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문법서에서 나타난 중국어 문법체계
4.3 중국 문법학의 성립
4.3.1 어문학의 독립과 문법의 경계 확립
중국의 전통적 학문체계는 관리가 되기 위한 관문으로서의 과거제도를 정점으로 한다. 과거시험은 유교 경전을 주로 다루었으며 따라서 중국 대부분의 학문이 경전 을 위주로 이루어졌다. 중국 언어학 역시 경전 해석을 위한 도구로 간주되어 경학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언어연구는 독립적인 영역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이 는 그 학문의 명칭에서도 나타난다. 小學이라는 명칭은 大學을 위한 발판이라는 의 미로, 小學은 大學을 위해서, 大學에 의해서 존재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전통적
188) 쿤(1962)은 과학사의 변천사를 비상과학(extraordinary science)으로의 이행, 패러다임의 전
이(paradigm shift)의 패러다임 이론으로 설명했으며 이는 다양한 학문사 서술에 응용되었
다. 이는 중국 언어학사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朱曉農(2008)은 쿤의 패러다임 이론을 적 용하여 청대 고음학의 발전사를 분석했다.
4. 중국어 문법서의 역사적 의의 115
언어 연구는 언어 그 자체가 연구목표, 연구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전 해석에 궁극적 목표가 있으며 따라서 그 연구대상도 경전에 기록된 것으로 제한된다는 한계 점이 있다.
청대 小學의 경우 문자보다 언어가 우선한다는 점에 근거하여 경전의 기록을 언어 로 간주했으며 이로 인해 음운, 허사 등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는 언어 자 체에 한층 접근한 연구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내 려진다. 大學을 위한 小學을 중시하는 전통적 관점에서는 이를 경전의 도리를 구하 지 않고 오히려 지엽적인 언어, 문자에 천착하게 되었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현대 언 어학의 관점에서는 이를 여전히 경서를 주석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며 허사 자 체에 대한 체계적, 과학적 연구를 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189) 이와 같은 평가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청대 언어학은 언어 자체에 대한 연구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한 편, 여전히 경학의 부속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말 경학의 지위가 흔들리고 1905년에는 과거가 폐지되기에 이른다. 한편 서학이 전래되고 학과 체제가 도입되면서 중국의 경학 중심의 학문 체계가 붕괴, 해 체되고 지식의 범위가 넓어져 사학, 철학, 문학 등의 다양한 학문 분야가 신생한다.
언어학 역시 이러한 조류를 따라 독립한다. 초기 중국어 문법서는 이 시기에 출현한 것으로 이와 같은 언어학의 독립 양상이 반영되어 있다.
우선, 중국 언어학의 독립 근거로 언어, 문자의 기능, 의의를 새롭게 인식한 점을 꼽을 수 있다. 馬建忠은 당시 孔孟, 西學을 중시하며 문자 연구를 소홀시 하는 풍조 를 지적하고 스스로가 文을 연구하는 이유, 文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 다.
(40) 말하기를, 천하에는 道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으니, 文이 그것을 담아내며,
사람 마음에는 理를 지니고 있지 아니함이 없으니, 文이 그것을 밝힌다. 그러나 文 은 道를 싣는 것이지만 道가 아니고, 文은 理를 밝히는 것이나 理가 아니다. 文이라 는 것은 이를 따르면 머무를 곳에 이르게 하는 수단이며 머무르는 곳은 아니다. 고 로 군자는 이것을 배워 그 道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190)
그는 文은 도가 아니고, 이치가 아니지만 도를 싣고, 이치를 밝히는 것으로 이를 통하지 않고는 도, 이치에 접근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文에 대한
189) 龔千炎(1997:18) 참조.
190) 曰, 天下無一非道, 而文以載之; 人心莫不有理, 而文以明之。然文以載道, 而非道; 文以明理, 而非理; 文者, 所以循是而至於所止, 而非所止也, 故君子學以致其道。文通 後序.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서 도, 이치가 밝혀지지 못 했다고 했다. 이는 중국의 전통 경학에서 “經의 궁극적 목표는 도이다.”라 하고 小學은 이러한 경전에 담긴 도 를 해석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한 점과 일정부분 유사하다. 하지만 馬建忠의 논의에 서 도와 이치를 담고 있는 대상, 文은 경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 상이하다.
예를 들면 馬建忠은 서양의 아이들은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하며 이에 수 학, 과학, 법률(法律), 성리(性理) 등의 학문에 정통하게 되어 유용한 학문을 한다고 묘사하면서 도에 통달하고 이치에 밝다고 했다. 또한 문법을 통해 중국 서적의 도, 이치뿐만 아니라, 서양의 책이 싣고 있는 도와 이치에도 두루 통달할 수 있을 것이 라고 했다. 즉 馬建忠이 언어, 문자 연구를 통해 깨우치고자 한 ‘道’와 ‘理’는 서양인 이 깨우 친 바, 그리고 서양의 책에서 싣고 있는 것도 포괄하여 광범위한 내용을 가 리킨다.
