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탈납주조의 고찰
1.3. 탈납주조의 문헌 기록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탈납주조의 역 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러나 탈납주조법의 작업 공정을 기술한 최 초의 저작물은 1100년 무렵에 테오필루스 프레스비터(Theophilus Presbyter)가 쓴 것 으로 알려진『데 디베르시스 아르티부스(De Diversis Artibus)』32)이다. 그의 책은 고중 세로부터 온전히 살아남은 예술에 관한 유 일한 논문 가운데 하나이다. 베네딕트 교단 의 사제였던 테오필루스는 당시 잘 알려진 금세공가이자 금속공예가로서 청동 향로의 제 작 법 을
비롯해 다 양한 금속 품의 제조 공정 기술을 책에 상세히 기술하였다. ‘De Diversis Artibus’는 영어로 ‘On Diverse Arts’로 번역되 며, 우리말로는 ‘다양한 기술에 관하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33)
『데 디베르시스 아르티부스』는 전체가 3권으 로 구성돼 있다. 색료, 유리, 금속 등 재료적 속 성에 따라 책을 분리했고, 조각과 건축을 제외한 실용 예술의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각 권은 주제에 따라 작업장의 구조나 도구와 같은 기본
32) ‘데 디베르시스 아르티부스(De Diversis Artibus)’는 또한 ‘스케둘라 디베르 사룸 아르티움(Schedula Diversarum Artium)’으로 불리기도 한다.
33) Heidi C. Gearhart,『Theophilus’ On Diverse Arts: The Persona of the Artist and the Production of Art in the Twelfth Century』, The University of Michigan, 2010, p.1.
[그림 2-15] Roger von Helmarshausen, <Christ crucified
from a Processional Cross>, 니더작센(독일), c. 1100, 청동 주조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 [그림 2-14]『De Diversis Artibus』의
한 페이지, Harley 3915 f. 19.
(출처: 대영도서관)
적 사항과 작업 조건에 관해 먼저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어서 재료의 이 해와 활용, 작품의 제작과 완성을 작업의 공정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서술하였다.
제1권은 38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색료의 제조부터 활용까지의 내용을 다뤘다. 제 2권은 총 31장으로 유리공예를 주제로 하였다. 금속공예를 다루고 있는 제3권은 총 96장으로 전체 분량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저자가 금속공예에 가 장 큰 관심을 두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제3권도 전개 방식은 앞의 두 권과 마찬가지였다. 금속공예 작업장의 기본 설비와 도구를 먼저 다루고 난 후 금속의 절삭(切削), 타출(打出), 조각(彫刻) 등의 다양한 기술과 금속 정련과 제련, 담금질, 니엘로(niello)와 칠보(enamel) 기법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무 엇보다 잔이나 향로와 같은 성물(聖物), 성구(聖具)의 제작에 큰 관심을 기울이 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3권에서는 금속 제품에 관한 내용 외에도 금속이 부 분적으로 활용되는 종과 오르간, 나아가 상아와 보석을 포함한 귀금속 세공에 대해서도 한두 장씩을 할애하고 있다.34)
테오필루스는 3권 25장 ‘은 주조(De Fvndendo Argento)’에서 은괴(銀塊, silver ingot)를 제작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27장 ‘대형 성작과 그 주 형(De Maiore Calice Et Eivs Infvsorio)’에서 탈납주조와 관련된 내용을 본격적 으로 다뤘다. 뿐만 아니라 30장 ‘성작 손잡이 주조(De Fvndendis Avricvlis Calicies)’
는 제목 그대로 탈납주조로 제작한 손잡이를 몸체와 땜질해 성작을 완성해 나가 는 작업 공정을 순서에 따라 상세히 기술하였다.
“성작의 몸통을 두들기고 마감한 후에 손잡이를 만들어 붙이고자 한다면, 우 선 밀랍을 이용해 기본 형태를 만들고 용이나 동물, 조류 그 밖에 당신이 원하 는 어떤 모양으로든 표면에 조각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새끼손가락마냥 가늘고 길어서 마치 양초처럼 생긴 작고 동그란 밀랍 조각을 각각의 손잡이 위에 붙이 는데, 머리 쪽이 조금 더 두꺼워야 합니다. 이것을 물줄기라고 하는데, 물줄기는 뜨거운 인두로 재빨리 만들어 붙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 잘 반죽한 점토로 각각 의 손잡이들을 따로따로 조심스럽게 덮습니다. 이때 밀랍 모형의 세세한 요철 부분이 완전히 채워지도록 주의하십시오. 물줄기의 꼭대기 부분을 제외한 모든 34) 전한호, 전선자, op. cit., pp.139-140.
