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紀事’·‘紀言’·‘紀物’의 배합
신유한이 문장의 정수를 사체(史體)라 생각한 점은 앞서 언급하였다. 신유한은 사 체를 기사(紀事), 기언(紀言), 기물(紀物)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각 문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글을 고대 경전에서 제시하였다.150) 또 서경 , 춘추 와 같은 역사서 내 지는 주례 와 같은 고대 유교 경전을 글쓰기의 전범으로 삼았다. 그가 젊어서부터 산해경 과 급총서 를 즐겨 읽었다는 점은 당대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151) 본격 적인 논의에 앞서 신유한이 제시한 위의 글이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한다.
기사체의 대표적인 글로 든 「요전, 「순전」, 춘추 와 같은 역사서는 그리 길지 않은 편폭의 글로 역사적 사건을 기록했다는 특징이 있다. 「요전」과 「순전」은 요임 금, 순임금의 행적과 언행을 기록한 글이다. 춘추 152)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면 서 대화체를 삽입하고 상세한 정황 묘사를 통해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에 대응하는 인물의 개성을 효과적으로 부각하고 있어, 역사적 사건을 마치 소설처럼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역사서이면서도 높은 문학성을 갖추고 있는 책이다. 주례 는 주 (周)나라의 관직 명칭과 그 직무 범위를 기록한 책으로 관청의 인원과 관직에 따른 직무의 범위를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기언의 문체로 거론한 것은 대체로 대화체의 어록이라 할 수 있다. 「대우모」, 「 고요모」, 「익직」은 모두 임금과 신하의 대화이고, 「대고」, 「미자지명」은 임금의 말 을 기록한 것이다. 「단궁」은 어록이라기보다는 에피소드 모음집에 가깝다. 유교 사 회의 복장(服裝)이나 매장(埋葬)과 관련한 예법을 기록하였는데, 에피소드를 통해 관련 지식을 제시하고 있어 후대 고문 창작의 전범이 되기도 했다. 「악기」는 후반 부에 수록된 위문후(魏文侯)와 자하(子夏)의 대화나 빈고모(賓牟賈)와 공자의 대화,
史體
紀事 「堯典」, 「舜典」, 周禮 , 春秋
紀言 「大禹謨」, 「古陶謨」, 「益稷」, 「大誥」, 「微子之命」, 「檀弓」,
「樂記」, 魯論
紀物 「禹貢」, 「考工記」, 汲冢書 , 山海經 150) 표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51) “肰世之品翁者, 皆以爲翁早悅 山海經 ˎ 穆天子傳 .”(李瀰, 「靑泉集序」, 앞의 책, 215면)
152) 여기에서 춘추 는 특히 춘추좌전 을 말한다고 생각된다.
사을(師乙)과 자공(子貢)의 대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단궁」과 마찬가지로 대화를 통해 음악의 효용과 철학적 의미를 논하고 있다. 노론 (魯論)은 곧 논어 로 역시 공자와 제자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기물의 문체 가운데 「우공」은 각 지역의 토산품에 따라 공부(貢賦)를 부과하기 위해 만든 지리서이자 세법서이다. 「고공기」는 고대 장인들의 기술서(技術書)이다.
서유구, 이덕무, 정약용 등 조선후기 실학자들이 진나라 이전에 존재한 유일한 과 학기술로 이 글에 주목한 바 있으며, 그 문체 또한 고문의 모범을 보여주어 허균 (許筠, 1569~1618), 이의현(李宜顯, 1669~1745), 박규수(朴珪壽, 1807~1876) 등 이 문장학습의 전범으로 주목하기도 했다.153) 급총서 는 목천자전 (穆天子傳)을 말한다. 목천자전 은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서방으로 여행을 떠나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서왕모(西王母)를 만나고 돌아오는 모험담이다. 가는 길에 변방의 부족들 이 가축, 곡물 등 토산물을 바쳤고 왕은 황금과 비단 등을 답례로 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서술은 변방 세력에 대한 주나라 왕권의 통치능력이 안정되었음을 의미한 다.