中國文典의 총설에서는 文辭/文詞의 중요성, 의의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41) 文辭는 사회의 진보를 촉진한다. 세상에 文字가 없으면 文詞도 없다. 배움에
있어서 따라서 배울 바가 없고, 가르침에 있어서도 따라서 가르칠 바가 없다. 어짐 과 우둔함, 알고 모름의 구분이 없고 굶주려 먹고, 목말라 마시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이 없다. 문에 관계한 일이[文事] 시작되면 모든 이성적 생각의 양식이 모두 기록 될 수 있다. 앞의 일을 잊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대도 가히 이를 따를 수 있다.191)
文은 곧 사회 진보의 비결로 간주된다. 文을 통해 비로소 먹고 마시는 본능적인 삶 이외에 배움과 가르침이 가능하며 알고, 모름이 구분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록 을 통해 전대와 후대가 연결될 수 있다고 했다.
嚴復 역시 “文字語言는 학술, 문사의 돈이다.”고 주장하며 시장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서 돈을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학을 추구하면서 그 언어, 문자를 익히지 않으면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했다. 그 역시 서학을 익히기 위한 수 단으로서 언어, 문자의 기능을 강조한 것이다.
역대로 중국에서 언어, 문자는 경전의 도를 깨우치기 위한 통로로 의미가 있었다 면 청말에 이르러 지식의 범위가 확장됨에 따라 언어, 문자가 기록하고 전달하는 내 용 역시 다양화되며 따라서 언어, 문자는 보다 다양한 지식으로의 매개체, 보다 넓은 세계로의 교량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언어 연구의 대상은 경전 텍스트로 제한되지 191) 文辭者, 所以促社會之進步也。世無文字, 卽無文詞, 學無從學, 敎無從敎, 無賢愚知不肖之
別, 飢食渴飮之外, 更無餘事, 文事肇興, 一切理想程式, 皆可紀載, 不獨前事之不忘, 亦後事 之師也。中國文典 1쪽.
4. 중국어 문법서의 역사적 의의 117
않고 그 궁극적 목표 역시 경전 안에서 도를 강구하는 것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문 법연구는 이와 같은 언어, 문자를 규칙화함으로써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습득하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초기 문법서는 경전에 기록된, 고대 문언만을 주요 대 상으로 하는 한계점을 지니지만 이는 경전 해석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
청말 중국의 경전 중심의 학문 체제는 해체되었지만 여러 학문은 각각의 영역을 확립하지 못하고 서로 혼재되어 있었다. 문법서에서도 실제 다양한 분야를 포섭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어문에 관계되는 小學, 文章學, 句讀論, 詞章學, 혹은 당시 서양에 서 수용한 문학(literature), 수사(rhetoric) 논리(logic) 등에 관련한 내용들이 문법서에서 함께 논의되고 있다. 문법서의 문법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초기 문법서는 현대적 문법서에 비해 광범위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 문법 개념에 작문법 개념이 포 함되어 있었다. 한편 小學의 경우, 일부 문법서에서 청대 소학가들의 견해를 인용하 기도 했지만 문법 개념에 혼합되거나 동일시되지 않고 구분되어 문법을 통해 극복해 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본 장에서는 문법과 文學, 修辭, 名學과의 상관관계를 살피고 문법학 영역의 정립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문법서에서 文學의 용례를 살펴보면 그 의미항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전통적 연구 의 한 분야를 일컫는다. 文通에서는 “옛 부터 文學은 주고받을 수 없는 것이다.”라 고 했고, 漢文典에서는 ‘字學을 연구하는 이’에 대조하여 ‘文學을 연구하는 자’를 논했다. “‘字學을 연구하는 이’들은 훈고에 빠지고 ‘文學을 연구하는 자’는 詞章에 갇 혀 文과 字를 모두 그르쳤다.”라 했다. 이때 文學은 전통적 의미의 文學으로 ‘문장박 학’, ‘책을 읽기를 배우다’, ‘유가학설’, ‘小學’ ‘詞章’과 같은 여러 분야를 내포, 총칭 한다.
또한 漢文典에서는 일본의 漢文典의 저술자를 ‘文學家’라 했다. 文典을 字法, 文法을 모두 아우르는 연구서라고 언급한 점에 의거하면 이 때 ‘文學家’는 위에서 언급한 ‘文學을 연구하는 자’와는 상이한 것으로 일종의 문법가와 유사한 개념이다.
또한 漢文典에서 學科, 科學을 논의하면서 文學을 언급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文 學을 統名學, 群學과 함께 無形理學에 속하며 과학의 체계에 의거하면 중국에서 소 위 文은 과학 중에서 하나의 과목에 지나지 않으며 文學이라는 과목에 통합되는 것 은 음악, 그림, 문법, 글자를 익히는 것으로 그 범위가 좁다고 했다. 이때 文學은 전 통적 文學 개념이 대개 文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에 반해 좁은 범위를 포괄하며 새롭게 도입된 학과, 과학 체제의 구성요소를 뜻하며 문법 개념과도 연관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