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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대상으로 한 중국의 문법연구 시도

2. 문법서 출현의 배경

2.3 외국어를 대상으로 한 중국의 문법연구 시도

제2언어와의 접촉, 학습은 중국인들이 중국의 언어, 문자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중국인들은 외국어를 익히거나 이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문법을 경험하고 연구 한다. 본 절에서는 중국에서의 외국어 문법연구 과정을 밝히기로 한다.

중국인들이 외국어를 접한 시기는 물론 청말 시기보다 훨씬 앞선다. 하지만 그 이 전의 중국은 중화주의 세계관에 젖어 다른 나라에서 중화의 언어를 익히는 것을 당 연시 여기고 이방 언어 습득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초기 중국의 외국어 교육 은 서양인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馮樂璋(2002:7)은 선교사 Morrison은 1818년 말라 카에 英華書院을 설립했으며 이는 기독교를 전파하고, 서양 선교사에게는 중국어를, 중국인에게는 영어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또한 Morrison의 󰡔華英字典󰡕의 제3부 󰡔英漢字典󰡕에서 영어의 표음자, 단어 구성 방법 등에 대해 소개하며 이는 영 어에 대한 중국인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중국인에 의한 외국어 연구는 외국인 선교사, 상인들과의 접촉이 잦았던 중국의 남방 지역에서부터 어휘집, 사전류가 출현하면서 시작된다. 그 예로 子卿의 󰡔華英通 語󰡕, 馮澤夫 等의 󰡔英話注解󰡕(1864)를 살펴보기로 한다.

󰡔華英通語󰡕의 원본은 이미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이를 저본으로 일본인 福澤諭吉(1835―1901, ふくざわゆきち)32)가 저술한 󰡔(增訂)華英通語󰡕을 통해 그 면모 를 살펴볼 수 있다. 그 서문에 의하면 그는 186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항구에서 청 나라 상인으로부터 子卿이 저술한 영어 어휘집 󰡔華英通語󰡕을 접했으며 중국의 음을 모르는 일본인 하층민을 위해 가타가나로 발음을 첨가해 󰡔(增訂)華英通語󰡕을 출간했 다. 그 안에는 何紫庭의 서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는 1855년에 작성된 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華英通語󰡕은 1850년대 무렵에 저술된 것으로 저자 子卿은 廣東 출신으 로 영국 사람에게 영어를 배웠으며 그 실력이 뛰어났다던 것으로 추측된다.

32) 1858년 에도에 네덜란드 어학교인 蘭學塾을 열고, 메이지유신 후 1873년 明六社를 창설했

다. 동인으로 확약하며 실학, 부국강병을 주장하고 자본주의 발달의 사상적 근거를 마련 했다. 기타 저서로는 󰡔시사신보󰡕, 󰡔학문의 권유󰡕, 󰡔문명론의 개략󰡕 등이 있다.

2. 문법서 출현의 배경 29

󰡔華英通語󰡕는 단어의 의미, 형식에 의거하여 총 46類로 구성된다. 1類부터 37類까 지는 「天文類」, 「地理類」, 「刑法類」, 「茶葉類」, 「酒名類」, 「身體類」, 「草木類」 등으로 다양한 주제에 의거하여 단어를 분류했다. 38類부터 45類까지는 「單字類」, 「二字類」,

「三字類」, 「四字類」, 「五字類」, 「六字類」, 「七字類」, 「長句類」로 구성되며, 이는 한자 의 수에 근거하여 앞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단어, 즉 사물명사 이외의 인칭대사, 동 사, 형용사, 부사 혹은 간단한 구문을 수록했다. 長句類에서는 7자 이상의 한자로 구 성되는 구문의 영어 표현을 제시한다. 46類의 單式類는 본문에서는 單格式類라 했으 며 서수, 문자부호, 날짜 표현 등에 대해 논한다. 표기 형식은 오른쪽에 중국어 표현 을 한자로 기록하고 그에 대응하는 영어 표현과 그 발음을 왼쪽에 제시한다. 예를 들면, “呢的都係舊貨啫(네 것은 모두 오래된 물건이다.)”의 중국어 구문은 모두 7글자 이므로 七字類에 속하고, 아래와 같이 제시된다.