해유록 에서 신유한은 하코네(箱根) 호수의 절경을 노래하면서 “이는 본디 여러 신선의 보배이니 / 세상 밖에 빼어나네 / 백익(伯益)의 기록이 어찌 징험할 것이며 / 목왕은 부질없이 사방으로 다녔구나”154)라고 하여 목왕의 유람이 일본 사행만 못 하다는 뜻을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백익의 기록’이란 산해경 을 말한다. 산해경 역시 상고시대의 각 지역의 물산과 동물 등에 대해 기록해 놓은 책으로 신유한이 젊은 시절부터 목천자전 과 더불어 탐독했던 서적이다. 신유한은 이와 같은 여러 저작을 반복 숙독하여 그 문체와 문세, 구성과 체재 등을 자연스레 몸에 익혔던 것 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독서 경험이 해유록 의 저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 던 것일까?
사행록의 서술은 기본적으로 시간 순서에 따라 견문한 사실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편년체 사서(史書)의 서술 방식과 유사하다. 따라서 사체는 신유한의 다른 어떤 작 품보다 해유록 에 잘 구현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155) 신유한이 말하는 사체란 넓은 의미에서 의론문과 대비되는 기사문(記事文)이라 할 수 있는데, 기사문은 ‘실
153) 조창록, 「楓石 徐有矩와 周禮 「考工記」」( 동방한문학 51권, 동방한문학회, 2012), 65~88면.
154) “是固群眞之琬琰兮, 蛻九有而超八荒, 伯益之記何所徵兮, 穆滿徒騖乎西方.”(「富士山 賦」, 9월 23일, 앞의 책, 473면)
155) 송혁기, 앞의 논문, 34면에서, 해유록 이 일본에서 보고 듣고 겪은 사건과 인물, 기물 등을 기록한 일종의 기사문(記事文)임을 지적하고, 기사의 산문으로서 지니는 문학성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제 일어난 일의 경과나 보고들은 경물을 기록하는 것’156)이 기본적인 서술방식이 다. 해유록 의 일록은 편년체적 서술을 따르고 있으며, 「문견잡록」은 일본의 인물 과 풍속, 사물 등을 주제별로 기록해 놓았다. 이런 점에서 해유록 은 기사문의 일 종이라 할 수 있다. 기사문은 기본적으로 사실을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여타 사행록과 비교해 볼 때 해유록 은 일본의 풍경과 인물, 풍속 등에 대 한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기사문 곧 사체를 구현하고자 한 신유한의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라 생각된다. 다음 인용문은 에도의 쓰시마 도주의 저택에서 벌어진 연회를 묘사한 글인데 기사문의 전형(典型)을 보여준다고 생각된 다.
춤은 예닐곱 살쯤 되는 미소년 열 명이 췄다. 모두들 눈썹을 그리고 분홍색 분을 바르고, 검고 윤기 나는 머릿결에 무늬가 있는 오색(五色)의 비단옷을 입은 것이, 멀리서 보면 요염하기 그지없는 여인 같았다. 밖에서 옷을 갖추어 입고 들어와 주변을 돌면서 어지러이 걸어다니며 음악 소리에 맞추지 않고 몸을 낮추 었다가 솟구치는 것이 우리나라 기녀들이 추는 오방신무(五方神舞)와 흡사했다.
춤추는 사람들이 잠시 뒤에 나가서 옷을 갈아입고 들어왔는데 옷차림이 더욱 농염했다. 머리에 쓴 누런 두건이 높이는 한 자 가량이나 되었지만 둥글고 곧아 기울어지지 않았다. 손에는 길이가 대여섯 자쯤 되는 검은 나무 장대를 잡고 있 었다. 장대를 들어 허공을 가리키면서 발뒤꿈치를 들고 팔을 휘두르며 창으로 치고 찌르는 흉내를 내었다. 잠시 후 누런 두건이 스르르 흘러내리자 형형색색 의 꽃이 머리에 만발하였다. 꽃은 일산 모양이었는데, 다 펴지고 나면 화관(花 冠)이 되었다. 몸과 그림자가 함께 너울너울 춤을 추다가 홀연 화관을 장대 끝 으로 옮겨 붙이자 보배로 장식한 일산 같았는데 그것을 받들고 서서 춤을 추었 다.
