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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중국어 문법연구의 연원과 발전

2. 문법서 출현의 배경

2.2 일본의 중국어 문법연구의 연원과 발전

일본은 중국에 앞서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이는 중국으로 전파되어 그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언어학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와 관련하여 Federico Masini(1993), 沈國威(2010)는 근대 시기 신조어와 어휘 교류 양 상에 있어서의 중국, 서양, 일본의 영향관계를 고찰한 바 있다. 본 장에서는 일본의 중국어 문법연구의 연원과 발전과정을 밝히고 중국에 미친 영향력을 살펴보기로 한 다.

牛島德次(1989:20, 22)는 일본의 중국어 연구는 1868년 막부시대 말기까지 중국에 서와 마찬가지로 고대 중국어의 助字, 虛字 연구를 중심으로 행해졌으며 청대 소학 의 영향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일본은 한자권에 속해 있었으므로 고 대 중국어, 한문을 특별히 외국어로 인식하지 않았다. 중국어 연구도 중국의 고문을 읽거나 한문을 작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화가 본격적 으로 시작되면서 일본의 중국어 연구도 크게 변화한다. 일본은 서양의 언어학을 적 극 도입하면서 기존의 중국어 연구 방법을 변혁한다.

일본의 서양의 언어학과의 접촉, 수용은 중국을 거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의 중국어 연구는 중국에서 출간된 서양 연구자에 의한 중국어 문법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의 초기 문법연구는 중국에서 출간된 서양인들의 영어, 중국어 연구서를 저본으로 이에 표점을 찍거나 주석을 다는 형식으로 시작되었다. 그 예로 󰡔文學書官 話󰡕는 일본 연구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으며 중국어 문법서 저술의 기초가 되었다.

󰡔文學書官話󰡕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27) 이는 Crawford, Tarleton Perry (高

27) 이는 서양인에 의한 중국어 문법서로 응당 2.1장에서 다루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는 일 본의 중국어 문법연구의 바탕이 된 저서로 일본에서 출간된 문법서와의 비교, 대조를 위 해 본장에서 다루기로 한다. 이를 통해 일본에서의 서양의 중국어 문법연구 수용과 이후 의 발전 양상을 살펴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文學書官話󰡕은 서울대학교도서관 소장 古

第丕, 1821―1902), 張儒珍이 공동 저술한 것으로 1869년에 출판되었다. 이는 외국인 이 서술하고 중국인이 이를 중국어로 번역, 기록하는 방식으로 저술되었다. 그 서문 에서 “본고는 북경 중국어 방언을 서양언어의 문법과 유사한 방법으로 논의하기 위 한 것이다. 이는 선교사 학교와 성경 수업, 중국어가 외국어인 학생 및 교사들을 위 한 교과서이다.”고 했다.

󰡔文學書官話󰡕는 21장으로 나뉘며 다음과 같다. 1장 「論音」, 2장 「論字」에서는 중 국어의 음, 자에 대해 총괄하고 3장부터 17장까지는 「論名頭」, 「論替名」 「論形容言」,

「論指名」, 「論數目言」, 「論分品言」, 「論加重言」, 「論靠託言」, 「論幫助言」, 「論隨從言」,

「論折服言」, 「論接連言」, 「論示處言」, 「論問語言」, 「論語助言」로 15가지 품사를 설명 한다. 18장 「論字換類」에서는 품사 전환, 19장 「論總講話樣」에서는 문단에서의 품사 분석, 20장 「論句連讀」에서는 문장의 종류, 21장 「論話色」에서는 비유, 과장 등의 수 사법을 논했다. 중국어 발음에서부터 품사, 문장에 대해서까지 상세히 설명했으며 각 장마다 연습 문제도 갖추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저본으로 한 중국어 문법서가 다수 출현했다. 大槻文彦(1847―

1928, おおつき ふみひこ)는 이에 주석을 달아 󰡔支那文典󰡕을 편찬하여 1877년에 小

林新兵衛에서 출판한다. 金谷昭(미상, かなや あきら)는 이에 표점을 찍어 같은 해에

󰡔大淸文典󰡕을 靑山淸吉에서 출판한다. 村上秀吉(미상, むらかみ ひできち)는 1893년 2월에 󰡔文學書官話󰡕를 저본으로 이에 자신의 해석을 더해 󰡔支那文典󰡕을 간행한다.

