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미국의 금융화와 역플라자 합의
1) 금융화의 진전과 강한 달러 정책으로의 선회
부시 행정부에 이어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1993년, 미국경제 는 18개월 동안의 경기 후퇴가 일단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정말 심각하게 문제가 나타난 분야는 정부 재정 적자였다. 1980년까지만 해도 21.7%에 머물렀던 GDP 대비 정부 순부채 비율이 1993년 46.4%까지 치솟았고, 이 는 대다수 다른 선진 자본주의 경제의 산더미 같은 정부 부채와 결합되면 서 이자율에 대한 상향 압력을 가중시켰다.179)
이러한 상황에서 클린턴 행정부는 재정적자에 대해 감축할 것인지, 아 니면 재정적자에 계속 의존할 것인지 선택해야했다. 만일 연방 재정적자 를 감축하고자 한다면, 저금리와 재정 적자에 의존하여 경기 후퇴를 마감 하고 막 상승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한 경기 순환 주기가 지속되리라는 보 장이 없었다. 반대로 적자 예산을 집행하여 정부 부채가 더욱 늘어난다 면, 국채 이자율이 상승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전반적인 이자율이
179) OECD, Economic Survey of the United States 1992~1993, Brenner, 2001, p.352에서 재인용
급격하게 상승할 가능성이 컸다. 이는 일본의 경제 상황과 직접적인 연관 이 있었다. 재정 적자에 대해 미국이 발행하는 국채는 대미 무역에서 흑 자를 보았던 일본 투자자들의 구매 비중이 매우 컸다. 그런데 문제는 클 린턴이 취임하던 당시, 플라자 합의 이후 거품이 붕괴되면서 일본 경제가 경기 후퇴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일본의 투자자들은 자국에 발이 묶이게 되었으며, 미 재무성 채권 구매를 확대할 여력이 없 었으며, 그에 따라 미국은 정부 부채의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이었다.180)
이에 대한 클린턴 행정부의 선택은 균형 예산이었다. 클린턴 행정부의 균형 재정은 국내 수요 억제를 통해 성취 가능한 것이었으며, 이를 위하 여 임금 상승과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정책 수단이 요구되었다. 임금 상 승과 물가 상승의 억제는 제조업의 이윤율 회복과 투자 주도의 성장을 위 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주가 상승으로 인한 이익과 대출 자 산 가치 유지를 위해 인플레이션을 반대하던 금융 부문의 이해관계와 일 치하는 것이었다. 그린스펀은 신용 긴축으로 클린턴의 균형 예산 정책을 지원했다.
1994년 2월에서 1995년 2월 까지 1년 동안 네 번이나 이자율을 인상 했으며, 인상율도 1년에 3%나 되는 급격한 인상이었다. 이는 인플레이션 을 통한 이윤 잠식에 대한 월가의 의구심을 모두 없애주는 것이었다.
1994년,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인하여 1995년 미국 경제는 일시적으로 후퇴하였지만, 연준이 다시 통화 팽창 정책으로 복귀한 1995년 중반 이 후 다시 활력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달러 평가 절하, 임금 억제 및 감 세 조치 등으로 제조업 부문이 이윤율을 회복하면서 미국 경제에 전반적 으로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 다음 <그림 4-4>가 1990년대 미국의 연방 금리(federal fund rate) 변화추이이다.
180) Murphy, op.cit., pp.272-274.
<그림 4-4> 미국 연방금리 변화 추이, 1985년~1995년
(출처 :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기간을 1985년~1995년으 로 설정)
그런데 문제는 다시 확대되고 있는 경상수지 적자였다.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합의 이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축소되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1990년 경상수지 균형에 도달했다. 이는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합의로 달러화를 평가 절하한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91년부터 경상수지 적자는 다시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경상수지 적자 는 결국 자본계정의 흑자로 상쇄되어야 하는데, 경상수지 적자 확대에 대 한 그린스펀의 설명을 통해 경상수지 적자에 대한 미국의 대응 변화를 확 인할 수 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의 역사적인 상승은 …… 연방 예산 적자설과 같 이, ‘단독범’에 의한 설명이 가지는 매력은 없지만, 국제금융의 일상적인 현실에는 보다 잘 부합된다. 지난 10년 간 미국의 대외 적자가 증가한 것은 세계화에서 뚜렷이 나타나는 새로운 국면과 일치하는 듯 보인다.
이에 핵심적으로 기여한 요소는 소위 ‘홈바이어스(home bias)’181)의 감 소와 미국 생산성 성장 속도의 현저한 증가이다 …… 1990년대부터 홈 바이어스는 눈에 띠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 (이와 더불어) ‘위험 조 정 투자회수율’에 대한 각국의 차이도 하나의 기여 요소가 되었을 것이 다. 1995년 이래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의 상승세(여전히 낮은 해외 수 치에 비하면)는 분명 그에 따르는 위험 조정 기대수익률을 높였고, 이는 다시 세계 전역에서 미국에 기반을 둔 자산에 대한 수요를 다른 국가에 기반을 둔 자산에 비해 더 크게 증가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국경 너머 저축의 그토록 많은 부분이 어떻게 미국으로 향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때 큰 도움이 된다.”182)
이러한 그린스펀의 설명은 루브르 합의 이후 축소되던 경상수지 적자가 1990년 균형을 이룬 이후 다시 급격하게 확대되던 상황을 이해할 수 있 게 한다. 즉 미국에서 금융화가 진전될수록 소위 위험 조정 투자회수율에 따라 국제 자본의 흐름은 미국으로 향하게 될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의 ‘신경제’가 시작되었으며, ‘신경제’의 성과가 나타날수록 더 많은 국제 자본의 유입이 필요해질 것이었다. 따라서 금융화가 진행되는 과정 에서 무역 적자에 대한 접근 방식이 국제 자본의 유입에 긍정적이지 않은 달러화의 평가 절하에서 국제적 거버넌스 혹은 양자 관계를 통한 무역 장 벽의 제거, 보조금 지급 축소 등으로 전환하게 된 것이었다.
