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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납주조 기물의 역사적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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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물 주조의 역사

1.2. 탈납주조 기물의 역사적 사례

앞장 살펴본 바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주조 기물 제작에서 분할주조법의 사용이 전반적으로 우세하였다. 분할주조법이 고유의 제작 방식으로서 문화 깊숙이 자 리 잡고 있던 중국에서도 특정한 기물들은 탈납주조법으로 제작하였다. [그림 3-16]은 후주시대에 제작된 청동 유물로 부드럽고 유연한 밀랍의 특성을 최대한 으로 활용해 화려하고 세밀하게 조각된 형태를 만들었다. 가느다랗고 구불거리 는 풍부한 선적인 장식들이 잔과 잔받침을 극적으로 화려하게 만들어준다.92) 이 처럼 세부적으로 돌출된 형태가 많고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묘사가 특징적인 기 물은 분할주조법으로 구현하기 어렵다. 따라서 분할주조법으로 다져놓은 기술에 탈납주조라는 새로운 방식의 주조법이 더해져 보다 다양한 양식과 장식적 표현 을 금속 기물에 접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 3-16] <술잔과 잔받침>, 후주시대 무덤 출토, ca. 500 BC (출처: https://www.researchgate.net)

[그림 3-17] 탈납주조에 의한 정교한 세부 묘사 (출처:https://i.pinimg.com/564x/d7/e8/0c/d7e80c0a

cd4c8831bb7757daeb421a1c.jpg)

92) Behzad Bavarian, Lisa Reiner, op. cit., p.25.

국보 제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百濟 金銅大香爐)>는 탈납주조법으로 제작 된 금속 기물이다. 이 향로는 사비도읍 시기 백제를 다스렸던 왕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산리고분군에서 1993년 12월에 출토되었다.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인의 뛰어난 금속공예 기술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물로 백제 고유의 미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최고의 예술품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기물의 형태와 장식 요소가 백제인의 세계관과 이상향을 잘 반영하고 있는 백제 문화의 정수로 인식되고 있다.

향로는 위에서부터 봉황, 산악, 연꽃, 용의 순서로 표현돼 있다. 전체적인 비례 가 매우 빼어나고 곡선이 유려하다. 아래 받침으로 넓게 퍼진 용의 다리와 갑작 스럽게 좁아지면서 큰 향로를 받들고 있는 용머리의 극적인 결합은 백제의 석탑 이나 석조(石彫)에서 발견되는 특유의 조형 감각을 엿보게 한다. 머리를 번쩍 든 용의 모습, 물에 핀 연꽃, 그 위에 솟은 산악, 그 상부의 다섯 봉우리에 앉은 기 러기들, 그리고 정상부에 날아갈 듯한 봉황, 이들 전체 조형은 아래에서 위로 향 하는 한없는 상승 작용을 빼어나게 표현하였다.93)

[그림 3-18] <백제금동대향로>, 백제 6∼7세기, 부여 능산리사지 출토, 높이 61.8cm, 국보 제287호,

국립부여박물관

[그림 3-19] <백제금동대향로>의 세부 1 [그림 3-20] <백제금동대향로>의 세부 2

국립부여박물관이 <백제금동대향로> 발 굴 2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특별전《하늘에 울리는 염원 백제금동대향로》의 도록에 수 록된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박학수와 강형태의「백제금동대향로의 주조기술 연구」

에는 향로의 제작 방법에 관한 연구 결과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저자는 전체적 모양 이 대단히 복잡하고 부분부분 역구배가 많 은 <백제금동대향로>의 형태적 특징에 근 거해 탈납주조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복잡한 향로의 형태를 분할주조법 으로 제작하기에는 필요한 주형의 갯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주조 후 각각의 조각을 하나로 조립하는 일 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작업이 불가능하다고 언급하였다. 게다가 분할주조로 제작했을 경우 주형이 서로 맞닿는 부분에 필연 적으로 생기는 분할선(parting line)의 흔적이 향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탈 납주조에 의한 제작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내세웠다.94) 아래는 <백제금동대향 로>에 관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저자가 설명한 제작 공정의 일부이다.

“우선 밀랍 모형과 주형의 제작과 관련해 뚜껑에 존재하는 산을 만들 때 모형 의 내부에서 밀어 올려 산을 만들었고, 입체인 조각물들은 별도로 만들어 부착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은 현재의 위치에서 입체로 조각하는 것이 다른 구조 물들의 간섭으로 인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조로 조각된 상들은 산의 형 상을 잡은 후 산의 집선문(集線文)95)을 조각하기 전에 만들어졌다.”96)

93) 신대택, 박승철,「백제금동대향로의 조형성분석에 관한 연구(중국 금상감 박산향로와 비교분석)」,『The Journal of Digital Policy & Management』, Sep, 11(9), 2013, pp.328-329.

94) 박학수, 강형태,「백제금동대향로의 주조기술 연구」,『하늘에 울리는 염원 백제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 2013, p.249.

95) 직선이 가로, 세로, 대각선 방향으로 채워져 있는 무늬.

[그림 3-21] <백제금동, 대향로> 뚜껑 정상부 (출처:『하늘에 울리는 염원 백제금동대향로』)

향로 상부의 뚜껑 내면은 외면의 돌출 부 분에 대응해 돌출시켰기 때문에 향로의 전체 두께는 0.5∼0.6cm 정도로 균일한 편이다. 하 부는 반구형으로 생긴 몸체와 용트림하는 형 상의 받침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부 분의 연결도 관을 매개로 하여 접합하였다.

용의 입에 물린 간주(間柱)는 용과 함께 주 조된 것으로서 이것을 몸체와 연결된 관속에 끼워 몸체와 받침을 연결하였다. 그런데 X선 사진에 의하면 몸체와 연결된 간주 역할의 관도 몸체와 함께 주조된 것이 아니고 따로 주조해 접합하였다. 중앙에 상하로 된 관이 있고 하부에는 원반으로 연결된 중간 부속품 을 사용해 발과 받침의 접합을 강화하고 있다. 이로써 <백제금동대향로>는 탈 납주조를 사용해 제작했음에도 형태가 대단히 복잡해 한 번에 주조하지 못했음 이 증명되고 있다. 받침은 용이 한 다리를 치켜들고 꼬리와 나머지 3개의 다리 를 이용해 용트림하는 자세로 돌려져 있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파도문, 연화문, 소형의 구(球) 등을 배치하여 전체가 하나의 원형굽으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그 러나 받침 중 바닥에 닿는 것은 용의 발목 3지점뿐으로 이들은 정삼각형을 이루 고 있다. 이것 역시 향로가 치밀한 과학적인 설계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보여준 다.97)

<백제금동대향로>는 탈납주조법으로 정교하게 주조한 후 아말감(amalgam) 처리해 도금하였다.98) 성분분석 결과 구리(15.8%)와 주석으로 합금된 청동으로 주조되었고, 마감으로 올린 도금의 두께는 0.01mm이다.99)

96) ibid., p.253.

97)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recommend/view?relicRecommendId=16891 98) 아말감 도금법(fire gilding). 금을 수은에 녹여 금니 상태로 만들어 금속 표 면에 바르고 불을 가해 수은을 증발시켜 금만 남겨 도금하는 기법.

99) 신대택, 박승철, op. cit., p.330.

[그림 3-22] X선 촬영으로 확인한

<백제금동대향로>의 단면 실측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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