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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주도 성장 레짐의 제도적 공고화

V. 전환의 결과

2) 금융 주도 성장 레짐의 제도적 공고화

한 이윤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경제의 금융 주도 성장 레짐으로의 전환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전환에 있어 1995년 을 전후 한 시기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 역시 위의 그림들을 통 해 확인할 수 있다.

역플라자 합의는 위기의 일본 제조업에 대한 구원이기도 하지만, 경상 수지 적자가 날로 확대되어가던 미국에 있어, 금융 주도 성장 레짐이 공 고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미국의 금융 주도 성장은 1990년대 중 반 이후 국제 금융 시장을 급속도록 팽창시켰으며, 대미 무역 흑자국의 자본이 미국으로 환류될 수 있는 충분한 금융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 시 기에 있었던 IT 산업의 성장은 본질적으로 금융적 성장, 즉 주가 상승 등 이었는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나스닥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한 자금을 흡수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게 된 것이었다. 이제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는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트리핀 딜레마를 극복하 고 달러 환류가 충분히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달러의 (조정 부담을) 연기하는 권력이 금융을 통해 제도적으로 발현하게 되었다.2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귬융화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은행이나 기관투자자가 아닌 과거에 산업적 축적을 주도 했던 법인기업이었다. 미국의 법인기업은 1970~80년대에 사업을 다각화 하여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를 급격히 늘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0년 대에 이르러서는 법인기업 총이윤에서 금융·보험·부동산(FIRE)이 차지하는 비중이 제조업의 비중을 능가하게 되었다. 법인기업은 금융기관을 인수하 여 자회사로 운영하면서 기업의 내부 금융시장을 형성하거나 또는 독자적 인 금융거래를 조직, 통제했다.214)

산업그룹들이 금융 산업에 진출한 초기에는 금융 산업의 진출이란 산업 그룹들에게 재산의 관리 수단을 제공하고, 소요 확장자금을 조달하며, 대 고객신용(특히 임대차)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차 금융 활동 진출 을 통해 (같은 산업그룹 내의) 다른 자회사들에게 부수적인 서비스를 제 공함으로써 그룹 내부에 수직적으로 통합되어 있던 그룹 은행이 그 자체 가 전략적 활동을 수행하는 이윤센터가 되면서 그룹에 수평적으로 통합되 어 갔다.215)

뿐만 아니라 법인기업이 주도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금융적 팽창’에서 증권시장을 통한 인수·합병은 특히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초 정크 본드(junk bond) 시장의 붕괴로 소강상태를 보였던 인수·합병은 199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공개기업의 합병 또는 일부 사업부문의 흡수 를 중심으로 다시 급증했다. 인수·합병은 시장 지배력의 증대, 규모의 경

213) 이렇게 형성된 새로운 금융질서는 미국의 재무부, 연방준비제도, 증권거래위원회 및 월스트리트의 다양한 금유기관들의 영향력 아래 만들어졌다. 브레튼우즈 체제와 구별되 는 포스트 브레튼우즈 체제를 Gowan은 ‘달러-월스트리트 체제’로 명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Peter Gowan (1999), The Global Gamble: Washington's Faustian Bid for World Dominance (London: Verso). 참조.

214) 박상현, op.cit, p.269.

215) Françius Chesnais, La mondialisation du Capital, 서익진 역, 『자본의 세계화』

(파주: 도서출판 한울, 2003), p.247.

제 및 시너지 효과의 극대화, 유통비용 및 정보비용의 절감, 새로운 시장 에 대한 접근, 정부 규제의 회피, 지적 재산권 확보 및 연장, 연구·개발 비용의 절감, 수익성이 낮은 자회사 및 생산라인의 매각, 주식가치의 시 세차익을 통한 금융소득 획득 등 다양한 이윤창출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 었다.216)

이러한 금융적 팽창을 통해서 1990년대에 들어와 미국 경제는 이전과 는 달라진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게 된다. 첫째 이윤이 상품의 생산과 유통보다는 주로 금융 채널을 통해 획득되었다. 금융 이윤은 소비자금융 의 확대와 부채 활용에 따른 자산 가치 상승으로 금융 부문 내부에서 창 출되었다. 1980년대 규제 완화와 금융 혁신을 배경으로 금융 이윤이 급 속히 증가하였는데, 제조업 이윤이 급격히 감소한 1990년대 후반기에도 금융 이윤의 증가 추세는 지속되었다. 금융은 실물 자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독자적인 이윤 획득 기반을 창출하면서 이윤 증가를 주도한 것이 었다. 둘째 기업금융에서 가계금융으로의 전환에 따라 금융 부문과 실물 부문의 연계가 기업의 투자지출에서 가계의 소비지출로 이동하였다.

