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규범 표기에 대한 교육적 접근
2.2. 비규범 표기의 형성 요인
비규범 표기를 수집해 보면, 비규범 표기 간의 속성이 확연하게 다름을 발견하 게 된다. 예를 들어, <괜시리>는 <괜스레>의 비규범 표기이며, <퉷마루>는 <툇 마루>의 비규범 표기이다. 그러나 두 비규범 표기는 동일한 것으로 취급될 수 없 다. <괜시리>는 방언의 한 형태를 표기한 것으로 추정되고, <퉷마루>는 모음 체 계의 변화와 관련된 비규범 표기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규범 표기 를 체계화하여 교육의 장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비규범 표기의 특성을 다르게 만드 는 요인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1) 음소 및 음절에 대한 자소 표상 능력
선천적 언어 능력 가운데 음운론적 능력은 아주 이른 시기에 완성된다. 특정 언 어의 음성에 대한 선호는 태아 시기부터 이루어지고(Levine & Munsch, 2018:
322), 모국어의 음소 습득은 생후 1년 내에 아주 빠르게 이루어진다(Goswami, 정 명숙 외 역, 2010: 178). 그런데 언어 발달상 음운 인식(phonological awareness)이
라 일컬어지는 획기적인 변화는 문자 습득과 맞물려 진행된다.
모국어에 대한 음운 체계는 이미 완성되어 있으나 음소와 표기를 대응시키는 일 은 언어 능력에 대한 상위 인지적 접근을 요구한다. 음소와 음소자를 대응시키는 데 실패하는 것은 언어 능력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표기와 매개되어 발달 하는 언어 능력, 즉 문법 능력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국어 단어 를 자연스럽게 발화할 수 있는 초등학교 학습자가 평음자와 격음자를 혼동하였다고 하여 이 초등학교 학습자의 음운 체계에 삼지적 상관속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 다고 결론 짓는 것은 부당하다.
결론적으로 자소를 음소와 알맞게 대응시키는 능력의 수준이 비규범 표기를 산 출하는 데 작용한다. <아프게>을 <아쁘게>로 표기한 초등학교 4학년 학습자는 이미 형성되어 있는 음운 체계를 특정 부호로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이렇게>를 <이렇거>로 표기한 중학교 학습자도 /ㅔ/ 와 /ㅓ/의 변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ㅔ/를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자소를 대 응시키는 데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따라서 이미 형성되어 있 는 생물학적 음운 능력과 이를 자소와 연결하는 능력은 구분되어야 한다.
음소와 자소의 대응이라는 표현은 이 행위를 마치 점과 점을 연결하는 행위와 유사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음소와 자소를 대응시키는 일은 물리적으로 단절 없이 발화되는 음성을 시각적으로 분절하는 행위이다. 생물학적 으로 획득한 음소에 대한 인식이 곧바로 시각적 분절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예컨 대, <지내자>를 <진내자>로 표기한 초등학교 4학년 학습자의 사례는 실제로 학 습자가 [진내자]로 발음했고, 그 발음이 표기형에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하기 어렵 다. 왜냐하면 <생각했더니>를 <생각했던니>, <쓰러졌으나>를 <쓰러졌은나>로 표기한 사례가 수집되었기 때문이다. <진내자>, <생각했던니>, <쓰러졌은나>를 비교했을 때, /ㄴ/이 실현되는 음절 경계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라고 보 는 것이 타당하다.
소리의 흐름은 물리적으로 연속되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분절적으로 인식하 고, 그것을 다시 시각적으로 분절하여 표기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구조 주의 음운론에서 음소를 변별해 내는 기준과 방법을 발전시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면, 문자가 주어졌다고 해도 음성 언어를 분절적으로 해석해서 표기하 는 일이 상당히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62)
62) 트루베츠코이는『음운론의 원리』에서 “단음소와 음소의 연쇄를 구별하는 것은 항상 쉬운 일이 아니다. 구체적인 파롤행위에서 나타나는 소리의 흐름은 중단되지 않는 움직
현대의 한글 사용자는 문자가 이미 주어져 있고, 이를 운용하는 방식도 표준화 되어 있기 때문에 음절 단위로 모아 쓰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처럼 보 인다. 그러나 표기 능력의 발달 과정을 추적해 보면, 음절 단위를 표상하는 것도 음성 언어에 대한 해석이 요구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글 사용자는 음 소와 음소자를 대응시키는 것만으로는 한글로써 이루어지는 표기 생활을 성공적으 로 영위해 나갈 수 없다.
