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전환의 결과
1) 역플라자 합의와 금융 주도 성장
1990년대에 들어와 무엇보다 미국 경제의 변화를 가장 특징적으로 잘 보여주었던 것은 바로 주식 시장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 1987년 ‘검 은 월요일’의 주식시장 붕괴를 극복한 주식시장은 1995년 역플라자 합의 이후 급격하게 강세장을 연출하였다. 다우존스 산업지수의 기울기가 급격 한 우상향으로 추세적 방향을 잡고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1995년에 들어와 다우존스 산업지수가 4,000을 넘으면서 당시 기준으로 역사적 고 점을 기록했으며, 이 상승 추세는 꺾이지 않고 1990년대 내내 유지되었 으며, 1999년 11,500을 돌파한 후 잠시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 다음 <그 림 5-1>이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다우존스 산업지수의 흐름을 보 여주는 차트이다.
<그림 5-1> 다우존스 산업 지수 차트, 1970년~2000년
(출처 : barchart.com)
플라자 합의와 루브르 합의는 일본과 독일 등이 동맹국인 미국의 무역 적자를 감축하고 불황에 빠진 미국 경제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알 려졌지만, 실제 미국의 무역적자는 감축되지 않았으며, 미국 경제는 자국 의 경제 조정 문제를 세계로 전가하여 불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마 찬가지로 이번에는 일본과 독일 등 동맹국을 미국이 구원하기 위하여 달 러화의 평가절상을 단행했다고 하였지만, 일본은 역플라자 합의 이후에도 여전히 경제 불황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 경제는 역플라자 합의 이후 이자율을 낮게 유지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을 제어하고 부의 효과 를 누릴 수 있었다. 그것은 달러화의 강세로 해외 민간 자본이 대대적으 로 미국으로 유입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의 주식 시장 성장에는 소위 IT 혁명과 스톡옵션 열풍 및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시장 대거 참여가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1980년대에
‘차입 매수(LBO, Leverage Buyout)’을 통한 기업 인수 합병이 유행하게 되었지만, 1990년대 들어오면서 IT 혁명은 실리콘 밸리의 성공 신화를 낳았다. 그런데 실리콘 밸리의 기업에서 성공한 기업인들은 전통적 방식 인 제품 판매를 통해 거대한 부를 획득하기보다, CEO들은 주로 스톡옵션 을 통해, 창업자들은 자기 주식의 상장을 통해 거대한 부를 얻었다. 즉 사업체의 성공 역시 증권화를 통해 평가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급여를 통해 뛰어난 성과를 올리도록 자극했다.
‘성과급(pay for performance)’은 주주가치의 증대에 수반되는 보편적인 제도가 되었다. 일본과는 정반대의 경영방식을 채택했던 것이었다.205)
경상수지 적자의 확대 요인인 달러화의 평가 절상은 해외 민간자본의 유입이 확대되는 요인이 되었기에, 서로 상쇄될 수 있었다. 그리고 ‘부의 효과(wealth effect)’와 더불어 달러화의 평가 절상으로 수입 소비재의 가 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부의 효과로 인한 소득 증가 -비록 양극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심각하게 나타났지만-에도 불구하고 수 입 소비재의 가격이 낮아지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억제가 가능했으며, 그 결과 낮은 이자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저물가, 저금리로 인한 경기 호황으로 실업률 역시 낮게 유지될 수 있었다. 미국 경제는 소위 ‘격동의 90년대(roaring nineties)’를 달려가고 있었다.206)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실업률 또한 낮게 유지되고 있던 상황은 미국 경제의 내적 균형이 안정되었음을 의미하는 지표였다. 이렇 게 내적 균형이 안정을 이룬 상황에서, 클린턴은 다음 해인 1996년 무난 하게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다음 <그림 5-2>가 1995년에서 2002년 까지 미국의 인플레이션율 변화 추이이며, <그림 5-3>이 1995년에서 2002년까지 실업률 변화 추이이다.
205) Roger Lowenstein, Origins of the Crash, 이주형 역, 『버블의 기원』 (서울: 동방 미디어, 2004), P.35.
206) 이에 대해서는 Joseph E. Stiglitz, The Roaring Nineties: A New History of the World’s Most Prosperous Decade (New York: W.W.Norton&Company, 2003). 참 조.
<그림 5-2> 미국의 인플레이션율 변화 추이, 1994년~2002년
(출처 :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기간을 1994년~2002년으 로 설정 )
<그림 5-3> 미국의 실업률 변화 추이, 1994년~2002년
(출처 :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기간을 1994년~2002년으
로 설정)
이렇게 볼 때 역플라자 합의는 10년 전의 플라자 합의 못지않게 국제 금융통화체제에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국제적인 자본의 흐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76년의 킹스턴 합의를 통해
‘무체제의 체제(system of non-system)’라고 불렸던 국제금융통화체제 에서 국제 자본이 미국에로 유입되면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상쇄하는 메커니즘으로 공고화되는 계기가 된 것이었다. 바로 글로벌 불균형과 국 제 자본의 미국에로의 유입 메커니즘이었다.
역플라자 합의로 달러화가 평가 절상되면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급 격하게 확대되었지만, 미국은 달러화의 통화 권력을 바탕으로 자국 경제 의 조정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달러화의 평가 절상으로 수입 소비재 가격을 낮게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이는 인플레이션 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게 하여 낮은 이자율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도한 달러화의 평가 절상으로 인하여 유입된 막대한 자본은 미국 경제에 부의 효과를 가져다주었으며, 따라서 미국은 경상 수지 적자에도 불구하 고 소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그림 5-4>가 1995년에서 2002년까지의 미국 이자율 변화 추이이며, <그림 5-5>가 1980년대, 1990년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변화 추이이다.
