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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권력과 통화정치

II. 이론적 자원에 대한 검토

1) 통화 권력과 통화정치

Andrews는 ‘국제통화권력(international monetary power)’이란 한 국가의 행태가 다른 국가와의 통화 관계로 인하여 변화할 때 발현된다고 한다14). 국제통화권력이 행사되는 관계는 국가 간의 거시 수준(macro level)에서, 그리고 국내의 미시 수준(micro level)에서 나타난다. 이 두 수준은 서로 연계되어 있다. 즉 미시 수준의 행태가 거시 정책에서의 변 화에 대한 압력으로 결과할 수 있으며, 반대로 거시 수준에서의 행태가 미시 정책에서의 변화를 야기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두 수준은 분석 적 목적을 위해 구분될 필요가 있다. 국가는 일정 기간 동안 재화와 용역 의 무역, 다양한 형태의 자본 이동 등을 통해 통화의 유입과 유출을 겪는

14) David M. Andrews ed., International Monetary Power,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2006), p. 8.

다. 이러한 유입과 유출의 합이 바로 ‘국제수지균형(balance of payments)’이다. 그런데 국제수지가 항상 균형을 유지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국제수지의 불균형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문제이다. 국제수지의 불균형이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조정의 문제가 뒤따르게 된다.

조정이 수반되는 수지 불균형(혹은 예상되는 불균형)은 국가들이 선호하 는 정책을 포기해야하는 압력으로 결과할 수 있다. 이러한 불균형의 조정 문제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 들어와 국가 경제 정책의 성과에 대한 유권 자들의 기대가 커짐과 동시에 그에 대한 반응이 여론과 선거를 통해 작용 하기에 확연하게 중요한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그 결과 국가들 사이에서 조정 비용의 분배가 매우 논쟁적인 문제가 되었다. 흑자국 경제를 팽창시 켜서 혹은 적자국 경제를 축소시켜서 국제수지 균형이 회복될 수 있을 까? 이와 같은 문제는 매우 정치적이며 권력 관계가 그 해결에 있어 중 심적 역할을 한다. 따라서 거시 수준에서는 국제수지불균형의 조정 문제 가 통화 권력에 대한 토론에서 중심적인 문제가 된다. 그리고 통화 체제 는 미시 수준에서 정책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으로 민간 영역의 행태 와 개인의 의식을 형성할 수 있다. 또한 국제 통화 관계는 경제적 이익을 명료하게 재규정하고, 사회적 정체성을 재정의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볼 때, 거시 수준에서 핵심적인 이슈는 결국 조정의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미시 수준에서 핵심적인 이슈는 결국 조정을 통해 누가 혜택을 받는가 하는 문제이다.15)

국제수지 적자국의 불균형에 대한 조정은 원칙적으로 세 가지 정책 수 단-통화의 평가 절하(depreciation), 디플레이션(deflation), 직접 통제 (direct control)-을 통해 이루어진다. 평가절하는 자국의 통화 가치를 낮 춰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과 수입품과 경쟁하는 국내 생산품의 가격 경쟁 력을 강화하여 수출을 촉진하고 수입을 억제함으로써 불균형을 조정하려 는 것이다. 디플레이션은 국내 경제의 총제적인 지출 수준을 감축함으로 써 수입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는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과 이자율에 대한 통제와 같은 통화 정책을 통해 이루어진다. 직접 통제는 관세 및 비관세

15) Ibid., pp. 10-11.

장벽 등을 통해 수입을 제한하거나, 자본 통제를 통해 자본 유출을 제한 하려는 정책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다. 흑자국의 경우에 있어 적자국의 경 우와 조정의 방향만 다를 뿐 동일한 선택지를 갖게 된다. 환율 재평가(평 가 절상), 국내 경제의 팽창(인플레이션), 무역과 자본 통제의 철폐 등이 다. 적자국이든 흑자국이든 조정을 위한 선택은 일정한 부담을 내포하고 국내 경제에 비용을 초래하며, 이는 경제적 혹은 정치적 비용 부담이 된 다.16)

국제 수지 불균형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공유된다. 한 국가의 적자는 다 른 어떤 국가의 흑자이다. 그러나 조정의 비용은 공유되지 않는다. 따라 서 국가들이 조정할 때 조정 비용은 단일한 형태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 는 지속적(continuing)인 비용이 부과되며, 또 다른 경우에는 과도적 (transitional)인 비용이 부과된다. ‘지속적 조정 비용(the continuing cost of adjustment)’은 수지 균형의 회복에 관련된 모든 변화가 발생한 후 나타나 지속되는 비용이다. 이 비용은 이전의 적자 국가에 의해 지불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정의에 따르면 적자국이란 자신들의 수입을 초 과하여 자원을 흡수하는 국가이며, 균형에로의 회귀는 이러한 문제가 있 는 상태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과도적 조정 비용(the transitional cost of adjustment)’은 변화 그 자체의 비 용을 언급하는 것이다. 즉 균형을 회복하는 데에 관련된 비용을 뜻한다.

모든 조정 전략은 고통스럽다. 어떤 유권자들은 환율의 움직임에 의해 더 손해를 보며, 또 다른 유권자들은 디플레이션에 의해 더 손해를 본다.