무역 적자 문제에 대한 정책이 달러화를 평가 절하했던 플라자 합의의 입장에서 해당국과의 양자적 협상 및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한 다자적 협 상으로 변화하면서 달러화의 환율 문제에 대한 입장 변화가 나타났다. 먼 저 1994년, 하원의 ‘은행위원회’에서 개최한 ‘연준 통화 정책 반기보고서
181) 투자자가 자신의 저축을 수익성이 좀 더 높은 해외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 자신의 모국에 투자하는 선택을 하는 경향을 말한다. 낯선 환경에 투자하는 것보다 자신이 익 숙한 환경에 투자할 때 투자 리스크가 작다고 느끼는 편향을 의미한다.
182) Greenspan, op.cit., pp.506-508.
에 대한 청문회(Federal Reserve’s Semiannual Report on Monetary Policy-1994)’에서 그린스펀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환율은 미국 경제에 있어 수입제품 가격과 수입제품과 경쟁하는 국내 제품의 가격뿐만 아니라 수출과 수입의 양에 대한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 핵심적인 가격이다. 또한 달러화의 가치는 인플레이션을 예측함에 있어 매우 유용한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적절한 통화 정책을 수행한다면 우리는 굳건한 경제 성장과 가격 안정을 얻을 수 있 을 것이고, 그러면 이러한 경제적 결과는 달러 표시 자산이 국제 투자 자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달러화가 세 계의 으뜸가는 준비 통화로서 지속적으로 역할을 함에 있어 매우 중요 한 요소이다.”183)
그린스펀은 이 답변을 통해서 환율이 여전히 수출 경쟁력의 주요한 요 소 중의 하나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지만, 환율은 건전한 거시 경제 정책 을 통해 관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었다. 연준은 당연히 건 전한 거시 경제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건전 한 거시 경제 정책을 통해 달러 표시 자산의 매력이 상승하여 국제 자본 이 유입된다면 그에 수반된 달러화의 평가 절상에 대해 연준은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피력했다고 할 수 있다. 금융 세력들의 이해 관계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연준의 수장 그린스펀의 이러한 답변은 당시 금융화가 상당히 진척되었던 미국에서 금융 세력들의 선호가 국제 자본 유입이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 해 뒤, 달러화의 가치가 가장 낮았던 1995년 1월, 1995년, 상원의 금융위원회가 개최한 ‘루빈 재무부 장관 임명 청문회(Nomination of Robert E. Rubin Hearing)’에서 뉴저지 주 상원의원 브래들리는 “당 신은 재무부에서 환율 정책의 책임자였다. 지난 몇 년간 일본에 대해 취 했던 약한 달러화 대 강한 엔화라는 접근법이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183) Committee on Banking, Finance and Urban Affairs, US House of Representative, Federal Reserve’s Semiannual Report on Monetary Policy-1994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94), p.20.
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루빈 장관 후보자는 “미 국 정부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상당히 오랫동안 강한 달러가 미국에 매우 큰 이익이라고 믿는다. 미국은 환율을 경제 정책의 도구로 사용한 적이 없었다. 환율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의 기본적 성과 (fundamentals)를 반영하는 것이며, 미국 경제의 기본적 성과는 좋기 때 문에 그를 반영하여 결과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달러화의 가치는 평가 절상 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대답했다.184)
경제 상황을 반영하여 환율이 결정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전제로 하고 있었지만,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이 엔고 불황에 시달리는 경기 침 체로 소위 ‘잃어버린 10년’에 빠져 있었고, 미국은 신경제의 경기 호황이 시작된 상태에서, 경제의 기본적 성과를 반영하여 환율이 결정되어야 한 다는 말은 사실상 달러화의 평가 절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이 었다. 이는 루브르 합의 이후 달러화의 추가적 하락을 저지하는 의미의 환율 안정이 재무부의 입장이었음을 감안할 때 큰 변화였다. 바로 루빈의
‘강한 달러 정책(Strong Dollar Policy)’의 천명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기 강한 달러, 즉 달러화의 평가 절상이 미국 경제에 주 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달러화의 평가 절상은 미국이 수입하는 제품의 가격을 하락시켜 미국 경제에 있어 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여 인플레 이션을 방지할 수 있으며, 달러화의 지나친 평가 절하로 인하여 다른 국 가들이 국제 기축통화인 달러화로부터의 이탈할 가능성을 방지할 수 있었 다. 특히 루빈은 일본에게 더 큰 시장 개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도와 줄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달러화의 추가적인 평가 절하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월스트리트의 외환 트레이더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던 믿음을 잠 재우고자 했던 것이었다. 루빈은 “미국은 달러화를 무역 정책의 도구로 사용한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의도를 분 명하게 했다.
184) Committee on Finance, Senate, Nomination of Robert E. Rubin Hearing (Washington D.C.: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95), 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