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볼커 전환에서 플라자 합의, 루브르 합의까지
1) 일본의 통화 팽창과 자산 거품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의 대 달러 환율 변동은 급격하게 나타났다. 플 라자 합의 직전 1달러 당 260엔까지 도달했던 엔-달러 환율은 플라자 합 의 이후 약 세 달 만인 1985년 12월에 1달러 당 200¥엔에 도달했다.
그 이후에도 엔화 강세는 내내 지속되어 루브르 합의 직후에 1달러 당 120엔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이러한 급격한 변동은 일본 및 미국 모두의 예측을 벗어난 것이었다. 1달러 당 200엔 범주 내에서 변동할 것으로 추 정했던 일본의 예측이나 글로벌 수지 균형을 위해서는 1달러 당 190 엔~200엔 수준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던 미국의 예측 모두를 넘는 변동폭 이었다.116) 다음 <그림 3-14>가 1980년대 엔-달러 환율 변동 추이이다.
115) Yoichi Funabashi, op.cit., p.243.
116) Bergsten, C. Fred and Cline, William R. The United States-Japan Economic Problem. (Washington, DC: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 1985), p.6.
<그림 3-14> 플라자 합의 이후 엔-달러 환율 변동 추이
(출처 : macrotrends.net)
플라자 합의가 이루어지고 나타난 급격한 환율 변동으로 일본의 수출은 막대한 타격을 받게 되었으며, 1986년, 일본 경제는 최악의 위기를 맞이 하게 되었다. 그 해에 수출은 실질 가격 기준으로 4.9% 감소했고, 민간기 업 경제 성장은 1.2%로 떨어졌으며, 제조업 부문 산출은 실질적으로 감 소했고, 경제는 또 다시 대대적인 경기 후퇴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 였다. 이와 같은 조류를 역전시키기 위해 1986년 정부는 이자율을 5%에 서 3%로, 그리고 1987년에는 전후 가장 낮은 수준인 2.5%까지 대폭 인 하시키면서 극단적인 통화 팽창 정책을 시작했다.117)
그러나 일본의 통화 팽창 정책은 급격한 엔화 평가 절상 속도 조절에 실패한 반면,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과 ‘자산 거품(asset bubble)’
117) Robert Brenner, Turbulence in the World Economy, 전용복, 백승은 역, 『혼돈 의 기원: 세계 경제 위기의 역사』 (서울: 도서출판 이후, 2001), pp.384-385.
을 불러 일으켰다. 전후 일본 경제는 국내 소비와 수입의 억제를 바탕으 로 수출을 통한 성장을 구가했다. 수출 증가로 인한 흑자 확대로 엔화 가 치 상승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때문에 일본은 막대한 대미 흑자를 바탕으 로 축적된 잉여 달러를 다시 미 재무부 채권 구입 등을 통해 달러화 자산 으로 비축하였으며, 이는 달러화를 평가 절상시키고 엔화를 평가 절하시 키는 효과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플라자 합의로 달러화를 평가절하하 고 엔화를 평가절상하게 되면서, 일본의 경제 정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 이하게 되었다.
일본에 있어 엔화 가치가 1886년~1987년, 그리고 1993년~1995년에 주 기적으로 ‘구매력 평가 지수(PPP, Purchasing Power Parity)’ 이상으로 급격하게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이는 투자와 은행에 대한 신용 수 요를 급격하게 축소시켰다. 이러한 경향으로 엔화 가치가 장기적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존재했기 때문에 국제 투자자들은 달러화의 평 가 절하를 예상하고 엔화 채권 수익률 대비 달러 채권의 더 높은 명목 수 익률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그 결과 1985년 이전에 엔화 자산에 대한 명목 이자율은 미국의 약 9%에 비해 더 낮은 평균 약 4%에 머물렀다.
