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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중국의 언어 문제와 문법의 효과

3. 문법서에서 나타난 중국어 문법체계

4.3 중국 문법학의 성립

4.3.3 근대 중국의 언어 문제와 문법의 효과

4. 중국어 문법서의 역사적 의의 123

문법서 간에 학술적 교류를 바탕으로 문법이론의 탐구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반영 한다. 또한 이는 1920년대 이후의 문법서가 문법이론을 구축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 친다. 金兆梓(1922), 陳承澤(1922)는 문법의 연구범위, 연구방법 등을 심도 있게 논의 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 문법서에서 쟁점이 되었던 字와 詞의 구분, 중국어 품사의 구분과 활용 등의 문제를 연속선상에서 논의하며 문법이론을 확립하고자 했다.

중국의 문법 연구는 학과체제의 정립과 함께 활성화되었으며 이는 학교교육에 활 용하기 위한 학교문법의 성격을 띤다. 이와 같은 문법서는 교육, 학습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학술적, 이론적 논의도 갖추어 중국에서 문법이 하나의 학문 영역을 정립해 가는 것에 기여했다.

전문성이 부족하고 법식으로 정립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학생들이 국문수업을 어 려워하고 國粹가 쇠멸한 것은 모두 문법 전문 서적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라 여겼 다.

이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어문에 대한 법식, 법칙이 있고 이를 전문적으로 다룬 연 구서가 있으나 중국의 경우 이에 대응하는 바가 부재함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를 중 국의 높은 문맹률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간주했다. 즉 한문 자체가 어렵다거나 법칙 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를 법칙화해서 체계적으로 제시한 연구, 연구서가 없음 을 문제시 한 것이다. 따라서 문법연구를 통해 이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둘째, 문법 연구자들은 중국의 전통적 어문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들은 서 양과 같은 문법연구가 존재하지 않았을 뿐, 중국에서도 독자적 언어 연구가 계승되 어 오고 있었으며 다만 이는 다음과 같은 한계점이 있다고 간주했다. 馬建忠은 小學 이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小學은 각 字의 형태, 소리를 연구대상 으로 하며 이는 가장 쉽게 변하는 요소로 그 변화가 무궁하며 “원래 변화하지 않는 이치가 없다”고 했다. 또한 이는 한 글자에 대한 국부적인 논의에 지나지 않으며 ‘글 자를 만드는 것[造字]’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字를 조합해서 문장, 글을 구성하는 방법과 같이 변하지 않는 법칙에 대한 총체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 장했다. 來裕恂도 전통적 언어 연구의 국부적인 연구 방식을 비판했다. 그는 전통적 으로 문자의 책, 문장의 책이 있었지만 전자는 訓詁, 후자는 詞章만 다루어 字學과 文學이 종합적으로 고찰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셋째, 문법 연구자들은 중국의 전통적 어문 교육, 전수 방법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논했다. 馬建忠은 학문에는 전수할 수 있는 규칙과 전수할 수 없고 스스로 심득해야 하는 것이 있으며 응당 주고받을 수 있는 것으로 주고받을 수 없는 것을 탐구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주고받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만 논하고 주고받 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고 그저 신통하게 되면 이해할 수 있다는 식에 그치고 있음을 지적했다. 글을 가르침에 있어서 글자의 부류가 다르고, 그 조합의 방 법이 상이함을 알지 못하고 당연한 것을 따르면서 그것이 이와 같음은 알지만 왜 이 와 같은지 그 까닭을 찾지 못하는 폐단이 있음을 지적했다. 章士釗는 학교 교육에서 小學을 다루며 초학자들에게 이를 전수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으며 小學은 전문적인 학과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또한 암송을 통해서 文理를 깨우치는 것에서 벗어나 서 文典을 통한 효율적인 국문 교육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莊慶祥도 言文 교육에 정 해진 법칙이 없고 오직 정신에서 이를 구하는 것에 그치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는 각

4. 중국어 문법서의 역사적 의의 125

과목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시대 조류에 부합하지 않다고 여겼다. 또한 ‘당연한 것은 알지만 그러한 까닭을 알지 못하는 점’을 문제시 했다.

이처럼 중국의 문맹률이 높은 것은 중국의 언어, 문자를 습득하기 어렵기 때문이 고 이는 중국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적 언어 연구, 교육 방법에 있다고 간주 한 것이다. 기존의 연구, 교육 방법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문법서에서는 새로 운 방법론을 제시했다. 󰡔文通󰡕에서는 중국인에 의한 최초의 문법서답게 그 연구 방 법을 상세히 설명했으며 이는 이후 문법연구의 표본이 된다. 󰡔文通󰡕에서의 논의를 중심으로 기타 문법서에서의 논의도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43) 이에 본 저서에서는 자세히 증명하고 분해하고 아주 작은 것까지 분별하고

해석하여 배우는 이들로 하여금 차이를 알고 그러한 후에 이를 글에 적용시켜 적합 한 바를 얻게 하도록 힘썼다.198)

(44) 다양한 예문을 많이 취하여 조항에 견주어 같게 하고, 부류에 저촉되면 늘리

니 옛날과 지금의 서적을 모두 궁구히 한다.199)

