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문적 지식 층위에서의 교육 내용 구조화
1.1. 문법 지식에 대한 교육적 관점 부여
박혜진(2019: 12-13)에서는 표현론적 관점에서 단어 형성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 해서는 ‘단어 만들기’라는 언어 수행의 원리로부터 교육 내용이 도출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합성어, 파생어, 어근, 접사 등 단어 형성과 관련된 지식이 단어 형성 의 형식으로서 먼저 주어지면서 대상을 인식하고 의미화하며 형태화하는 과정이 무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박혜진, 2019: 24-25), 구조 형태론의 연구 성과에 비해 형성 차원의 교육 내용을 구성하기 위한 언어적 원리는 부재한다는 점(박혜 진, 2019: 26)에서 교육언어학 관점에서의 문법 연구 및 기술이 요구되는 것이다.
음운 단위와 관련된 문법 교육 내용을 학습하고 이를 발음과 표기에 활용하도록 하는 교육적 관점은 국가 교육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되어 왔다.155)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종관(2020: 135)에서 지적하듯, 규범 교육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인식에 기초한 교육 내용 체계 안에서는 음운 변동의 규칙화 및 분류 활동과 그것을 표기 에 적용하는 활동은 괴리될 수밖에 없다. 단어 형성의 과정과 표기 산출의 과정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다루는 교육 내용의 생성 방식에서 교육적 구조상 동 일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주세형(2004: 461)에서는 언어 단위가 애초에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 점이나 목적에 따라 달리 설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 방식이 기존 지식의 무용함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주세형(2014: 75)에서 설명 하듯, 예컨대 체계 기능 중심성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도입되더라도 의미 구성 능력 이전에, 먼저 언어 형식에 주목하여 언어라는 실체를 다룰 수 있는 기초 능력이 학 습자에게 확보되어야 하고, 이 지점에서 구조주의적 지식은 여전히 효용성을 가진 다. 표기 교육에서 이는 자명하게 드러나는데, 표기는 이미 생성된 의미를 드러내 는 수단으로서 구조주의적 지식과 더욱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표기를 중 심으로 문법 지식을 기술하는 것은, 언어 단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는 문법 개념 을 재편하는 것이지 기존 지식 체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156)
문법 개념의 재편은 교육의 목표로써 추동된다. 문법 지식이 이루고 있는 복잡 한 개념망은 교육 목표에 따라서 여러 부면으로 나뉘고 교육 내용화될 수 있다.
따라서 먼저 표기 교육의 교육 목표를 상세화함으로써 학문적 지식 층위에서의 문 법 지식 구조화에 방향을 부여할 수 있다.
(1) 표기 대상 언어의 식별 및 표기형의 합리성 판단
규범 표기는 표준어를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방언형과 변이형의 표기는 자동 적으로 비규범 표기가 된다. 이러한 표기 유형의 구분이 정오의 이분법을 기반으
155) 박종관(2020: 134-135)에서는 음운 변동을 표기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 로 삼는 관점은 국가 교육 과정에서 줄곧 강조되어 왔지만, 독자적인 단위로서의 음운 단위에 대한 탐구가 발음과 표기로의 적용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음운 변동을 발음과 표기를 위한 도구로서 보고자 하는 관점이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56) 다만 기존 지식의 재편은, 신명선(2007: 435)에서 ‘체계적 지식에 대한 신화’라고 명 명한, 기존 국어학적 지식의 안정적인 개념 체계 및 그것의 기술 방식을 해체하는 것이 므로 비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학문 문법 내에서의 대립이 아니라 교육 문법을 기술하는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문법 교육학의 생산적인 담론 형성 방식의 일종 이라고 판단한다.
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규범 교육으로서의 표기 교육은 비규범 표기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언어에 대한 탐색을 가로막는다.
