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민족적 장소애: 원초적 집단

문서에서 저작자표시-비영리 - S-Space (페이지 190-197)

민족적 장소애(Ethnic Topophilia)유형은 민족의식과 고향애를 바탕 으로 대북지원 활동을 펼치는 사람들이 형성하고 있는 장소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북한 사람들을 한민족으로 형제이자 가족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북한을 잃어버린 고향으로 인식하고 있다.

"아버지가 6.25전에 북에서 내려오셨다. 고모와 작은 아버지는 북에 계 셨고 큰아버지와 아버지는 남한으로 내려왔다. 북에 친척들이 탄광에 끌려 가고 처형당하였다. 나는 그런 상처를 받은 가족사에 후손이라 할 수 있 다. 그러나 이렇듯 동족을 죽인 상처를 끊어야 한다. 그리고 가난한 동족 을 도와야 한다…태도가 중요하다. 거지에게 동전 한 입 던져주는 태도가 아니다. 진정으로 위하는 태도가 되어야 한다. 거지에게 짜장면 한 그릇 사주고 너는 왜 거지니? 나가서 일하지 하며 거지라고 욕하고 놀린다고 생 각해 보라. 같은 민족(Ethnic)이다. 당연히 돌보아야한다."

(Seattle거주, 남, 이영호 의사)

"나는 50년 동안 반공교육을 받았지만 (북한지원 활동을 하면서) 비로소 같은 민족임을 깨닫게 되었다. 뿔난 빨갱이라는 불신을 씻고 같은 민족임 을 깨닫게 되었다."

(통일선교대학, 남, 이○○ 수의사)

“북한을 지원하는 이유는 먼저 지정학적으로 가깝고, 같은 문화(역사) 를 가지고 있으며, 같은 피가 흐르기 때문이다. 1992년 처음 북한을 방문 했고, 1997년 밀가루 100톤을 싣고 심양과 단동을 거쳐 압록강을 건너 북 한을 방문했다.”

(남가주교회협의회, 남, 양○○ 목사)

이영호 장로의 경우 부모의 고향이 북한이며, 전쟁의 경험과 이산의 아픔을 간직한 동시에 아가페의 사랑으로 북한을 바라보고 있는 토포필 리아적 지향을 나타낸다.

"골육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는 자 보다 못하다. 죽어가는 형제 동포를 돌봐야 한다. 요셉처럼 골육을 용서해야 한다.86) 6.25전쟁의 상처 가 너무 크다. 작은 땅에서 형제자매가 600만 명이 죽었기 때문에 화해가 필요하다. 남한에도 많은 사상자가 있었지만 북한은 융단폭탄으로 초토화 되었다. 아프게 싸운 상처를 끊어야 한다. 회복, 신유가 필요하다. 민족의 상처, 아픔을 healing 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 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결단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였다."

(Seattle거주, 남, 이영호 의사)

"북한에 지원하는 동기는 사실 특별한 건 없다. 하나님께서 북한에 대한 마음을 주신 것, 동포에 대한 사랑, 연민, 사랑이 이유라고 할 수 있다."

(LA, ○○교회, 남, K.담임목사)

북한 사회의 비판에 앞서 한국과 미국사회 스스로의 반성도 있어야 한 다는 시각도 포함하고 있다. 즉 북한을 심판하기보다 종교적 신념을 바 탕으로 북한 사회를 품어야 하며 미국이 범한 오류에 대해서도 함께 고 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에 정의를 내세우면 생명이 끝난다.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긍휼이 없는 정의라는 것은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두고 자신의 아이라고 서로 싸웠 을 때 아이를 가르라고 했던 것처럼 생명이 없어진다. 그리고 니느웨가 망 하길 바랬던 요나와 같이 악을 행한 성이 망해야만 하는 것이 정의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이를 가르지 않았고, 하나님은 니느웨를 망하게 하지 않으셨다. 북한에 대해서는 사랑이 중요하다. 미국도 북한의 인권을 외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87)

86) 요셉은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자신을 죽이려 하다가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을 용서한다.

87) 솔로몬은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가장 지혜로운 인물로 꼽힌다. 솔로몬은 한 아 이를 갖고 두 여자가 자신의 아이라고 다투었을 때, 아이를 반으로 나누어 가지라는 판결을 내 렸다. 그러자 진짜 어머니는 놀라서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다른 여자에게 아이를 주라고 말 했고, 가짜 어머니는 아이를 가르자고 했는데 이로써 참 어머니를 찾게 됐다. 요나는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로서 자기 민족과 원수인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것'이라고 외치 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억지로 수행하였으며, 니느웨성이 회개함으로 망하지 않자 심판하지 않

(모퉁이돌선교회, 김○○목사, 정기모임 강연 내용 발췌)

이러한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북한 지향은 결혼을 통해 지속·확 대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88) 재미교포 2세인 H선교사는 북한선 교를 위해 중국에 거주하다가 조선족 남성과 결혼하였으며 북한, 중국, 미국에서 각각 결혼식을 올렸다. 본 연구자가 참석한 미국에서의 결혼식 에서는 북한의 흙을 담은 병에 자신이 태어난 미국의 흙과 남편이 태어 난 중국의 흙을 부으며 평생 북한을 위해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의식을 가졌다.89)

은 하나님을 불만스럽게 여겼다. 따라서 K목사는 북한에 정의를 내세운다면 아기가 죽게 되고, 니느웨성이 망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들 모두를 살리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88) 결혼 여부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 적응정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가치관이 일치하 는 두 사람이 함께 북한 관련 활동을 해나가는데도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제도적 측면에서는 비자기간이 끝나서 불법체류자가 된 경우 종종 시민권자와 결혼해서 영주권을 받는 방법을 생 각하기도 하고, 배우자에게 영주권을 주기 위해 영주권자가 서둘러 시민권을 따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89) 재미교포의 대북지원 활동에서 흥미 있는 부분은 조선족에 대한 적극적인 포용자세이다. 재미 교포는 미국 내 소수민족으로서 해외에 흩어져있는 코리언 디아스포라에 대해 공감하며, 조선 족도 광의의 의미로 동포로 바라보고 있다.