아래에서는 이들의 󰡔文學書官話󰡕의 수용 양상을 통해 초기 일본의 중국어 문법연구 의 발단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文學書官話󰡕와 일본인에 의한 중국어 연구서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우선 그 제목에서 나타난다. 일본인에 의한 3권의 문법서는 모두 그 서명을 󰡔文學書官話󰡕라 하지 않고 󰡔大淸文典󰡕, 󰡔支那文典󰡕으로 개명했다. ‘文學書’를 모두 ‘文典’으로 대체했 으며 ‘官話’ 대신에 ‘支那’, ‘大淸’의 나라 이름을 사용했다. 이에 대해 大槻文彦는 例 言에서 “다만 그 제목이 조금 부합하지 않아 지금 支那文典으로 바꾼다.”고 했으며 본문에서도 ‘文法’이라고 칭하며 ‘文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官話’에 대 해서는 “관화는 土話의 반대로 중국 관부의 통용어를 뜻하고 이는 중국 현재의 보통 어이다.”고 했다. 金谷昭 역시 “大淸文典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동학들에게 바친다.”

라고만 개칭에 대해 언급했으며 개명방법은 󰡔支那文典󰡕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村上秀吉도 󰡔支那文典󰡕으로 개칭했으며 원서의 「文學解」 부분을 「文典ノ 定義」로 대 체했다. 「文學解」, 「文典ノ定義」에서 ‘文學書’, ‘文典’에 대한 정의내용을 비교해 보

活字本을 저본으로 한다.

2. 문법서 출현의 배경 23

면, 전자는 “文學書는 話, 字의 용법을 논하는 것이다.”고 했고 후자는 “文典은 언어 문자의 용법을 논하는 것이다.”라 하여 그 내용은 동일하다. 다만 ‘文學書’를 ‘文典’

이라 한 것 외에도 ‘話’를 ‘언어’, ‘字’를 ‘文字’로 바꾸어 그 용어를 달리한 점을 알 수 있다.

󰡔文學書官話󰡕와 일본에서 출간된 3권의 중국어 문법서의 전체 구성을 비교, 대조 해 본 결과, 그 전체 구성, 목차가 완전히 일치한다. 모두 21장으로 그 세부 항목, 예 문도 대부분 원서와 일치한다. 다만 각 문법서의 품사체계가 다소 상이하며 이를 통 해 󰡔文學書官話󰡕의 수용 양상을 보다 상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표 1> 일본 출간 중국어 문법서의 품사종류 (1)

문법서 품사종류

文學書官話 名頭, 替名, 形容言, 指名, 數目言, 分品言, 加重言, 靠託言, 幫 助言, 隨從言, 折服言, 接連言, 示處言, 問語言, 語助言

(大槻)支那文典

名頭(名詞), 替名(代名詞), 指名(指示代名詞), 形容言(形容詞), 數目言(數詞), 分品言, 加重言(副詞), 靠託言(動詞), 幫助言(助動 詞), 隨從言(副詞), 折服言(非否), 接連言(接續詞), 示處言(副詞), 問語言(疑問詞), 語助言(感詞)

(金)大淸文典 名頭, 替名, 形容言, 指名, 數目言, 分品言, 加重言, 靠託言, 幫

助言, 隨從言, 折服言, 接連言, 示處言, 問語言, 語助言

(村上)支那文典 名詞, 代名詞, 指名詞, 形容詞, 數目詞, 分品詞, 加重詞, 動詞,

助動詞, 副詞, 折服詞, 接續詞, 示處詞, 疑問詞, 間投詞

󰡔文學書官話󰡕에서 품사를 15가지로 분류하고 일본의 3권의 문법서 역시 이를 수 용하여 15가지 품사를 제시했다. 3권의 문법서의 전체 품사체계는 일치하나 차이를 보이는 부분도 있다. 大槻文彦의 󰡔支那文典󰡕은 원문에서 제시한 품사의 명칭 아래 주석 형식으로 별도의 품사 명칭을 추가했으며 이는 <표 1>에서 괄호 안의 명칭에 해당한다. 言을 단위로 하는 품사 명칭을 詞로 변경한 점이 특징이다. 또한 加重言, 隨從言, 示處言의 부류는 부사에 속하는 것이라 했다. 金谷昭의 󰡔大淸文典󰡕은 󰡔文學

書官話󰡕의 품사 명칭을 그대로 따랐으며 옆에 일본어 발음을 기록했다. 村上秀吉의

󰡔支那文典󰡕에서는 大槻文彦의 󰡔支那文典󰡕에서 별도로 제시한 품사 명칭을 계승했다.