한참 만에 춤추는 사람들이 또 나가더니 열 사람 중에 다섯 사람은 기녀 차림 을 하고 나오는 것이 완연히 유곽에서 교태를 부리는 모습이었다. 나머지 다섯 은 소년 협객처럼 꾸미고 나오는 것이 또한 방탕한 오입쟁이의 모습이었다. 무 리를 나누어 들어올 적에 화려한 옷이 햇빛에 아롱거렸다. 좌우로 마주 서서 소 매를 벌리지 않고 몸을 돌리고 발을 옮기며 느리게 걷다가 빠르게 달리다가 하 며 춤을 추었다. 마치 눈송이가 날리고 꽃잎이 떨어지는 광경 같았다. 이윽고 춤사위를 바꾸어 남녀 간에 눈짓으로 추파를 던지는 몸짓을 했다. 부교오(奉行) 타이라노 사네나가(平眞長)가 물었다.
156) 송혁기, 앞의 논문, 16면.
“이 춤은 유곽에 있는 여인들의 색정을 표현한 것인데 조선의 기생들 역시 이 렇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옷차림은 다르지만 하는 짓은 똑같군요.”
“학사님도 평소에 이런 흥취를 즐기시는지요?”
“세상에 철 심장과 돌 창자를 가진 사람이 없거늘 난들 어찌 모르겠소. 다만 스스로 삼가고 두려워할 뿐이지요.”
이 말을 듣고 타이라가 크게 웃었다.157)
어린 미소년이 눈썹을 그리고 분을 바른 채 여인처럼 분장하고 춤추는 장면을 생 생한 필치로 그려냈다. 가부키의 여러 장면 가운데에서도 특히 남녀의 색정을 표현 한 장면에 주목하여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이 특징적이다. 신유한은 오오사 카에서 유곽의 내밀한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악부시와 남창(男娼)의 요염한 자 태를 노래한 시를 짓기도 하였다.158) 일본의 독특한 성(性) 풍속을 야만시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자 하는 의식이 가부키에 대한 묘사에서도 보 인다. 미소년의 농염한 모습, 기녀로 변장해 교태를 부리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화 려한 옷이 햇빛에 아롱”거리고, 그 동작이 마치 “눈송이가 날리고 꽃잎이 떨어지는 광경”과 같다고 하여 아름다운 장면으로 그려내고 있다. 또 일본 관원과의 대화로 글을 마무리함으로써 연희에 대한 묘사가 하나의 일화로 성립하게 하였다. 이 대화 에서 신유한은 평소에도 이런 흥취를 즐기냐는 물음에 “세상에 철 심장과 돌 창자 를 가진 사람이 없거늘 난들 어찌 모르겠소”라고 대답하여 인간이 지닌 본래적인 욕망을 애써 부정하지 않은 점 또한 흥미롭다.
이와 같은 서술은 기사(紀事)의 문체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대상의 특징을 사실 적으로 묘사하고 대화체를 삽입하여 하나의 에피소드로 성립시키는 수법은 춘추
157) “舞則以美男子年可十六七者十人, 畵眉紅粉, 綰髮玄膩, 着五色絞錦, 望者如傾城冶女.
自外具服而入, 周行亂步, 似不與樂聲而低昂者, 盖如我國倡妓之五方神舞. 須臾而出, 易 服而入, 服色加艶, 頭戴一黃色巾, 高尺許, 圓直不欹, 手持黑木杖, 長可五六尺. 擧杖指 空, 企足揚臂, 爲搶勢擊刺之狀, 俄見黃巾自落, 便有彩花滿頭, 花如傘形, 舒則爲花冠, 翩翩有弄影之戱, 忽以花冠移着於杖頭, 又似寶盖, 捧立而舞, 移時又出. 分其十人, 五則 爲倡女服餙, 直嬌艶倚市姿也; 五則爲俠少裝束, 又妖蕩挑達兒也. 分隊而入, 麗服曜日, 東西對舞, 舞不張袖, 而回身轉足, 緩步急趨, 爲翻雪落花之觀, 又轉爲男女垂情流眄之態.
奉行平眞長謂余曰: ‘此卽日本倡家兒情色中光景, 未知朝鱗妓樓, 亦有如許狀否.’ 答曰:
‘服色雖異, 意態如畫.’ 又問: ‘學士平日亦解這間興趣否.’ 曰: ‘世無鐵心石腸人, 何爲不 知. 第自畏愼耳.’ 眞長大笑.”(같은 곳; ‘鱗’은 ‘鮮’의 오자)
158) 본고 제3장 제2절에서 상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