비규범 표기로 단순 분류된 표기형에는 국어의 방언형과 변이형이 반영되어 있 기도 하다. 방언을 포함한 국어의 변이어가 화자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구 성 요소(김은성, 2008: 228)라는 점, 다원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 구성원 의 언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강보선, 2020: 37) 등이 문법 교 육에서 강조되고 있지만, 이러한 교육적 관점은 정오 판단에 기초한 표기 교육의 실천 국면에서는 전혀 작동할 수 없다. 따라서 문법 교육 논의의 발전상과 부합하 며 표기 교육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표기 대상을 식별하는 일이 교육 목표의 하나 로 설정되어야 한다.
발음 표상에 실패한 표기에서 살펴보았듯이, 표기형이 항상 특정 언어의 양상을 오롯이 드러내지는 않는다. 따라서 표기 대상 언어를 식별하는 활동은 표기형의 합리성을 판단하는 활동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 일차적으로 표기형의 합리 성은 의도하고자 하는 발음을 표기에 잘 드러냈는지 여부로 판가름할 수 있다. 이 는 한글이 음소 문자라는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닮았어>를 <닳 았어>로 표기한 사례는 합리적이지 못한 표기인데, [달마써]라는 발음을 제대로 표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닮았어>를 <달맜어>나 <달마써>로 표 기한 것은 <닳았어>보다 합리적인 표기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닮았어>와 <달맜어>, <달마써> 사이의 합리성 판단은 한글이 음절 단위로 모아쓰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들 표기 사이의 합리 성 판단은 표음주의와 표의주의의 대립을 일으킨다. 일차적인 합리성 판단과는 달 리 표의주의를 지향하는 표기가 표음주의를 지향하는 표기보다 합리적이라는 평가 는 입증해야 하는 대상이다.157) 따라서 표기형의 합리성 판단은 두 층위로 구분되 어야 하고, 이는 구본관·신명선(2011: 291)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리로 제시 한 바 있다.
원리 1: 독자가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기 쉽게 적는다.
원리 2: 실제 소리와 표기가 일치하게 적는다.
‘원리 2’는 발음 표상에 실패한 표기가 합리적이지 못한 표기라고 판단할 수 있 게 한다. ‘원리 1’은 독자라는 요인을 고려함으로써, 언중이 일반적으로 분석하리라 157) 표의주의 표기의 합리성에 대해서는 이익섭(1992: 397-421)을 참조할 수 있다.
생각하는 형태소를 밝혀 적는 것을 합리적인 표기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158) 따라 서 표기에 대한 합리성 판단은 두 층위에서 이루어지며, 표음주의적 합리성에 대한 판단이 비교적 객관적이라면, 표의주의적 합리성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일 수 있다.
강창석(2001: 101-102)에서는 <높>과 <놉>을 비교하면서, 현행 한글 맞춤법의 원리를 주시경의 이론에 따라 본음 표기로 보면, 이전 시기의 표기법은 임시의 음 을 적은 것이며 표기 원리가 다른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를 학습자가 산출한 비규범 표기의 양상과 관련지어 보면, Ⅲ장에서 살펴보았듯 학습자의 비규범 표기 도 표기법의 원리로써 설명이 된다. 다만 달라지는 것은 표기 대상 언어에 대한 해석이다. 합리성이라는 개념의 도입은 표기 대상이 무엇이며 표기 대상이 표기로 써 잘 드러났는가를 따져 보는 활동을 강조함으로써 표기와 발음의 관계를 해석하 는 활동을 촉진한다.
또한 합리성 판단을 두 층위로 구분함으로써 비규범 표기를 표기 교육에서 섬세 하게 다룰 수 있다. 예를 들어, <꽃>이라는 표기에 대해 교체를 활용하여 분석하 려고 할 때, 이미 <꽃>에는 기저형이 /꽃/이라는 해석이 내려져 있다. <꽃>은
<꼿>과 비교했을 때 좀 더 명확하게 그 특성이 드러난다. <꽃이>와 <꼿이>는 표기 원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표기 대상이 다른 것이고, 둘 다 합리성을 갖춘 표 기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표준어와 방언을 식별하는 것으로 이어진 다. 반면에 <달라서>를 <다라서>로 표기한 사례는 유음의 실현을 표기로써 충분 히 드러내지 못한 표기이다. 따라서 합리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표면 형을 표기형에 충분히 반영하는 활동으로 이어진다.
