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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볼커 전환에서 플라자 합의, 루브르 합의까지

2) 보호주의의 대두

이다. 반면 주변부 국가들의 경우 금융시스템이 성숙하지 않았기에 외부 금융 환경의 변화에 쉽사리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달러 패권 유지 메커니즘의 중요한 일면이라 하겠다.75) 따라서 통화 패권 국의 자격이 ‘최후의 채무자(borrower of last resort)’가 될 수 있는 능 력에 달려 있다는 역설적 주장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이 볼커 전환 이 후 제3세계 부채 위기가 등장하면서 미국에로 자본 유입이 일어나게 된 과정이다.76)

이 시기 미국에로의 자본유입은 1981년 약 860억 달러, 1982년 950억 달러였지만, 멕시코의 채무 불이행 이후인 1983년 870억 달러로부터, 1984년 1,160억 달러, 1985년 1,440억 달러, 1986년 2,280억 달러 등으 로 대폭 확대되었다.77) 미국에로의 자본 유입이란 결국 달러화 및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한 수요를 의미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자율의 하향 안정화 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로의 자본 유입으로 인하여 오히려 달러화는 평가절 상 되었다.

결국 레이건 행정부는 쌍둥이 적자를 국채 발행과 더불어 국제 자본의 유입, 즉 자본 수지 흑자를 통해 상쇄할 수 있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 자는 각국의 공적 대외 준비금과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잉여 달러인 민간 자금이 달러 표시 자산을 통해 다시 미국으로 환류되는 시스템이 구축되 면서 해결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 재구축된 달 러 패권 하의 국제금융통화체제이다.78) 다음 <그림 3-10>이 1980년대

75) Vasudeva에 따르면 미국과 여타 국가들의 이러한 이해관계의 불일치를 삼각 조정 메 커니즘이라 한다. Ramma Vausdevan, “The Borrower of Last Resort:

International Adjustment and Liquidity in a Historical Perspective,” Journal of Economic issues, Vol. XLII, No.4 (December 2008), p.1055.

76) Ibid., 2008, p.1073.

77) 김기수, op.cit., p.613.

78) 만일 미국이 해외에서의 자본 조달을 통해 자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는 것이 불 가능하다면, 미국은 오직 주조권(seigniorage)에서 비롯되는 차익에 의존할 수밖에 없 었을 것이다. 즉 달러를 찍어 적자를 보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달 러 가치는 폭락하고, 때문에 미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의 거대한 조정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물론 미국은 지난 2007-8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양적 완화(QE, Quantitative Easing), 즉 막대한 달러화 발행을 통해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화의 가치가 폭락하지 않았던 데에는 2011년 남유럽 금융위기를 거치면 서 미국에로의 국제적 자본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로의 자본 유입 추세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림 3-10> 1970년대~1980년대 미국에로의 자본 유입 추이 변화

(출처 : Federal Reserve Bank of St. Louis)

달러화의 환율은 달러 인덱스 기준으로 1978년 84.0으로 최저치를 기 록한 이후, 1979년 볼커 전환 이후 꾸준히 상승하여 1985년 125를 상회 하면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달러화의 지속적인 강세는 미국의 경 상수지를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위상에도 악영향 을 주는 것이었다. 변동환율제 하에서 하나의 통화가 지속적으로 강세를 보이게 되거나, 혹은 지속적으로 약세를 보이게 되면 이는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투기의 대상이 되는 통화의 가치는 변동성이 급격하게 확대 된다. 일반적인 통화의 경우 투기 세력의 공격에 대해 자국이 보유한 준 비금-달러-를 매도하거나, 달러를 매수하면서 자국 통화의 환율을 방어하

게 된다. 이 경우 자국의 통화 정책에는 심각한 악영향을 주게 된다. 그 러나 국제 기축통화인 달러화가 급격한 변동성을 보이게 되면 이는 미국 의 통화 정책뿐만 아니라 국제 무역 거래에 심각한 위협이 되며, 나아가 국제 금융통화 시스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즉 기축통화 달러의 가치를 안정시키는 것은 달러 발행국인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제경제시스템 전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다음 <그림 3-11>이 1980년대 달러화 가치 변화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 변화 추이 이다.

