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미교포의 이주에 따른 정체성 변화
재미교포는 1차적으로 본인이나 부모가 고국을 떠나온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회집단이다. 태어나서 자라난 익숙한 장소를 떠나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경우 일종의 문화적 충격으로서 고국에 대한 그리 움과 이민국에 대한 낯설음을 공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들은 또다시 고국을 방문할 때에도 변화된 사회 앞에 역문화충격과 장소에 대한 낯설 음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정체성의 변화는 곧 장소감의 변화를 의미 하며 북한에 대한 장소감도 이와 연계하여 변화해간다. 즉 재미교포가 북한사회에 대해 인식할 때 모국인 남한사회와 현재 거주지인 재미교포사 회, 미국사회와 연계하여 가치판단을 내린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자는 미국에 2009년 8월부터 2012년 9월까지 체류하면서 참여 관찰을 통해 재미교포들과 나눈 대화들을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고정관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즉 재미교포들은 모국을 떠나와서 초기에 제 한된 문화 속에서 적응 기간을 거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순수하고 남한 사 람들은 밀집된 인구,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생활 등으로 교포들 보다 세련되 고 동시에 영악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북한 사람에 대해서도 일정한 고 정관념이 존재할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순수하다', ' 영악하다', '세련되다', '촌스럽다', '부럽다', '불쌍하다' 라는 6개의 형용동사 를 제시하고 해당된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표시하게 하였다. 각 국가의 사람 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사한 이유는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람을 둘러 싼 장소에 대한 고정관념을 반영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예상대로 재미교포들은 4 집단에 대해서 특정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 3-4] 재미교포가 인식하고 있는 고정관념 자료: 설문조사
조사 결과 북한사람에 대한 '불쌍하다'라는 고정관념이 94.9%로 가장 강하였다. 다음으로 북한 사람을 '촌스럽다'고 선택한 경우가 71.2%이다.
남한 사람에 대해서는 '세련되다'가 69.7%, '영악하다'가 64.9%로 나타났 다. 남한사람에 대해 지니고 있는 '세련되고 영악할 것이다.'라는 고정관념 은 재미교포가 대부분 TV드라마, 쇼, 뉴스와 같은 미디어가 제시하는 모습 을 간접적, 수동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한류로 대표되는 화려하 고 환상적인 곳인 동시에 뉴스에서 보여 지는 각종 범죄, 탈선, 북한의 도발 등을 통해 염려스럽게 비춰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뉴욕타임즈의 편집 국장인 Kim은 그 사회에 소속되지 않은 외부자가 미디어를 통해 수용하는 제한된 정보는 그 사회공간에 대한 실제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설명한 다. 재미교포들은 '부럽다'라고 했을 때 63.6%가 미국사람을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미국에서 거주하면서 겪게 되는 언어의 장벽과 문화차이, 체류신 분의 문제,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주류사회에 대한 동경의 시선이 반 영된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응답자의 미국 거주기간에 따라 차이를 나타낸다.
본 장에서는 정체성의 변화에 따른 장소감의 변화를 제1단계 초기 적응
단계, 제2단계는 중간 적응 단계, 제3단계는 적응 완숙단계로 나누어 살 펴보고자 한다.
먼저 제 1단계, 이민초기에는 이민국에 대한 장소심리적 시차증후군 (jet lag)에서 오는 모국에 대한 그리움과 이민국에 대한 토포포비아가 가장 큰 시기이다. 장소심리적 시차증후군이란 이주를 통해 몸은 새로운 장소에 존재하고 있지만 내면의 기억과 사고방식, 익숙함과 애착은 기존 의 장소에 머물러있게 됨에 따라 외적 존재(물리적 신체)와 내적 존재 (장소심리)간의 간격으로 인한 부적응과 외로움, 향수 등을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한다.46) 이러한 장소심리적 시차증후군은 문화를 접한 이후에 경험하게 되는 문화충격과는 별개로 이민 초기에 나타나는 고립감과 모 국에 대한 상실감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교포의 경우 이러한 장소에 대 한 토포포비아가 먼저 재미교포 사회에 대한 두려움으로 형성된다.47) 이민 초기 정착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때 몰라서 사기를 당하거나 낯 설음으로 인해 먼저 온 가족에게 의존적이 되어 상대적으로 부정적 감정 을 느끼기도 한다.
'이민초기 아무것도 모를 때 재미교포에게 고장 난 자동차를 속아서 비 싸게 산적이 있다. 프리웨이(고속도로)에서 큰 사고가 날 뻔했다.'
(La Mirada 거주, 40대, 남, 교도관)
'29세가 다 되어 언니가 있는 미국에 이민을 왔다. 그때는 아무 것도 몰 랐던 것 같다. 은행에 계좌를 만드는데 혼자 가서 만들라고 한 것조차 섭 섭하게 들렸었다.'
(Cerritos 거주, 40대, 여, 회계직)
46) 의료심리학(Medical Psychology)에서는 직장인들이 주말에 피곤함과 무기력을 느끼는 현상 을 신체리듬과 외부환경에서 오는 불일치 현상 때문이라고 보았으며 이것을 사회적 시차 증후 군(Social Jet Lag)라고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거주지의 급박한 이동에 따른 신체와 심리적 불일치 현상을 장소심리적 시차 증후군이라고 하였다.
