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문적 지식 층위에서의 교육 내용 구조화
1.2. 표기 교육 내용의 중핵 구조
표기형의 합리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표기형과 관련된 문법 지식이 필요하다.
Ⅲ장의 비규범 표기 분석을 통해서 학습자들이 표기 행위를 하면서 형성한 표기 체계에 대한 지식이 한계에 부딪히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계 지점에 다다 른 학습자에게 문법 지식을 적절하게 제공함으로써, 학습자들은 표기형을 비교하 고 설명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게 된다. 이때 제공되는, 표기형의 합리성 판단과 관련된 문법 지식은 표기 교육에서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이들 지식이 이루는 구 조를 중핵 구조라고 할 수 있다.
(1) 주요 범주
표기형의 합리성을 판단하는 데에 핵심적인 지식은 음운론적 지식과 형태론적 지식이다. 이 절에서는 음운론적 지식과 형태론적 지식의 가장 상위의 개념들이 표기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논의하고, 표기 교육 내용의 토대가 되는 주요 범주를 확인한다.
① 음운 체계
한글은 음소 문자로서 국어의 음운 체계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주지 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실이 그대로 교육 내용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은 아 니다. 즉, 한글과 국어 음운 체계의 관련성을 표기 교육에서 어느 수준으로 구현해 야 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김다연(2018: 78)에서 음운과 관련한 학습자 의 오개념은 표기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다연(2018) 에서는 음운 교육에서의 개념 학습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음운은 표기할 수 있
어야 한다.’, ‘음성은 소리이고 음운은 글자이다.’와 같은 오개념은 극복되어야 할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오개념이 표기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음 운에 대한 기초 개념이 표기와 매개되어 먼저 형성된다고도 볼 수 있다. 즉, 표기 교육은 일종의 기초 교육으로서, 이후 문법 교육에서의 개념 발달을 고려하여 음 운 체계와 문자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문법 교육에서 음운은 뜻을 변별하는 데 사용되는 소리로 손쉽게 정의되지만, 그 개념을 완전하게 습득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실현된 음성을 충분히 관찰해 야 한다. 신체의 움직임으로써 실현되는 물리적 음성의 상이함을 체험해야 음운 개념을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음운의 완전한 개념 습득에는 변이음에 대 한 지식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음운 개념의 습득이 표기 교육 에서 중요한 것인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문자가 공간에 특정한 방식으로 분절된 선을 그려 놓음으로써 개개의 음운을 하 나의 시각적 개체로 나타내듯, 발음 기관의 작동 방식 또한 음운을 개체화한다(박 종관, 2014: 83). /ㅂ/, /ㄷ/는 초성 자리에서 각각 양순 파열음과 치조 파열음으로 실현되며 서로 다른 개체가 된다. 변이음에 대한 개념이 도입되지 않을 때, 음운 개념을 습득하는 활동은 발음 기관의 분명히 다른 조음 운동을 인식하는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발], [달]을 각각 발음해 보면서 자신이 평소에 의식하지 않았던 근육 의 움직임을 체감할 수 있고, 서로 다른 음운이 서로 다른 발음으로 실현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자를 매개로 할 때, 자신의 근육의 움직임을 체감하는 과정은 생략될 수 있다. /ㅂ/, /ㄷ/의 차이는 손쉽게 <ㅂ>, <ㄷ>이라는 시각적 기호의 차 이로 대체된다. 따라서 발음 기관의 운동은 부차적 인지(subsidiary awareness)160) 에 머물고, 시각적 기호에 의지하여 소리의 다름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발음 표상에 실패한 표기에서 조음 위치나 조음 방법이 다른 자음을 표상하는 자음자를 사용한 사례를 살펴보았다. <일찍>을 <일칙>으로 표기한 학습자에게 필요한 활동은 문자가 다르면 표상하는 발음도 다름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각 문 자를 썼을 때 어떻게 발음되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이미 갖추어진 언어 능력을 표 160) 폴라니(Polany, 표재명·김봉미 역, 2001: 96-99)에서 사용한 용어로서, 보조식으로 도 번역된다. 폴라니는 망치질의 비유로써 일차적 인지(focal awareness, 초점식)와 부 차적 인지를 설명하였다. 못을 잘 박으려고 망치를 잘 휘두르려는 행위에 주목하는 인 식을 일차적 인지, 망치를 쥐고 있는 손의 느낌에 대한 인식을 부차적 인지로 칭하였는 데, 두 가지 인지 방식을 동등하게 다룰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된 예시이다. 예 컨대 대화를 할 때 전달하려는 의미가 일차적 인지, 발음 기관의 움직임이 부차적 인지 의 대상이 된다면, 발음 연습을 할 때에는 발음 기관의 움직임이 일차적 인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기와 연결하는 일이 중요하지, /ㅉ/와 /ㅊ/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신체의 움직임을 명시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최영환(2008: 368)에서는 한글 학습을 문자와 소리가 일치하는 것을 다루는 교육으로 개념화하여 한글 학습의 범위를 명 확히 한 바 있다. 음운 교육이나 발음 교육과 연계하기 이전에 표기 교육에서는 문자와 음운의 대응 관계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판단된다.