곳을 점토로 조심스럽게 덮은 후 동일한 과정을 세 번 반복하십시오. 다음으로 주형들을 석탄불 근처에 놓아 전체가 따뜻해져 밀랍이 완전히 녹으면 조심스럽 게 부어내십시오. 그리고는 곧바로 흘러나온 구멍이 아래로 향하도록 주형을 뒤 집은 채 불 속에 넣어 석탄처럼 시뻘겋게 달 때까지 그대로 둡니다. 그리고 즉 시 준비한 은을 녹이십시오. 이 때 약간의 스페인 황동을 더하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절반쯤35) 되는 은이 있으면 2루미(Nummi)36) 만큼의 무게를 더하되, 비율 에 따라 약간씩 가감하기 바랍니다. 불에서 주형을 꺼내 세워 단단히 고정하고 밀랍을 부어낸 바로 그 구멍에 녹인 은을 붓습니다. 냉각시킨 후에 점토를 제거 하고 줄과 끌로 손잡이를 다듬은 다음에 성작 몸통의 계획한 위치에 최종적으로 부착하십시오.”37)
테오필루스는 3권의 61장 ‘향로 주조(De Thvribvlo Fvsili)’에서도 탈납주조에 대해 재차 기술하였다. 또한 84장 ‘오르간의 구리 바람통과 풀무 장치(De Domo Cvprea Et Conflatorio Eivs)’와 88장 ‘주석 물병(De Ampvllis Stagneis)’, 그리고 왁스 대신 수지(tallow)을 써야 한다는 85장 ‘종의 제작(De Campanis Fvndendis)’
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에서 탈납주조를 활용한 금속품 제작의 절차에 관해 순서 대로 설명하였다. 아울러 86장 ‘종소리의 크기 평가(De Mensvra Cymbalorvm)’
와 87장 ‘차임벨(Item De Cymbalis Mvsicis)’에서는 정확하고 좋은 소리가 나는 작은 음악 연주용 종을 만들기 위해 각기 다른 비율로 밀랍을 섞는 방법까지 자 세히 설명하였다.38)
중세 이탈리아의 조각가이자 금세공가인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1500∼1571)도 작업 과정에서 테오필루스 프레스비터의『데 디베르시스 아르티 부스』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첼리니는『벤베누토 첼리니 자서전(The
35) 무엇의 절반인지는 기록돼 있지 않음. 도가니의 절반으로 추측하나 그 당시 에 사용된 도가니의 규격을 예상할 수 없어서 정확한 양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36) Nummus(복수 Nummi)는 고대 후기 로마와 비잔틴 제국들에 의해 발행된 저가의 구리 동전의 단위이다.
37) Theophilus Presbyter, edited and translated by C. R. Dodwell,『The Various Arts, De Diuersis Artibus』, Oxford University Press, 1961(reprinted 1998), pp.82-83.
38) ibid., pp.158-159.
Autobiography of Benvenuto Cellini)』을 남겼 는데, 이 책에 이탈리아 피렌체의 로자 데이 란 치(Loggia dei Lanzi)에 있는 <페르세우스와 메 두사의 머리(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조각상의 제작 과정을 상당한 분량으로 설명하 였다. 탈납주조법을 처음으로 시도하기 위해 필 요한 사전 준비, 주조 작업의 진행 상황, 주조 결과에 관한 설명들이 주를 이뤘다. 뿐만 아니 라 작업에 관한 개인적인 소회와 작품의 의뢰인 인 코시모 1세(Cosimo I de' Medici)39)와 주고 받은 대화까지 세세하게 기록하였다.
“... 왁스로 제작한 모형 위에 점토 막을 형성 한 후 철제 지지대로 그것을 조심스럽게 둘러쌈 으로써 주형의 강도를 보강하였다. 그리고는 약 한 불로 왁스를 녹여내기 시작했다. 녹은 왁스 는 미리 만들어 놓은 여러 개의 공기 구멍을 통 해 쏟아져 나왔다. 공기 구멍이 많을수록, 주형 은 쇳물로 더 잘 채워진다. 왁스를 다 뽑아낸 후, 나는 페르세우스 주위를 둘러 깔때기 모양의 용광로를 만들었다. 벽돌을 쌓아 주형을 둥글게 감싸는 형태로 만들었는데, 불이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벽돌 간의 간격을 널찍이 조적하였다.
그리고는 적은 양의 장작을 쌓아 이틀 밤낮으로 계속해서 불을 지폈다. 모든 밀 랍이 소성되고 주형이 충분히 구워졌을 때, 그것을 묻을만한 큰 구덩이를 즉시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주조 작업을 함에 있어서 기존에 알려져 있던 모든 기술 적 규칙들을 엄격히 지키면서 실행하였다.”40)
주조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성패의 기본이 되는 주형의 제작에는 정교하고 엄 39) 메디치 가문의 일원으로 교황의 인정을 받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토스카 나 대공국을 다스림.
40) Benvenuto Cellini, George Bull 역,『The Autobiography of Benvenuto Cellini』, Penguin Book, 1977, pp.343-344.
[그림 2-16] Benvenuto Cellini,
<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 1545∼1554, 청동 주조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
밀한 기술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제자나 부자간의 세습 형태로 존속되었다. 그러 므로 문서로서 남아있는 테오필루스 프레스비터나 벤베누토 첼리니의 기록이 후 세 장인들에게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삼국사기』,『고려사』등 극소수의 책에서만 금속공예에 관계 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단지『경국대전』41)에서 국가가 관할하고 있는 장인 의 종류와 종사자 수 그리고 금, 은, 동, 철, 납의 가공과 주조 등 금속과 관련된 업무를 규정한 내용이 일부 남아있다.42) 그러나『경국대전』에도 금속공예의 세 부적 기술이나 작업 방식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공예 기술의 기 록은 전승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도 단지 유적과 유물을 통해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혹은 무형문화재로 인정된 종목의 기능 보유자가 전수받은 기 술을 통해서 이해하고 추측할 뿐이다.43)
41) 조선시대 통치의 기준이 된 최고의 법전(法典).
42) 홍정실,『수공정신과 공예기술』, 길금공예연구소, 2006, p.19.
43) 홍정실,『거멍쇠의 자존심』, 길금공예연구소, 2006, pp.4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