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문적 지식 층위에서의 교육 내용 구조화
1.3. 표기 교육 내용의 확장 구조
표기 교육 내용은 문법 교육의 다른 교육 내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앞 서 살펴보았듯이 표기 교육의 중핵 구조에서의 학습은 계속 다른 교육 내용으로의 확장 동기로 작용한다. 이는 표기 교육 내용과 다른 문법 교육 내용 간 접면을 만 들면서 교육 내용을 풍부하게 만든다.
먼저 표기는 표기하고자 하는 대상 언어를 명시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가)는 한 대화168)를 표기로 옮긴 것이다. 학습자들은 (가)에서 <외>, 167) 이에 대해서는 Ⅲ장의 3.1.에서 관습적 표기로 다루었으므로 상술하지 않는다.
<그러케>를 발견하고 <왜>, <그렇게>로 교정할 수 있다. 하지만 <건는다>는 교 정할 수 없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건는다>는 (가)의 상황을 만들어 낸 방언 형을 소리대로 알맞게 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 A: (횡단보도를 건너며) 빨리 와, 너 그러다 못 건는다.
B: 언니, 말을 외 그러케 무섭게 해요?
A: 뭐가?
B: 못 걷는다뇨!
이와 같이 표준어와 방언의 어휘 차이는 표기로써 시각적으로 또렷해진다. 그리 고 방언형을 알맞게 표기한 비규범 표기를 변별해 냄으로써 표기 대상이 되는 언 어를 명시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이는 표기 교육과 어휘 교육의 접 면을 발생시킨다.
방언형과 변이형은 발음 교육의 측면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조음 위치 동화나 w 탈락, 수의적인 후음 탈락 등이 표기에 반영되어 비규범 표기가 발생할 수 있 다. 수의적인 음운 변동이 반영된 표기는 필수적인 음운 변동이 반영된 표기와 달 리 발음의 교정이 표기의 교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교수·학습 의 맥락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실력>을 <신력>으로 표기한 학습자에게 <실력>과 <신력>이 표상 하는 발음을 비교하도록 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두 표기는 동음이철어 이므로, 표기형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실제로 갖추고 있는 힘이나 능력’이라 는 단어의 의미를 활용하여, 본래 한자음이 [실]이라는 점을 알도록 교육 내용을 마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반면에 <이해가>를 <이애가>로 표기한 학습자에게는 두 표기가 표상하는 발음을 비교하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일상에서 / ㅎ/이 공명음 사이에서 잘 탈락하지만, /ㅎ/을 의도적으로 발음해 보고 표기에 반 영하도록 함으로써 발음과 표기를 관련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발음을 조절하는 활동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표기 교육과 발음 교육의 접면을 발생시킨다.
표기 대상을 과거의 국어, 현재 변화가 진행 중인 국어로 보게 되면 표기 교육 은 국어사 교육과도 관련을 맺게 된다. 정희창(2011), 이승희(2015)에서 표기는 과 거 국어의 모습이 화석으로 남아 있는 자료로서 부각된다. 최소영(2019: 167-188) 에서는 과거부터 현대까지 이어져 오는 국어 변화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언어 변 168) 연구자가 동생에게서 들은 일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화 기반의 국어사 교육을 설계하면서 /ㅢ/의 현실 발음 양상, 모음 조화의 약화 현 상을 교육의 제재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거의>를 <거이>로 표기하거나 <참았 다>를 <참었다>로 표기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학습자의 표기 행위와도 밀접 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표기 교육에서 관습적 표기나 표기 대상에 대한 학습 은 국어사 교육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처럼 표기 교육 내용이 문법 교육의 다른 교육 내용과 맺는 관계를 도식화하 면 <그림 21>과 같다. 일반적인 표기 문제가 발생하는 구도를 참조하면, 표기 체 계에 대한 학습은 크게 표기 대상이 되는 언어, 표기 대상이 되는 언어 단위, 표기 원리, 표기 수단, 시각화 원리로 구분할 수 있다. 편의상 평면적으로 도식화하였지 만 기실 모든 개념은 연결되어 있다. 실선의 화살표는 교육 내용을 구체화할 때 부각되는 개념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개념의 부각이 다른 문법 교육 내용과 관련을 맺게 되는 국면은 점선의 화살표로 표시하였다.
표기 대상이 되는 언어를 주목하는 것은 어휘 교육, 발음 교육, 국어사 교육에 대한 학습으로 이어지는 동기를 제공한다. 표기 대상 단위에 대한 학습은 문자 체계 층위 에서의 학습을 의미하며, 표기 원리에 대한 학습은 표기법 층위에서의 학습을 의미한 다. 앞서 논의했듯이, 이는 표기 교육 내용의 중핵 구조를 이루는 부분으로서 음운 교 육, 형태소 교육 등 언어 단위 자체에 대한 교육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 중 관습적 표기는 다시 국어사 교육으로 확장될 수 있다. 표기 수단에 대한 주목은 한글의 가 치나 문자학적 속성 등에 대한 학습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 또한 그간 국어사 교 육의 내용으로 다루어져 왔던 부분이다. 시각화 원리의 축은 표기가 시각 부호라는 점을 감안하여 설정한 것이다. 연철과 분철, 모아쓰기와 풀어쓰기 등이 포함되며, 상 형과 같은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도 시각화 원리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
한편 <그림 21>에서 표기 대상 언어, 표기 수단, 시각화 원리에서 외부로 뻗어 나가는 점선의 화살표는 본 연구에서 다루지 못한 영역 또는 문법 교육 외부 영역 으로의 확장 방향을 가리킨다. 먼저 표기 대상 언어 측면에서 한글은 국어뿐만 아 니라 다른 언어를 표기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이 자 신들의 언어를 표기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글을 채택한 사례가 대표적인데, 이는 문법 교육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거꾸로 국어를 한글이 아닌 다 른 문자로 표기할 수도 있다. 고대 국어 시기 차자 표기법이나 국어의 로마자 표 기법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문법 교육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이지만 본 연구에서 는 미처 다루지 못하였다.
<그림 21> 표기 교육 내용의 확장 구조
마지막으로 시각화 원리 측면에서의 확장 방향은 문법 교육의 일반적인 영역을 벗어나는 것으로 판단된다. 시각화 원리에는 한글의 서체뿐만 아니라 한글을 평면에 배열하는 방식도 포함될 수 있다. 해리스(Harris, 김남시 역, 2013: 165-166)는 우편 봉투에 주소를 기입할 때 일정한 방식이 있듯이, 문서의 종류를 구분하기 위해 문자 가 자리 잡는 공간을 특징적으로 구별하고 조직하는 것은 문자의 발전을 살필 때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경향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문자를 적절하게 배열하는 일은 레이아웃(layout),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와 같은 개념과 연결된다. 문자를 어떻 게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시각화할 것인지는 표기 행위 시 해결해야 할 중요 한 문제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내용을 문법 교육에서 다룰 수 있는지, 다루어야 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