② 음운 변동과 형태소
표기형에 음운 변동을 반영할 것인지 반영하지 않을 것인지는 학습자가 의식적 으로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학습자는 표기 행위를 수행할 때 국어의 음운 변동을, 구어 상황일 때보다, 좀 더 의식적으로 주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경 음화는 평음자와 경음자의 간의 선택 문제를 일으키면서 학습자가 주목하는 현상 이 된다. 경음화를 표기에 반영한다면 <웃기지>를 <웃끼지>처럼 표기하게 되고, 경음화를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다면 <햅쌀>을 <햅살>처럼 표기하게 된다. 중요 한 점은 표기 행위에 경음화가 작용하고 있고 학습자가 분명 경음화를 인식하고 있지만, 학습자가 경음화에 대한 체계적인 앎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다. 즉, 경음화라는 용어를 알지 못하더라도, 경음화가 일어나는 환경을 기술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경음화는 학습자가 체험하는 현상이며, 표기 행위로써 학습자가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음화와 관련하여 어떠한 지식이 학습자에게 유용할지 고민해 야 한다. 그리고 경음화가 일어나는 환경을 기술하는 것이 과연 표기 교육에서 필 요한 지식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흔히 음운 변동을 안다고 할 때 음운 변동이 일어나는 환경을 아는 것이 중요한 내용을 차지한다. 그러나 표기형을 선 택하는 맥락에서는 경음화가 일어나는 조건을 일일이 따지는 것보다 경음화가 일 어나지 않는 환경에서의 형태를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즉 <웃끼지>를 산출 한 학습자에게는 <넘기다>와 같은 표기로부터 /기/의 형태를 확인하는 일이 필요 하고, <햅살>을 산출한 학습자에게는 해당 단어가 /쌀/을 구성 요소로 가진 복합 어라는 사실을 아는 일이 필요하다.
음운 변동과 관련하여 표기 교육에서는 실현된 어떠한 발음이 음운 변동의 결과 인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기저형에 있는 것인지 학습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해 주 어야 한다. 그리고 음운 변동이 일어났는지 확인하는 일은 학습자가 이미 갖추고
있는 형태론적 언어 능력을 조회하도록 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 다시 경음화를 예로 들면, 평파열음 뒤에 평장애음이 올 수 없다는 제약 때문에 발생하는 경음화 의 경우, 학습자는 ‘콩밥’, ‘보리밥’, ‘찰밥’ 등의 단어에서는 /밥/의 형태가 유지되지 만, ‘국밥’, ‘돌솥밥’ 등의 단어에서는 /빱/으로 형태가 달라짐을 쉽게 관찰할 수 있 다. 이러한 관찰은 다른 유형의 경음화를 발견하는 것으로 유도될 수 있다. 용언 어간 말 비음 뒤에서 일어나는 경음화는 어간 말이 비음이 아닌 용언의 활용형과 비교함으로써 발견된다. ‘집에 가자.’와 ‘머리를 감자.’라는 두 문장에서 학습자는 같은 종결 어미가 쓰였다는 사실을 형태론적 직관으로 쉽게 알 수 있으면서도, 동 시에 같은 종결 어미가 서로 다른 표면형으로 실현됨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경 음화 현상의 발견을 누적하고, 경음화가 일어나지 않은 형태를 밝혀 적는 현행 맞 춤법의 기본 원리를 습득하도록 표기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161)
김슬기(2016: 63-64)에서는 문법 지식을 접했을 때 고등학교 학습자들이 자신의 언어 사용 경험을 떠올려 보며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내는 양상을 관찰하였다. 국 어 사용자로서의 학습자의 언어 경험이 문법 지식과 상호 작용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명시적인 문법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춘 고등학교 학습자라는 점에 서 초등학교나 중학교 학습자와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비규범 표기를 분석하면 서 살펴보았듯이, 낮은 단계의 학습자도 자신의 언어 경험을 표기 행위 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따라서 학습자가 이미 갖추고 있는 언어 능력을 상 위 인지적으로 조회할 수 있도록 적절한 학습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며, 이런 점에서 자신의 형태론적 인식을 동원하여 음운 변동을 인식하고, 이를 다시 표기에 적용하도록 교육 내용을 마련하는 것이 요구된다.
③ 관습적 표기
음운 체계와 음운 변동, 형태소와 관련된 각종 문법 지식을 활용하여 표기를 탐 구해 나가더라도, <옛날>을 <옜날>로 표기하거나 <제삿날>을 <제사날>로 표기 161) 이러한 교수·학습 과정에서 명시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 사고 과정이 존재한다. 바로
기저형으로부터 표면형을 도출해 내는 과정, 즉 음운론적 도출이 타당한지를 판단하는 사고 과정이다. 경음화를 매개로 하여 평음이 왜 경음보다 기저형으로 취급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판단은 사실 국어 전반의 음운 변동을 분석한 후 내려진 것이다. 문법 교육 의 어느 국면에서는 /빱/이 [밥]으로 도출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학습자에게 발 생할 수도 있으리라 예측할 수 있다. 이는 음운 교육의 영역이며, 표기 교육에서는 학습 자들이 형성하고 있는 형태론적 직관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 내용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