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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游錄 의 글쓰기 특징과 일본 인식 - S-Sp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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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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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당시 에 도 막부는 유교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하였다. 이어서 미시적 차원에서 서사적 특징을 검토하였다.

해괴하다’, ‘우습다’라고 표현하며 비판적으로 서술하였다. 의 기록을 가져다가 일록에 수록하여 지역적 특성을 부각하고자 하였다.

한일 문화교류의 추이와 己亥使行

이러한 심정 은 사행 초기에 읊은 시에서도 드러난다.75) 문학으로 헛된 명성을 얻어 이역만리에 서 죽음을 무릅쓰게 된 것을 불운이라 생각한 것이다. 신유한이 일본에 다녀온 기해년은 문화사절단으로서 통신사의 위상이 가장 높아 진 시기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통신사를 대하는 일본 문사들의 인식이 변모 한 시기이기도 했다.

구성 원리

이어서 사스나우라의 ‘인문지리 정보’가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사스나우라 (佐須浦)는 ‘사스나우라’(沙沙浦)라고도 하는데 쓰시마의 서북쪽 귀퉁이에 있다. 이 산을 돌아가면 외진 항구가 있는데 파도를 피할만합니다’라고 하 였습니다.

서사와 서정의 交織

낙향하여 백성들과 더불어 소박한 삶을 사는 것이 외국에서 문장으로 이름 을 떨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倡皆貴家所畜, 計日索金, 故其言如此) 라고 하였다.

여정에 따른 서술 대상의 대비적 구성

독자는 대상에 한 걸 음 다가가 그 내부를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바다와 산과 구름이 공이 다시 돌아오시기를 기다린지 오래되었습니다.”.

서사의 특성

인간 본성의 보편성에 대한 믿음이 여기서도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168) 일록에 인문지리 정보를 삽입하는 것은 남용익의 부상록 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신유한은 이를 계승·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히가시(乾菓子)인데 일본에서는‘바삭하게 말라있다’는 뜻의‘乾’자를.

에피소드를 통한 ‘眞’의 구현

그는 평생을 곤궁하게 살다가 죽었지만 후대에 시로 이름을 떨쳤다. 그의 말이 또한 슬펐다”라는 마지막 대목 이 이와 같은 처지에 처해있는 카쇼오의 고뇌를 함축하고 있어 여운을 남긴다.

장면제시적 서술

나는 먼저 돌아가고 그대 들은 남아 있다가 태수에게 인사를 하고 오는 게 어떻겠나?”. 내가 각도(閣道)를 내려가다가 마침 호오슈우를 보고 불러서 말했다.

일본 인식의 양상과 의미

그는 일본인이 히데요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 는지 유심히 관찰하였다. 210) “君所見我國文集, 未知何人所著, 然此皆壬辰亂後刊行之文也. 통신사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가시덤불과 갈대로 가려 놓았 다”219)라고 하여, 통신사를 속이려는 막부의 의도를 지적하고 있다.

문명적 우월의식과 비판적 인식

그는 일 본의 군사문화가 일본인의 일상을 어떻게 규율하고 그들의 습성을 각박하게 변화시 키는지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249) 위의 두 인용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서 나온 비판이다. 사행 전까지 신유한은 진한고문을 추숭하고 당송고문에는 별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268).

異文化에 대한 이해

신유한은 일본인이 사 용하는 여러 물건이 “가볍고 간략함을 숭상한다”290)라고 했는데, 이런 성향을 식습 관에서도 발견하였다. 더 이상 논의가 심화되지 못 한 것은 아쉬우나 일본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면을 이용후생의 견지에서 통찰하고 긍정한 점은 정당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298).

同文意識의 형성

신유한이 안부를 묻자 통사는 “멀리 왔다가 이렇 게 애통한 일을 당하니 차마 할 말이 없습니다. 해유록 에도 일본을 오랑캐로 지칭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336) 그런데 인용문에서 신유한은 일본의 타고난 성품이 중국 북방의 오랑캐와는 다르다고 하며 그 근거로 문학적 역 량을 들고 있다.

통신사행록 전통의 계승과 창신

인문지리에 대한 관심과 서술은 이후 사행록에서 보이지 않다가 해유록 에 이르 러서 비로소 발전된 형태로 계승되었다. 이외에도 서사적 특징 가운데 장면 확대를 통해 외교 갈등을 소설적 수법으로 서 술한 것은 해유록 의 문학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376) 전대 사행록에서도 외교 갈등의 전말을 기록할 때 일본 측 관원과 통신사의 견해 차이를 대화체를 사용하여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동시기 통신사행록과의 비교

그물 가득 물고기가 뛰는 광경이나 커다란 고등어에 대한 묘사는 무척 생동감이 넘치고 자세하다. 그렇지만 해안이 모두 절벽이라 원숭이가 살 만 한 곳이 없으니, 몹시 이상하다”라고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다.

후대 통신사행록에 미친 영향

그러므로 항상 혼동을 하며 일본인을 ‘교활하 고 독하다’라고 일컫는다. 원중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일본인이 의를 좋아하고 염치가 있으며 법을 두려워하는 점에서는 조선 인보다 나은 점이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결론

제Ⅲ장에서는 저술 배경을 바탕으로 텍스트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수행하였다. 구성 원리는 세 가지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참조

관련 문서