<그림 3-11> 1980년대 달러 인덱스 변화 추이

(출처 :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기간을 1980년~1990년으 로 설정)

쌍둥이 적자가 누증되면서 미국 의회 내에서는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법 안을 통과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아울러 미국의 수많은 기업 경영 자들은 달러화 강세의 완화를 요구하는 강력한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었

다. 미국의 무역 적자는 1982년 420억 달러, 1983년 700억 달러, 그리고 1984년 1,230억 달러를 기록하였으며, 레이건이 집권한 지 불과 5년 사 이에 누적 규모로 무려 4,230억 달러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산업계에서는 보호무역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으며, 의회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압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85년에 들어와 미국 의회에서 300개 이상의 무역 관련 법안이 도입되었는데, 이중 99개는 직접적이고 심각하게 보호무역주의적인 법안이었으며, 77개는 잠재적으로 보호무역주 의적인 것이었다.79)

그러나 이러한 산업계와 의회의 보호주의 압력이 강화됨에 따라 행정부 의 반응도 변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 행정부의 입장은 문제가 미 국 자신에 있다는 것이었다. 1983년도 경제 상황에 대한 대통령 경제보 고서에서는 달러화 평가 절상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구매력 평가 지수(purchasing power parity) 이론에 따르면 환율 변 화의 정도는 해외와 국내 인플레이션율의 차이와 동일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달러화의 평가 절상은 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당 시의 “달러화 평가 절상은 미국 제품에 대한 수요 증가에 기인한 것이 아 니라 미국 자산에 대한 수요 증가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는 “미국의 이자율이 1982년부터 하락한 것에 비추어보면 이자율 격차 때문이라기보다 제3세계 부채위기 등과 같은 금융적 불안정 상황에서 안 전한 피난처(safe haven)를 찾는 투자자들의 열망에 기인한 것”이라고 분석이었다. 그런데 “달러화의 평가 절상은 미국 기업들의 생산비용이 해 외 경쟁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승하게 하므로, 미국 기업의 국제적 경 쟁력을 심각하게 악화”시켰으며, 결국 미국의 무역 적자는 확대되었다고 했다. “1983년은 기록적인 무역 적자와 경상 수지 적자로 귀결될 것”인 데, “향후에도 무역 적자가 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은 미국의 재정 수지 적자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즉 미국 무역 적자의 주요한 원 인은 파리 혹은 도쿄가 아니라 워싱턴에서 발견된다는 것이었다.80)

79) 이 당시 미국의 보호무역을 요구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I. M. Destler, American Trade Politics: System under stress (Washington, D.C.: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1986) 참조.

그러나 미국의 산업계에서는 행정부에 대해 달러화의 평가 절하를 통한 수출 경쟁력 강화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었으며, 의회와 행정부 고위 관 리들에 대해서도 무언가를 하라는 요구가 강력하게 나타났다. 유권자들로 부터의 압력을 느끼고 있던 의회 지도자들은 만일 행정부가 아무 것도 하 지 않는다면 무역 적자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을 의회 차원에서 하겠다고 행정부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81)