(2) 자소의 심리적 표상 능력
이중 경로 모형(dual-route model)은 개별 단어들을 읽을 수 있도록 해 주는 두 개의 상이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가정이다(Carroll, 이광오·박현수 역, 2009:
124). 단어가 시각적으로 부호화되어 있는 형태를 저장하는 기억 체계와 비(非)단 어도 읽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규칙 체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중 경로 모형을 참조하면, 음소와 자소를 대응시키는 능력 외에 규범적 표기를 기억하고 다시 재 현하는 표기 과정이 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학습자가 표기 행위를 통해 지각하게 되는 음소와 자소의 대응 양상은 표기 생 활이 누적되면서 복잡해진다. 이는 표기법의 영향 때문이기도 한데, 학습자의 입장 에서 볼 때, 동일한 음소를 표상하는 서로 다른 자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령 학습자는 표기 능력이 발달하는 중에 겹받침으로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을 맞이하게 된다. <끓이셨다>를 <끊이셨다>로 표기한 중학교 1학년 학습자는 받 침에 대한 심리적 표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끊이셨 다>는 [끄니셛따]로 실현되어 본래 목표하던 발음인 [끄리셛따]를 유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ㅀ> 대신 <ㄶ>을 사용한 것은 이 단어가 <ㅎ>을 포함하는 겹받침을 가지고 있다는 심리적 표상에 의존하여 내린 결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자소의 심리적 표상을 기억하는 능력은 음소와 자소를 대응시키는 능력과 상호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고학년63) 학습자가 <갚아>를 <값 임이다. 단순히 음성학적 관점에서, 다시 말해서 소리의 언어학적 기능을 제외하고 볼 때, 이 소리의 흐름 중에서 어떤 부분을 ‘단음소(monophonématique)’로 보아야 하는지 또는 ‘다음소(polyphonématique)로 보아야 하는지 말할 수 없다(Trubetskoy, 한문희 역, 2013: 2012).”라고 기술하며, 음소의 변별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을 알려 준 다. 로마자의 경우 음절 단위를 표상하지 않으므로 표기를 수행할 때 음절 개념은 중요 하지 않겠으나, 음소를 변별하기 위하여 음절 경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음절 은 중요한 단위가 된다.
63) 강민정(2008)에서 보고하는 사례로 이 연구에서는 초등학교 4~6학년 학습자가 생산
아>로 표기한 사례는 단지 심리적 표상에 의존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없다. 여러 겹받침 중에서도 유독 <ㅄ>을 사용했다는 점은, <ㅄ> 이외에 받침으로 쓰일 수 있는 여러 낱자 및 낱자 조합을 발음 정보를 참조하여 배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값아>는 일반적인 한글 독법을 고려할 때, [가바] 또는 [갑싸]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최종적으로 해당 학습자는 받침으로 <ㅍ>
을 선택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은 갖고 있지 못한 상태라고 짐작할 수 있다.
자소의 심리적 표상 능력에만 의존해서도 표기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또 한 자소의 심리적 표상을 양적으로 늘려 나가면서 자소와 음운의 대응 관계를 암 묵적으로 인식해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규범적, 시각적 인지 전략에 치우친 학습 자(박종관, 2014: 73), 경험적 지식 위주의 활용과 우연적인 인출을 보이는 학습자 (이주영, 2017: 64, 88), 규범 표기형에 대해 직관적 인식을 보이는 학습자(하다현, 2020: 112-113)의 모습에서 자소의 심리적 표상 능력에 의존한 표기 능력의 한계 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자소의 심리적 표상 능력이 요구되는 표기형과 그렇지 않은 표기형을 구분함으로써 철자 지식을 내실화하는 표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함 을 시사한다.
(3) 표기 대상 언어
규범 표기는 표준어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표준어를 표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방언을 표기했을 때, 이는 비규범 표기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러한 비규범 표기는 앞에서 살펴본, 음소와 자소를 대응시키는 능력과는 관련이 없다. 방언형을 잘 드 러낸 표기는 방언형을 이루고 있는 음소를 자소와 잘 대응시킨 표기이기 때문이다.
비규범 표기가 어떤 언어를 표상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비규범 표기를 섬세 하게 구분하게 하고, 교육적 처치를 다르게 만들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예 를 들어, <ㅢ>에 대해서 <ㅡ>가 산출되었을 때, 중부 방언의 학습자가 산출한 표 기라면 자형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거나 표기 실수로 해석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에 따라 자형을 제대로 익힐 수 있도록 자소의 표상 능력에 초점을 맞추 어 교육 내용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서남 방언권의 학습자가 <ㅢ>
를 <ㅡ>로 표기했다면 이는 방언의 영향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이 다.64) 그렇다면 이는 틀린 표기가 아니라 방언을 표기한 표기가 된다.
한 작문 자료에서 비규범 표기를 수집하였다. 학년 구분을 해 놓지 않고 있어 초등학교 정확하게 어떤 학년의 학습자가 산출한 표기인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