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작품 연구 1

문서에서 비영리 - S-Space - 서울대학교 (페이지 190-196)

5. 시간의 채집

5.3. 작품 연구 1

2018년 6월 행위예술가를 자처하는 이가 서울 청계천에 위치한 베를린 장벽을 훼손한 사건이 있었다.212) 현재는 지워져 원래의 상태로 회복을 마쳤지만, 이 모 든 서사와 채집하던 날의 날씨까지도 고스란히 왁스에 전이돼 주조 기물로서 재 탄생되기를 바랐다.

수차례에 걸쳐 관찰한 바로는, 통일 전 일반인의 접근이 가능했던 서독 쪽의 벽면에는 이산가족 상봉과 통일을 염원하는 글들이 쓰였거나 다양한 그라피티 (graffiti)213)가 그려져 있으나, 동독 쪽 벽면은 처음 건설됐을 당시의 무미한 콘 212) 2018년 서울 베를린 장벽 훼손 사건, https://namu.wiki.

[그림 5-100] 베를린 장벽(동편) [그림 5-101] 베를린 장벽(서편)

[그림 5-102] 주조 결과, 베를린 장벽(동편) [그림 5-103] 주조 결과, 베를린 장벽(서편)

크리트 구조물 상태 그대로 세월에 의해 풍화된 흔적만 더해졌을 뿐이다.

베를린 장벽의 질감 채집은 오직 체온을 이용한 손동작만으로 실행되었다. 그 러므로 작업일의 날씨가 채집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림 5-100]과 [그림 5-101]

은 베를린 장벽 동편과 서편의 질감을 판형 왁스에 채집하는 과정을 기록한 사 진이다. 왁스로 옮겨온 질감에서 색의 간섭이 제거됨으로써, 장벽 서편이 시각적 으로 화려한 것과 달리 장벽 동편의 질감이 훨씬 촘촘하고 뚜렷했다.

<시간의 채집 20-1>은 베를린 장벽 동편에서 질감을 채집한 주물 판재와, 스 탬핑과 롤프린팅을 함께 사용해 무늬를 만든 주물 판재를 연결해 제작하였다.

장벽을 채집한 사진의 오른쪽 부분에는 비, 바람, 햇볕이 남긴 흔적이 담겨있다.

한편 왼쪽 부분에는 좁고 가는 선을 촘촘히 찍어서 시간의 흔적에 상응하는 인 공적 질감으로 대비 효과를 만들었다.

바위나 콘크리트와 같은 영속 성을 지니는 물체의 표면을 탁본 이라는 즉흥적 행위로써 옮겨와 제작한 주조 기물은, 이전과는 다 른 형태로 구상되었다. 기물의 전 반적 형태는 벽을 모티브로 제작 되었는데, 2개의 주물 판재를 길 쭉하게 이어 붙였으나 판재와 판 재가 완벽히 맞물리는 구조로 결 합되지 않는다. [그림 5-104]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거나 높이 차이를 줌으로써 아직까지도 존재하는 시간의, 공간의, 재료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하 였다.

<시간의 채집 20-1>은 동독 쪽 장벽에서 질감을 채집한 주물 판재로 하부 구 조를 만들고, 서편에서 채집한 주물 판재로 상부 구조를 올렸다. 과거 독일 분단 은 세계사의 어두운 단면 중 하나이다. 감추거나 외면하지 않고 정통으로 맞닥 뜨려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굄돌을 둬 상석을 더욱 웅장

213) 길거리 여기저기 벽면에 낙서처럼 그리거나 페인트를 분무기로 내뿜어서 그리는 그림.

[그림 5-104] 판재의 연결, <시간의 채집 20-3>의 세부

하게 보이도록 하는 비석이나 기념비와 같은 조각적 자태를 가지는 기물을 제작 하였다.

이번 연구 작품에서는 기물의 제작 과정에 서 뜻하지 않게 발생한 여러 사건의 흔적도 가능하다면 남기고자 노력하였다. 왁스 소성 과정에서 주형 재료가 갈라져 [그림 5-105]와 같은 결함이 만들어졌는데, 이러한 결함까지 도 작품의 일부로 수용해 기록하듯 남겼다.

사물을 수집하는 것은 존재를 수집하는 것 이며, 존재를 수집한다는 것은 수집한 사물의 가치를 흡수해 자신에게 통합시키는 것을 의 미한다고 프라부 마줌달(Pravu Mazumdar)은

얘기한다.214) 그러므로 유형의 흔적과 무형의 기억을 수집해 단순히 작업에 활 용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역사를 이해하고자 노력 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고 재정립하는 기회로 삼고자 하였다.

214) 프라부 마줌달,「존재를 수집하는 것: 수집으로부터를 현상기술적 배열로 독해 하기」,『수집으로부터』,2020.

[그림 5-105] 주물 표면의 핀 결함

[작품27] <시간의 채집 20-2>, 정은, 31×11×10cm, 2020

[작품28] <시간의 채집 20-1>, 정은, 26.5×10×18.5cm, 2020

문서에서 비영리 - S-Space - 서울대학교 (페이지 190-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