그렇지만 플라자 합의 이후 미국의 명목 이자율이 7%정도까지 하락하고, 엔화가 급격하게 평가 절상되면서 일본의 이자율이 급격하게 떨어졌 다.118)
엔화의 평가 절상으로 수출의 가격 경쟁력이 하락하게 되자 일본은 통 화 팽창 정책을 통해 유동성 공급을 확대했다. 이렇게 확대된 유동성을 통해 일본은 경기 부양과 자산 가치 증가에 따른 ‘부의 효과(wealth effect)’로 투자의 활성화를 꾀하고자 한 것이었다. 특히 루브르합의에서 일본의 과제가 바로 경기 부양을 통한 소비 진작이었기 때문에 합리적인 정책 선택으로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부의 효과’가 거품 경제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통화 팽창에 따라 풍부해진 유동성은 주식과 부동산을 향하게 되었다.
118) Ronald I. McKinnon and Kenichi Ohno, Dollar and Yen: Resolving Economic Conflict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Japan (Cambridge: The MIT Press, 1997), p.111.
거주용 및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이 1986년~1989년에 두 배로 증가하면 서 토지가격도 치솟았다. 한편 1989년 말 도쿄 주식거래소의 니케이 지 수는 역사상 고점에 도달했다. 이는 그 이전 2년 간 주가 지수의 두 배 수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부동산 회사들은 막대한 규모로 자금을 차입 하여 더 높은 가격에 매각할 목적으로 토지를 구입했다. 소비를 억제하고 저축을 높여 수출을 통해 지탱해주었던 소비자들은 저축률을 줄이고 지출 을 늘렸으며, 주택 건설 사업은 호황을 이루었다. 기업들은 대폭 상승한 그들의 주식 및 토지가치를 활용해, 화폐시장에서 값싸게 재원을 마련하 고 이를 보다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는 은행예금에 맡겨두는 방식의 금융 조작-재테크-에 뛰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간접 금융 방식을 통한 자금 조달에 대한 의존도 역시 감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기업들의 자산 가치 증식과 소비 수요의 확대는 1960년대 이후 가장 대규모로 공장 및 설비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986년~1991년에 민간기업 부문의 공 장, 설비 투자는 연평균 10.5%의 비율로 증가했으며, GDP는 매년 4.8%
씩 성장하면서 경제는 호황을 구가하는 듯이 보였다.119)
그렇지만 이 호황은 거품 경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의 또 다른 측면 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거품은 다름 아닌 일본 정부가 조장한 측면이 컸 다. 근본적으로 일본의 거품은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합의의 결과로 엔화 의 평가 절상에 따른 일본 수출경쟁력이 약화되자, 일본 정부가 ‘부의 효 과’를 통해 투자 확대와 소비 진작으로 이를 보충하고자 한 셈이었기 때 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일본 정부의 의도는 성공한 셈이었다. 문 제는 이러한 ‘부의 효과’가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부의 효과’로 인한 거품은 엔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평가 절상되던 상황에서 매 우 위험한 도박이었다. 일본 엔화 가치의 급격한 평가 절상은 결국 수출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면서 결국 1985년-1986년, 그리고 1993년 -1995년의 디플레이션 및 경기 하강의 원인이 되었다. 이에 대해 엔화의 평가 절상에 따른 경기 침체라는 의미에서 ‘엔고 불황(endaka fukyo)’이 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119) Murphy, op.cit., pp. 210-218.
1986년-1987년에 시작된 일본 주식 시장과 부동사 시장의 자산 거품 역시 엔화의 평가 절상과 연관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저금리는 일본의 통화 정책에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을 만들게 되었으며, 결국 지속 가능하지 않은 거품 경제를 야기함으로써 경기 침체를 벗어나고자 한 것 이었다.120) 다음 <그림 3-15>가 일본의 토지 가격과 주식 가격의 거품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림 3-15> 일본의 자산 가격 변화(1990년=100) : 주식 가격 지수 는 연간 평균, 토지 가격 지수는 3월 말 기준.
(출처 : IMF, International Financial Statistics)
120) McKinnon, Ohno, op.cit., 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