(45) 이 책은 고금에 있어서 독특한 책이다. 독창적 견해는 빈말에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근거할 만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그러한 후에야 능히 사람들에게 신임 받을 수 있다.200)

(46) 널리 예를 인용하여 증명하고 서로 비교하여 당연한 것에서 같은 것, 상이한

것의 까닭을 찾아야 한다. 그런 후에 법칙으로 나타낼 수 있고 뜻에 밝아질 수 있 다.201)

󰡔文通󰡕에서 제시한 문법연구 방법의 논의에서 ‘分解’, ‘辨析’과 같은 내용은 그 분 석적 태도를 반영한다. 󰡔要略󰡕에서도 ‘나열한 각각의 예를 분석하여 깨우쳐야 함[所 列一一兮, 析而領悟]’을 강조하며 분석적 태도를 중시했다. ‘比例’, ‘觸類’, ‘比擬’는 비교, 대조하고 분류하는 것에 해당한다. 󰡔漢文典󰡕에서의 ‘경계를 지어 바로 잡고 자 세히 다루어 밝힌다.[疆而正之, 縷而晰之]’, 󰡔會通󰡕에서의 ‘비교하고 살펴본다.[比類參 觀]’, ‘조례를 나누고 같은 부류를 모아[條分類纂]’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文通󰡕 에서는 문법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방법론의 적용이며 그 법칙이 타당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근거가 갖추어 져야 한다고 여겨 예문을 중시했다. 이후 문법서에서도 모

198) 是書爲之曲證分解, 辨析毫釐, 務令學者知所區別而後施之於文, 各得其當。󰡔文通 例言󰡕. 199) 繁稱博引, 比例而同之, 觸類而長之, 窮古今之簡篇。󰡔文通 序󰡕.

200) 此書爲古今來特創之書。凡事屬創見者, 未可徒託空言, 必確有憑證而後能見信於人。󰡔文通 例言󰡕.

201) 是宜博引旁證, 互相比擬, 因其當然以進求其所同所異之所以然, 而後著爲典則, 義訓昭然。

󰡔文通 例言󰡕.

두 문법 설명과 함께 다양한 예문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문법서에는 중국의 언문불일치에 대한 문제의식도 반영한다. 그 예로 󰡔漢文典󰡕에 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47) 상고시기에 辭로 文을 이뤘고 周때까지 言文이 합일했다. 전국 시대 이후 오

랑캐로 인해 語法이 어지러워졌고 그 때 이후부터 語言文字가 멀어져 이에 國語는 해석하기 어렵고 國文은 통하기 어렵게 되었다.202)

(48) 빌려온 말이 날마다 늘어나고 호훈이 늘어나고 옛 뜻이 많이 분화한데 名學

을 연구하지 않아 결국 허실을 분별할 수 없게 되고 언문이 일치하지 않는다.203) 그는 중국에서 말과 글이 본래에는 일치했지만 이후에 불일치하게 되었다고 했으 며 언문이 일치하지 않게 된 원인으로 ‘오랑캐’, ‘빌려온 말’, ‘호훈’ 등을 지적했다.

그러나 언문의 불일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문법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漢文典󰡕에서 文法 개념은 언어[辭]를 철저히 배제하고 글[文]만을 연구대상으 로 한다. 기타 문법서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文通󰡕에서 당대 이전의 글로 범위 를 한정한 이후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대개 고대 문언만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는 한계점이 있다. 󰡔中等國文典󰡕, 󰡔會通󰡕 등의 문법서에서는 문법연구가 고대 의 것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했지만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要略󰡕에서는 國文은 國語의 대표이며 글이 있으면 반드시 그 전에 말이 있으므 로 글이 말로 풀리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다만 옛 사람들은 법칙을 알지 못해서 글을 말로 풀지 못했고 이로 인해 國文의 실용이 실현되지 못함을 지적했다. 國語, 國文의 개념을 구분하고 글을 말로 해석해야 한다고 했으므로 역시 중국의 언문불일 치의 문제를 인식한 것이다. 󰡔要略󰡕에서는 문법을 통해 문언의 일치를 이루고자 한 점이 특징이다. 앞의 인용문 (8)에서와 같이 문법을 정의하면서 문법이 곧 ‘문언합일 을 통해 장애되는 것을 없애고 통하게 하는 것’임을 지적했다. 그는 ‘文言合一’을 통 해 비로소 國文의 실용이 실현될 수 있으며 이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바로 문법임 을 강조했다.

(49) 본서에서 일일이 분석한 것에 의거하여 文이 곧 語임을 깨닫는다. 文은 곧

文, 語는 곧 語이니 文을 마음으로 이해하면 입으로도 깨닫게 된다. 그러한 뒤에 문 202) 上古之世, 由辭成文, 延及于周, 文言合一。戰代以來, 蠻夷猾夏, 語法紛亂, 自是厥後, 語言

文字, 距離太遠, 此國語所以難解, 國文所以難通也。󰡔漢文典󰡕 380~381쪽.

203) 丐詞日出, 互訓浸滋, 古義多岐, 名學不究, 遂致虛實莫辨, 言文不一。󰡔漢文典󰡕 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