대외적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기인하는 국내적 내핍(austerity)이나 인플레이션에 대해 정책 결정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쉽다. 정부 정책에 의 해 손해를 보는 유권자들은 자신들에게 이러한 고통을 안겨준 정책 결정 자들에게 다시 투표하려 하지 않는다.17) 그러므로 국가들은 자신에게 부 과되는 조정의 비용 부담을 회피하거나, 다른 국가들에게 전가하려고 하

16) Benjamin J. Cohen, Currency Power: Understanding Monetary Rivalr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5, pp. 52-54.

17) Stefanie Walter, Financial Crises and the Politics of Macroeconomic Adjustment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3), p. 116.

는 경향이 나타난다. 결국 지도자들은 전환 비용에 대해 걱정하며, 일반 적으로 다른 국가들이 그 비용을 지불해주기를 선호한다. 즉 조정 비용을

‘외부화(externalization)’ 할 것을 선호한다. 그렇지만 외부화를 지향하는 이러한 노력이 항상 성공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국제 통화 관계는 본래 적으로 경쟁적인 차원에 놓여 있다. 그 경쟁의 결과는 권력에 기초하여 결정되곤 한다.18)

이러한 경쟁에 있어 조정 비용의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조정을 지연시 키면서 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 권력이 ‘(조정을) 연기하는 권력(power to delay)’이다. 이러한 조정 부담을 회피하는 권력은 조정을 요구하는 외부 압력에 대해 갖는 자율성이다. 이러한 능력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요소는 금융 변수이며, 특히 한 국가의 국제 유동성 포지션이다. 그것은 해외 준 비금과 대외 신용에 대한 접근 모두를 포함한다. 한 국가가 더 많은 유동 성을 갖고 있을수록 조정을 연기할 수 있다. 국제 유동성의 궁극적 목표 는 국제 수지 적자를 감당하기 위한 융자에 있다. 적자 국가가 조정을 연 기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다른 적자국가들이 대신 부담을 져야하는 압 력이 더 커질 것이다. 흑자국은 조만간 적자가 될 때를 대비해서 역시 조 정을 연기하는 데에 대한 유인 동기가 있다. 따라서 모든 국가들은 연기 하는 권력이 의존하는 건전한 국제 유동성 포지션을 얻거나, 유지하는 데 에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유동성은 보유하고 있는 준비금 과 금융 융자 능력이 두 가지 주요한 구성 요소이기에, 적자 국가 사이에 서 지속적 조정 비용의 배분은 채권자들이 갖고 있는 부채 청산 능력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게 되므로, 상대적으로 부유한 국가들에게 유리하게 된다. 따라서 채무자로서 가장 상층의 위치를 향유하는 선진 공업국가의 연기하는 권력이 가장 커지게 될 수밖에 없다. 이 때 자국의 화폐가 국제 거래의 기축통화로 사용되는 특권을 지닌 소수의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이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국제 기축 통화를 보유하려하기 때문에, 금융 융자 능력이 효과적으로 강화된다. 그 결과 불균형에 대해 자국의 통화로 융자 를 끌어올 수 있는 기축 통화 발행국의 능력이 커지며 이는 ‘눈물 없이

18) Andrews ed., op. cit., p.13.

적자 상태를 운영할 수 있는 권리(right to run "deficit without tears")’를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19) 미국은 유례없이 장기간 경상수지 적자를 지속하고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달러화와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한 수요로 인하여 별다른 제약 없이 매해 자신의 적자를 융자 받음으로써 상 쇄할 수 있다.

또 다른 통화 권력으로, 조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적 비용을 외 부화 하는 권력이 ‘(조정 비용을) 전가하는 권력(power to deflect)’이다.

이러한 능력은 한 국가 경제를 다른 국가 경제와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근본적인 구조적 변수20)-개방성과 각 개별 경제의 유연성의 정도-로부터 나온다. 경제의 개방성이 높을수록, 조정 과정이 시작되면 국가의 환율 시스템이 고정환율이든 변동환율이든, 조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 영역이 더 크다. 유연성이 크다는 것은 대외적 환경 변화에 따라 생산에 필요한 자원들을 다른 영역으로 재할당되기 쉽다는 것이며, 조정 과정이 시작되 더라도 국내적 불만이나 항의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다. 역으로 노동시장과 생산시장의 경직성이 높을수록 결과적으로 시장의 혼란이 커진다. 이렇게 전가된 조정 부담 비용은 결국 다른 국가들이 대 신 인플레이션을 겪는 것으로 귀결된다. 전가하는 권력을 의도적으로 행 사하고자 할 때 상대적인 개방성과 유연성은 필요조건이 된다.21)

이러한 통화 권력(currency power)은 결국 국제금융통화체제 내에서 각 단위-국가-들의 배열을 결정해 준다. 월츠(Waltz)에 따르면 체계 (system)는 구조와 상호작용하는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단위들의 위치 와 배열의 문제는 단위의 속성이 아니라 체계의 속성이다. 그런데 (체계 의) 구조는 체계를 구성하는 부분들의 배열이다.22) 월츠의 논의처럼 국제

19) 특히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기축통화 달러의 발행국인 미국이 향유하는 이러한 특권을 프랑스는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라고 비판했다. 프랑스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Jacques Rueff, The Monetary Sin of the West (New York: Macmillan, 1972). 참조.

20) 여기에서 Cohen이 말하는 구조는 국제통화체제의 구조가 아니라 해당 국가 경제 체 제의 구조를 지칭하는 것이다. 국제통화체제의 구조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21) Cohen, 2015, op. cit., pp.64-68.

22) Kenneth N. Waltz,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New York: McGraw-Hill, 1979), pp.7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