 G-7 회합에서는 “세계 경제의 주요한 불균형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관점 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미국과 독일 및 일본이 대외 조정을 촉진하 는 방향으로 정책적 선회”를 했으며, “지난 몇 년간 이루어진 환율 안정 성이 이러한 조정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검은 월요일 이후)

“지난 몇 주 간의 (달러화가 추가적으로 평가 절하된) 환율 변화는 경제 적 기초 여건을 강화하고 정책 협조를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게 한다면서, “건강한 경제 정책과 효율적인 협력으로 성장 률이 지속되어야만 하고, 이를 위해 비인플레이션적인 성장을 위한 적절 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합의”를 이루었다고 했다.171) 그리고 이어서 1987 년 말, G-7은 금융시장의 안정을 촉진시키고 물가안정 하에 높은 경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금융여건을 조성하는 금융정책에 합의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해외 자본의 유입을 통해 상쇄되어야 하는 문 제였기에 이는 곧 미국의 해외 부채의 확대로 귀결된다. 1988년 9월 13 일, 미국 의회의 ‘공동 경제위원회(Joint Economic Committee)’에서 개

171) Group of 7, “Statement of G7 Finance Ministers and Central Bank Governors,” (December 22, 1987). (http://www.g8.utoronto.ca/finance/

fm871222.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