캐터필러 트랙터 사의 회장이었던 모건(Morgan)은 강한 달러화와 약한 엔화로 인하여 자신의 회사를 포함해 수 백 개의 회사들은 국내외적으로 일본 경쟁자들에 비해 수십억 달러를 손해보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당시 엔-달러 문제를 다룬 ‘머치슨-솔로몬 보고서(Murchison- Solomon Report)’를 인용하여 일본 금융 정책의 기본적인 결과가 엔화 의 과소평가 때문에 외국인들이 엔화를 보유하는 것이 어렵고, 또 보유하 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끼게 한다고 이야기 했다. 모건은 당면한 과소평가된 엔화는 미국이 수입하는 일본 제품에 20% 보조금을 주는 것 과 같은 반면에 미국이 수출하는 제품에 20% 관세를 부과하는 것과 같다 고 주장했다.82) 그는 이러한 당시 산업계의 불만을 레이건 대통령에게 직 접 전달했다. 당시 미국의 산업계와 의회 보호주의 세력들의 요구는 달러 화의 평가 절하를 위해 정부가 보다 분명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 다. 이러한 입장은 다음의 청문회 자료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1985년 11월 14일과 19일 이틀에 걸쳐 열렸던 미국 하원의 ‘금융위원 회산하국제금융무역통화정책소위원회(Subcommittee on International

80) Economic Report of President, 1983 (Washington D.C.: Government Printing Office), pp.61 -67.

81) R. Taggart Murphy, The Weight of the Yen (New York:

W.W.Norton&Company, 1997), p.170.

82) 환율 문제로 인한 미국 산업계의 손실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는 미국 하원 금융위원회 산하 국제 금융, 무역, 통화 정책 소위원회의 ‘전략적 자본준비금법 청문회’ 참조.

Subcommittee on International Finance, Trade and Monetary Policy of the Committee on Banking, Finance and Urban Affairs House of Representative, The Strategic Capital Reserve Act of 1985 Hearings before the Subcommittee on International Finance, Trade and Monetary Policy of the Committee on Banking, Finance and Urban Affairs House of Representative, (Washington,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86).

Finance, Trade and Monetary Policy of the Committee on Banking, Finance and Urban Affairs)’의 ‘전략적 자본준비금법(The Strategic Capital Reserve Act of 1985)’ 청문회에서 캐터필러 트랙터 사의 대정부 업무 담당 책임자 칼러(Richard Kahler)는 서면 답변을 통 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4년 동안 캐터필러사는 과대평가된 달러화와 과소평가된 엔화의 불 균형 문제를 미국의 무역과 경제적 관심사의 핵심적 문제점으로 제기해 왔다. 미-일 산업 협의회와 같은 다른 기구들도 미국과 일본 간의 양자 관계에 있어 강한 달러화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미국과 일본의 경제인 들은 하원에서 고려되고 있는 (그리고 이미 입법된) 보호주의적 법안들 이 미국의 이익에 심각한 무역 문제를 만들어내는 (환율과 같은) 근본적 인 경제적 문제점들에 대한 미국 정책결정자들의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회사들 사이에 관점의 수렴이 있 었고 의회와 행정부에게 환율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시켰지만, 이 문제 의 해결을 위한 노력은 단지 지난 몇 개월 동안에만 이루어졌다. 플라 자 합의는 중요한 첫 단계이다. 우리는 환율이 적정한 관계로 회귀하고 미국 회사들이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필요한 조건들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 강한 달러화의 거시경제적 영향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미국에서 2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둘째, 값싼 수입품의 대규모 유입으로 미국 GNP 성장이 감소했다. 셋째, 미국 산업 토대가 약화되고, 우리의 인적 자본이 충분 히 활용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장기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국제 투자 패턴에서의 변화이다. 미국 회사들은 (실업 문제와도 연관된) 부품 의 주문과 제품 생산을 조만간 해외에서 하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1984년의 연구에 따르면, 주로 미국의 자본재 영역에서 77%의 응답자 들이 점점 더 외주화(outsourcing)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생산 과 일자리가 미국에서 외부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캐터 필러 사를 위시한 미국 산업계의 생생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환율 시스템은 분명 실패했으며, 캐터필러 사를 위시한 다른 미국 회사들을 약화시켰다. 미국의 산업과 노동자들은 되돌릴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캐터필러 사는 고용과 제조 시설을 감축하는 등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