[그림 5-2] 재미교포 H 대북 선교사와 조선족 대북 선교사의 결혼식

※ 2012. 4. 21, 캘리포니아 터스틴 'Red Hill Lutheran Church'에서 연구자가 직접 촬영

미주 통일선교대학에 참석하는 한 여성도 대학 때부터 북한선교의 꿈 을 가지고 동일한 비전을 소유한 전도사와 결혼하여 방북활동 등을 지속 하고 있다.

"고3때 북한에 대한 마음을 품게 되었고 CCC(기독교단체) 활동을 하며 그저 북한에 대한 책을 읽거나 세미나를 듣는 미미한 출발을 하였다. 미국 으로 가는 길이 열렸고 북한선교에 비전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리고 통일선교대학을 통해 구체적인 접근방법을 알게 됐고 직접 북한 땅 을 밟게 되었다."

(통일선교대학, 여, 구○○)

민족적 장소애(EP) 그룹의 가장 큰 행동양식은 남북한의 대화와 다양 한 교류를 통해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적 박애공간 인식 집단은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통일준비를 위해 북한을 지원하거나

지원하기를 원하고 있다. 즉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고, 건강 증진에 힘쓰며, 이산가족 상봉 추진 등 통일국토공간의 회복을 위 해 일하고 있다. 특별히 미래통일시대의 주역이 될 어린이들이 식량부족 과 영양부족에 걸리지 않도록 다양한 식량과 의료지원활동을 벌이고 있 다.

“우리 단체의 목적은 북한이 개방되었을 때 일할 수 있는 일꾼 리더를 키우는 것이다. 또 그 안에 있는 사람(북한 내부, 엘리트)을 키우는 것이 다. 실제로 북한의 엘리트들을 북경으로 불러내 취직을 시켜주고 집단거주 를 하도록 하고 있다."

(VOWE 선교회 대표, 김대평 목사)

“임신 중 영양과 비타민 부족이 극심하면 태아가 사망하거나 불구가 될 확률이 높다. 이렇게 유산, 기형아, 저체중아 출산은 어린아이들이 계속 자라지 못하고 질병에 시달리게 되고 민족의 장래를 변화시키는 무서운 복 병이다.”

(박세록 SAM 의료복지재단 원장, 회고록 중 발췌)

평양과학기술대학의 총장을 맡고 있는 김진경 씨는 아버지가 독립 운 동가이자 학교를 설립한 애국지사인 가정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15세의 나이에 군대에 들어갔고 미군이 건 네준 성경을 통해 기독교인이 되었다. 전쟁 중에 살아남는다면 중국과 북한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였고 이후 스위스, 영국 유학을 마치고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990년 대 연변과학기술대학을 설립 하였고 북한의 함경도, 양강도, 자강도 등의 어린이들을 지원했다. 1988 년 북한에서 체제전복 음모죄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공산당원들이 김 진경 총장의 유서를 읽고 감동을 받게 되었고 석방시켜 주었다. 2000년 대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을 추진하였고 2010년 10월 정식으로 개교하 였다. 김진경 총장은 자신을 사랑주의자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림 5-3] 김진경 평양과학기술대학 총장의 북한과 관련한 인생행로 자료: 허련순․김진경(2012)을 바탕으로 연구자가 구성.

이러한 집단에는 북한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지만 민족애와 도전의식 을 바탕으로 지원 활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온 내과의사 김○○씨는 대북지원 NGO를 통해 북한에 의료 활동을 진행하 였다. 전문지식의 활용과 민족애를 바탕으로 한 호기심, 도전의식의 발 로라고 할 수 있다. 이민 1.5세대이며 미국에 비교적 잘 적응한 경우이 며, 북한과 관련된 충격적인 경험이나 원초적인 인식과는 무관한 동기에 서 시작하여 의료선교를 통한 북한의 경험을 통해 북한에 대한 자신만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2008년 Medical 선교를 다녀왔다. 돈만 주고 사진만 찍는 선교 말고 북 한 사람들을 직접 진료하고 싶었다. 총 5박 6일 일정이었다…북한은 말 그 대로 40년 거꾸로 간 나라 같다. 세계에서 가장 동떨어진 나라다. 진료하 면서 북한 사람과 혼자 대화할 기회가 많았고 친해졌다. 우리 팀 10명당 2 명의 당원들이 감시한다. 그 사람들은 떨어지는 게 많다고 좋아한다. 장마 당에서는 우리끼리 돌아다녔다. 당시 1000원이 당원 한 달 봉급이었는데 당원에게 택시비 2만원을 주었다. 그러면 버스를 타고 나머지는 챙겨 넣는 것 같다.

(김○○, 40대, 남, 내과의사)

문서에서 저작자표시-비영리 - S-Space (페이지 190-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