<그림 5-4> 미국 이자율 변화 추이, 1994년~2002년
(출처 :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기간을 1994년~2002년으 로 설정)
<그림 5–5> 1980년대, 1990년대 미국 경상수지 변화 추이
(출처 :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이러한 상황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금융자유화와 자본자유화에서 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볼커 전환으로 금융 산업의 위상이 강화되고, 금 융에 대한 탈규제가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진행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1980년대의 탈규제를 기점으로 시작된 금융자유화는 기업 운영의 주요한 원칙을 ‘주주 이윤 극대화(shareholder maximization)’로 전환시켰으며, 생산에 있어 외주 하청(outsourcing)과 노동 시장의 유연화로 귀결되었고, 소득 불평등의 정도는 확대되었다. 이 당시 미국 경제 성장은 핵심적으로 소비의 증가에 기인했다. 그런데 소득 불평등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소비의 증가가 가능했던 데에는 바로 미국 금융 시장의 팽창에 따른 자산 시장-주식, 부동산 등-의 가격 상승이 있 었다.207) 즉 기업과 가계 모두 금융 성장에 따른 축적과 소비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경제에 있어 점점 늘어나는 금융의 비중은 은행, 증권회사 및 금융회사들의 확장에서 나타나지만, 비금융회사들의 행태에 있어서도 나 타났다. 즉 금융 회사, 비금융 회사 모두에 있어 경영 활동을 통한 총이 윤 중 금융 채널을 통해 이윤이 증가하고, 자본 축적이 이루어지는 금융 주도 성장 레짐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1990년대 전반에 걸쳐 비금융 회사의 ‘포트폴리오 소득(portfolio income)’-이자, 배당금 및 투자에 대 한 자본 이득 등에서 나오는 소득-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였다. 또한 비금융 회사의 소득 창출 흐름에 있어서의 늘어나는 금융 활동 비중에 더 하여 금융 영역 자체가 경제에서 점점 더 축적의 특권을 가진 지점이 되 었다.208)
다음 <그림 5-6>은 미국 경제에서 기업 이윤의 산업 비중 상대적 변화 추이이며, <그림 5-7>은 미국 비금융 회사의 현금흐름에서 포트폴리오 소득 비율 변화 추이이고, <그림 5-8>은 비금융 영역 대비 금융 영역의 이윤 증가 추세이다.
207) Vermeiren, op.cit., p.58.
208) Krippner, 2005, op.cit., pp. 181-182.
<그림 5-6> 미국 경제에서 기업 이윤의 산업 비중 상대적 변화 추이, 1950 년~2001년209)
<그림 5-7> 미국 비금융 회사의 현금흐름에서 포트폴리오 소득 비율 변화 추이, 1950년~2001년210)
209) Data on corporate profits by industry from BEA’s Gross Product Originating series, Greta R. Krippner, 2011, op.cit., p. 33에서 재인용.
210) Data on portfolio income from IRS, Statistics of Income, Corporation Income Tax Returns. Data on corporate profits from National Income and Product Accounts, table 6.16. Data on depreciation allowances from National Income and Product Accounts, table 6.22, Ibid., p.36에서 재인용.
<그림 5-8> 미국 경제에서 비금융 이윤 대비 금융 이윤과 현금 흐름 비율 추이, 1950년~2001년211)
앞의 세 그림에서 대체적으로 1995년을 전후한 시기가 금융화와 관련 하여 미국 경제의 전환점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그림 5-6>에서 미국 전체 회사의 총이윤에서 제조업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 플라자 합의를 전후한 시기에 잠시 회복세를 보였지만, 1990년대에 들어 와 감소하기 시작한 후, 1990년대 중반 이후 급락하고 있다. 반면에 금융 (금융, 보험 및 부동산) 영역은 1987년 검은 월요일 이후 잠시 하락하였 지만, 1990년대에 들어와 회복한 이후, 1993년, 1994년 잠시 보합을 보 였다가 1995년 이후 급등하였다. <그림 5-7>에서 비금융업 영역에서도 점차 포트폴리오 소득과 같은 금융적 활동으로 이윤의 비중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5-8>에서 미국의 전체 이윤에서 금융 활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5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전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1990년대에 들어와 미국의 전체 산업에서 금융 영역의 이윤율 비중이 압도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비금융 회사조차도 금융적 활동을 통
211) Data on corporate profits and depreciation allowances from BEA’s Gross Product Originating series, Ibid., p.41에서 재인용.
한 이윤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경제의 금융 주도 성장 레짐으로의 전환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전환에 있어 1995년 을 전후 한 시기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 역시 위의 그림들을 통 해 확인할 수 있다.
역플라자 합의는 위기의 일본 제조업에 대한 구원이기도 하지만, 경상 수지 적자가 날로 확대되어가던 미국에 있어, 금융 주도 성장 레짐이 공 고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미국의 금융 주도 성장은 1990년대 중 반 이후 국제 금융 시장을 급속도록 팽창시켰으며, 대미 무역 흑자국의 자본이 미국으로 환류될 수 있는 충분한 금융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 시 기에 있었던 IT 산업의 성장은 본질적으로 금융적 성장, 즉 주가 상승 등 이었는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나스닥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