(2) 선택항의 소통 가능성 판단
표기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문자 언어 의사소통에서 표기는 합의되어 있어야 하는 체계이다. 따라서 비규범 표기라고 하더라도 규범 표기와 지나치게 달라질 경우 의사소통에 장애가 된다. 그러나 이를 달리 해석하면 규범 표기와 지나치게 다르지 않다면 비규범 표기로도 문자 언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실 제로 일상생활에서 학습자가 접하는 표기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다. 비규범 표기가 158) ‘원리 1’이 곧 표의주의 표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박종관(2019ㄱ: 37-38)에서는
‘까마귀, 너무, 부터’와 같은 표기는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면서도, 언중의 어원 의식 이 흐릿해진 것을 고려한 것이기 때문에 단어의 의미 파악을 쉽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 으로도 이해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원리 1’과 ‘원리 2’를 표음주의와 표의주의보다 상 위의 원리로 보았다. 같은 이유로 관습적 표기법도 ‘원리 1’에 해당할 수 있다.
필요한 때도 있고, 비규범 표기로써 별다른 지장 없이 의사소통하는 때도 존재한 다. 그러나 비규범 표기의 존재 범위는 무한하지 않으며, 규범 표기와의 관계가 유 지될 때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앞서 논의한 표기형의 합리성이 어느 수준으로 확보되면 표기로써 의사소통에 성공할 가능성, 즉 표기의 소통 가능성도 커진다.
그런데 표기의 소통 가능성은 규범 표기와의 시각적 유사성, 표준 발음으로의 환원 가능성 등으로만 확보되지는 않는다. 표기형의 소통 가능성을 판단하는 활동 은 최종적으로 언어 주체가 표기 행위를 수행하는 맥락과 결부되어야 한다. 개인 의 표기 행위는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며 제약을 받는다. 언어 주체로서의 개인이 합리적이고 소통 가능하다고 판단한 표기형도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표기 교육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강보선(2013: 23-24)에서는 드라마 제목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 고 있는데, 비규범 표기형인 <차칸>을 드라마의 제목으로 사용한 것을 철회하라 는 사회적인 압력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159) 매년 한글날마다 헷갈리는 규범 표기를 제대로 익히자는 취지의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 것도 규범 표기가 얼마나 사회적 영향력을 지녔는지 느끼게 해 준다. 이와 같은 현실의 언어생활을 고려하 여 강보선(2013: 24)에서는 맞춤법의 창의적 사용에는 사회적 수용 가능성을 고려 할 수 있는 비판적 수용 능력이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하여 Ⅱ장에서 살펴보았던 이기연(2009: 331-336)에서 예시하는 사례 가 다시 흥미를 끈다. 이 연구에서는 현재 한글에서 쓰이지 않는 문자를 사용한 표기, 연철한 표기 등이 현대에 사용되는 양상과 그것의 표현 효과에 주목했었다.
흥미로운 점은 소개하는 사례에 모두 ‘예스러움’의 복원이라는 점이 공통되어 있다 는 것이다. 비규범 표기임에도 옛것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그 비규범 표기는 현재 의 체계를 위협하지 않는다. 이러한 예스러운 표기에 대한 사회적 저항감은 현재 의 표기법을 비트는 것에 비하여 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비규범 표기의 사용을 논의하는 순간 표기 행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 치 대립을 발견하게 된다. 양영희(2017)에서는 사회 방언학과 비판적 언어 인식의 두 흐름을 조화시키는 방안으로서, 학습 자료를 사회 방언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수집하고, 교육 내용을 교수·학습화하는 과정에서 비판적 언어 인식을 도입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양영희(2017)에서는 교육 내용과 교육 방법의 층위로 구분하였으 159) 이는 표기 행위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판단이 달라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공영방 송의 드라마 제목이 아니라 도서의 제목이었다면 이처럼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지는 않 았을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대통령들이 산출한 비규범 표기는, 비록 그것이 일상생활에 서 흔히 발견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더욱 주목을 받고 조롱의 대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