<그림 1> 󰡔華英通語⋅七字類󰡕의 예

다양한 영역의 어휘를 섭렵하고 있으며 영어 발음을 중국어로 표기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서양인들과의 접촉, 교류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上海, 南京, 北京 지역에서도 외국 어 학습, 교육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어휘집은 남방 지역의 방언에 근거 한 것으로 기타 지역에서의 사용이 적절치 않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각 지역에서 해당 지역의 방언에 근거한 어휘집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일례로, 󰡔英話注解󰡕는 馮澤 夫 외에 여러 상업, 무역업에 종사하던 이들이 자금을 모아 함께 저술한 것으로

1860년에 출간되다. 馮澤夫는 서문에서 초기 통상, 무역이 廣東의 홍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1842년에 5개의 항구가 개방되어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上海가 중심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는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 많지 않아 경영 에 능통하다 하더라도 언어의 장벽에 부딪히게 되고 영어를 배우려고 해도 이전의 연구서는 廣音(광동어)에 근거하여 활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본서를 저술하 며 이는 寧波의 음(지금의 오방언)에 근거하며 외국 상인들이 사용하는 대략적인 내 용을 수록하고 있다고 했다. 󰡔英話注解󰡕는 앞서 언급한 󰡔華英通語󰡕와 체계 및 구성

이 유사하다. 총 39門으로, 1門부터 33門까지는 단어의 의미에 의거해서 각 주제별로 분류했고 34門에서 39門까지는 1字語門에서 5字語門, 그리고 長句語門으로 단어, 구 문을 그 글자 수에 의거하여 분류, 설명한다.

초기 중국의 외국어 연구서는 항구 개방으로 일찍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지역에 서 어휘집 형식으로 출현했다. 대개 상업, 교역에서 상용되는 단어, 구문으로 사물 명사 위주이고 영어 구문, 문장을 제시한 경우 중국어 문장에 영어 어휘를 일대일로 대응시켜 어순이 올바르지 않는 비문도 종종 보인다. 이와 같은 어휘집은 음운, 문 자, 문법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실용성에 중점을 두어 학술 적 가치가 낮다.

1840년 아편전쟁 발생 후, 중국에서의 외국어 인재 배양, 외국어 교육은 시급한 사

안이 된다. 특히 제2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은 1858년, 영국과 天津條約을 맺는 데 그 조항 가운데 ‘영국과 관련한 문서는 모두 영문으로 쓸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 되어 있다.33) 즉 영어가 외교 문서 작성의 준거가 되고 서양 사람들과의 교류, 무역 도 점차 증가하여 외국어에 능한 인재 양성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이에 魏源

(1794―1857), 奕訢(1833―1898), 馮桂芬(1809―1874) 등의 여러 지식인들은 외국어에

능한 인재를 양성할 것을 촉구했고34), 이에 京師同文館이 설립된다.35) 정부에 의해 외국어 학습 기구가 설립되고 보다 체계적인 외국어 학습, 교육이 진행되면서 중국 내에서도 외국어에 능한 인재들이 속속히 배출되고 이들에 의한 외국어 연구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연구 성과물의 예는 아래와 같다.

① 󰡔英字入門󰡕, 1874, 曹驤

33) 그 조항은 다음과 같다. “이후에는 영국의 문서는 모두 영문으로 쓰며, 잠시 동안은 한문 도 함께 쓴다. 중국에서 학생들을 선발하여 파견하여 영문을 익히게 하는 것을 기다려,

(학생들이) 영어를 잘 습득하게 되면 한문을 함께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후에 文詞가

문제시 되는 부분이 있으면 항상 영문을 바른 뜻으로 삼는다.”

