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물 주조의 역사
1.3. 탈납주조 기물의 현대적 사례
1.3.2. 유리지의 주조 기물
고 그에 맞춰 제작한 집게를 사용해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뒤집는 방법으로 작업 하였다. 그러나 경험이 축적되고 나서는 가정용 냄비처럼 플라스크의 양쪽 측면 에 손잡이를 달고 여러 겹으로 내화장갑을 착용한 도우미가 혼자 힘으로 플라스 크를 뒤집는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유리지는 주조할 모형의 다양한 크 기와 비례에 맞춰 원통형과 사각 기 둥 형태의 플라스크를 그때그때 제작 하였다. 실제로 유리지가 사용한 가장 큰 플라스크([그림 3-45] 우)는 지름 22.5cm, 높이 40cm로 이는 당시 보유 하고 있던 진공주조기의 최대치([그림 3-45] 좌)의 약 4배에 달한다. 그러므 로 플라스크의 대부분이 진공주조기 내부로 삽입되고 상부만 외부로 노출 되는 기본적 방식의 주조가 불가능하였다. 결국 그는 주조기 위로 플라스크를 올리고 바닥으로 가해지는 진공 압력만으로 주조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주조 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플라스크의 바닥면과 압력 보조판 사이의 틈을 생고무 로 꼼꼼히 막아 감압에 의한 공기흡입력의 낭
비를 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했을 경 우에는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강구해 재 차 도전하였다.
유리지는 왁스 모형 제작에 주로 미국 F사 의 청록색의 사출용 조각 왁스119)를 사용했는 데, 유동성이 뛰어나고 유연할 뿐만 아니라 성 형 후 응고 시간도 그의 작업 방식에 잘 맞았 기 때문이다. 사출용 왁스는 일반적으로 사출 기에서 용융된 왁스를 고무 혹은 실리콘 틀에
119) Freeman사의 ‘Turquoise’로 Freeman Flakes 라인 중 가장 단단한 왁스이 다. 정확성과 내구성이 뛰어나면서도 유연한 특성이 있어 큰 조각에 이상적이다.
http://freemanwax.com/freeman-flakes-injection-waxes.html
[그림 3-45] 플라스크, 좌(기성품) 16×25cm, 우(자체 제작) 22.5×40cm
[그림 3-46] Freeman Flakes - Turquoise
압력으로 주입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의 기물은 사출기로 주입할 수 있는 크기를 크게 넘어서는 것이었으므로 대용량 주전자에 왁스를 녹여 주입구 가 확보된 주형에 직접 붓는 방식을 택하였다. 작업 구상과 스케치에 이은 첫 번째 모형은 다루기 쉬운 유토로 작업했고 완성 후에는 실리콘으로 틀을 만들고 왁스로 사출한 다음 형태를 수정하고 보완하였다. 섬세한 세부 묘사를 요구하는 작업에서는 실리콘 틀짜기와 왁스 사출 후 수정 작업을 2∼3회 반복할 때도 있 었다. 작업 가운데 왁스 모형의 속을 비워내야 하는 경우 속파기를 할 수 있도 록 아귀가 맞게 이등분한 왁스 덩어리 2개를 준비하였다. 이때 하나의 덩어리를 절반으로 자르면 절단 과정에서 소실되는 부분이 생겨 완벽한 모형을 얻지 못한 다. 그러므로 유리지는 질감이 완벽히 표현된 2개의 덩어리에서 좌우 한쪽씩만 살려 속파기를 하고 최종적으로 한 몸으로 붙임으로써 원형과 비교해 어떠한 형 태적인 손실이나 부조화가 없는 완벽한 왁스 모형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 공정 으로 원하는 두께를 디바이더(divider)를 사용해 모형의 외곽에서부터 일정하게 표시하고 볼륨을 살피며 동일한 두께로 속을 비우는 작업을 하였다. 따라서 하 나의 작품 제작을 위해서 여러 개의 왁스 사출이 필요하였다. 분할된 왁스 모형 을 인두기로 빈틈없이 붙이고 줄과 스파튤라 등 각종 손도구를 사용해 이음새가 드러나지 않도록 말끔하게 다듬어 통째로 주조하였다. [그림 3-48] <물살>을 제 작한 1990년대 후반까지, 모형을 통으로 주조하기에는 설비와 기술이 미치지 못 해 2개 이상의 조각으로 분할해 주조하고 땜으로 이어 붙였던 것과 비교하면, 이는 주조 기술에서 크게 진일보한 결과라 평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그림 3-47] 왁스 모형 제작 방법
제작된 <앙천>과 <골호-삼족오(三足烏)>
의 평균 두께는 4mm 내외로 페터 바우 휘스의 대형 기물의 두께와 유사하 다.120)
정밀주조법으로 주조 가능한 최소 두 께는 0.5mm로 알려져 있다.121) 그러나 이는 장신구와 같은 소형 기물에 해당하 는 것으로 대형 기물의 경우 그 정도로 두께가 얇거나 부위별로 두께 변화가 심 하면 주조 응력의 작용으로 쇳물이 가장 자리까지 도달하지 못하거나 기물 가운 데에 구멍이 생기기 쉽다. 따라서 유리 지는 자신이 보유한 설비로 생산할 수 있는 최대 크기의 기물들을 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골호-삼족오>와 같이 유리지가 기물 형태로 차용한 소재는 주로 돌이었다.
그는 실제 돌을 실리콘 틀로 뜬 다음 왁 스 모형을 만들었고 그것을 주조하여 최 종적으로 돌 형태의 기물을 얻었다. 유 리지는 돌의 형태와 질감을 주물로 떠 자연 형태 그대로를 작품으로 옮김으로써 표면을 다듬는 자신의 작업 속성을 덜 드러내고자 하였다. 또한 누구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동양적 믿음 안에서 자연 물인 돌멩이를 사용하여 골호를 만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고, 죽음과 관련된 주제의 특성상 개인적인 언어보다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차용한 삼족오처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중적 모티프를 작품에 차용했다.122)
120) 바우휘스의 대형 기물은 정밀주조법이 아닌 다른 주조법에 의해 제작된 것을 의미한다.
121) John Campbell,『Complet Casting Handbook: Metal Casting Processes, Techniques and Design』, Butterworth-Heinemann, 2011, p.1008.
[그림 3-48] 유리지, <물살>, 1994, Silver 925, 단풍나무, 31×10.5×14cm
[그림 3-49] 유리지, <골호-삼족오>, 2002, Silver 925, 18×16×27cm
[그림 3-50] 유리지, <무념>, 2002, Silver 925, 22×16×21cm
122)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는 특강을 위해 유리지가 준비한 작가노트에서 인용함.
유리지공예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