1980년대 이후 경제 전체의 부채비율이 증가하였는데, 실물 기업의 부채 비율은 완만한 증가세를 보인 반면, 금융 부문과 가계 부문의 부채 비율 은 급속히 증가하였다. 특히 금융기관이 레버리지를 활용해 고위험 · 고 수익을 추구하면서 금융 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1990년대 후 반부터 금융 부문의 부채가 가계 부문을 추월하면서 부채 증가를 주도하 였다. 이로부터 미국경제의 성장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가 실물 부문의 투 자와 이윤율에서 가계와 금융 부문의 부채 비율로 달라진 것이다.217) 이 러한 특징은 1990년대 이후 이윤이 금융 채널을 통해 주로 획득되고, 금 융이 거시경제의 변동성을 좌우하는 금융주도 성장레짐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 자본의 이동성이 보장되면서 주변부의 금융위기가 일어나자 위기를 회피(risk aversion)하려는 국제 자본이 미국으로 유입되면서, 저금리와 달러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216) 박상현, op.cit., pp.269-270.

217) 홍장표, op.cit., p.258.

이윤율 저하에 시달리고 있었던 미국 경제에 금융화(financialization) 과 정을 통해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러한 미국 경제 금융화 과정은 국내적으로 보자면, 1960년대 이후 지속되어온 제조업의 이윤율 저하와 볼커 전환에서 나타난 금융 산업의 급속한 이윤율 성장을 통해 브레튼우즈 체제의 억압적인 금융질서를 지지하던 정치적 연합이 해 체되기 시작하고, 금융화를 지지하는 정치 연합이 나타나기 시작한 현실 에 기인한다. 다른 한편으로 국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브레튼우즈 체제 붕 괴 이후 변화한 국제 금융통화 체제에 있어, 기축통화 달러화의 위상을 지키기 위한 글로벌 차원의 달러화 수요 창출 노력의 일환으로 자본의 자 유화, 금융의 개방화를 통해 국제금융통화 체제를 새롭게 구축할 필요가 제기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 새롭게 구축된 국제금융 통화체제를 중심국의 성장레짐이 금융주도 성장레짐 으로 전환된 것의 대외적인 투사로 간주한다면, 이에는 제도적으로 중요한 전제가 필요하 다. 미국의 대외적자로부터 연유되는 막대한 유동성을 재순환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시장과 중개인의 세계적인 네트워크는 바로 그런 제도적 요건 을 충족시키는 핵심 기제였다. 이 전제 조건이 미국의 적자로부터 유발되 는 국제통화 수요를 안정적이며 점증적인 방식으로 충족시키는 달러화의 독특한 능력(위상)인 국제준비금, 거래의 계산과 회계 단위 그리고 국제 거래의 수단이라는 달러화의 독보적인 역할에 접목돼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국민소득의 중요한 원천으로서 발권력이 부각되는 상황은 미국 의 부채거래를 위해서 필요한 치밀하게 짜인 시장을 형성하는 데 대단히 유효했던 미국 민간금융의 국제화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218)

따라서 미국 경제의 금융화는 미국의 일국적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 에 세계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야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러한 금융 화의 과정은 1980년대에 시작되어 1990년대를 거치면서 완성되어 갔으 며, 역플라자 합의라는 계기를 통해 금융주도 성장레짐이 공고화되어 미 국 경제 발전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게 되었다.

218) Ivanova, op.cit., pp. 104-119.

이제까지 역플라자 합의를 전후하여 미국 경제가 금융주도 성장레짐으 로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진 것을 살펴보았다. 과거 미국의 적자에 대한 융자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국가는 최대 대미 흑자국 일본이었다. 그러 나 일본의 거품이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에 붕괴하게 되자 2000년대 에 들어와 이 역할은 중국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1990년대는 일본과 중국의 세력 전이가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흔히 말하는 글로벌 불균형이 미국 경제의 금융주도 성장레짐의 공고화와 맞물리면서 대미 흑자국이 일 본에서 중국이라는 파트너로 교체되면서 고착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확대는 자본 계정의 흑자를 통해 상쇄되어야 했 으며, 따라서 브레튼우즈 시기에서부터 정착된 달러화의 환류 시스템이 더욱 원활하게 작동해야 했다. 그런데 중국은 과거의 일본과 달리 미국과 의 동맹국도 아니었으며, 중국의 위안화 환율은 국가가 직접 통제하는 관 리통화제였기 때문에 환율 조정을 위한 중국과의 관계는 일본과의 관계에 비해 훨씬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는 경상수지 적자를 관리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셈이었다.

(2) 글로벌 불균형 : 중국의 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