그리고 품사 하위분류의 명칭 및 기타 문법 개념의 용어를 변경했다. 본서의 ‘品詞’,

‘人稱’, ‘格’, ‘固有名詞’, ‘普通名詞’, ‘抽象名詞’ 등의 명칭, 문법 설명 역시 저자의 문

법적 이해에 근거한 것으로 이는 현대 중국 언어학에서도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

는 村上秀吉이 󰡔支那文典󰡕의 서문에서 이는 󰡔文學書官話󰡕를 기초로 해서 편찬한 것 으로 감히 自著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자신의 의견을 더한 부분도 적지 않음을 강조한 바와 같이 필자가 원서를 수정, 보충한 것이다.

3권의 문법서는 모두 󰡔文學書官話󰡕를 저본으로 그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

만 문법서 간에 문법 개념어에 접근하는 태도가 다소 상이함을 알 수 있다. 金谷昭 는 󰡔文學書官話󰡕의 문법 개념어를 일본어로 읽는 방법만을 제시했으며 大槻文彦의 경우 󰡔文學書官話󰡕의 문법용어 아래에 신조어를 추가하기도 했다. 이는 원서에서 제 시한 문법용어에 기반하고 다만 그 개념 이해를 돕기 위해 보충한 것이다. 반면 村 上秀吉은 해당 문법 개념을 영어로 제시하고 이를 직접 번역했다. 즉 이는 󰡔文學書 官話󰡕의 번역을 거치지 않고 서양의 문법개념을 번역하여 스스로 창안한 문법용어와 함께 제시한 것이다. 이는 일본인 문법연구자들이 서양의 중국어 문법서를 통하지 않고도 스스로 문법개념을 이해, 번역하고 중국어 문법에 대해서 논할 수 있는 수준 에 이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초기 일본의 중국어 연구는 중국에서 출간된 서양의 중국어 문법서의 영향 을 많이 받았으며 이를 일본의 중국어 문법연구의 발판으로 삼았다. 이후 일본의 중 국어 연구는 서양의 문법서에 대한 훈고, 주석 차원을 넘어서서 스스로의 문법관에 입각한 중국어 문법서를 저술하게 된다. 이로써 진정한 일본의 중국어 문법연구의 틀을 정립하게 된다. 그 예로 아래의 문법서를 살펴보기로 한다.

① 󰡔漢文典󰡕, 1891, 岡三慶, 出雲寺高

② 󰡔漢文典󰡕, 1898, 猪狩幸之助, 金港堂

③ 󰡔漢文典󰡕, 1902, 児島献吉郎

④ 󰡔支那文典󰡕, 1905, 廣池千九郞, 早稻田大學出版部

岡三慶(미상, おか さんけい)28)는 1887년 󰡔岡氏之支那文典󰡕을 晩成堂에서 출판했으 며 1891년에 이를 󰡔漢文典󰡕으로 개명하여 出雲寺高에서 출판했다. 그는 본서는 日根 尾 선생의 󰡔英文典󰡕을 참고하여 저술한 것이지만 “영어는 영어의 문법이 있고 중국 어는 중국어의 문법이 있으며 양자는 크게 같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文典은 「字 學」, 「韻學」, 「辭學」, 「文學」 4부분으로 구성되어야 하지만 본서에서는 「辭學」만을 논 28) 일본의 한학자로, 󰡔近世漢學者著述目錄大成󰡕에서는 그가 天保(1830―1843), 弘化(1844―

1847)에 태어났을 것이라 추측했다. 南総에서 태어났으며 본성이 松崎씨이다. 󰡔文法學講

義上下󰡕(1891), 󰡔初学文法図解󰡕(1878), 󰡔小学雅文纂言 : 頭書文詞伊呂波字引󰡕(1879), 󰡔晩成

堂文話󰡕, 󰡔大学講義󰡕, 󰡔孟子講義󰡕, 󰡔唐宋八大家文講義󰡕 등의 많은 저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