34) 그 예로 奕訢은 1861년에 “각국의 정황을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우선 그 나라의 언어 문 자를 알아야 사람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는다. 각 나라에서는 자금을 들여 중국인을 불러 청하여 문의를 풀게 하나 중국에서는 외국 언어 문자에 능통한 사람이 없으니 깊이 있는 것을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馮樂璋(2002:5) 재인용.

35) 1862년 북경에 同文館이 설립되어 영문반이 개설된다. 이후에는 프랑스어, 러시아어, 독일

어 수업이 추가로 개설된다. 청일 전쟁 패배 후, 1897년에는 일본어뿐만 아니라 천문, 수 학 수업도 개설되어 외국어 학습뿐만 아니라 서양의 문화, 과학 지식도 교육하는 서학 중 심지로 발전한다. 이어서 1863년에는 上海廣方言館, 1864년에는 廣州廣方言館이 설립된다. 이외에도 1893년 武昌에 설립된 自强學堂과 같이 개인이 설립한 학당에서도 외국어 교육 이 실시되며 교육열은 보다 확산되어 갔다. Federico Masini(1993:82)참조.

2. 문법서 출현의 배경 31

② 󰡔英文擧隅󰡕, 1879, 汪鳳藻

③ 󰡔英字指南󰡕, 1879, 楊勛

④ 󰡔法字入門󰡕, 1887, 龔渭琳

⑤ 󰡔英文話規󰡕, 1895, 張得彝

위의 저서는 모두 동문관 출신의 인재들이 출간한 외국어 학습서, 연구서에 해당 한다. 曹驤(1844―1923)36), 龔渭琳, 楊勛은 上海廣方言館, 汪鳳藻(1851―1918), 張得彝 은 京師同文館 출신이다. 중국에서 외국어 학습, 연구는 오랑캐의 말을 배우는 것으 로 경시되었으며 이는 동문관 설립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점차 외국 언문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이와 같은 연구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위의 연구서 가운데 󰡔英字入門󰡕, 󰡔法字入門󰡕을 상세히 분석함으로써 이 시기 외국어 연구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한다.

󰡔英字入門󰡕은 1874년에 曹驤이 저술했다. 그는 영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외무역 이 증가하고 있으며 서양국은 동일한 언어, 문자를 사용하는 것에 반해, 중국은 그렇 지 못하니 이들과의 무역, 교류를 위해서 우선 英字, 英語를 익히는 것이 중요함을 지적했다. 그는 英字를 익힘으로써 문인은 서양 사람의 정치, 풍속의 장단점을 헤아 릴 수 있고, 신분이 낮은 사람도 상업을 운영하거나 외국어 교사가 될 수 있으며 西 語, 西文을 몰라서 서양 사람들에 의해 속임을 당하고 희롱 당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영어 학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미 서학을 연구하는 자들이 다 수의 영어 학습서를 출간했지만 上海음으로 주를 단 저서가 없어 본 지역의 사람들 은 여전히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방도가 없음을 걱정하여 이를 저술한다고 밝혔다.

󰡔英字入門󰡕는 「論英字源委」, 「單字門」, 「二字拼法門」, 「摘錄四五六字拼門法」, 「摘 錄七字以外拼門法」, 「數目字門」, 「點句勾股及異體字考」, 「學語要訣」로 구성된다. 그는 서문에서 영어를 배우기 위한 방도를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4) 영국은 字와 語가 같다. 語를 배우려면 반드시 먼저 字를 배우는 것을 근본으 로 해야 한다. 字를 배우는 것은 반드시 字의 근본을 우선으로 한다. 어떻게 體를 변별하고, 音을 찾는가를 곡절 없이 분명히 해야 한다.37)

36) 曹驤의 호는 潤甫이며, 廣方言館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후 上海道署, 영국계工部局, 洋務局 에서 번역 업무를 담당했다. 동문관에서 서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37) 竊思英國字與語同, 學語必先以學字爲本, 而學字之法, 必先於字之源委, 如何辨體, 如何審音, 無不曲折詳明。󰡔英字入門󰡕 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