47) '이민초기 아무것도 모를 때 재미교포에게 고장 난 자동차를 속아서 비싸게 산적이 있다. 프 리웨이(고속도로)에서 큰 사고가 날 뻔했다'(La Mirada 거주, 40대 남성, 교도관).
'남편이 가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혼자 안됐다며 야근수당까지 챙겨 주면서 일하는 시간을 늘려주었다. 미국에서 사업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몰랐다. 그 (한인)아주머니가 나가면서 월급을 안 받았다며 고소하고 나갔 다. 우리는 야근 수당에 사인을 받아놓는 것을 전혀 몰랐다. 호의를 베풀 었다고 생각했는데 고소를 당하니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앉는 것'이 무엇인 지 이제 알게 됐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주지도 않은 야근수당 을 줬다고 사인을 받아놓는 사장들도 있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잘 몰라서 그런 것 같다.'
(Fullerton 거주, 40대, 여, 개인의류사업)
'운전하다 아이에게 잠깐 신경을 쓰다가 앞에 차를 박았다. 3중 충돌이 됐고 다행히 앞에 있는 차는 한국 사람이었다. 정보(information)를 서로 주고받고 알았다며 갔다. 보험회사에서 다 처리된 줄 알았는데 얼마 후에 DMV(교통관리국)에서 서류가 날라 왔는데 고소를 했다는 것이었다. (나의) 보험회사에서 보험비가 작아서 비용을 다 커버할 수 없어서 직접 나에게 고소를 한 것이다. 이런 것이 다 이민세 같다.'
(Brea 거주, 40대, 여, 디자인 전공)
이러한 이민 초기의 토포필리아는 내집단인 재미교포에 대한 부정적 의식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이민초기 재미교포 스스로를 낯설고 때론 위 협적인 타집단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Cottrell & Neuberg, 2005).
[그림 3-5]는 거주기간에 따른 재미교포에 대한 이미지 변화를 보여주 고 있다. 이민 초기에는 재미교포에 대해 '영악하다'에 44.4%, '순수하다 '는 0%를 나타내다가 점차 거주기간이 증가함에 따라 적응이 이루어져 가고, 내집단인 재미교포사회가 익숙해져감에 따라 순수하다고 느끼게 된다. 재미교포들이 '영악하다'라는 형용사를 '남한 사람'과 연계(64.9%) 해서 떠올린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민 초기에 재미교포를 '영악하다'를 44.4%, '순수하다'를 0%로 인식하는 것은 낯섦, 이질감 등에서 오는 장 소 공포감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림 3-5] 거주기간에 따른 내집단(재미교포)에 대한 이미지 변화
2단계, 이민 중기에는 이민국에서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민 생활에 대한 익숙함과 함께 개선 인식을 위해서 회상기억의 재구성이 일어난 다.48) 점차 적응을 통해 이민국에 대한 토포필리아(친해지기, 익숙함)는 증가하고 모국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강화되며 상대적으로 현재 이 민자의 삶이 한국에서의 삶보다 향상되었다고 느끼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한국 사회는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던지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 교통체증 등은 힘들다' 등의 평가를 통해 이민이라는 선택이 삶의 개선 을 가져왔다는 주관적 평가를 내리게 된다.
'한국에 가면 낯설다. 특히 백화점 같은데 가면 점원들이 따라오면서 물 어보는 것이 부담스럽다.'
(Buena Park 거주, 30대, 여, 한의사)
'한국에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보면 남들 하는 것은 다 해야 되고, 서로
48) 회상기억(Autobiography Memory)의 재구성은 현재 상황이 향상된 것을 기대할 때, 과거를 더 나쁘게 평가함으로써 향상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주관적 평가를 말한다(Wilson &
Ross, 2001).
경쟁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런 면에 있어서 미국에 사는 게 좋다고 느 낀다. 남들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남편도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줘 서 좋다.'
(Cerritos 거주, 40대, 여, 유치원 교사)
3단계, 적응 완숙기가 되면 이민국에서의 진입장벽이나 차별을 경험하 면서 보다 이민국에 대한 냉철한 시각을 갖게 되고 모국에 대한 그리움 의 증가와 동시에 재입국시 역문화충격에 대한 포비아가 형성된다.
'한국과 미국의 중간에 있는 듯 한 생각이 든다. 한국도 미국도 그렇게 살고 싶은 곳은 아니다. 붕 떠있는 것,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중간 같 다.'
(Orange 거주, 30대, 여, 간호사)
'이민 온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먼데이 선데이, 먼데이 선데이 하다보 면 1년이다. 빌빌(Bill, Bill) 거리는 것이 미국생활이라는 말이 있다. 벌 이가 커져도 (동시에) 내야 할 돈도 함께 커진다. 아이들과 언어소통의 문 제도 있다. 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Cerritos 거주, 40대 여, 회계직)
'재미교포로서 한국에 대한 자부심은 크지만 한국에 가면 낯설고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중국, 캄보디아, 동남아시아에서는 외국인으로서 대우해주기 때문에 편하다. 한국에서는 무엇을 물어보면 바보 취급하는 것 같다. 한국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한국에서는 외롭고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내 조국인데 현실적으로는 잘 안 맞는 것 같다.'
(LA ○○교회, K 담임목사)
그러나 점차 적응이 완료되면서 지속적인 모국에 대한 그리움과 토포 필리아의 증가와 함께 이민국에서의 생활의 안정, 사회적 네트워크 확 대, 문화적응 및 가치관 변화 등을 통한 제2의 고향화가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